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21. 재회
“빌어먹을!”
“…….”
“운전을 저따위로 할 거면 면허증을 반납하든가!”
분명 회사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외근을 나간다는 것에 대해 설렘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큰길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한 주무관의 버릇 아닌 버릇을 다시 경험하며 눈치를 살피던 와중에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뭐가 온 건가 싶어 확인해 보자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형, 언제 와요? ( ´͈ ꇴ `͈)੭⁾⁾·°˖✧˖°??]
그러잖아도 외근을 나간다는 사실을 김세현에게 말해 뒀었다. 그때도 외근이 언제 끝나는지, 그러면 돌아오는 건 언제인지 등등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더니만…. 사무실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슬쩍 한 주무관의 눈치를 살피며 답장을 보냈다.
[점심 이후나 사무실에 도착할 거 같아요.]
[돌아오자마자 연락해요. 바로 갈 테니까 。*三(o´〰`o)♡]
[그럴게요.]
[벌써 보고 싶다 ( •̥́ ˍ •̀ )]
“…….”
대체 어디서 저리 귀여운 이모티콘을 구해 오는 건지 모르겠다. 훌쩍이는 이모티콘과 함께 보고 싶단 말을 하는데, 김세현의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왜 이리 심장이 들썩이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렇게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젠장!”
순간 한 주무관이 큰 소리를 뱉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공무원만 아니었으면!”
“…진정하세요, 한 주무관님.”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극히 예민해지긴 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 정도가 심해 보였다. 무슨 일이 나도 날 것만 같은 모습에 황급히 그를 붙잡으며 말하자 흠칫하며 한 주무관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
“앞이요, 앞!”
놀랐다고는 하지만 운전 중에 옆자리를 보는 건 위험했다. 황급히 앞을 가리키자 한 주무관이 다시 앞을 바라보며 운전대를 바로잡았다.
“휴우.”
순간 이쪽을 바라보는 한 주무관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다. 김세현을 떠올릴 때완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펄떡거리는 심장 소리가 이보다 매서울 순 없었다. 멍하니 그를 보는데, 한 주무관은 빠르게 감정을 갈무리한 듯 보였다.
“항상 혼자 다니느라 옆에 사람 있다는 걸 깜박했네.”
“하, 하.”
“자제해 볼게.”
“네.”
자제해 준다면야 나야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데, 짧은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제법 떨려 나왔다.
“안전 운전한다.”
내 목소리를 들은 한 주무관이 짐짓 심각해진 얼굴로 말하며 한 번 더 운전대를 붙잡는다. 이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진 차 속도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것에 반응하기보다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행하는 차 밖을 보며 마음을 다독이다 보니 어느 순간 심장 박동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겨우 진정된 마음으로 한 주무관에게 다시 시선을 줄 때였다.
“좀 괜찮아?”
한 주무관이 힐끗 날 보곤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편안하게 운전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운전대에 바짝 몸을 붙인 모습이 무척 불편해 보였다. 긴장하며 운전하는 모습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네, 이젠 괜찮아졌어요. 편히 운전하셔도 돼요.”
“아냐. 옆에 사람 태웠을 때까지 이러면 안 되지.”
“하하.”
오히려 내 말을 들은 한 주무관은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소맷단부터 걷어붙인 터라 팔뚝에 핏줄이 선 게 훤히 보여 그가 얼마나 강하게 운전대를 쥐고 있는지 눈에 보였다. 핏줄뿐 아니라 힘을 어찌나 준 건지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한 게 보여 그걸 보며 웃는데 한 주무관이 말을 이었다.
“요즘 내가 생각해도 운전할 때 좀 많이 난폭해지긴 했거든. 덕분에 정신 번쩍 들었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야.”
“네.”
한 주무관이 그렇다면야 그런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놀라 민망했지만, 그게 도움이 되었다니 무척 다행이었다. 안도하며 한결 편한 자세로 앉으니 몇 차례 날 확인하는가 싶던 한 주무관 또한 점차 자세가 편해지는 게 보였다.
“이제 거의 다 왔네.”
한 주무관이 한 손으로 앞을 가리킨다. 그에 뚫어져라 앞을 응시하다 보니 파괴된 건물로 추정되는 것들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 현장 모습에 쉬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
처음 김세현의 집에 간 날에도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에 가긴 했었다. 하지만 그땐 해가 졌을 때였던 지라 이렇게 낮에 던전 피해를 본 곳을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서울시에 숱하게 발생하던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접해보지 못한 것도 참으로 용할 지경이었다.
던전 현장과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볼 때완 전혀 다른 느낌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여기저기 철근만 앙상하게 드러난 파괴된 건물들이었다.
“심각하네요.”
난이도가 A급으로 재조정된 던전이라고는 하나 초반에 김세현이 초반에 클리어했음에도 이렇게 짙은 상흔을 남겼을 줄은 몰랐다. 어느덧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으로 접어들었는지 건물 잔해들을 치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이들을 보는데,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잔해 치우고 정리하는 사람 대부분은 이곳이 터전인 시민들이야.”
“그렇군요.”
“나라에서도 지원 나온 이들이 있긴 하지만, 저들보다 절실하진 않지.”
“…네.”
나 또한 저들과 같은 입장이라면 모든 걸 뒤로한 채 집을 보수하는 것에 집중했을 거다. 고개를 주억이며 계속해서 창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새 한자리에서 정리한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뒤늦게 차가 멈추어 섰다는 걸 인지했다.
“다 봤어?”
내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린 듯한 주무관이 바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그럼 내리자. 우리가 갈 곳은 아직 복구가 완전히 되지 않은 거 같더라고. 여기서부터 걸어서 이동해야 하거든.”
“바로 내릴게요.”
복구가 완전히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벌써 긴장되었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뒤이어 한 주무관 역시 내려 차 문을 잠근다. 따라오라는 손짓에 곧바로 그의 곁으로 가 선 뒤 차 키를 든 손으로 이 주변을 가리키는 이를 따라 다시금 눈을 움직였다.
“이 근방일 거야. 팀장님이랑 잉여가 맞닥뜨린 곳.”
“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잉여 덕분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긴 했지. A급 난이도 던전인데, 이렇게 건물 뼈대가 남은 건 정말 천운이야. 저렇게 멀쩡한 건물도 있고 말이야.”
“다행이네요.”
말처럼 중간중간 심한 손상을 입은 건물들 사이로 멀쩡한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이전에 TV로 접했던 A급 난이도의 던전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번 피해는 경미하단 말이 옳은 표현인 듯했다.
“이게 참. 잉여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 한 게 없는걸요.”
그래, 이 모든 건 김세현 덕분이었다. 더하여 바로 던전으로 향한 팀원들 덕분이었지 내가 한 일은 없었다.
“너무 그렇게 낮추지 않아도 돼.”
“음….”
여기서 정말 솔직한 심정을 말한 거라고 한다면 한 주무관이 민망할 터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리니 그가 다시 한곳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30m가량 이동하면 확인할 곳에 도착해.”
“여기서 어떤 걸 확인하나요?”
“크게는 던전 피해를 얼마나 입었는지를 보지. 작게는 순간 규모가 커질 때 던전이 남기는 흔적을 찾는 거야. 예전에 한번 말했던 거 같은데, 혹시 기억나? 비슷한 시기에 던전 규모가 커질 때가 있다고.”
저 말을 들으니 이전에 던전 지도 제작하는 방법을 들을 때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개를 끄덕이니 한 주무관이 발을 떼며 방금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에 얼른 보조를 맞춰 발을 움직였다.
“간혹 던전이 순간 규모가 커지거나 난이도가 오를 때 있지? 그때마다 흔적을 남기거든. 혹시 몬스터가 허공을 찢고 나오는 거 본 적 있어?”
“이번에 봤어요.”
“그래? 잘됐네. 흔적이라는 게 그거랑 비슷해.”
그거랑 비슷하단 말과 함께 허공에 이리저리 손을 휘적거린다. 무언가가 찢어진 듯한 모양을 그리는 이를 봤다가 다시 손의 움직임을 집중해 보며 고개를 주억이니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이게 던전마다 좀 다른 모양이긴 한데, 대부분 바닥이나 건물 벽 같은 곳에 누가 봐도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균열이 생겨. 특이한 게 대체로 원형으로 여러 겹 균형이 가는 편이야. 크기가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는데 보통 그 크기는 던전 규모나 난이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물론, 이게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어서 쉬쉬하고 있지만 말이야.”
“혹시 그 흔적도 이번에 볼 수 있을까요?”
말로 듣는 것도 좋았지만, 직접 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었다.
“좋아.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한 주무관이 씩 웃으며 날 바라본다. 대견하단 감정이 가득 찬 시선을 마주하니 이보다 더 민망할 순 없었다. 머쓱하게 웃자 그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뭐든 열심히 배우려는 건 좋지.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좀 더 이곳 둘러보면서 현장 상황이 어떤지 살펴보자고.”
그건 내가 바라던 일이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