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20. 폭풍전야
“예, 서울시 헌터붑니다. 아, 팀장님.”
팀장님?
평소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팀장님이 무슨 일로 사무실 전화로 연락했는지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에 놀라 그쪽을 보니 이미 다른 팀원들 역시 부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그렇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기에 저렇게 대답하는 텀이 짧은 걸까. 부팀장이 답하면 답할수록 통화 내용이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몇 차례 짧은 대화가 오가더니 이윽고 부팀장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랍니까?”
“큰일은 아닙니다. 집에 핸드폰을 두고 오셨다고 하는군요.”
“아.”
“평소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분이라 갑자기 사무실로 전화해서 놀랐습니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끄덕이며 김 주무관의 말에 동조하자 부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있어 그런 거 같습니다. 대개 일과 관련해서는 핸드폰보다는 사무실 전화를 이용하니까요.”
“우리 팀장님이 그런 눈치를 볼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자리가 자리라 그런 건가?”
“난 또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바짝 긴장했지 뭡니까.”
한 주무관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피식 웃자 부팀장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저도 팀장님 목소리 듣고 긴장했습니다. 통화 내용도 별일 아니라 다들 긴장 풀어도 됩니다.”
부팀장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정말 긴장을 풀어도 될 듯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가짐으로 손을 들었다.
“부팀장님, 팀장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알려주세요.”
“…….”
조금 전과는 달리 부팀장이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잠자코 기다리는데, 부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제와 같습니다. 4시까지 사무실에 오지 않는다면 퇴근하라더군요.”
“…다른 말은 없으셨고요?”
“예. 목소리도 평소와 같은 것이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다행이네요.”
별다른 말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는 부팀장이다. 그 모습을 보니 방금 전 날 본 건 그냥 쳐다본 것이었던 듯했다.
그건 그렇고 팀장이 오늘도 사무실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걱정될 수가 없다.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잘 진행되었으면 했지만, 괜히 마음이 쓰이는 게 영 불안했다.
“후우.”
그렇다고 이 불안을 계속 이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게 된다면 실제로도 그쪽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팀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팀장님만 믿어야겠네요.”
“위에서 압력 넣는다고 해서 팀장님이 물러설 사람도 아니니까요.”
“혹여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분명 뭔가 하나는 얻어올 겁니다. 우리 팀장님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맞습니다!”
“일단 우리는 여기서 할 일을 마저 하도록 하죠. 하늘 씨.”
부팀장의 부름에 곧바로 답했다.
“네, 부팀장님.”
“작업 파일 하나 보내겠습니다. 단순 작업이라 어렵진 않을 겁니다. 부탁해요.”
“맡겨만 주세요!”
단순 작업쯤이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준다. 나 역시 모니터를 보자 잠시 뒤, 파일 하나가 도착했다. 그것을 열어 작업하려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형.”
“네, 세현 씨.”
“커피 마실 거죠?”
“좋죠.”
순간 긴장했던 터라 입도 축일 겸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을 성싶었다. 김세현이 일어나자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가려고요?”
“커피 타는 거 도우려고요. 팀원들 몫도 챙기고요.”
“오, 역시 우리 막내야.”
“저는 율무차로 부탁합니다.”
“나는 물도 한 잔 부탁할게.”
나처럼 입이 말랐던 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온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김세현과 함께 정수기로 가 곧바로 팀원들 몫의 커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형, 난 석 잔이요.”
“그래요.”
“난 형 것만 타야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김세현이 내 것만 타려던 건 알고 있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세현 역시 입가를 끌어 올린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을 보며 마저 커피를 준비하고 모두에게 나눠 준 뒤 남은 잔을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세현 씨 몫은 여기 둘게요.”
김세현 앞쪽으로 커피를 두니 자리에 앉던 그가 모니터 앞쪽에 내 몫의 커피를 내려놓았다.
“좋아요. 형 건 여기 둘게요.”
“고마워요.”
혹여 쏟을까 걱정했는지 김세현은 종이컵을 손에 걸리지 않는 곳에 두었다. 생각지도 못한 섬세함에 감탄하며 쟁반을 제자리에 두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곤 곧장 그가 탄 커피를 쥐었다.
“…….”
솔솔 풍기는 커피 향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몇 번이고 거듭해 향을 맡다가 커피를 마시며 부팀장이 맡긴 작업을 시작했다.
***
오늘따라 복도가 고요하게 느껴지는 건 전부 평소보다 30분가량 일찍 출근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사무실 문 앞에 서서는 크게 심호흡했다.
“후우.”
혹 누가 먼저 와 있진 않을까 했는데 이른 시각이라 그런 걸까, 오늘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래간만에 첫 번째로 사무실 문을 연다고 생각하니 제법 설렜다. 출입증을 찍어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적막이 흐르는 사무실이 날 반겼다.
“…….”
오늘따라 더 조용하다 느껴지는 건 평소라면 사무실까지 늘 같이 들어오던 이가 지금은 곁에 없어서일 것이다. 8층에 도착함과 동시에 바로 가방을 맡기곤 화장실로 직행한 부팀장의 부재가 이보다 클 수가 없다. 크게 한 차례 심호흡하며 사무실 불을 켜곤 곧바로 부팀장 자리에 가방을 올려두었다.
“환기부터 해야겠네.”
오는 길에 보니 날씨가 화창한 것이 환기하기에 딱 좋았다. 곧바로 내 짐을 자리에 두곤 창을 열자 산들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이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자리로 가 마저 짐부터 풀어야 했지만, 잠시 여기서 시간을 보내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렇게 창밖의 풍경을 보며 아침의 여유를 즐길 때였다.
“막내야,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무관님. 오늘 일찍 오셨네요.”
창밖을 바라본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았건만, 한 주무관이 벌써 출근한 상황이었다. 놀라 그를 바라보니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은 그가 다가와 옆에 섰다.
“부팀장님은?”
“속이 안 좋으신 거 같아요.”
“그래?”
주변을 둘러보던 한 주무관이 내 대답을 듣곤 고개를 주억이더니 창밖을 내다본다. 그에 따라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 날씨 좋지?”
“네. 휴일이었으면 콧바람 쐬러 가기 딱 좋은 날이네요.”
“그치? 아, 바깥공기 맡고 싶으면 오늘 나랑 잠깐 외근 나갔다가 올래?”
“외근이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다. 한 주무관의 말에 놀라 바라보니 그가 씩 입가를 말아 올렸다.
“이번에 던전 생성되었던 곳에 잠깐 보고 올 곳이 있어서. 다 확인한 줄 알았는데, 사각지대가 있더라고. 거기 체크하고 올까 해서 말이야.”
“저야 좋죠.”
그런 외출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바깥바람도 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과도 같았다.
“허락은 부팀장님 오면 그때 받아 두자고.”
“네.”
헌터부에서 일하며 외근을 나갔던 적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나는 이전에 몇 차례 사무실을 벗어났던 일을 상기해 보았다.
“…….”
생각보다 외근 횟수가 더 적은 것 같다. 물론, 내근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모두가 친절했고, 또한 나 역시 바깥 생활을 할 때보다 안에서 생활하는 편이 컨디션 조절에도 좋았으니까.
“부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막 막내랑 이야기했는데, 오늘 오전에 저랑 같이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특이점이라도 발견했습니까?”
“그건 아니고요.”
뒷머리를 긁적인 한 주무관이 조금 전 나에게 말했던 내용을 부팀장에게 전달한다. 부팀장을 숨죽여 보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반색했다.
“감사합니다, 부팀장님!”
“그렇게 외근하고 싶었어?”
“현장 직접 둘러보면서 한 주무관님께 현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싶기도 하고요. …바깥 날씨도 좋고요.”
“잿밥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군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단 말을 하는 부팀장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정말 외근 일 배워두려고 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요. 뭐든 알아 두면 좋을 거 같아요.”
이제 곧 사람이 충원될 테고, 그렇게 된다면 보는 눈이 많아질 것이었다. 그간 팀원들과 지내며 열심히 노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외근 나가는 걸로 하죠.”
한 번 더 외근을 허락한다는 부팀장의 말이 떨어졌다. 나는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가를 참아보려 애썼다.
“점심은 따로 먹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저 녀석 표정 보니 조금이라도 더 밖에 머무르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그러도록 해요.”
점심까지 밖에서 따로 먹게 된다니 이보다 더 설렐 수가 없다. 여기서도 항상 다른 메뉴를 먹기에 질리진 않았지만, 기분을 내기엔 밖이 좋았다. 이런 좋은 날씨에 외근이라니.
“……”
물론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으로 가는 터라 긴장도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꾸만 설레서 문제였다. 설레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음에도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날 보며 웃는 두 사람을 보며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저리 좋아할 줄은 몰랐군요.”
“예.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앞으로 던전 생성되면 우리 막내도 대동….”
“아뇨!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일반인인 내가 함께 움직인다면 그보다 더 걸림돌이 될 순 없을 거다. 황급히 두 손을 흔들며 거절하자 이쪽을 보던 부팀장과 한 주무관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매번 당해도 또 속지.”
“그게 하늘 씨 매력이죠.”
“맞습니다, 부팀장님. 이렇게 순진한 녀석은 오래간만에 보는지라 볼 때마다 즐거워요.”
“…….”
놀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심통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제 곧 외근을 나간단 생각을 하니 이보다 더 마음이 즐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냥 이렇게 들뜬 마음을 드러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한 주무관과 함께 가기로 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이었으니까.
과연 현장에서는 어떤 걸 살피는 걸까.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만 기대감이 커진다. 나는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외근을 나갈 시간이 되기만을 학수고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