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36)화 (136/246)

133화

20. 폭풍전야

주말은 언제나 빨리 흘러가곤 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은 다른 때에 비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단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주말이 끝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을까.

“하아.”

지난 주말은 너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저녁만 먹고 갈 줄 알았던 김세현이 하루 묵고 간 것도 그렇고, 자고 일어나니 그의 품에서 자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잠깐 방심만 하면 자꾸만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 터라 혼이 쏙 빠진 채 지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게 싫은 건 또 아니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재차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월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한숨을 너무 내뱉는 것도 좋지 않았다. 혹여 다시 한숨을 쉴까 의식하며 거울에서 눈을 떼고 현관을 바라보는데,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나는 현관이 아닌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

막 주말 일을 떠올려서일까, 김세현이 두고 간 빔프로젝터 쪽으로 가 몇 차례 쓰다듬은 뒤 다시 현관으로 이동했다.

“날씨 좋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하늘이 이보다 화창할 수가 없다. 뭉게구름이 몇 조각 떠 있고, 미세먼지 하나 없는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놀러 가고 싶단 생각이 물씬 차올랐다.

이번 주 주말까지 이 날씨가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지, 주말 중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이런 날씨였으면 좋겠다.

이런 좋은 날씨에 출근해야 한단 사실에 아쉬워 좀처럼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때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차 소리에 눈을 끔벅였다.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엔진 소리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골목길 끝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익숙한 승용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너무 반가운 마음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멍하니 다가오는 차를 바라보는데, 서행하며 다가온 차가 내 앞에 멈췄다. 창문이 반쯤 내려가더니 이윽고 부팀장이 이쪽을 바라본다. 갑작스러운 휴가를 가기 전과 비교해 혈색이 도는 얼굴이 이보다 반가울 순 없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반색하며 차 문을 열었다.

“부팀장님!”

“잘 지냈습니까?”

“네. 부팀장님은 오늘부터 출근하시는 거예요?”

“덕분에요.”

그냥 하는 말일 테지만, 오래간만에 부팀장과 대화를 나눠서인지 몰라도 괜히 쑥스럽다. 벨트를 매며 웃는데, 부팀장이 말을 이었다.

“하늘 씨 덕분에 사무실 앞 기자들 철수했단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

“그건, 그냥 퇴근 시간과 맞아서 자리를 뜬 걸 거예요.”

고작 내 말만 믿고 며칠을 상주하던 그들이 철수했단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손사래 치며 몸을 바로 할 때였다. 무심코 운전석 쪽을 보는데, 부팀장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씨 말마따나 자리를 완전히 떴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덕분에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건 맞으니 그리 민망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한 번 더 저리 말한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다. 당장 이율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서 말한다면 사무실에서 번거롭게 한 번 더 설명해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마저 듣기로 하며 웃으니 부팀장이 피식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간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지난주 토요일에 감찰부 사람들이 청와대로 돌아간 거 말곤 없어요. 다행스럽게도 서울시에 던전 생성도 되지 않았고요.”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군요.”

“네.”

내 말을 들은 부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디오를 켠다. 조용히 뉴스를 듣는데, 다른 때였다면 던전과 관련된 사항을 짤막하게라도 다뤘을 뉴스에서는 던전의 던 자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던전 이야기가 없는 뉴스 듣는 것도 오래간만이군요.”

“자주 던전이 생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날도 더러 있었는데 말이죠.”

이런 평온도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뉴스 내용을 듣다 보니 어느새 차는 사무실이 있는 길로 진입했다.

“…….”

과연 오늘은 사무실 앞 상황이 어떠할지 모르겠다. 기왕이면 아무도 없길 바라며 가까워지는 협회 건물을 바라볼 때였다. 난데없이 부팀장이 한숨을 뱉었다.

“부팀장님?”

내 부름에 힐끔 이쪽을 보던 부팀장이 앞쪽을 향해 턱짓한다. 그에 앞을 봤는데, 어째서 부팀장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기자들이, 있네요.”

역시 지난주 철수는 퇴근 시간과 맞물린 우연이었나 보다. 당혹감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데, 기자들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들어서던 부팀장이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요.”

“제 존재는 이미 저들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일 겁니다. 게다가….”

잠시 말을 줄인 부팀장이 차를 주차한다. 시동을 끈 부팀장이 픽 웃으며 날 바라봤다.

“이미 인터뷰한 터라 다시 찾아오진 않을 겁니다.”

“인터뷰를요?”

“집으로 찾아온 이들과 딜을 좀 했죠.”

벨트를 푼 부팀장이 뒷자리에서 가방을 집어 든다. 이어 차 문을 여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늘 씨?”

“바로 내려요!”

차 문을 닫은 부팀장이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바로 벨트를 풀곤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부팀장에게 바싹 붙어 섰다.

인터뷰를 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저기 서성이는 이들 중 부팀장에게 관심을 보이는 기자가 없다곤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부팀장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도 절대 밀리지 않겠다 다짐하며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할 때였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이건 긴장이 아니라 다짐이었다. 부팀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면서도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자, 한숨인지 웃음소리인지 모를 소릴 뱉은 그가 걸음을 뗐다. 곧바로 곁에서 철통방어하며 사무실 건물 입구 쪽으로 향했다.

“…….”

혹여 부팀장에게 말을 걸거나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걱정일 뿐이었던 듯했다. 건물에 들어서도록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보니 부팀장이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볼을 긁적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게, 혹시나 해서요.”

“그래요.”

“별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그래, 월요일 아침부터 단추가 잘못 꿰이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안도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 8층에 도착하니 오늘도 먼저 출근한 팀원이 있었다. 출입증을 찍곤 문으로 들어서자, 팀장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왔어? 부팀장도 어서 와.”

“오래간만입니다, 팀장님.”

“푹 쉰 거 같네. 안색 좋아졌어.”

“바깥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하하, 저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말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다. 기자와 관련된 상황을 이렇게 장난스레 말하는 걸 보면 이젠 정말 괜찮은 모양이었다. 속으로 안도하며 짐을 푸는데, 갑자기 팀장의 입에서 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부팀장이 오지 않는 동안 막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자네 상황을 몰라 더 놀란 거 같아서. 간략하게나마 말해 줬어.”

“잘하셨습니다.”

“…….”

설명했다는 말을 이렇게 바로 말할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이 자리에 셋밖에 없어 이야기를 꺼낸 것 같기도 했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혹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요.”

물어보라고는 하지만, 쉬이 말을 꺼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색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따로 숨길 게 없기도 하고, 이전 일인지라 눈치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 뭐든 알고 있으면 이후에 대처하기 좋으니까.”

부팀장에 이어 팀장까지 저렇게 말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조금 전보다 힘을 실어 주억이니 부팀장이 웃으며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에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말을 건넸다.

“커피랑 율무차 드실 거죠?”

“좋지!”

“한 잔 부탁합니다.”

묻자마자 바로 답이 돌아온다. 정수기 쪽으로 가 커피 두 잔과 율무차를 준비하는데, 출입문 문이 열리며 한 주무관이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부팀장님 오셨네요.”

“오래간만입니다.”

“걱정했는데 얼굴 보니 마음 놓이네요. 막내야, 나도 한 잔 부탁해.”

“네.”

한 번에 커피와 율무차를 준비해 전달한 뒤, 남은 커피를 챙겨 자리로 와 앉으니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연이어 출근했다.

“부팀장님, 오셨어요! 어, 다들 마시고 계시네요. 김 주무관님, 커피 하실 거죠?”

“아, 내가 탈게. 박 주무관은 짐이나 풀어.”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달달하고 맛있는 믹스커피 한 잔이요!”

“최고로 맛있는 믹스커피 타 준다, 내가!”

“저 막 기대합니다?”

역시 저 두 사람이 오니 이보다 더 생기발랄해질 수가 없다. 커피 한 잔을 두고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웃으며 일과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조회 시간이 되었다.

“다들 주목!”

준비해둔 다이어리와 펜을 챙겨 의자를 돌려 앉으니 팀장이 팀원들을 훑어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부팀장과 시선을 교환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지난주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부팀장이 자리를 비웠는데, 다들 그 자리 잘 채워 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어. 다들 고생했고, 이번 주부턴 청와대에서 나온 이들도 없으니 편하게 일해 보자고.”

“옙!”

“그리고, 막내야, 오늘 잉여 온다고 했지?”

“네.”

“바깥 상황 관련해선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김세현이 말했던 내용을 입에 담았다.

“조회 끝나면 바깥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잉여가 무슨 수작 부리나?”

“기자들이 물러날까 싶기는 한데.”

나도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의심할 순 없었다. 그 말을 하던 김세현의 표정은 이전과 변함없이 자신감이 넘쳐흘렀으니까. 잠시 말을 고른 뒤 바로 입을 열었다.

“세현 씨가 그렇게 말한 거 보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래, 이유가 없다면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나는 팀원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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