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37)화 (137/246)

134화

20. 폭풍전야

“직접 기자들 물러나게 하려나?”

“…하긴, 이번 기회에 한껏 자기 능력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긴 하지.”

“우리나라에서 김세현 입김에 버틸 재간이 있음직한 기자는 없죠.”

“뭐든 우리한테 피해 오는 일은 없겠네요.”

“그렇지.”

피해가 없을 거란 말과 함께 팀원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린다.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과 눈을 마주하는데, 팀장이 손뼉을 치며 다시금 시선을 모았다.

“자, 일단 오늘 잉여가 온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은 거 확인했고! 지난주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이번 주도 그런다는 보장 없으니까 항상 긴장 늦추지 말고!”

“예!”

“잉여 오면 막내랑 단둘이 있지 못하도록 항상 신경 쓰고!”

“당연하죠!”

“…….”

저 말도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다. 이미 단둘이 지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제 와 고백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티 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는데 팀장이 말을 이었다.

“언제나처럼 파이팅하자고. 오늘 조회는 이걸로 끝내자!”

이 순간 저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나는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빼며 답했다. 아니, 답하려 했다.

“오오!”

팀장이 조회를 끝낸다고 말하기 무섭게 자리에 앉아 있던 모두가 일어난다. 놀라 그들을 바라보는데, 김 주무관이 내 팔을 붙잡으며 잡아당겼다.

“뭐 해? 창가로 가야지.”

“아.”

당연히 나만 볼 줄 알았다. 어느새 팀원 모두 창가로 갔단 사실에 주섬주섬 일어나 김 주무관과 함께 그쪽으로 향했다.

“…저게 뭐야?”

먼저 창밖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던 박 주무관이 아랠 가리킨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지 쉬이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나는 창가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보는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 지금 뭐 잘못 보는 거 아니죠?”

“…에드워드 왕자라도 다시 왔어?”

“협회 건물 앞에 깔릴 게 잘못 깔리는 거 아닙니까?”

“…….”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일 법도 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기다란 리무진 차량, 그리고 사무실 건물 출입구에 깔린 레드카펫까지.

평소 쉬이 볼 수 있는 조합은 결코 아니었다.

“어, 문 열렸다!”

“…설마, 아니지?”

“에이, 그놈이 저렇게 돈을 허비할 놈인가요?”

“홈페이지 다운시킨 걸 생각해 보십시오.”

리무진 운전기사가 차 뒷문을 열자, 여기저기서 팀원들이 말을 쏟아 낸다. 나 역시 한 마디 얹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우선이었다.

설마, 아닐 거다. 아니어야 했다. 아니어야 하는데….

“와.”

“공작새야?”

“역대급인데요?”

“뭐 해? 얼른 찍어 두지 않고! 이거 후대에 남겨줘야 할 흑역사 아니야?”

뭐라고 하고 싶은데,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 건 방금 리무진 뒷좌석에서 내린 김세현의 모습 때문이었다. 건물 높이가 있어 자세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위아래 세트로 입은 파란 슈트만큼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 한 주무관이 공작새라 칭했는지 알겠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고는 하지만 저리 원색에 가까운 옷을 입은 건 조금…. 사실 많이 과해 보였다. 차에서 내린 김세현이, 아니 김세현으로 추정되는 이가 옷깃을 만지나 싶더니 곧바로 레드카펫을 밟으며 건물 쪽으로 걸어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별안간 옆에서 큰 소리가 났다.

“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갑니다? 문 열리기 전부터 영상으로 남길 겁니다!”

“나도 같이 가!”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잔뜩 흥분해서는 이윽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두 사람이 빠져나간 출입문을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깰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뭐, 그래도 기자들은 주변에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군요.”

“…그러네요.”

생각해 보니 출근할 때 보이던 기자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대로 창피하고 말면 어쩌나 했는데, 그나마 기자들이 없단 사실이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부팀장의 다독임을 받으며 한 번 더 창밖을 살필 때였다. 사무실 바깥 복도 쪽이 조금 소란스럽더니 이윽고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다시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형!”

“…….”

원색에 가까운 색감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건 김세현밖에 없을 거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이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연발하는데, 그새 김세현이 내 앞에 와 섰다.

“좋은 아침이에요.”

창 너머로 볼 때보다 좀 더 진한 색의 푸른색 슈트를 입은 김세현이 어느새 내 앞에 와 선다. 환히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데, 오래간만에 보는 안경 낀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이 났다.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올백 머리도 찰떡같이 소화하는 걸 보면 정말 얼굴이 모든 걸 다 하는 게 맞았다.

“오래간만에 꽃도 사 올까 했는데, 내 자리 뺏길 거 같아서 그냥 왔어요.”

“…네.”

“그래도 꽃보단 내가 더 낫죠?”

“…네.”

꽃은 꽃일 뿐이었다. 하지만 김세현은 김세현이었다. 멍하니 그를 보며 연신 고개를 주억일 때였다. 내 앞으로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거리 좀 두지?”

처음에는 손이, 다음엔 커다란 몸이 내 앞을 가렸다. 멍하니 등을 바라보는데, 날 뒤로 이끄는 손이 있었다.

“하늘 씨, 자리로 가죠.”

“아, 부팀장님.”

부팀장의 얼굴을 본 순간 몽롱했던 정신이 확 든다. 순간 나도 모르게 김세현의 외모에 홀렸었다는 걸 모두가 봤다는 사실이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었다. 급속도로 열이 오르는 얼굴을 느끼는데, 부팀장은 말없이 날 이끌고 내 자리로 향할 뿐이었다.

“일과 준비해요.”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감정이 너무 드러났던 모양이다. 마음을 다독이란 말을 돌려 표현하는 이에 고개를 주억이니 부팀장이 어깨를 다독이곤 자리로 돌아간다. 작게 한숨을 뱉으며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간만에 오는 걸 꼭 티를 내야 직성이 풀리나 보지?”

“형, 일 시작해요? 옆에서 구경해야겠다.”

“오늘 월요일인 거 몰라? 아침부터 사람 혼 빼놓는 게 정상이야? …이게 무슨 꼴이야?”

“덩치 너 보라고 공들여 꾸민 거 아니니 시선 좀 치우지?”

“푸르딩딩한 게 참으로 잘 어울린다! 누가 보면 공작새인 줄 알겠네!”

“…패션에 대해 뭘 안다고. 형, 나는 개의치 말고 일과 시작해요. 조용히 지켜볼게요.”

팀장과 잠깐 대거리를 하나 싶던 김세현이 어느새 의자를 가지고 와 옆에 앉는다. 이어 한쪽 팔을 책상에 올리곤 턱을 괴고는 날 빤히 바라보는데, 푸른 눈동자 속에 담긴 뜨거움이 이보다 사람을 설레게 할 순 없었다.

코앞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는 김세현의 얼굴을 의식하니 일요일 아침 일이 떠오른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좀 전보다 더욱 크게 출렁이는 것이 아무래도 진정되려면 먼 듯했다. 나는 헛기침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모니터를 바라봤지만, 찌를 듯한 시선을 무시하기란 어려웠다. 나는 결국 다시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왜요?”

“…너무 빤히 봐서요.”

“나도 하는 일 하는 거라서. 의식하지 말고 그냥 하던 일 계속해요.”

“…….”

저 말인즉슨 날 계속해서 보겠단 것이었다. 쳐다보는 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한번 의식되니 좀처럼 긴장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볼 겸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커피라도 타 드릴까요?”

“좋죠. 타는 김에 다섯 잔 부탁해요. 한 번에 타서 나눠 마시게요.”

“네.”

다섯 잔이면 준수한 편이었다. 바로 자리서 일어나 커피를 타 와 건네니 김세현은 앞에 넉 잔을 둔 채 잔 하나를 들고 홀짝이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서 먹는 게 가장 맛있네요.”

“하하.”

역시 커피를 타오길 잘한 것 같다. 그의 시선이 커피에 고정된 사실에 안도하며 웃는데, 종이컵을 입가에 댄 자세로 김세현이 눈을 움직여 날 바라보았다.

“물론, 형이 타 줘서 더 맛있는 거지만요.”

“…많이 드세요. 나중에 더 타 드릴게요.”

협회에 청구하기로 한 만큼 눈치 보지 않고 편히 타 주면 될 일이었다. 그래,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잠시라도 내게서 시선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혹여 김세현이 바란다는 말이 없어도 간간이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지난주 작업한 걸 대충 훑어보며 연이어 처리할 일들을 한 번 더 상기할 때였다.

“어?”

갑자기 박 주무관이 큰 소리를 낸다. 놀라 고개를 드니 박 주무관은 이리저리 팀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뭔갈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뭔데 그래?”

“막내야, 리모컨 거기 있어?”

“네.”

“얼른 TV 켜 봐!”

갑자기 TV를 켜라는 박 주무관이다. 얼굴 위로 드러난 다급함에 바로 리모컨을 들었다.

“어?”

“이 부장님 아니야?”

어째서 박 주무관이 TV를 켜라고 했는지 알겠다. TV를 켜자마자 보이는 채널엔 속보라는 글귀와 함께 청와대 발표가 있겠다는 자막이 적혀 있었다. 그뿐이랴, 단상 위에서 어떤 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인 이영혁 부장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게나 말입니다.”

“혹시, 던전 관련된 발표 하려는 게 아닐까요?”

어안이 벙벙한 상황 속에서 김 주무관이 의견을 냈다.

김 주무관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찰부란 타이틀을 단 채 온 이들은 서울시에서 발생했던 던전 자료들을 둘러보느라 바빴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돌아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발표할 수 있다고요?”

“꼭 던전 관련하여 발표한다는 보장은 없죠. 감찰부는 임시방편이라 했으니 원래 직책과 관련된 발표가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김 주무관의 말에 여기저기서 그게 아닐 거란 말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랬다.

“헌터부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발표를 할지 궁금하군요.”

생각하면 할수록 이영혁 부장이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해진다. 조용히 TV로 시선을 고정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이영혁 부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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