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45)화 (145/246)

142화

20. 폭풍전야

“따지고 싶으면 청와대에 따져야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어.”

“하긴,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팀원들이 나누는 말에 한마디 보태니 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마치 듣지 못할 말이라도 들은 듯한 반응에 당황하는데, 이내 팀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했다.

“이젠 우리 막내 척척 알아듣고 맞장구도 치네.”

“이전에도 우리 막내 잘만 했거든요?”

“기억 안 나십니까? 우리 막내 병아리 시절 때 사무실을 휩쓴 양아치 발언 말입니다!”

“아, 내가 그걸 깜박했네.”

“이번에도 혹시 일 생기면 말 한마디 부탁한다, 막내야.”

“…하하.”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비꼬는 게 아닐까 의심부터 했을 거다. 웃어넘기자, 팀원들이 한바탕 웃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팀원 충원 때문에 간 거라면 정말 개편이 이뤄지긴 하는 모양이네요.”

“청와대에서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 것도 거지만, 요즘 헌터부를 향한 세간의 관심이 장난 아니잖아. 그러니 보여 주기식으로라도 진행할 수밖에 없겠지.”

“이영혁 부장이 말한 것처럼 계약직 헌터를 최우선으로 정규직으로 돌린다고 했을 때 과연 누가 정규직이 될까요?”

“확실히 궁금하긴 하네. 계약직 전부를 바로 정규직에 돌리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듣고 보니 정말 궁금했다. 모두가 정규직이 되는 것도 좋았지만, 서울시 소속 계약직 헌터들 모두가 정규직이 된다면 현실적으로 곤란한 상황이 제법 될 것이었다. 우선은 추가 인원을 수용하기 힘든 이 사무실부터 문제가 되겠지.

“아마 등급 높은 순으로 되지 않을까? 계약직으로 오래 근무한 이들도 포함될 테고.”

턱을 만지작거리던 한 주무관이 의견을 냈다. 갑자기 추가 인원이 생기는 만큼 현실적으로 등급순으로 커트라인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았다. 혹 다른 의견을 내는 팀원이 있을까 싶어 이어지는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등급순도 나쁘지 않지만, 그보단 헌터부에 얼마나 빨리 녹아들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우선순위로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죠.”

“저도 김 주무관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 주무관이 부팀장과 김 주무관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그를 보니 무척 표정이 심각한 게 아무래도 뭔갈 떠올린 듯싶었다.

“…만에 하나 등급 순으로 결정된다면 서강민도 정규직이 될 가망성이 높다는 거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

서강민이 정규직이라니.

능력을 생각하면 정규직이 되는 건 당연했지만, 이전에 보였던 그의 말도 안 되는 행각을 떠올리자 그가 정규직이 되는 게 맞나 싶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우리 막내가 교통사고가 날 뻔했던 사건도 아직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거지.”

“그렇죠.”

“그간 행적을 따져 보면 서강민도 유력 용의자인데 말입니다.”

“이전에 던전에서 수작을 부렸을 때 있잖습니까. 그때 이후로 그놈을 다시 용의자 선상에 올렸다, 이거죠.”

“그렇지?”

“에이, 설마요.”

그래, 거기까지 손을 댔다면 인류애가 사라질 것 같았다. 손사래 치며 거기까진 아닐 거란 말을 하는데, 김세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태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 렇죠?”

아직 정신계 관련하여 의심할 만한 이를 발견한 것도 아니었고, 감옥에 갔던 덤프트럭 운전자 역시 살해당한 바람에 사건은 흐지부지되어 버린 상태였다.

“흠.”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내리깐다. 내가 겪은 사건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 볼 게 있는 듯했다. 말없이 그를 보다가 잠시 잠잠해졌던 팀원들의 대화가 시작되자 그쪽으로 관심을 주었다.

“서강민이 유력 용의자라고 들으니 정말 의심되긴 하네.”

“그렇죠? 헌터들 사이에서 유명하잖습니까. 돈 욕심도 돈 욕심인데, 명성을 얻는 걸 최우선으로 여긴다고요.”

“그러니 이전에 던전에서 아이템이 나왔다며 수작을 부리려 했던 거겠지. 그 수작이 우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던 행각일 수도 있고 말이야.”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미 정립되었던 서강민의 이미지가 한 번 더 추락한다.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 그란 사실은 변치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처럼 그를 향한 호감은 생기지 않았다.

“팀장님이 시청으로 갔으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예, 부팀장님!”

“연락이 오는 대로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들 일과 보세요.”

“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지만, 부팀장의 말마따나 어제 생성되었던 던전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나는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 지도에 정보를 입력하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

4시가 넘어 퇴근 시간이 되었음에도 팀장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국 충원 관련한 그 어떤 말도 전해 듣지 못한 채 퇴근길에 오른 상황이 이보다 답답할 순 없었다.

“부팀장님.”

“예.”

운전 중인 이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대로 가기엔 궁금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 잠잠하기만 한 부팀장의 핸드폰을 보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 말이에요. 설마 여태 시청에 있거나 한 건 아니겠죠?”

헌터부에 변화가 생겼다면 팀장은 곧바로 부팀장에게 연락을 넣을 것이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는 건 계속 시청에 머무르고 있음을 의미했다. 설마, 조율이 잘 안 되는 걸까?

“어쩌면 헌터부로 충원될 계약직 헌터들을 놓고 입씨름 중일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아마 서강민을 빼 보자 노력 중이지 않을까 합니다.”

“…서강민 헌터를 대동하기엔 그만큼 위험이 뒤따른단 거겠죠?”

“예. 서강민 헌터가 대표 케이스지만, 협회와 정부 기관을 자주 오간 이들은 배제되는 게 맞습니다. 그게 S급 헌터라고 할지라도요.”

부팀장의 표정을 살피니 그는 정말 용납할 수 없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물론 사정이 있어 오간 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강민 헌터는 돈, 그리고 명성을 올리기 위해 뒷공작도 서슴지 않던 사람입니다. 그런 이가 정규직이 되어 활동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헌터부 얼굴에 먹칠하게 될 일이 생길 겁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너무 과하다 볼 수도 있겠지만, 부팀장은 헌터부 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생각에 동조했다.

“차라리 김세현이 헌터부에 정식으로 들어온다면 그건 말릴 생각이 없습니다.”

“아.”

“적어도 김세현은 명성엔 관심이 없으니까요. 여태 모은 돈이 있으니 더 돈을 밝힐 거 같지도 않고.”

돈을 더 밝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는 부팀장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농담 삼아 그를 입에 담은 듯했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그랬으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또 아닐 거 같기도 하네요.”

“어째서요?”

“세현 씨가, 돈을 벌면 식비로 많이 나가는 거 같더라고요. 최근엔 협회에도 잘 가지 않는다고 하니 제법 목돈이 깨지고 있을 거예요.”

김세현의 식사량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이미 아는 사람들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것은 부팀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리가 있군요.”

“물론, 협조금 수령하는 금액이 좀 줄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어요.”

S급 헌터가 부르는 게 값이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협조금이 줄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내 말에 부팀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곤 앞을 바라보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팀장님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헌터부를 위해서라도요.”

“네.”

책임감 넘치는 팀장이니만큼 부팀장의 말마따나 정말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차가 집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점차 속도가 줄어들고 이윽고 집 앞에 서자, 곧바로 벨트를 풀며 차 문을 열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부팀장님.”

“그럼 내일 봅시다.”

“조심히 가세요.”

내린 창 너머로 인사를 건넨 부팀장이 곧바로 차를 출발시킨다.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보며 배웅하고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걸친 옷을 휘휘 벗어 던지곤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

생각이 많을 땐 역시 개운하게 씻는 게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씻고 나오니 어느새 집 안은 컴컴해져 있었다.

허리춤에 수건을 고정하며 곧바로 거실 등을 켜 집 안을 둘러볼 때였다. TV 곁에 검은 구체 모양의 빔프로젝터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나 좀 볼까?”

생각해 보니 한 번 살펴보자 해 놓곤 여태 보지 않고 있었다. 곧바로 빔프로젝터를 집어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

“생긴 건 정말 똑같은데 말이지.”

보면 볼수록 담벼락에 놓여 있던 것과 어쩜 이리도 똑같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담벼락의 그것과 빔프로젝터가 똑같은 디자인이라는 건 정말 그것과 이것이 세트임을 의미했다. 그게 아니라면 같은 브랜드 제품이거나 말이다.

“아….”

세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담에 놓여 있던 것 역시 김세현이 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싹텄다.

“아니겠지….”

그래, 지금 이 의심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하게 된 게 분명했다. 김세현이 이걸 거기에 둘 리도 없을뿐더러 세상엔 같은 디자인의 물건이 셀 수 없이 많기에 이건 억측일 터였다.

“의심할 걸 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을 의심하다니, 이건 말도 안 되었다. 픽 웃으며 다시 빔프로젝터를 제자리에 두곤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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