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41)화 (141/246)

138화

20. 폭풍전야

“다른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습니까?”

다급한 연락은 다 돌렸는지 부팀장이 다가와 모니터를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까진 없습니다.”

―형, 뭔가 조금만 이상한 거 보여도 바로 말하는 거 잊지 말아요.

“그럴게요.”

혹여 놓치는 게 있을까 걱정되었는지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에 답하며 계속해서 카메라 화면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태서 고등학교와 약 100m가량 떨어진 장소를 비추던 카메라에 이상한 게 포착되었다. 나는 곧바로 그 화면을 키웠다.

“…던전 규모가 더 커질 듯하군요.”

“세현 씨, 지금 태서 고등학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 카메라에 레드 리치 한 개체가 발견되었어요.”

―바로 갈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핸드폰 화면 가득 담겼던 태서 고등학교 건물이 일그러진다. 그리고는 잔상이 비치는데, 이게 정말 사람의 속도가 맞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이미 충분히 놀랐지만, 아직도 놀랄 건 남아있었다.

―주변에 레드 리치 몇 개체가 더 보이네요.

물론 100m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도착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리만 말해 줬을 뿐인데 단번에 레드 리치가 있는 장소에 당도한 상태였다.

―그러지 않아도 이쪽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잘됐네요. 빵집 가는 길에 좀 치워야지.

앞선 대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쓰레기를 치우려나 싶을 만큼 대수롭지 않은 말투다.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는데, 화면이 반전되며 김세현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형.

“네.”

―덩치는 언제 온대요?

“그게….”

그건 팀장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다. 곧바로 팀장에게 물어보려는데, 나보다 팀장의 반응이 더 빨랐다.

―2분 뒤 도착이라고 전해!

―굼벵이냐고 물어봐 줘요.

―30초 안에 도착한다고 전해!

―…던전 거머리들이랑 짝인가?

―도착하자마자 저놈 면상에 주먹부터 꽂고 시작해야지 원!

“…….”

날 두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결국 팀장의 화가 터졌다. 이건 누가 들어도 김세현의 말이 과했다.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세현 씨.”

―네, 형.

즉각 답하며 카메라 너머의 날 바라보는 김세현이다. 나는 말간 푸른 눈을 마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청소하는 김에 깔끔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려고요.”

말할까 싶었지만, 이 통화는 팀원 모두가 듣고 있었다. 괜히 여기서 그를 지적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 앞에서 김세현의 면을 팔리게 하는 꼴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게 좋을 것 같단 판단을 내리곤 고개를 끄덕이는데, 김세현이 묘한 시선을 보내는 게 보였다.

―뭐, 형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응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법 긴 시간의 침묵을 뚫은 김세현이 입가를 끌어올렸다. 무척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말실수했단 생각에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아, 부탁이란 말은 취소예요!”

이전에도 한 번 내 말 때문에 협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였다. 당시엔 멋모르고 부탁한단 말을 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알았어요. 부탁 같은 말 안 들었어요.

내 대답을 들은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카메라를 반전시킨다. 그와 동시에 눈에 들어온 현장 상황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이런.”

곁에서 함께 핸드폰을 보던 부팀장이 침음을 삼킨다. 그도 그럴 만했다. 현장 상황은 이전의 던전 상황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뭔데 다들 그런 반응이십니까?

“그것이….”

쉬이 말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망설일 순 없었다. 마른침을 삼킨 뒤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레드 리치 개체가 있는 장소의 시민들이 아직 대피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뭐라고?

―헉, 그거 큰일 아닙니까?

생명체의 생기를 앗아 가는 개체였기에 이대로 뒀다간 인명피해가 커지는 건 당연했다. 순간 차오르는 긴장감이 손바닥을 흠뻑 적실 때였다.

―피해 없이 잘 치울게요.

조용하던 김세현이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질 순 없었다.

“부…. 지켜보고 있을게요.”

하마터면 부탁한단 말을 할 뻔했다. 말을 뱉다 말았지만, 김세현은 그 짤막한 소리를 알아들은 듯했다.

―좋아요.

몇 번 헛기침하던 김세현이 답하더니 핸드폰을 움직여 레드 리치를 비췄다.

―형, 다른 곳 보지 말고 핸드폰 보고 있는 거 맞죠?

“네.”

핸드폰 카메라 앞에서 검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김세현이 확인한다. 그에 바로 답하니 김세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확인했으니 이제부터 손가락 좀 풀어볼게요.

손가락을 푼다는 걸 보면 이제 곧 몬스터를 처리한다는 말인 듯했다. 어서 손가락을 다 풀길 기다릴 때였다. 김세현의 손가락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벌어진 상황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

잠시 잊고 있었다. 김세현이 어떻게 몬스터를 처리하는지 말이다.

너무도 깔끔하게 두 동강 난 레드 리치다. 소스라치게 놀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하나.

보는 사람은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건만, 김세현의 목소리는 지극히 평범했다.

―어디 보자….

핸드폰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순간 건물들이 빼곡한 곳을 비춘다. 혹여 몬스터가 건물로 들어갔나 긴장하는데, 김세현은 빠르게 그 건물들을 지나쳤다.

―둘.

막 레드 리치를 없앤 장소로 이동할 때보다 이동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가 싶더니,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도 다른 레드 리치를 두 동강 냈다. 단번에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도 해치우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저런 거리에서 몬스터의 위치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건지 놀라웠다.

―허억, 던전 도착! 지금 상황은 어때?

때마침 팀장 역시 현장에 도착했단 소식을 전한다. 나는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현재 김세현이 레드 리치 두 개체를 소멸시켰습니다.”

―뭐? 아직도 두 개체밖에 못 없앴대?

―…하?

팀장의 반응에 김세현이 어처구니없단 소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카메라가 한 번 더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다시금 그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형.

“네, 세현 씨.”

―내가 그렇게 느려요?

“아뇨, 전혀 느리지 않아요.”

느린 사람이 조금 전과 같은, 그리고 지금과 같은 움직임을 보일 순 없을 것이었다.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피식 웃더니 이번엔 학교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아무래도 좀 더 주변을 둘러봐야겠어요.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은 걸 보니 그냥 뒀다간 형 야근하겠다.

쓰레기가 많다는 건 즉, 몬스터 수가 많다는 뜻과도 같았다.

―블루 리치 발견! 바로 처리하고 이동하지!

팀장 또한 몬스터를 발견한 듯했다. 처리하겠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계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타격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저희도 계속 속도 올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십쇼!

―좋아!

―어디 보자…. 드래곤 플라이가 스물 가까이 되네요.

“…네?”

―뭐라고?

―바로 던전 등급 올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드래곤 플라이는 두 개체만 확인되었을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황급히 핸드폰을 모니터 한쪽에 세워 놓곤 CCTV를 둘러보았다.

“아.”

CCTV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 많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던전과 가까운 거리에 몬스터 개체가 제법 발견된 상황이었다. 던전 상황을 보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중요한 걸 깜박했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곤 드래곤 플라이 세 개체와 블랙 리치 한 개체, 그리고 레드와 블루 리치가 대여섯 개체가 있음을 곧바로 전달했다.

―협회 쪽은 출발한 거 맞아?

“한 주무관 일행과 엇비슷한 시각에 도착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계약직 헌터들도 딜레이 없이 이동 중이고요.”

―되도록 일찍 도착할 수 있도록 조율해 봐! 이거 삽시간에 규모가 커지겠어!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에 부팀장이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이어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금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형.

“네, 세현 씨.”

―나 방금 드래곤 플라이 두 개체 없앴어요.

“아.”

잠깐 모니터를 본 사이에 두 개체나 해치웠을 줄은 몰랐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입을 벙긋거리다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역시 세현 씨네요.”

―그쵸? 역시 나죠?

“네.”

―하, 어쩔 수 없네요. 대충 속도 맞춰서 던전 정리할까 했는데, 그냥 나한테 맡겨요.

특유의 소릴 뱉은 그가 자기에게 맡기란 말과 동시에 재차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섯, 일곱.

―아홉…. 열 셋.

“…….”

이런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 하고 싶어도 쉬이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김세현은 시간을 헤아리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를 없앨 때마다 숫자를 입에 올렸던 만큼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카운팅은 자기가 없앤 몬스터 수임이 틀림없었다.

―와.

―미친 거 아냐?

시간이 흐를수록 김세현이 숫자를 세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와 함께 여기저기서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스물. 스물하나.

통화 중이었기에 이쪽 반응이 어떠한지 김세현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숫자만 셀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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