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38)화 (138/246)

135화

20. 폭풍전야

―안녕하십니까, 저는 던전정책특별보좌관 이영혁이라고 합니다. 발표에 앞서 오늘 발표를 담당하셨던 비서실장님의 사정으로 인해 제가 대신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렇게 높으신 양반이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거였다. 생각지도 못한 이영혁 부장 아니, 던전정책특별보좌관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팀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청와대 조직도만 봤어도 바로 알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아서라. 던전 관련된 건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거 잊었어?”

“아 참, 그러네요.”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고 대변인이 아니라 비서실장이 나서서 발표하려던 거지?”

대화 내용을 보건대 나만큼이나 팀원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

이럴 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게 답이었다. 나는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미리 연락받으셨겠습니다만, 오늘은 우리 모두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대한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최근 매체에서 던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역시 최근 생성되는 던전의 위험도가 격상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던전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지금, 전국의 헌터부와 관련하여 중대한 발표를 하려 합니다.

헌터부와 관련된 중대한 발표라니.

물론, 발표는 좋았다. 하지만 엊그제 짐을 꾸려 돌아갔는데, 벌써 이렇게 발표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졸속 행정의 화살이 헌터부를 향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일 때였다.

“…….”

키보드 위에서 갈 곳을 잃었던 손을 뭔가가 감싸는 느낌이 든다. 그에 시선을 내려 확인하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 여기 왔다 갔나 보네요.”

그간 이런 접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손 위로 겹쳐진 김세현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직 답하지 않았단 사실을 뒤늦게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나쁜 사람은 아닐 테니까.”

“…그래야죠.”

나쁜 사람이라면 무척 곤란했을 거다. 아니, 지금도 곤란하긴 했다.

혹여 옆자리의 김 주무관이 보진 않을까 싶어 황급히 손을 빼려는데, 오히려 김세현은 내 손을 꼭 붙잡을 뿐이었다. 당혹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TV 속의 이영혁은 발표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타국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만큼 빼어난 실력을 지닌 헌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협회 소속으로 활동 중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로 인해 국가 소속 헌터들의 손을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협회의 협조를 구해 던전을 처리하는 것이 현장에서는 통념으로 굳어지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나라에서는 손 놓고 바라만 볼 뿐이고 협회로 일을 떠넘기는 게 아니냔 말이 나오곤 합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헌터부 공무원 모두가 막중한 임무를 안고, 다른 부서 공무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과중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여, 청와대는 헌터부 구조를 혁신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전국의 헌터부 인원을 충원하여 헌터부의 업무를 분담시키겠습니다. 충원되는 이들은 현재 나라 소속 계약직 헌터를 최우선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또한, 헌터부의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좀 더 적극적인 나라의 푸시가 필요하다고 여기는바, 두 번째로는 헌터부가 던전 현황을 면밀히 살필 수 있도록 위성 접속을 허가하고자 합니다. 이 부분은 여러모로 민감한 사안들과 맞닿아 있기에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 던전 생성 시에만 접근할 수 있도록 진행할 예정입니다.

“와.”

“저 지금 꿈꾸는 건가요?”

“…그러게나 말이다.”

다들 반응이 이런 것도 당연했다. 수없이 어필했음에도 그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 반쯤 포기하다시피 했던 내용이 이영혁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떨떨함을 감추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에 슬쩍 주변을 살피니 목소리만큼이나 반쯤 넋이 나간 팀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부에서는 헌터부 소속 공무원들의 복지에도 적극적으로 힘쓰고자 합니다. 이 부분은 타 부서와의 형평성을 따져야 하기에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또한 단계적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이거 저 사람이 있을 때 괜히 일감을 준답시고 했던 일들이 미안해질 지경이네요.”

“나중에 보게 되면 고맙단 인사라도 해야겠어.”

“이렇게 말이라도 해 주는 게 어딥니까. 물론, 말 그대로 이뤄진다면 그보다 더 좋겠지만요.”

“게다가 복지 이야기할 때 들으셨습니까? 반발이 나올 것 같으니 사전에 딱! 차단하는데, 하, 사람이 다시 보이네요.”

마치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게 아닐까 싶어질 지경이다. 팀원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음에 계속해서 고개를 주억일 때였다. 내 손을 꼭 붙잡는 손길에 다시 현실을 지각했다.

“내 말이 맞죠?”

꿈만 같은 청와대 발표도 현실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 이 상황이 더 현실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질문하며 한 번 더 내 손 위로 포개진 손에 힘을 주는 김세현이다. 나는 침을 삼키며 답했다.

“…네.”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더니 정말 이영혁은 헌터부와 관련해 그 어떤 안 좋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 고개까지 끄덕이니 김세현이 씩 웃으며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척 만족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한 번 더 손을 빼려 움직이는데, 김세현이 한발 빨랐다.

“형, 나 커피 다 마셨는데 두 잔만 더 부탁할게요.”

“…그래요.”

손을 빼려고 할 때는 언제고 막상 김세현이 먼저 손을 빼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걸 티 낼 생각은 없었다. 무덤덤한 척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가는데, 놓치고 있던 이영혁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이 자리를 빌어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 모두 존경한단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노고가 빛이 바래지 않도록 정부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정상 질문은 몇 개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하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온다. 이어 질문을 받겠단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저 타곤 자리로 돌아왔다.

“잘 마실게요.”

“네.”

곱게 눈까지 휘어서는 인사를 해오는 김세현이다. 같은 웃음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이전보다 반짝이는 건 왜일까.

“그건 그렇고.”

멍하니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박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정신을 붙잡고는 박 주무관 자리로 시선을 던졌다.

“계약직을 우선적으로 정직원으로 돌린다는 거 보면 그 녀석도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겠네요.”

“그 녀석?”

“그 있잖습니까, 서강민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있었지. 자연스럽게 그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이 떠오르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

본인의 아이템을 마치 던전에서 나온 것처럼 꾸몄던 서강민이었다. 이미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런 식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그는 충분히 유명인사였다. 더군다나 날 구해주며 더더욱 이름이 알려진 상황이건만,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이러니했다.

설마, 이전에 들었던 바처럼 돈을 더 벌기 위해 명성을 쌓으려던 걸까?

“하늘 형.”

“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데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응하자 김세현이 단번에 커피 한 잔을 비워 내곤 입을 열었다.

“나도 이번 기회에 갈아탈까요?”

“갈아타요?”

두서없이 뭘 갈아탄다는 건지 모르겠다. 재차 물으니 김세현이 씩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협회 말고 헌터부로 갈아탈까요?”

“뭐?”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기 때문일까, 나보다 더 빨리 반응한 이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경악 어린 시선으로 이쪽, 김세현을 바라보는 팀원들이다. 나는 다시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형 생각은 어때요?”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재차 물어온다. 나는 차마 답하기 힘들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김세현은 알고 있는 걸까?

복잡한 심경을 담아 그를 바라봤지만, 김세현은 그저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지금 이건 쉬이 답변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대답 대신 한 번 더 생각에 잠겼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S급 헌터였다. 그것도 세계 최강이라고 손꼽히는 그런 사람이 협회를 버리고 나라 소속 공무원으로 들어온다?

이보다 더 큰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래, 솔직히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었지만, 그건 아주 단편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무언가에 메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곤 답했다.

“세현 씨한텐 좋지 않은 선택일지도 몰라요.”

“왜요? 형이랑 같이 지내면 좋을 거 같은데?”

“그게, 세현 씨는 …좋아하시잖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걸 두고 헌터부로 온다는 건 엄청난 손해였다. 특히 그걸 좋아한다 알려진 김세현이니만큼 더더욱 그런 선택은 옳지 않았다.

“뭘 좋아하는데요?”

어느새 자세를 바꾼 김세현이 허리를 숙이며 다가온다. 점차 가까워지는 얼굴 탓일까, 심장이 미치도록 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그…. 돈이요.”

“…….”

“물론, 이미 많이 소유하고 있을 테니까 덜 번다고 해서 기별이나 갈까 싶지만요. 게다가 협회에서 입지 다져놓은 것도 있는데, 충동적으로 그걸 포기하는 건 좋지 않은 거 같아요.”

헌터의 능력이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김세현은 우리가 몰랐던 노력을 하며 지금 자리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다. 김세현 집에서 들었던 말을 상기하며 그를 바라볼 때였다.

“푸핫!”

“진짜 면전에서 저렇게 대놓고 돈 좋아한다고 말할 줄은 몰랐지!”

“하여간 우리 막내가 최고라니까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내게 있어 우선순위는 따로 있었다. 그래, 김세현 말이다.

“…….”

뭐든 반응이 돌아올 법도 한 시간은 이미 지났다. 하지만 김세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거기다 눈도 한 번 끔벅이지 않고 날 바라볼 뿐이었다. 계속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평소와 같아 보이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이건 내 착각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조용히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