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49)화 (149/246)

146화

21. 재회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럼 둘러볼 곳 둘러보고 이동하자.”

“좋아요.”

언제 또 이렇게 외근을 나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서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일단 알아 두는 게 좋았다. 한 주무관과 함께 건물의 잔해들이 남은 곳을 지나쳐 쭉 앞으로 걸어갈 때였다.

“여기야.”

“저는 어떤 걸 중점적으로 보면 될까요?”

30m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현장에 도착할 줄은 몰랐다. 아마도 빠른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 덕분인 듯했다.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다시 한 주무관을 보았다.

“지금 우리가 확인할 건 방금 내가 말했던 던전 팽창 흔적과 피해를 본 곳을 확인하는 거야. 팽창 흔적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 중점적으로 봐야 할 건 피해 본 곳을 확인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확인하면 되고. 한번 해 볼래?”

“네.”

과연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베테랑이 곁에 있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언제 챙겼는지 한 주무관이 태블릿을 꺼내어 내민다. 건네받아 화면을 살피니 이미 표가 만들어져 있어, 체크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

방금 한 주무관이 가리켰던 곳을 지나가며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태블릿의 표와 대조해 체크해 나갈 때였다.

“잠시.”

“네?”

“여기 체크 안 했네.”

한 주무관이 태블릿의 어딘가를 가리킨다. 시선을 내려 그것을 보고 또 한 주무관이 가리킨 곳을 보니 과연 표시를 빼먹은 곳이 있었다. 나름 꼼꼼하게 봤다 여겼는데, 이렇게 놓치는 부분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처음치곤 잘하고 있어. 적응하면 바로바로 체크가 되는데, 넌 처음이잖아? …사실 이런 말 하면 팀원을 헐뜯는 거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박 주무관은 처음 체크할 때 너무 덤벙거려서 팀장님이 한 번 더 처음부터 끝까지 체크했거든. 그 기간이 제법 길 거야.”

“그래요?”

“지금이야 베테랑이 다 되었다곤 하지만 간혹 실수할 때도 있지. 그래도 너처럼 귀여워.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거든.”

“하하.”

좋게 봐주니 다행이다. 소리 내 웃으며 방금 놓친 부분을 체크하자 한 주무관이 계속하라며 손짓한다. 그에 좀 더 꼼꼼히 주변을 살피며 체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사각지대였던 곳을 전부 둘러볼 수 있었다.

“잘했어. 나중에 급한 일 생기면 일손 도우러 나와도 되겠다.”

“그럴게요.”

이 정도 일이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제법 속도도 늘 테고 말이다.

“그럼 바로 이동하자.”

이동하잔 말은 예의 그 장소로 가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한 주무관의 뒤를 따랐다.

“이 근처 어디쯤이었는데….”

일정 거리를 이동한 한 주무관이 주변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 뒤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내 흔적 위치가 기억났는지 그가 따라오라 손짓한다. 뒤를 따라 근처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이게…. 무슨.”

한 주무관에게 어떤 형식으로 흔적이 남는지 듣긴 했지만, 이렇게 큰 흔적이 남아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적어도 3층 높이는 되는 건물 외벽에 그려진 커다란 흔적에 입을 벌렸다.

“던전 난이도가 A급으로 조정되었잖아. 최근 들어 A급 던전을 자주 접하곤 있다지만 이렇게 큰 흔적을 남긴 건 처음 봤어. 아무래도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 등급들이 높은 편이라 그런 게 아닐까 다들 추측하고 있고.”

“…이런 흔적이 남는군요.”

벽에는 한 주무관이 말했던 것처럼 둥그런 원형 모양의 금이 마치 나무 나이테처럼 여러 겹 나 있었다. 작은 원을 중심으로 원을 감싸고 또 감싸는 형태의 흔적을 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이게 참 그런 게 생성되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말이야. 언제는 던전이 팽창하고 난 이후 생성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팽창하기 훨씬 이전에 생성되기도 하고. 어느 나라에선가 이걸 연구한다는 말을 얼핏 듣긴 했는데, 진척이 없는 건지 이와 관련된 건 알려진 바 없어. 그래서 왜 생기는 건지 알 수도 없고. 던전이 팽창될 때 생기는 거라고 막연히 우리끼리 말하는 거지.”

“그렇군요.”

“이건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거야. 혹시 이런 게 눈에 보이면 최대한 멀리 도망가. 혹 도망가지 못할 땐 몸을 감출 수 있는 곳으로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고.”

이보다 좋은 팁은 없을 거다. 생존과 직결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끄덕였다.

“네. 명심할게요.”

“좋아. 또 현장에서 보고 싶은 거나 알고 싶은 거 있어?”

“지금 당장은 없어요.”

오늘 여기서 알게 된 것을 습득하려면 이 이상의 정보를 얻는 건 좋지 않았다. 대신 근방을 좀 더 둘러보고 싶단 말에 한 주무관이 긍정 어린 신호를 보내왔다.

“그럼 이 근처 좀 둘러보면서 점심 먹을 거 고민해 보자.”

“네.”

“먹는 건 따로 가리는 거 없다고 했나?”

“네. 가리는 거 없어요.”

“그럼 내가 아는 맛집으로 가자. 경양식 집인데, 맛이 좋아서 자주 이용하거든.”

“좋아요.”

경양식을 먹는 것도 정말 오래간만일 듯했다.

나는 마저 한 주무관과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을 둘러본 뒤 그가 말한 경양식 집으로 향했다.

***

“다녀왔습…. 어, 팀장님 오셨네요.”

“오래간만이야.”

“오셨어요.”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오니 뜻밖의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인사하니 팀장이 슬며시 입가를 끌어 올린 채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기운이 영 없어 보였다.

“그런데 팀장님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습니까?”

내가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웃고는 있지만 영 좋아 보이지 않는 게 걱정되었다. 자리로 가 짐을 내려놓곤 뒤돌아서는 팀장을 살피는데, 그는 말없이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뭔데 그러십니까?”

“하아.”

“후우.”

“…….”

대답 대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가 사람을 긴장시킨다. 절로 입 안이 버석하게 말라오는 걸 느끼는 와중에 팀장의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말해야겠지. 해야겠는데….”

“혹시 시청에 갔던 일이 잘 풀리지 않으셨어요?”

그래, 이거 말곤 저렇게 한숨을 뱉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이에게 바로 되묻자, 팀장이 말없이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하며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우리 막내가 눈치가 제법 늘었어.”

“정말입니까?”

“어느 정도는 방어했는데, 그놈은 막지 못했어. 그거 말고도 문제가 좀 있고.”

“아….”

여기서 그놈이라 칭하는 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서강민의 모습이 떠오르자 침음이 절로 잇새로 새어 나갔다.

“시장이 워낙 강경해야지. 더군다나 그 녀석이 A급 헌터인지라 우선순위로 헌터부에 합류하게 되었어.”

“이전에도 한 차례 정규직으로 돌린다 만다 말이 나왔던 만큼 이번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겠군요.”

“아아. 그렇지.”

시민을 구한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생긴 건 다름 아닌 나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덤프트럭이 잘못한 것이기에 내가 잘못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괜히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팀장을 바라보는데, 한 주무관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몇이나 합류하게 될 예정입니까?”

“서강민을 포함해서 다섯이야. 인원이 대폭 늘어나는 만큼 사무실 구조도 개편해야겠지.”

“이 좁은 곳에 다섯이나 더 들어온다고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았지만, 이곳에 다섯이 더 들어오는 건 좀 그랬다. 이전에 에드워드 왕자가 왔을 때만 해도 그의 보디가드들이 사무실을 채웠었다. 게다가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영혁 부장과 함께 감찰부가 왔을 때도 사무실이 제법 꽉 찼었고 말이다.

“다섯 명이 충원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책상 다섯 개가 들어올 공간이 있을까요?”

“그래서 구조를 바꿔야겠다는 거야. 어떻게 해서든 공간 만들어 봐야지.”

사람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책상이 문제였다. 책상 세 개가 들어왔을 때도 빼곡했는데, 과연 공간을 만든다고 해서 만들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사무실 안을 훑어보며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형!”

“아.”

벌컥 출입문이 열리며 모습을 보인 건 다름 아닌 김세현이었다. 제법 단정한 짙은 회색의 슈트를 입고 나타난 그를 보며 감탄하는데, 팀장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근처에서 대기라도 한 모양이지? 막내 오자마자 오는 거 보면.”

“형 오면 연락하기로 하지 않았어요?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진짜 있네.”

오늘도 역시나 팀장 말을 무시한 채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막 들어온 참이었어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연락해 주지. 계속 기다렸잖아요.”

약간 투덜대는 어조로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이내 전용 자리가 되다시피 한 내 옆으로 와 자리를 잡는다.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팀장 쪽을 바라보니 그의 안색이 조금 전보다 더 어두워진 게 보였다.

“그래, 너도 이제 오기 힘들 테니 봐준다.”

“무슨 말이야?”

그간 팀장의 말에 반응하는 일이 거의 없던 김세현이 즉각 반응했다. 어느새 김세현이 팀장 쪽으로 몸을 반쯤 틀어 앉았다. 표정이 제법 살벌한 것이 이러다가 말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날 같았다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가열되었을 때 끼어들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몹시 피곤해 보이는 팀장의 표정을 한 번 더 확인하곤 황급히 김세현의 팔을 붙잡으며 자제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시선을 받은 김세현이 뭐라고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문다. 그리고는 유심히 내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김세현에게 헌터부 이야길 할 수가 없어 그저 시선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팀장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현재 상황을 김세현에게 알렸다.

“너도 알겠지만 이번에 헌터부 개편이 있을 예정이야. 다른 이들이 합류하는 터라 더는 좋게 봐줄 수 없게 되었다 이 말이지.”

“내가 오는 게 뭐가 문제라고.”

“그간 자주 자리를 비웠던 게 우리 막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거 아니었어? 썩 좋지 못한 성격의 이들이 합류하게 되었으니 자제해 달라는 말이야.”

“어려울 건 없네.”

“뭐?”

김세현이 그간 조심히 이곳을 방문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고마운 마음은 컸지만, 방금 전 그가 한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슨 뜻으로 어렵지 않다고 했는지 궁금해져서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