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27)화 (127/246)

124화

19. 긴장

“특별히 없었어요. 그저 헌터부에서 못 봤냐는 물음밖에는요.”

“…날 왜 거기서 찾을까요? 바로 옆이 협회인데 말이죠.”

역시 어처구니없는 게 맞았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렇고 다들 혼란스러워하더라고요.”

“흐음….”

자못 심각해진 김세현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그뿐이랴, 눈동자를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형태가 아무래도 상황을 헤아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식탁 위로 내려앉은 고요가 이보다 더 무거울 수 있나 싶어질 때였다. 팔짱까지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이가 팔을 풀며 씩 웃어 보였다.

“일단 식사부터 마저 해요.”

“…….”

“생각해 봤는데, 크게 신경 쓸 필욘 없겠네요.”

본인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말을 얹는 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단 말을 꺼내려는데, 김세현이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내가 헌터부에 드나들면 드나드는 거죠. 게다가 형이 말했잖아요? 기자들 철수했다고.”

“그야 그렇지만…. 오늘만 철수한 걸지도 모르잖아요.”

나와 대화를 나누곤 철수하긴 했지만, 시기가 좀 애매했던 게 사실이었다. 헌터부 사람들이 퇴근하던 시각에 맞춰 그들 역시 철수하기 시작한 터라 내 말 때문인지, 아니면 얻을 게 없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기자였다면 백이면 백 월요일에 다시 사무실로 발길 했을 거다. 아니, 기자라면 헌터부가 일요일도 일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을 테니 당장 내일도 사무실 앞을 서성일 것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S급 헌터, 그것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김세현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마땅했다.

“뭐, 찾아온 기자들이 있으면 찍히는 수밖에요.”

“…….”

본인 일임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이보다 더 답답할 수가 없다. 한마디 하려는데, 돌연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설마, 아직도 사진 찍히는 거 걱정하고 있어요?”

그야 당연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찍힌 사진 말곤 다른 사진은 한 번도 유출된 적 없었으니까.

대상이 김세현인 만큼 큰 반향이 일 건 당연한 수순과도 같았다. 협회 소속인 S급 헌터가 뻔질나게 헌터부를 방문한단 말이 나온다면 좋지 않은 말도 꼬리처럼 뒤따를 테고 말이다.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이 이리저리 눈을 굴린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메시지론 봤는데 직접 들으니 기분이 새롭네요.”

도대체 뭐가 새롭다는 걸까.

걱정된단 소리에 저리 웃는 걸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번엔 정말 한마디 하려는데 이번에도 김세현의 말이 더 빨랐다.

“괜찮아요.”

“…….”

“특종 잡겠다고 찍어 봤자 기사화되긴 힘들 테니까. 뭐, 기사가 올라가더라도 금방 내려갈 테지만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 마치 이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던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아니, 그랬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다른 S급 헌터들과는 달리 김세현의 정보는 지극히 한정적으로 풀려 있었으니까.

…설마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어디선가 손을 쓰고 있던 걸까?

불과 얼마 전까지 얼굴을 가린 채 활동했던 만큼 김세현과 관련된 정보를 캐내려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알려진 부분이 제한적이란 말은 뒤에서 제동을 거는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했다.

김세현이 소속된 협회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과연 그들이 거기까지 관여할까 싶긴 했다. 그도 그럴 게 협회는 김세현과 관련된 그 어떤 수수료도 얻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제아무리 S급 헌터라 할지라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 만큼 협회에서도 소속된 다른 S급 헌터에 비해 관심이 덜할 게 뻔했다. 툭하면 협조금을 인상하려 찾아오는 것만 봐도 협회가 돈을 우선시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으니까.

협회가 아니라면 김세현이 직접 뒤에서 손을 쓰고 있단 걸까?

하지만 그 생각은 찰나에 불과했다.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간 목소리에 모든 행동을 멈췄다.

“…….”

어째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 김세현의 집에서 문 너머로 들려오던 차갑기 그지없던 목소리가 말이다. 불쾌하기 짝이 없던 남성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였다.

“형이 이렇게 걱정해 주니까 좋네요.”

“아.”

사람을 앞에 두고 혼자서 너무 생각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니 김세현이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무척 달콤한 미소를 그리며 말이다.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밥부터 먹어요. 기자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니까.”

“…….”

“정말 괜찮대도요? 못 믿겠으면 월요일 조회 끝날 즈음 연락할 테니 창문으로 와요. 내가 장담한 이유 보여 줄 테니까.”

이렇게나 호언장담을 한다는 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지만, 단호한 말투 덕분인지 한결 마음이 놓였다. 나는 젓가락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여간 형만큼 날 많이 생각해 주는 사람은 또 없을 거예요.”

생각하는 건 당연했지만, 막상 저 말을 본인에게 들으니 이보다 민망할 데가 없다. 복잡미묘해진 기분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데, 김세현이 한쪽 팔을 식탁 위로 올리더니 턱을 괴며 날 바라봤다.

“그래서 좋다고요.”

은근한 눈빛도 그렇고, 슬쩍 올라간 입매도 그렇고. 어디 하나 모자람 없이 완벽하다. 날 홀리려고 작정한 게 아닐까 의심될 만큼의 자태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그의 얼굴에 새로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형도 좋죠?”

“으음.”

당연히 좋았지만 그 말은 쉽사리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망설이는데 김세현이 상체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여기서는 그냥 좋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얼굴 가득 심통이 어린 것이 여기서 답하지 않았다간 한바탕 소란이 일 듯했다. 가만히 있던 눈썹이 꿈틀대는 모습에 곧바로 답했다.

“좋아요.”

“…….”

“그러니까 밥 먹어요.”

지금은 대화보단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잠시의 침묵이 좋았다. 혹여 다시 말을 걸까 싶어 이번엔 내가 먼저 젓가락을 놀렸다.

말없이 꾸역꾸역 초밥을 먹고 있자니 김세현도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먹는 것이 드디어 식사에 집중할 모양이었다.

김세현까지 식사에 집중하니 식탁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덕분에 마음을 다독일 시간을 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사에 집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건너편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언제 다 먹었는지 김세현 곁엔 깨끗이 비워진 도시락통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피자와 치킨을 김세현 쪽으로 옮겼다.

“먼저 드세요. 아, 그러고 보니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이거 점심에 주문했던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점심이면 그때 먹으려고 주문한 거 아니에요?”

김세현이 의아한 시선을 보낸다. 고개를 주억이며 답변했다.

“먹을 게 많아서 제 몫은 그냥 가지고 왔어요.”

“뭐 먹었는데요?”

“이것들이랑….”

피자와 치킨을 가리킨 뒤, 잠시 심호흡한 뒤 말을 이었다.

“초밥이요.”

“…저녁에 또 초밥 먹은 거네요?”

생각지도 못한 메뉴였는지 흠칫하며 내가 먹던 도시락으로 시선을 준다. 나는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이게 더 맛있어요.”

“…다음부턴 물어보고 메뉴 정해야겠어요.”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자유로이 주문하셔도 돼요.”

“그래도 같은 메뉴 두 번 연달아 먹으면 질리잖아요.”

“안 질려요.”

같은 음식을 연달아 먹고 질렸다면 이 집엔 라면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단호하게 답하니 굳었던 김세현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다른 거 먹으면 좋으니 물어볼게요.”

“네.”

“하아, 그나저나 오늘 밤새워서 형이랑 대화 나눌 거 생각하니 벌써 설레네요. 형 공간에서 진득하게 대화 나누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너무 기대돼요.”

“…네?”

밤을, 왜 새운다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끔벅이자니 김세현 또한 커다래진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렇게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한 나는 곧바로 생각한 바를 입에 담았다.

“밥 먹고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자고 갈 거잖아요.”

“네?

“하?”

서로의 말이 겹쳤지만 알아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간다니. 난 한 번 도 김세현에게 자고 가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지난번엔 우리 집에서 잤으니 오늘은 당연히 여기서 자는 거 아니었어요? 이젠 청소도 다 했으니 핑계 댈 것도 없으면서!”

“…그게, 정말 생각도 못 해서요.”

이전에 분명 곤란하단 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면서 다음에 초대하겠다며 달랬던 기억이 생생한데, 김세현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 몰라요. 오늘은 형 집에서 자고 가기로 스케줄 짜뒀으니까 자고 갈 거예요.”

“……”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이지, 금세 바닥에 드러누워 시위할 것 같은 기세가 무척 맹렬했다. 원하는 답을 꼭 얻어 내고 말리란 눈빛을 무시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곤 곤란하단 한마디뿐이었다.

“형?”

“…….”

“…하. 그럼 내일 형 출근하는 거까지만 보고 돌아가는 건요?”

이번엔 날 구슬려보려는 듯 회유책을 내민다. 말만 들어선 한발 뒤로 물러난 듯 보였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여기서 또 거절한다면 아예 여기서 살겠다고 할 것 같은 기세에 최대한 말을 고른 뒤 답했다. 아니, 답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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