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20. 폭풍전야
하지만 김세현은 좀처럼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눈도 깜박이지 않는데, 저래도 되나 하는 걱정이 샘솟을 무렵이었다. 숨은 쉬고 있을까 의심스럽던 그가 눈을 끔벅이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눈동자를 쉴 새 없이 움직이던 김세현이 드디어 생각을 정리한 듯 날 바라보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저 모습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건지 긴장된다. 혹여 내가 말을 잘못한 걸까 싶어 눈치를 살필 때였다. 입가를 몇 차례 만지작거리던 손을 치워낸 김세현이 돌연 입가를 끌어올렸다.
“하, 진짜 형은 최고예요.”
앞뒤 설명 없이 최고란 말을 들으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김세현이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좀 그랬을 텐데, 형이 말하니 기분 좋네요.”
“다행이에요.”
곡해하여 들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 안도하며 한숨을 뱉는데 김세현이 몸을 젖히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사실 형이 같이하자고 하면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까 했는데 말이죠.”
팔짱을 낀 채 말을 뱉는 김세현의 얼굴에 장난기가 다분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형이 그렇다고 하니 그냥 나 편한 대로 할게요.”
“그래요.”
“…근데 정말 나 안 잡아요? 이번 아니면 같이 공무원이 돼서 매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네.”
김세현은 공무원보단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직업이 어울렸다. 뭐, 아주 조금은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자 김세현이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진짜 형은 매번 예상을 벗어나는 답을 주네요.”
예상을 벗어나는 답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만, 저리 웃는 걸 보면 나쁜 뜻은 아니었다. 비꼬려 말을 꺼낸 거라면 결코 저리 해사한 미소를 짓진 못했을 테니까.
“하여튼 나한텐 형이 최고예요.”
“…….”
“형밖에 없어요.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은은해진 미소를 매단 채 날 바라보는 시선이 이보다 더 촉촉할 수가 없다. 아니, 촉촉하다기보단 끈적끈적한 거 같기도 했다.
주말 내내 날 설레게 했던 예의 그 달콤한 표정이 가득 찬 김세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멋졌다. 김세현은 알고 있을까? 본인이 어떤 표정을 지을 때마다 상대방의 심장이 들썩인다는 걸 말이다.
터질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외부까지 전달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 내 얼굴은 정말 보기 좋게 익어 있을 것이었다. 괜스레 얼굴을 만지작거리는데, 등 뒤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야, 일해야지?”
“네!”
부드럽지만 단호한 팀장의 목소리가 현실을 일깨운다. 김세현을 볼 때마다 자꾸만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 잊게 되는 것도 대단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김세현 쪽으로 돌아간 몸을 바로 하곤 화면에 떠 있던 작업 파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처음엔 옆자리의 이가 의식된 나머지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졌지만, 계속해서 글을 보고 또 읽다 보니 조금씩 일감이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이제 곧 완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어 오늘 작업할 문서를 열어볼 때였다.
Rrrr- Rrrr-
“…….”
하필 이 상황에 긴급 전화가 울릴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긴급 전화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옆자리의 김 주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예, 서울시 헌터붑니…. 방금 D-15 구역에 던전이 활성화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D-15 구역이란 말을 듣자마자 바로 교통센터에 접속해 CCTV 화면을 둘러보다 보니 뭔가 이상한 걸 비추는 카메라 몇 대가 눈에 들어왔다. 다급히 화면을 확대해 보니 몬스터들이 허공을 찢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에 말문을 잃은 것도 잠시였다. 나는 상황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현재 D-15 구역 예신 오거리 쪽에서 던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제 막 던전이 활성화되었는지 몬스터들이 갈라진 허공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직 규모와 등급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김 주무관이 아무런 말이 없다는 건 현재 던전 등급과 규모가 결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대개 던전이 생성되고 수 분이 지난 후에나 1차적으로 등급과 규모가 결정되곤 했기에 이번 신고는 그만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화면에 잡힌 몬스터는?”
“드래곤 플라이.”
“등급은 어때.”
“족히 B급은 될 거 같은데?”
“…….”
자연스럽게 팀장과 대화를 나누는 김세현이다.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그가 헌터부 소속 공무원이라 여길지도 모를 정도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정보 교환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신속하게 정보 교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진 김세현이 부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부족한 지식을 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생각만 할 뿐인 스스로가 부끄럽다 느낄 때였다.
“막내야, 개체 수 확인해 봐.”
“넵!”
내 심정을 알아차린 건지, 아니면 타이밍이 맞은 건지 몬스터 등급을 확인한 팀장이 바로 지시를 내린다. 나는 곧바로 CCTV를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다섯입니다!”
“김 주무관!”
“바로 협조 요청했습니다!”
“박 주무관은?”
“막 재난 문자 발송했습니다!”
“좋아, 바로 출발하자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팀장이 자리서 일어나자 나와 부팀장을 제외한 팀원들이 자리서 일어났다. 나 또한 일어나 중계기를 오픈한 뒤 자리로 돌아와 계속해서 CCTV 상황을 살폈다.
“혹시 일 생기면 네트워크로 바로 연락하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빨리 처리할 수 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답하자 팀장이 씩 웃고는 바로 창문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이어 세 사람이 현장으로 나가는 걸 배웅하곤 다시금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형.”
“네, 세현 씨.”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일이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니 얼굴 가득 미묘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다 말기를 수차례, 김세현이 드디어 본론을 입에 담았다.
“많이 능숙해진 거 같아서요.”
“…그래 보여요?”
“네.”
능숙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씰룩거리는 입매를 감추지 못한 채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곤 슬쩍 다시 물어보았다.
“정말 좀 나아진 거 같아요?”
“좀이 아니라 많이요.”
“다행이네요.”
그래, 노력하는데 항상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라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뻔했다.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좋지 못한 상황과는 별개로 신이 난 기분은 주체하기 힘들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CCTV를 둘러보다가 네트워크를 오픈하란 부팀장의 지시를 바로 따랐다.
―상황은 어때?
“던전이 계속 팽창되는 상황입니다. 다만 난이도 및 규모가 확정되진 않아 이 부분은 전달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른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고?
“아직까진 없습니다! 하지만 예신 오거리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CCTV가 꺼지고 있어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현재 던전 중앙으로 추정되는 예신 오거리를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사방 50m 안쪽의 카메라는 모두 꺼진 상태입니다!”
“막 던전 난이도와 규모 측정되었습니다. 현재 난이도는 B급, 규모는 C급입니다. 던전 중심부는 예신 오거리에서 약 5m 떨어진 도롯가입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와중 부팀장이 난이도와 규모, 던전 중심부를 전달해준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CCTV를 둘러보던 참이었다.
“형, 잠시만. 방금 CCTV 한 번 더 봐 봐요.”
“이거요?”
곁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세현이 CCTV 화면 하나를 콕 짚어 낸다. 그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그가 찍은 화면을 모니터에 띄웠을 때였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아수라장을 발견하곤 기함했다.
“맙소사.”
“무슨 일입니까.”
내 반응이 이상했는지 황급히 부팀장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그 역시 화면의 상황을 보곤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무슨 일인데 그래?
“드래곤 플라이 개체 말고 다른 개체들도 생성되었어.”
―무슨 몬스터기에?
나와 부팀장의 말문이 막힌 모습에 김세현이 바로 네트워크 너머의 팀원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김세현보다 먼저 입을 뗐다.
“블랙리치입니다! 현재 확인된 개체는 셋인데, 현재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블랙리치?
“예. 연 주무관의 말처럼 나타난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블랙 리치 지척에 고등학교가 있어 자칫 잘못하다간 학교를 덮칠 듯합니다.”
―제길!
―저희는 도착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팀장님은요?
―빨라도 5분이야!
“이런.”
팀장도 5분이나 걸린다니. 이보다 안 좋은 소식이 또 있을까 싶다.
이동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생명체에게 달라붙어 생기를 빼앗을 때마다 속도와 파괴력이 올라가는 것이 바로 리치 계열 몬스터였다.
몇 분 전 대피 문자를 보냈고, 그로 인해 현재 대피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을 텐데, 자칫하다가 그곳을 리치가 습격하게 된다면 문제가 커졌다. 특히나 고등학교 근처이기에 대피하는 학생들과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지금으로선 현장으로 나간 이들이 속히 던전에 도착해 상황이 통제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상황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