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33)화 (133/246)

130화

20. 폭풍전야

“으음.”

오늘따라 왜 이리 일어나기 싫은지 모르겠다.

미리 맞춰 둔 알람이 울렸음에도 좀처럼 눈이 떠지지 않는 건 평소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편한 잠자리 덕이었다. 따로 전기장판을 켜지도 않았는데, 몸이 닿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뜻함 역시 미적거리는 내 행동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

이리 단잠을 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니, 이따금 다디단 잠을 자긴 했지만, 그간 느꼈던 편함과 지금 느끼는 안락함은 비교선상에 둘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밤늦도록 영화를 봤음에도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단잠이라니. 정말 매일 이렇게 잘 수만 있다면 일 효율이 엄청나게 늘 것 같았다.

삐리릭- 삐리릭-

첫 번째 알람이 울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두 번째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10분 간격으로 맞춰 둔 알람이기에 한 번 더 울릴 때 움직여도 되었지만,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단 생각이 앞섰다.

어차피 오전 근무만 하고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일어나기 싫은지 모르겠다. 쉬고 싶단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용솟음쳤지만, 그래도 일어나야만 했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과 계속 누워 있고 싶단 생각이 맹렬하게 충돌할 때였다. 집 안을 떠나갈 듯이 존재감을 발산하던 두 번째 알람이 잠잠해졌다.

그래, 마지노선이 한 번 더 남았으니 그때까진 누워있어도 될 일이었다. 나는 좀 더 뜨끈함이 느껴지는 바닥에 몸을 파묻곤 작게 한숨을 뱉었다.

“하아.”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누리는 것밖에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다시금 잠이 찾아왔지만, 이대로 잠들 생각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집 앞까지 데리러 온 팀장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스륵.

“…….”

스르륵.

혹여 잠결에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연이어 머리를 쓸어넘기는 손길은 진짜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한 번 더 낯선 이의 손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일부러일까? 그래, 일부러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묘한 곳을 터치할 순 없을 거다. 두피를 만지는가 싶던 손이 귀 뒤에 닿고, 이어 귓불을 만지작거리다 떨어지며 목가를 쓰다듬는 손길을 누가 봐도 명백한 의도가 느껴졌다.

…그냥 눈을 떠서 누군지 확인할까?

아니지, 괜히 눈을 떴다가 안 좋은 상황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정말 큰 후횔 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낯선 이의 손길을 받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나에게 이로운 선택일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곤히 자는 척 연기하며 이런저런 방향을 모색해 보고, 한편으론 손 주인의 다음 기척이 나는지 안 나는지 집중하던 참이었다.

“풉!”

그때였다, 머리맡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 건.

설마, 자는 척하던 게 들켰나?

그에 바짝 긴장해 더더욱 잠을 자는 척 안간힘을 쓸 때였다. 머리맡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깨났어요?”

이 목소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황급히 눈을 떠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이 눈을 가득 채웠다.

“세, 현 씨?”

“방해해서 미안해요. 인상 쓰는 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코앞에 보이는 김세현을 멍하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세현 씨가 어떻게….”

어째서 김세현이 이곳에 있나 싶었지만, 말을 끝내기 전에 어제 일이 떠올랐다.

“많이 놀랐어요?”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자고 일어날 때면 언제나 혼자였던 지라 누군가가 곁에 누워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날 보며 웃기 바쁜 김세현의 시선을 피하며 눈을 굴리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형, 자려면 좀 더 자요. 많이 졸려 보이는데.”

이를, 어떡하지?

김세현과 이부자리를 붙이고 자긴 했지만, 눈을 떴을 때 이런 상황이길 바란 적은 없었다.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머리를 받치고 있는 단단한 무언가, 내 한쪽 다리와 팔이 올라간 김세현의 몸, 거기에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손길까지.

바른 자세로 누워 있는 김세현에게 찰싹 달라붙어 누워 있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어, 음…”

그간 단 한 번도 이렇게 잠투정한 적은 없었다. 어릴 적에도 곤히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잤건만, 하필 이런 날 이렇게 뒤척이다니.

일단…. 일단은 김세현을 반쯤 덮친 이 자세부터 풀어야 할 텐데, 좀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당혹감에 그저 눈만 굴리고 있을 때였다.

“여태 얌전하게 자는 줄 알았는데, 은근 뒤척이네요?”

“그게….”

“형이 굴러와선 이러고 자는 바람에 밤 꼬박 새운 거 알아요? 진짜 자는 사람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국가만 얼마나 불렀는데요.”

“그, 미안해요.”

“나였기 망정이지, 아니지. 나여서 더 문제였지만요!”

밤을 지새웠단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미안할 수가 없다. 연신 미안하다 말하며 황급히 일어나니 덩달아 김세현도 일어났다. 그리곤 자리에 앉아서는 이리저리 어깨를 돌리고 또 연신 팔뚝을 만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삐리릭- 삐리릭-

하필 이때 마지막 알람이 울릴 게 뭘까. 난감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김세현이 어깨를 돌리다 말고 입을 열었다.

“형, 얼른 챙겨요. 얼른 챙겨야 덩치 올 시간에 맞추죠. 내 걱정은 말고요.”

“…네.”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더더욱 신경 쓰였다. 미적거리고 있자니 한 번 더 강하게 어서 준비하란 말을 건네는 김세현이다. 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말만 괜찮은 건지 아니면 정말 괜찮은지 김세현을 살펴야겠지만, 그보다 지금은 출근 준비가 우선이었다. 시계를 확인하곤 곧바로 방으로 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세면대의 거울이 날 맞이한다. 거울 속 내 모습의 참담한 상태에 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여태 이 꼴로 김세현과 대화를 나눈 걸까.

부끄러운 나머지 땅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황급히 입가에 묻은 허연 자국을 닦아 내면서도 자꾸만 나오는 한숨이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계속 욕실에 머물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씻고 나와 욕실 앞에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입을 열었다.

“세현 씨, 시간이 부족해서 아침밥은 챙겨 드리지 못….”

역대급으로 빠르게 씻고 나왔건만, 김세현은 그새 자리에 누워있었다. 각도로 인해 자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김세현은 본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세현 씨?”

“…….”

“세현 씨 자요?”

처음에는 약하게, 두 번째는 좀 더 큰 소리로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고른 숨을 내뱉는 이를 내려다보다가 곧바로 몸을 돌렸다.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 편이 컨디션 조절하는 데 좋을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 드라이기를 돌린다면 분명 잠에서 깰 거다. 겨우 잠든 듯한데, 굳이 깨우고 싶진 않았다. 마른 수건을 하나 더 챙겨 와 머리의 물기를 대충 짜내곤 대충 손으로 빗어 넘긴 것으로 머리 정돈을 마친 뒤 방으로 가 메모지와 펜, 그리고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핸드폰에 메시지를 보내두는 편이 더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괜히 메시지 도착 음에 잠이 깨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드라이기도 포기했는데, 핸드폰으로 깨우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김세현이라면 분명 눈을 뜸과 동시에 허기질 것이었다. 딱히 먹을 건 없지만, 냉장고에 반찬 몇 가지가 있으니 요기라도 하란 쪽지를 식탁에 두곤 집을 나섰다.

“…좀 자야 할 텐데.”

원래대로라면 팀장이 오기 전 김세현을 내보냈을 것이었다. 곤히 자고 있을 이였지만, 그 혼자 집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말없이 집 쪽을 바라보는데, 골목 저 멀리서 익숙한 차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몸을 바로 하며 손바닥으로 양 볼을 쳤다.

“정신 차리자, 연하늘.”

이러다 김세현이 집에 있단 걸 들키겠다. 단둘이 있는 것조차 못하게 했던 팀원들이 이 상황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그저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최면을 걸듯 마음을 다독이자니 팀장의 차가 앞에 와 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크게 심호흡하곤 차량에 탑승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늦잠 잤어?”

유심히 날 살피던 팀장이 머리 쪽을 가리켰다. 혹 다른 지적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이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만지며 답했다.

“네.”

“그래도 시간 맞춰서 잘 나왔네.”

“아침 일찍 데리러 와주시는데, 누를 끼치면 안 되죠.”

다른 것도 아니고 편의를 봐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와준 이의 시간을 더 빼앗을 순 없었다. 그런 행동은 한 번으로 족했다. 벨트를 매며 답하니 팀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래. 늦으면 안 되지! 막내도 지각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한 번 노력해 볼까? 벨트 잘 맸지?”

“네, 팀장님.”

“평소보다 좀 더 밟아 볼 테니까 긴장하고 있어!”

핸들까지 새로 쥐는 모습이 정말 속도를 내 보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위협적인 말과는 다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차 속도는 무척 느렸다. 서서히 골목의 끝이 보이자 팀장이 한 번 더 핸들을 바로 쥔다. 그저 핸들을 다시 쥐었을 뿐인데, 그 행동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이 벌써 진땀이 나는 것만 같다.

“…밟는 건 좋지만, 교통법규는 지키셔야 해요.”

“당연하지!”

교통법규만 지킨다면야 문제 없었다. 나는 한결 놓인 마음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골목을 벗어난 차가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창문을 스쳐 지나가는 건물의 속도 또한 빨라졌다. 말없이 밖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김세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

이미 겪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김세현이 우리 집에서 자고 있단 사실이 왜 이리 믿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싫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집에 있다 생각하니 자꾸만 설레었다.

그저 잠깐 생각한 것일 뿐인데, 점차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이보다 정직할 수가 없다. 나는 안전벨트를 만지는 척하며 심장께를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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