147화
21. 재회
“그게 어떤 건지 한번 들어는 보자. 기막힌 수라면 한 손 도울 수도 있고.”
“팀장님?”
팀장의 반응이 의외였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모두가 경악하며 팀장을 바라봤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 보였다.
“내가 굳이 하급 헌터랑 손을 잡아야 할 이유 있어? 혼자서도 너끈히 처리할 수 있는데.”
“막내 생각해야지?”
“…하.”
날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말이었지만, 그 말에 반응하는 김세현도 아리송할 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날 생각해야 한다는 걸까. 바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보단 다른 사람의 말이 더 빨랐다.
“팀장님, 굳이 잉여랑 손잡으셔야겠습니까?”
그래, 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사람의 합이 중요한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특히 팀장이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는 건 처음 봤다.
“정말 싫어서 그래. 서강민보다 더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합류할 예정이라서 말이야.”
…서강민보다 더한 사람이라니.
그러고 보니 서강민이 합류한단 말과 함께 다른 문제도 좀 있다고 했었다. 지금 반응을 보면 서강민보다 더한 문제가 있는 걸로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팀장이 이렇게 학을 떼는 걸까.
“예? 계약직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곧 시청으로 이동해 올 거야. 곧바로 정규직이 될 테고.”
“아직 시청 소속도 아닌데, 헌터부에 합류 예정이라고요?”
“도대체 누구기에…. 설마 잉엽니까?”
“나 아니야.”
설마 했지만, 김세현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더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지금 이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팀장밖에 없었다.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는데,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협회 소속입니까?”
에이, 설마.
제아무리 능력을 중시한다고 해도 그건 아니었다. 시청에서 바로 정규직으로 돌리려 한다는 건 그만큼 이름이 있다거나 능력을 인정받은 이일 터인데, 그런 사람이라면 협회에서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
무슨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팀장은 부팀장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 때문일까, 이보다 더 불안감이 커질 순 없었다.
“정말 협회는 아니죠?”
설마, 아닐 거다. 그래,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팀장의 표정은 맞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도 썩 반갑지 않은, 그런 사람이 온다는 걸 말이다.
“우리도 아는 사람입니까?”
팀장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잠시 조용해진 사무실 안에 부팀장의 목소리가 채워졌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음에도 큰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만큼 사무실이 고요했고, 또 모두가 지금 대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지.”
“저희가 아는 사람이라고요? 도대체 누구지?”
“협회에서 넘어오자마자 헌터부로 온다는 건 그만큼 능력이 뒷받침된다는 말 아닙니까?”
“…A급 헌터 중에서 누구 넘어오는 사람이 있나?”
“잉여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나 또한 지금으로선 김세현만 자꾸 생각날 뿐이었다. 김세현을 보자, 그는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서프라이즈로 잠깐 생각해 보긴 했지만, 난 정말 아니에요.”
“잉여가 아니라는데요?”
“그럼 누구지?”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아닌 모양이었다. 약간의 안도감과 아쉬움이 섞인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금 주고받는 이야기에 집중할 때였다.
“그놈 말이야.”
침묵하던 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아직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그놈이 누군데요.”
“협조금 협상하러 오는 놈.”
“…예?”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너무도 뜬금없는 말을 들어서일까, 내가 잘못 들은 거 같다. 반문하며 팀장에게 시선을 주자 이미 팀장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넘어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아. 협회에 충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녀석인지라 분명 얻고자 하는 게 있어서 오는 걸 테니까.”
“…….”
날 똑바로 보며 말해서일까, 내게서 뭔갈 얻기 위해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매번 명목이 있을 때마다 협조금을 올리려 헌터부를 찾았던 사람이 정작 이번 개편으로 헌터부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찾아왔던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헌터부로 이동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아니지, 그때 보았던 등골이 서늘해지는 웃음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날을 기다리고 있으란 신호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뭐가 되었건 간에 어째서 팀장이 저리 날 선 반응을 보였는지도 이젠 알 듯했다. 내가 팀장이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헌터부에 합류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어때, 김세현.”
“아까도 말했지만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누군가 수저 올리는 건 딱 질색이라서.”
“그래?”
“난 누구랑 달리 S급 헌터라서. 이 정도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누워서 떡을 먹다가 잘못하면 체할 수도 있었다. 걱정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김세현이 날 보며 씩 웃는다. 다른 때 같았다면 같이 웃으며 호응했겠지만, 아직 그가 어떤 식으로 해결할 건지 몰랐다. 그러니 부탁한답시고 괜히 답했다가 김세현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저 누워서 떡 먹기란 표현을 들으니 걱정이 자꾸만 커진다. 더군다나 팀장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의기양양해 하는 김세현을 뒤로하고 이번엔 팀장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S급 헌터다, 이거지?”
침묵하던 팀장의 입매가 슬쩍 올라가더니 툭 말을 뱉는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말을 꺼내다 만 팀장이 잔뜩 구기고 있던 몸을 쭉 펴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는다. 덩달아 표정까지 한결 풀리는데, 그 변화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멍하니 그를 보는데, 팀장의 입꼬리가 완전히 휘어졌다.
“그럼 너에게 맡기마.”
조금 전까지의 긴장감이 대번에 사라지는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생각지도 못한 팀장의 반응에 당황하며 김세현을 보자, 그 또한 멍하니 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 보면 허를 제법 찔린 듯싶었다. 다시 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눈에 띄게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가 보였다.
“혹시나 같이하자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지. 마음 놓았어.”
침묵하는 김세현과는 달리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하는 팀장이다. 표정 역시 밝아진 것이 방금 전까지의 모습이 진짜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와, 팀장님. 지금 연기한 겁니까?”
“연기라니. 난 언제나 진심이거든?”
“역시 팀장님껜 언제나 한 수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한 수밖에 안 접어? 두 수는 접어야지.”
“예, 그러겠습니다.”
부팀장이 팀장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부팀장까지 저리 말하는 걸 보면 정말 팀장이 연기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참이었다. 김 주무관이 불쑥 입을 열었다.
“잉여도 한 방 먹을 때가 있네.”
“하.”
그간 조용하던 김세현이 김 주무관의 말에 드디어 반응을 보인다. 괜히 눈치가 보여 옆을 훔쳐보자,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표정이 어둡지 않은 게 보였다. 그래, 기분이 상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단 기색이 역력했다.
“덩치가 머리도 쓸 줄 아네.”
“공무원이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줄 알아? 다들 시험 통과해서 들어온 사람이야.”
“어? 생각해 보니 그놈이 오는 거라면 적어도 계약직 시험은 통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그랬다. 헌터 능력을 위주로 계약직 헌터를 뽑는다고는 하지만, 제아무리 높은 등급의 헌터라 할지라도 간략한 시험은 통과해야만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나도 그거 때문에 한참 싸웠어. 그런데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더라고.”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킨 팀장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가 가리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청 윗선을 향한 답답함을 표현하는 팀장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기운이 빠지는 기분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데, 팀장이 뒷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협회에서 한자리하던 사람이 합류하는 거라며 다들 흥분해서는…. 하,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들은 줄 알아? 그놈을 앞세워서 협조금을 깎아 보자더라.”
…그간 들었던 말 중 가장 최악의 말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다. 상상을 초월해도 너무 초월한 나머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어질하기까지 한 윗선의 반응에 말문이 턱하고 막혀왔다.
“그게, 말이 됩니까?”
한참 만에 김 주무관이 입을 열었다. 나는 동조하며 팀장을 응시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협회에 완전 뼈를 묻은 놈이 움직였다는 건 분명히 바라는 게 있어서 온 건데 속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겉으로 보일 이미지만 중요시하다니.”
“그 사람이라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꼭 얻어 내고 마는 편이라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는군요.”
“아마 그래서 몸이 달았을 거야. 항상 얻어 왔던 걸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도대체 뭘 얻지 못했다고 난데없이 이쪽으로 건너와 이렇게 팀을 들쑤시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