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20. 폭풍전야
일요일 출근은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조회 또한 생략되기에 아침 시간을 활용하기도 편했고 말이다.
대개 일요일에 출근하면 지난주에 마무리하지 못한 일감을 마저 처리한다거나 다음 주 일감을 정리하는데, 이미 할 일을 마친 상황이라 따로 할 건 없었다. 괜스레 폴더를 뒤적이며 할 만한 일감이 있나 둘러볼 때였다. 이상하게도 협조금 관련 폴더가 시선을 사로잡자 곧바로 그 폴더를 열었다.
“…….”
일별로 정리된 협조금 문서들이 나열된 걸 쭉 훑어보다 보니 어느새 가장 최근에 발생했던 던전 관련 협조금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 다시 파일 날짜를 확인하니 최근 들어 가장 긴 시간 던전에 노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울시가 쉬고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던전이 생성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심할 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생성되었던 전적을 미루어 볼 때 지금의 고요함은 사람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갑자기 던전이 마구 터질 때도 걱정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뜸해지니 어쩐지 이상했다.
“흠.”
이럴 줄 알았다면 던전 협조금 관련 폴더를 열지 말 걸 그랬다. 그랬다면 적어도 던전이 잠잠하단 이유만으로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을 테니까.
“막내야.”
“네, 박 주무관님.”
“오늘따라 왜 그렇게 기합이 들어갔어?”
긴장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박 주무관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입에 매달았다.
“그냥 좀 긴장되어서요.”
“말도 마. 오늘 아침부터 잔뜩 긴장할 일이 있어서 그래.”
“아침부터요?”
내가, 아침부터 긴장했었던가?
생각지도 못한 팀장의 말에 놀라 뒤돌아보니 때마침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얽힘과 동시에 눈가가 접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어째서 저 말을 했는지 알 거 같았다. 팀장이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아침 일을 입에 담았다.
“제가, 오늘 늦잠을 잤거든요.”
“아하. 팀장님이 데리러 가는데, 늦을까 봐 기합 들어갔구나?”
“네.”
조금만 더 늦었다면 팀장이 기다릴 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늦었다면 이전에 부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팀장 역시 초인종을 눌렀겠지.
“…….”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막힐 줄은 몰랐다.
김세현을 결코 안으로 들이지 말라던 신신당부를 무시하고 들인 것도 모자라 아예 하룻밤 재운 상황이었다. 혹여 두 사람이 맞닥뜨렸다면 대참사가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졌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간 김세현과 만났던 일 모두가 까발려졌을지도 몰랐다.
“또, 또 긴장하지.”
“에이, 긴장하는 건 좋은 일이죠! 우리 부서 같은 경우엔 더더욱요.”
“하긴. 부팀장도 없으니 우리 막내가 긴장될 만도 하지.”
“…네.”
오늘따라 내 긴장을 포장해줄 만한 건덕지가 많아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속으로 안도하며 두 사람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 보니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며칠 전 남쪽 지역에 생성되었던 던전과 함께 그 지역 헌터부 현황을 알아보려 각 시도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흠.”
몇 곳 둘러보지도 않았는데,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수가 없다. 서울시도 사람이 부족했지만, 지방은 서울시보다 인원이 더 적게 배치된 상황이었다. 마치 서울시에 인원을 편재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말이다. 정말 적게는 둘, 많아 봤자 넷인 배치도를 보며 말을 잃던 중이었다.
“어, 부산 헌터부 조직도네.”
“아, 네.”
언제 다가왔는지 박 주무관이 커피 한 잔을 책상에 두며 말을 걸어온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니 그가 김 주무관 자리의 의자를 끌고 와 옆자리에 앉는다. 그에 나는 옆으로 좀 더 비켜 앉았다.
“와, 여기도 사람이 변하질 않네. 변하질 않아.”
“부산도 그래?”
“예! 여기도 정말 겨우 한 사람 충원되었는데, 있던 사람이 나갔네요.”
“그거 충원하나 마나 꼴 아니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계속 어필 중일 거 같은데요? 하아, 여기나 저기나 열악하네요.”
다른 부서도 바쁘겠지만, 헌터부는 일단 인원이 좀 더 많아야만 했다. 지금도 겨우겨우 돌아가는 판국인데 사람을 충원해달라며 윗선에 거듭 어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정작 필요한 건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닦달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툭하면 팀장 자리에서 울리던 전화를 떠올리며 흐린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박 주무관이 마우스를 달라 손짓한다. 그에 바로 넘기니 박 주무관이 다른 지역 헌터부 조직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부 지방은 전부 인원 교체되거나 충원된 곳 없네요.”
“보는 김에 중부 지방도 좀 살펴보든가.”
“넵! 막내야, 여기서 같이 봐도 되지?”
“물론이죠.”
같이 본다면 모르는 게 있다면 물어볼 수도 있고 나야 좋았다. 박 주무관의 옆에서 그가 검색하는 걸 빠짐없이 챙겨 보기 시작했다.
“충청도 쪽도, 강원도 쪽도 그렇고 전부 변함이 없습니다. 경기도 역시 변한 건 없고요.”
“나날이 던전 생성 빈도가 높아지는데 말이지. 더 늦지 않게 지금이라도 좀 충원이 돼야 할 텐데.”
“우리만 해도 한 사람 충원되니 숨통이 바로 트였잖습니까. 손 하나가 있고 없고 차이가 엄청난데 말이죠.”
“…….”
한 사람 충원되었다는 건 날 말하는 것이었다. 입에 발린 소리일 지도 모르지만, 내가 있어 도움이 되고 있단 말을 들으니 무척 기운이 났다.
“하아. 이놈의 던전이 문제다, 문제.”
“맞습니다!”
잠시 날 보던 박 주무관이 피식 웃으며 팀장의 말에 동조한다. 그에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던전만 없었다면 작게는 헌터부 사람들의 고충이, 크게는 던전으로 인한 많은 이들의 피해가 사라졌을 것이었다. 특히 던전 때문에 줄줄 새어나가던 혈세 또한 지켰겠지.
던전 하나가 사라진다고 이렇게 좋은 일이 많아질 수가 있나 싶을 지경이다. 심각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던 중이었다.
볼 곳은 다 둘러본 것 같은데, 박 주무관이 주소 입력창에 어떤 주소를 써넣었다. 이어 화면에 뜬 사이트를 지켜볼 때였다.
“막내야.”
“네, 박 주무관님.”
“각 시도 사이트에서 헌터부 조직도 보는 것도 좋지만, 여기 접속하면 한 번에 타 지역 헌터부 소속 공무원들 살펴볼 수 있거든? 앞으로 둘러볼 거 있으면 이 사이트 둘러봐. 여기엔 준공무원, 그리고 계약직 헌터들의 명단도 올라와 있어. 정부 사이트니까 접속할 때 인증만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참고하고.”
“아.”
“우리 막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대견하다, 대견해.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고. 나 말고도 다른 팀원들도 손 걷어붙이고 도와줄 거야.”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그러라고 팀장이 있는 거니까.”
“…네, 그럴게요.”
이렇게 좋은 팀원들을 만나게 된 건 내 인생에 있어 큰 행운과 다름없었다. 그저 조직도만 열었을 뿐임에도 내가 어떤 걸 알아보려 한 것인지 바로 캐치해 알려 주는 것도 그렇고, 뭐든 물어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어느 하나 고맙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막내야.”
“네, 박 주무관님.”
커다란 감동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박 주무관이 부른다. 곧바로 답하며 그를 보니 무언가 말을 고르는 듯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말이야….”
“말씀하세요.”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뭐든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혹여 내가 몸을 쓸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볼 생각도 있었다. 한참을 말을 고르는 듯하던 박 주무관이 내 얼굴을 살피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가 열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이런 거 관심 있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한 번 볼래?”
“네.”
뭔진 모르겠지만, 박 주무관의 행동을 보아하니 외부에 알려지기 좀 곤란한 걸 보여 주려는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마른침을 삼킨 박 주무관이 곧바로 인터넷 주소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긴장하는 걸까. 덩달아 긴장하며 화면을 보는데, 이내 기입을 마친 박 주무관이 침을 꼴깍 삼키곤 엔터를 눌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화면이 모니터에 떴다.
“여기가 말이야, 소프트한 걸 주로 다루는 사이트거든? 가십거리 위주로 음모론을 다루는데 간혹가다 헌터부 이야기도 가끔 나오고, 협회 쪽도 이야기도 나오는데, 은근히 재미있더라니까?”
“아, 네.”
양 볼이 붉게 달아오른 박 주무관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음모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어색하게 웃던 와중이었다.
“견문을 넓히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거든? 그러니까 가끔 한 번씩 둘러보… 윽!”
“어쩐지 잠잠하다 싶었지!”
“팀장님! 그렇다고 머릴 누르면 안 되죠!”
“안 돼? 그럼 헤집어야지!”
“으억!”
머리 위로 솥뚜껑만 한 손을 얹은 팀장이 박 주무관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기 시작했다.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헛웃음을 지을 때였다.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 불현듯 떠올라,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 노력했다.
하필 아침에 왜 내 머릴 그렇게 쓰다듬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게 아니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얼굴에 힘을 주며 표정 관리에 애쓰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항복이요, 항복!”
“항복?”
“전파 안 할게요, 진짜로요!”
“좋아.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거야. 혹여라도 지금 같은 일 생기면…. 알지?”
“당연하죠! 막내야, 여기 알려 준 건 취소야. 알았지?”
팀장의 손이 떨어져 나가기 무섭게 자리서 일어난 박 주무관이 꽁지가 빠져라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 박 주무관을 보던 팀장이 빈 의자를 다시 김 주무관 자리로 옮기고는 날 바라봤다.
“막내는 그 음모론 페이지부터 꺼.”
“네, 팀장님.”
그러지 않아도 끄려 했다. 모니터 화면에 뜬 페이지를 쓱 훑어본 뒤, 곧바로 그것을 끄곤 그 전에 박 주무관이 알려 준 사이트에 눈길을 주었다.
“혹시 보다가 물어보고 싶은 거 있거나 하면 물어보고.”
“그럴게요.”
한 번 더 물어보란 말을 남긴 팀장이 어깨를 두어 차례 토닥이곤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열심히 박 주무관이 알려 준 사이트를 보며 전국 각지의 헌터부 소속 사람들의 명단을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