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20. 폭풍전야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화면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그의 움직임이 느려질 때면 주변이 언뜻 보였지만, 그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화면이 전환되고, 김세현이 카운트하는 상황이 연이어질 때였다.
―마흔둘, 마흔…. 쳇.
화면의 움직임이 멎는가 싶더니 숫자를 세다 만다. 그리고는 혀를 차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잠시 CCTV를 보던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주시할 때였다. 뜻밖의 목소리가 네트워크 너머로 전달되었다.
―여긴 내 구역이니까 넌 다른 곳으로 가지?
―누구완 달리 다른 곳 정리가 다 끝나서 말이야.
―끝났으면 빵이나 사러 가던가?
―그 전에 쓰레기 청소하기로 해서.
뭔가 했는데 팀장과 김세현이 만난 모양이었다. 카메라가 팀장이 아닌 다른 곳을 비추고 있었지만, 서로의 목소리가 네트워크와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걸 보면 제법 가까이 있는 듯했다.
―읏차!
네트워크로 타격음과 함께 팀장의 목소리가 전달된다.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 중인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핸드폰으로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형, 뭐해요?
“아, 잠시 주변 좀 둘러보고 있었어요.”
어느새 화면을 반전했는지 김세현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그가 고갤 주억였다.
―드래곤 플라이 스물둘, 레드 리치 열다섯, 블랙 리치 여섯, 블루 리치 하나. 내가 치운 숫자예요.
“…아.”
―그런데 덩치는 블랙 리치 하날 여태 잡네요?
“…….”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비교를 위해 말을 꺼낸 것일 줄이야. 말문이 막힌 채 그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무슨 소리야? 너 오기 전에 이미 몇 개체 잡았다고!
―그래봤자 단위가 다른데.
김세현과 팀장이 티격태격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화면에 비친 김세현의 표정은 아무리 잘 봐준다고 해도 재수가 없었다. 나는 침묵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하긴, 세계 최고 S급 헌터랑 A급 헌터랑 비교하는 것부터 잘못된 선택이지.
하지만 김세현은 그런 내 시선을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의기양양함이 얼굴 가득 떠오른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하?
―S급 헌터 중에서도 내가 최고긴 하죠. 그쵸…. 형?
팀장이 있는 쪽을 보며 말하던 김세현이 드디어 날 봤다. 잔뜩 으스대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의아한 시선이었다. 그걸 보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늘 형?
“…….”
잘난 건 맞았지만, 그걸 내세워 다른 사람을 깔보는 행동은 정말 멋없었다. 무표정하게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당황하던 그가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
“…….”
―막내야, 우리 도착했어! 어디로 가면 돼?
때마침 박 주무관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김세현의 얼굴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건물을 보곤 답했다.
“던전이 생성된 사거리로 가시면 될 거 같아요.”
―좋아. 그럼 바로 그쪽으로 합류할게!
―김 주무관은 근처 대피소로 가서 상황 살펴!
―알겠습니다!
―…형, 내가 뭐 잘못했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김세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건…. 나중에 말해요.”
역시 이런 말은 단둘이 있을 때 하는 편이 나았다. 잘라 내듯 말한 뒤 다시금 카메라 화면을 살필 때였다.
―풉!
“팀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부팀장이 침묵을 깨곤 입을 연다. 그도 그럴 만했다. 방금 전 들린 소리는 누가 들어도 웃음소리였으니까.
―아, 미치겠다! 던전에서 이렇게 웃는 건 또 처음이야!
“…….”
중간중간 타격음이 들리는 게 아무래도 전투 중에 웃음이 터진 듯했다. 웃는 것도 좋았지만, 혹여 웃다가 다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숨죽인 채 네트워크 너머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는지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여 지금 완전 얼었다.
“아.”
―적당히 하고 넘어가. 이전이랑 비교하면 솜방망이라 타격도 없어.
마치 내 속내를 알아차린 듯한 말이다. 타격감이 없다고 했지만 급 차이를 운운한 게 마음이 안 쓰일 리가 없었다. 나는 침묵하다 답했다.
“…네.”
―일단 좀 어떻게 해봐. 저러고 있으면 방해돼.
한 번 더 말하는 걸 보면 김세현의 꼴이 볼 만한 듯했다. 애써 모르는 체하던 핸드폰으로 시선을 주니 어째서 팀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듯했다. 충격으로 휩싸인 감정으로 고스란히 내보인 채 날 바라보는 김세현이었다. 눈 한 번 끔벅이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핸드폰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세현 씨.”
―…네.
혹여 답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지만, 김세현은 내 부름에 응했다. 평소완 달리 한참 늦은 대답인 걸 보면 충격이 좀처럼 가시지 않은 듯했다. 나는 헛기침 후 여상스럽게 말을 건넸다.
“우선, 잘하셨어요. 그리고, 이따가 나랑 이야기 조금만 나눠요.”
―그래요.
대활 나누잔 말에 몇 차례 눈을 끔벅이다가 고개를 주억인다. 축 늘어진 눈매를 보니 괜히 마음이 쓰였지만, 혹여 이런 일이 쌓여 김세현에게 화가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심스럽게라도 꼭 말을 건네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는 판단을 한 번 더 내리는데, 네트워크 너머에서 팀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대피소 막 도착했습니다! 현재 계속해서 사람들이 대피 중인데, 다른 때완 달리 좀 혼란스럽네요.
―사람 더 필요해?
―예, 증원 필요합니다!
―그러면 박 주무관과 한 주무관도 그쪽으로 합류하도록 해! 던전 몬스터들은 잉여가 거의 다 처리했다고 하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세 개체만 치우면 끝날 듯하니까!
―알겠습니다!
세 개체밖에 남지 않았다니.
역시 김세현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 번 더 으스대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어째서 그리 자신감이 넘쳐흘렀는지 알 법했다.
아직도 축 늘어진 눈매가 원래대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눈치를 살피기 급급해 보이는 모습에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를 불렀다.
“세현 씨.”
―듣고 있어요.
“빵 살 때 팀원들 것까지 사다 주실래요?”
―…팀원들 것도요?
“네.”
김세현의 성정상 선을 넘었다는 걸 쉬이 인정하기 힘들 것이었다. 팀장의 말마따나 원래 그랬다면 더더욱 어려울 테고 말이다. 내가 한 제안에 놀라던 것도 잠시였다. 생각에 잠겼던 김세현이 이윽고 답변했다.
―그럴게요.
―…지금 제가 뭔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말이죠?
―나도 잘못 들은 거 같아.
―잉여 지갑이 우리에게까지 열린다고?
“좀, 놀랍군요.”
현장 일이 바빠 다들 대화를 듣고 있지 않다고 여겼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던 듯했다. 김세현이 팀원들 몫까지 빵을 사 오겠다고 말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경악 어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부팀장까지 놀라는데,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팀원들에게 파다하게 퍼진, 그리고 나조차도 알고 있는 수전노란 별명을 생각하면 지금 김세현의 대답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으니까.
부팀장을 보며 슬쩍 입가를 말아 올릴 때였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푸핫! 좋아, 그 사과 받아들이지!
굳이 사과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호탕하게 웃으며 답하는 팀장의 반응에 안도하며 다시 김세현을 보니 그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형, 나머지 몬스터도 바로 처리할까요?
목소리가 제법 커졌지만, 눈치를 보는 건 여전했다.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관찰하는 듯한 김세현의 모습에 나는 애써 웃음을 집어삼키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면 좋죠. 사실, 세현 씨가 사 올 빵 맛이 기대되거든요.”
사실 빵 맛이 궁금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날 위해 저기까지 가서는 몬스터까지 잡으며 큰 공헌을 한 사람의 기를 더 죽이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바로 처리하고 빵 사서 갈게요!
기대된단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활짝 갠 얼굴로 빵을 사서 오겠다고 말 한 김세현이 통화를 종료했다. 갑자기 전화가 끊겨 당황스러웠지만,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터라 이 이상 통화가 이어지지 않아도 되긴 했다.
“끊었습니까?”
“네.”
―형, 바로 사서 갈게요!
…통화가 끝났지만 여전히 김세현은 현장에 있는지 그의 목소리가 팀장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었다. 기가 차는 것도 잠시였다.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희는 이쪽 정리 끝나는 대로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나도 여기 마무리하도록 하지.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갑작스레 늘어난 몬스터 때문에 사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서울시 전역에 비상이 걸렸을지도 모를 상황이 빠르게 정리될 수 있었던 건 전부 김세현 덕이었다.
만에 하나 김세현이 없었더라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다. 안도하며 네트워크 너머의 상황을 듣던 중이었다. 현장을 지휘하던 팀장이 날 불렀다.
―참, 막내야.
“네, 팀장님.”
―잉여가 빵 사 오면 그거 각자 자리에 꼭 놔줘. 오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무실 가서 그거 먹고 갈 테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았다. 알았다고 답하려는데, 부팀장이 한발 빨랐다.
“너무 늦을 것 같다면 연락하십시오. 제가 현장으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오, 그거 좋지!
―부팀장님, 오실 때 저희 것도 꼭 챙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갈 때 저도 같이 갈게요.”
부팀장이 간다면 나도 가는 게 맞았다.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다 이내 웃으며 끄덕인다. 나는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장은 저희에게 맡기고 사무실은 사무실 일 보십쇼! 혹 일 생기면 연락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네트워크 및 중계기 종료하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박 주무관의 말에 곧바로 상황을 종료한 부팀장이 의자에 등을 파묻는다. 그 모습을 보자 여태 현실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던 게 드디어 피부에 와닿는 기분이었다. 덩달아 의자 등받이에 기대려 몸을 뒤로 젖힐 때였다.
“형!”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로 하며 그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