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20. 폭풍전야
“리치 계열 몬스터 중에서도 블랙리치는 악독하기로 유명해요. 다른 리치는 달라붙은 생명체의 목숨까진 앗아 가지 않지만, 이건 달라붙는 족족 생명을 빼앗거든요. 게다가 섭취하는 양 또한 무한대라 알려져 있고요.”
혹 내가 모를 수도 있다 여겼는지 김세현이 리치 계열 몬스터에 대해 설명해준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김세현이 이렇게 다시 설명해주니 내가 아는 게 맞단 확신이 섰다.
―부팀장, 혹시 계약직 중에 이 근방에 나가 있는 이는 없어?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그래!
팀장이 계약직을 입에 담자, 부팀장이 곧바로 자리로 돌아간다. 컴퓨터를 만지던 그가 이내 수화기를 드는 것이 아무래도 그 근처로 나갈 예정이라거나 나가는 중이던 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헌터붑니다. 현재 이의진 헌터 외근 나갔습니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D-15 구역에 생성된 던전이 클리어까지 제법 까다로울 듯하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동하도록 말 전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간략히 통화를 나눈 부팀장이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크게 한숨을 뱉는다. 표정을 보니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이의진 헌터가 그곳에 가지 않은 듯 보였다.
“팀장님, 현재 그 근방으로 나간 헌터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계약직 헌터들도 출발했다고 합니다.”
―기왕이면 있길 바랐는데, 어쩔 수 없지. 현재 사람들 대피는 수월하게 진행 중이야?
나는 곧바로 대피 경로에 설치된 CCTV를 훑어보며 답했다.
“네, 문제없이 정해진 경로로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습니다! 경로 쪽 CCTV엔 몬스터가 보이지 않고 있고요!”
―학교 쪽으로 간다는 곳은 어서 학교로 연락 넣어서 몬스터와 반대 방향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말 전달하고!
“알겠습니다. 하늘 씨, 고등학교 이름이 뭐죠?”
“태서 고등학교입니다!”
고등학교명을 들은 부팀장이 다시 수화기를 든다. 방금 팀장이 전달한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다시 CCTV 화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
지금까진 특별히 피해 상황이 보이진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 또 다른 몬스터가 생성될지 모를 일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지금 보이는 몬스터가 전부라 여겼을 거다. 하지만 툭하면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는 통에 이젠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소리가 나오기 전까진 쉬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작동 중인 CCTV 카메라를 통해 상황을 살피던 중이었다. 잠잠하던 네트워크망 너머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길!
“팀장님?”
―거기서 고등학교 쪽 볼 수 있어?
“현재 학교 근방 CCTV가 꺼진 상태입니다!”
잠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그 근처 CCTV가 모조리 꺼졌다. 이렇게 한꺼번에 카메라가 꺼졌다는 건 현장 상황이 썩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혹시나 해 제법 거리가 있는 CCTV로 고등학교 쪽이 비추나 뒤져 봤지만, 역시 제대로 그곳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른 장소들도 문제긴 했지만, 학교 쪽으로 몬스터가 가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었다. 방금 막 헌터부와 관련하여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할 시엔 이영혁이 말했던 모든 게 무산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무산되기보단 비판에 직면하게 될 거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었다.
“…….”
물론, 이건 헌터부를 우선시했을 때의 고민이었다. 그보다 지금은 인명피해가 문제였다. 무사히 아이들이 대피할 수 있길 바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돌연 옆에서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상황 궁금해요?”
“그, 쵸?”
현재 고등학교 쪽 상황을 볼 수 있다면야 지금처럼 걱정되진 않을 거다. 고개를 끄덕이자 김세현이 상체를 내 쪽으로 숙였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나 또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귀를 기울였다.
“나랑 잠깐 보고 올래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무슨 헛소린가 하고 말았겠지만, 김세현이라면 충분히 저 말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이였다. 금방이라도 자리서 일어나려는 모습에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저는 여기서 상황 봐야 해요.”
“그럼 내가 가서 고등학교 쪽 좀 보고 올까요?”
“어….”
너무도 산뜻하게 돌아온 말이 마치 내가 따라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데 김세현이 한 번 더 가서 보고 오냐 물었다.
…김세현이 그쪽으로 가 상황을 봐주는 건 반길 일이었지만, 굳이 현장 상황을 알려 주기 위해 간다는 건 이상했다. 하지만 김세현은 내 대답을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이를 따라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상 통화로 현장 상황 보낼게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수고로움을 김세현이 감수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래, 고작 상황을 알아보는 데만 쓰기엔 김세현이 너무 고급인력이었다. 한사코 거절하는데, 그가 내 말을 잘랐다.
“간 김에.”
“…….”
“간 김에 던전도 좀 둘러볼까 봐요.”
“아.”
간 김에 던전을 둘러본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은 없었다.
하지만 김세현에게 괜히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저어되었다. 쉬이 답변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던 그가 씩 웃어 보였다.
“내겐 형이 최곤데, 나도 형한테 최고가 되려면 점수 좀 따야죠.”
“그 점수 따려면 팀장님보다 일찍 도착해야 할 거 같습니다만.”
잠자코 대화를 경청 중이던 부팀장이 한 마디 얹는다.
마치 나에게 있어 김세현이 최고가 아니란 확신을 가진 듯한 두 사람의 대화다. 내게 있어 김세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최고였다. 부팀장을 보다가 다시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하려는데, 어느새 김세현은 창가로 이동해 있었다.
“그러니까 얼른 다녀올게요.”
다녀오겠단 말을 남긴 김세현이 창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에 황급히 창가로 가 밖을 내다봤지만, 김세현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
지금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점수를 따려고 한다는 말과 함께 던전 현장으로 가 버린 김세현이라니.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미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래, 김세현이 던전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한 건 전부 날 위해서 한 말이었다.
“후우.”
김세현이 호의를 보인 만큼 나 또한 그 행동에 대해 보답해야 마땅했다. 상황이 빨리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CCTV를 살피며 현장 상황을 살피던 와중이었다.
“하늘 씨, 던전 상황은 어떻습니까?”
복잡해진 내 심정을 알아차린 듯 부팀장이 던전 상황을 물으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나는 빠르게 지도를 훑어보곤 답했다.
“다행히 던전이 더 커지진 않았습니다. 처음 알려진 것보다 약 20m 정도 더 커진 상황입니다.”
“다행이군요.”
“현장에 세현 씨가 갔다는 말을 전할까요?”
그가 간다는 말을 전한다면 현장으로 나가는 이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었다.
“됐습니다. 이미 전부 들었을 겁니다.”
“아.”
김세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꾸만 주변 상황을 잊곤 했다. 그러지 않으려 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얼굴만 보면 주변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아주 그냥 몸이 달았네, 달았어!
―어째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공략 방법을 바꾼 게 아닐까요?
부팀장의 지적과 동시에 팀원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건 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신경 써 준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단 게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민망함에 괜히 마른세수하며 정신을 다잡을 때였다. 잠잠하던 핸드폰의 진동음이 들려왔다.
설마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김세현이 도착했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뒤집어 놓았던 핸드폰을 확인하니 화면엔 김세현의 이름이 떠 있었다. 영상 전화가 왔단 표시를 보며 침을 삼킨 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세현 씨.”
―나 도착했어요. 태서 고등학교 쪽 상황 보여요?
“네, 잘 보여요.”
다른 날관 달리 김세현의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니라 현장 상황이 보였다. 태서 고등학교라 콕 짚어 주는 그의 설명에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직 거머리들은 이쪽에 도착하진 않았네요.
김세현이 태서 고등학교 주변을 카메라로 비춘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다행이에요.”
―형, 이 근방에 맛있는 빵 있는데 그거 좀 사 갈까요?
“어, 음….”
이런 상황에 먹는 이야길 꺼낼 줄은 몰랐다. 당혹감에 말을 흐리는데, 김세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가는 길에 뭐 보이면 처리하고.
“…….”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빵 이야길 했나 보다.
현장 상황을 보여 주느라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김세현은 날 보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온 마음을 다해 그에게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세현 씨.”
―정말 고마워요?
“네.”
―그럼 빵 사 가면 커피 타 줘요.
“물론이에요.”
그 정도야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기분으론 커피 그 이상도 해줄 수 있었다.
―태서 고등학교 좀 더 보여 주고 나서 이동할게요.
“네!”
―혹시 모르니 CCTV 보다가 이상한 곳 있으면 말하고요.
“그럴게요.”
다른 이도 아니고 S급 헌터가 던전 한가운데에서 저런 말을 하니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답할 때였다.
―와.
―나 지금 꿈에서 깨질 않은 거 않은데요?
―지금 건너는 강이 혹시 삼도천이었나?
영상 통화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통화 내용 전부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듯했다. 조금 전에도 이와 같은 반응이 있었지만, 이전과 같은 민망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팀원들의 대화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어 반가울 지경이었다.
크게 한 번 심호흡한 나는 다시금 집중하며 현장 상황을 계속해서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