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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31)화 (131/246)

128화

19. 긴장

고개를 틀자 보이는 건 지근거리에서 웃고 있는 김세현이었다. 그것도 머리통 하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말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거리감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뒤늦게 그의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팔로 머리를 지탱한 채 모로 누워 이쪽을 바라보는, 그저 흔한 자세였다. 그래, 나조차 옆으로 누울 때면 간혹 취하는 정말 자세건만, 그 모습조차 근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김세현 하나밖에 없을 듯했다.

얼굴이 잘나니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 멋져 보였다. 물론, 김세현은 얼굴만 잘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해사하게 휘어진 눈매가 유독 빛나는 것만 같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뒤늦게 거리감이 주는 이질감을 깨닫곤 황급히 확인하려던 머리맡을 살폈다.

“…….”

몇 번을 봐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간격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전혀 없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딱 붙어 있는 이부자리를 보다가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왜요, 또 봐도 멋있어요?”

내 말문을 막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면 지극히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리며 그를 바라보는데, 그 시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김세현이 재차 물어왔다.

“얼마나 멋진데요?”

얼마나 멋지냐니.

멋있다는 단어가 김세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저 말과 어울리는 사람은 여태 본 적 없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코앞에, 그것도 같이 누워있단 건 그 자체만으로도 심장에 해로웠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고, 또 답하는 건 때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김세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고 말았다. 이렇게 멋대로 응하게 되는 건 전부 저 얼굴 탓일….

“형?”

“어, 음.”

홀리지 않겠다 다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또 잡념에 빠졌다. 답을 보채는 이에 어색한 미소를 매단 채 이불로 감춰진 손을 꼼지락거릴 때였다.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얼굴에 다 쓰여 있으니까.”

…아.

얼굴에 또 드러난 모양이다. 당장에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김세현이 더 뭐라고 할 게 뻔했다. 그저 침묵하며 모른 체하는 게 이득인 듯해 침묵하는데, 그가 남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하.”

이마를 짚으며 눈까지 가려진 터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슬쩍 올라간 입매만 보고선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기 어려워 숨죽인 채 그를 관찰하던 중이었다. 천천히 얼굴에서 손을 떼어낸 김세현이 날 응시했다.

“내가 오죽 잘 나긴 했죠. 그쵸, 하늘 형?”

자아도취에 빠진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순간까지 저럴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몰라도 몽롱했던 정신이 맑아졌다. 한결 진정된 마음에 안도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하긴, 세계 최고 S급 헌턴데 잘날 수밖에요!”

“능력도 좋고 돈도 많은데 잘나기까지? 하! 이만큼 멋진 사람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겠어요?”

실력에 걸맞은 자신감을 지녔다는 건 봐 온 게 있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과도할 줄은 몰랐다. 입을 떼면 뗄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자화자찬이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도 않고 도리어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지닌 능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 으스댐은 새 발의 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낯설게 다가오는 건 지금껏 이렇게까지 우쭐대던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고, 또 한편으론 김세현답다 싶은 것이 참 신기하다. 나는 그렇게 한참동안 우쭐거리며 스스로를 뽐내는 김세현을 눈에 담았다.

“원체 잘난 사람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잘생겨 보인다면 맞을 거…. 왜 그렇게 봐요?”

한참을 뻐기던 김세현이 드디어 내 시선을 알아차렸다. 맹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 조금 전까지 본인을 추켜세우기 바빴던 사람이 맞나 싶다. 순간의 갭 차이가 너무도 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냥 지켜보고 있었어요.”

“…….”

“자신감이 넘쳐서 보기 좋네요.”

“아.”

평소 같다면 내가 한 말에 반응했을 텐데, 어찌 된 게 김세현은 멍하니 날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도 마치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얼굴로 말이다. 얼굴 위로 서서히 차오르는 경악 어림을 보니 아무래도 말실수를 해도 크게 한 모양이었다. 황급히 방금 전 건넨 말을 되짚어 보는데 김세현이 성큼 거리를 좁혀왔다.

“…흐음.”

숨이 닿을 만큼 다가온 이가 내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척 심각한 얼굴로 말이다.

“…….”

가깝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이 정도로 가까운 게 처음이었다면 긴장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불과 얼마 전 김세현에게 안겨 이동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진 않았다.

…이번에는 안긴 게 아니라 같이 누워있어서 그런 걸까? 그것도 이부자리를 딱 붙여서?

“나쁜 뜻은 아닌 거 같은데.”

하필 이 타이밍에 말을 걸 줄은 몰랐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바로 지금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어질 지경이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딴생각을, 그것도 혼자 김세현을 의식하기 바빴다는 사실이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숨결이 닿는 거리감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뒤로 물리니 이번엔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 마음을 다독이던 중이었다.

“…형?”

“그게, 갑자기 말을 걸 줄 몰라서요. 너무 놀라서….”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단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게 찔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했다.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날 바라보는 김세현을 향해 사과한 뒤에도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심장 박동에 자리서 일어났다.

“물 좀 마시고 올게요.”

“내가 떠 올까요?”

“아뇨. 제가 가도 돼요.”

김세현 집이었다면 부탁했겠지만, 여긴 내 집이었다. 금방이라도 부엌으로 갈 태세인 김세현을 말리곤 직접 가 한 컵 가득 채운 물을 단번에 마셨다.

“후우.”

차가운 게 들어가서일까, 한결 진정되는 기분이다. 한 번 더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리곤 거실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세현 씨.”

“네, 형.”

아직 눕지 않았는지 이부자리에 앉아 있던 김세현이 이쪽을 바라본다. 나는 주먹 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작게 헛기침하며 입을 뗐다.

“물 한 잔 드릴까요?”

조금 전관 달리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혼자 마신 게 마음이 쓰여 물어보니 김세현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물 다 마셨으면 와서 얼른 누워요. 내일 출근할 거잖아요.”

이부자리 경계선에 앉아서는 이불을 툭툭 치며 어서 오라 말한다. 어째 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 모습에 한 번 더 가슴이 술렁였지만 그도 잠시였다.

“네.”

시원한 물 덕분인지 빠르게 진정된 마음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로 갔지만 김세현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부자리로 손을 뻗었다.

“…뭐 해요?”

상황을 보던 김세현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물어 왔다. 나는 내 이부자리를 계속해서 끌어당기며 답했다.

“밤에 화장실 가거나 물 마시러 갈 때 발 디딜 공간이 필요해서요.”

지금은 괜찮아도 조금 전과 같은 거리에서 김세현을 계속 본다면 밤을 꼬박 새우고 말 거다. 그렇게 된다면 내일 사무실에서 또 피곤에 휩싸여 제대로 일하지 못하겠지. 예전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래, 지금은 부팀장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긴급 사태가 발생한다면 사무실을 지킬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조금 전엔 베개 있는 쪽으로 갔잖아요.”

아, 그랬지.

방금 이동할 때 베개를 넘어 부엌에 갔다는 걸 깜박했다.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낭패감이 앞섰지만, 이렇게 계속 어물쩍거리다간 괜한 오해를 살지도 몰랐다. 그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말을 골라 입을 뗐다.

“그게, 자다 일어나서 머리맡으로 이동해 본 적이 없어서요. 버릇처럼 옆으로 이동하려다가 혹여나 세현 씨 밟을까 봐요.”

“밟아도 되는데.”

“…….”

“형이 밟는다고 어디 다치거나 하지도 않아요. 그냥 같이 자요.”

사람, 그것도 성인 남성에게 밟힌다면 그 아픔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뿐이랴, 자칫 잘못하다가 위험한 곳이라도 밟히게 되면 정말 큰일이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니까요? 밟히는 게 무슨 대수라고.”

대수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피력하기 바쁜 김세현이다. 마치 많이 밟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괜히 기분이 그랬다.

“…왜 그런 얼굴로 봐요?”

“그냥, 좀 그래서요.”

“설마 내가 어디 가서 밟힐 사람으로 보여요?”

“그건….”

그건 아니었지만, 하필 이 순간 김세현을 막 대하던 그 목소리가 생각날 게 뭔가 싶다. 듣고 싶지 않았음에도 들을 수밖에 없었던 내용 때문일까, 불편함이 영 가시질 않았다.

“하늘 형, 나 S급 헌턴데.”

“그래도요.”

김세현이 S급 헌터인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풉! 알았어요, 알았어. 형 생각해서라도 어디 가서 절대 안 밟힐게요.”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세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미소였지만, 내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김세현이 무척 기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형.”

“네.”

“형이라면 언제든 내 위에 올라와도 이해할게요.”

“…….”

“뭐, 앞으로 자주 올라오겠지만요.”

밟히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난데없이 뭘 올라간다는 건지 모르겠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보니 이번 한 번 정도는 그냥 넘어가 줘도 될 듯했다.

“하여튼! 나 밟아서 가도 되니까 그냥 같이 자요.”

“어, 어?”

같이 자자며 김세현이 내 이부자리를 낚아챘다. 따지고 보면 낚아챘다기보다는 살포시 당기는 것이었지만, 그 힘이 너무 강했다. 미처 대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로 김세현 쪽으로 끌려간 이부자리다. 나 역시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그대로 끌려가다 김세현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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