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25)화 (125/246)

122화

19. 긴장

“막내야.”

“네, 팀장님.”

“정말 네가 최고…. 풉!”

“…….”

“흠, 흠! 하여튼 내가 바로 연락 돌리마.”

웃음이 완전히 멎지 않았는지 팀장의 입에서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온다.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말을 돌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상황을 팀원들에게 알려야 하는 건 맞았다. 나는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깐 날 보는가 싶던 팀장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 만지작거리는데, 그 와중에도 웃는 걸 보면 아직도 진정되려면 먼 듯했다. 빠르게 손을 움직이던 팀장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와 동시에 핸드폰 진동음을 느끼곤 곧바로 꺼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기자들 처치 완료. 혹여 잉여 관련해 물어보면 모르쇠 시전할 것.]

“네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처리할 줄은 몰랐다!”

처리라고 하기엔 한 게 없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처리는요. 그냥 상대가 혼자 넘겨짚었을 뿐인걸요. 그보단 팀장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그게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 내가 카메라맨이나 기자였어도 팀장을 마주한다면 그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거다. 팀장이 단호하게 오지 않는다고 전달한 만큼 의심할 여지 없이 김세현이 헌터부에 오지 않는다고 믿었겠지.

“푸핫! 그래서 네가 최고라는 거야! 대견하다, 대견해!”

내 대답에 다시 또 웃음이 터진 팀장이 좀 전 상황에 준할 만큼 어깨를 들썩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진정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한참 진정되길 기다리니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되었는지 팀장이 눈가를 훔치며 시동을 켰다. 잠시의 공회전 후 차가 출발하자, 팀장 쪽으로 틀었던 몸을 바로 했다.

“말이 돌았나 보네. 기자들이 철수하는 걸 보면.”

주차장을 나서기 직전, 팀장이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을 살피며 말했다. 그에 주변을 살피니 팀장이 말한 대로 정말 기자들이 철수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기자라고 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취재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난데없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 친근한 척하다 등에 칼을 꽂은 최은재 덕분에 참 좋은 인상이 남긴 했지.

하여간 저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 마음 졸이며 고생한 게 허무해질 지경이다. 안도감과 허무함이 뒤섞인 감정을 안은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무실 건물 앞의 도로로 빠져나온 차가 큰 도로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속도가 붙으며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을 보는데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오늘은 기자들이 빠져나가지만, 월요일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차라리 세현 씨한테 월요일 말고 다른 날에 오라고 할까요?”

말한다고 해서 김세현이 따라 줄까 싶지만, 기자들이 있을 수도 있단 사실을 한 번 더 상기해 주면 그의 마음이 바뀔지도 몰랐다.

“됐어. 이야기해 봤자 들을 놈도 아니고. 괜히 건드렸다가 너만 손해 볼 수도 있으니까 그냥 놔둬. 사무실에서 기자들이 있다는 건 알렸잖아?”

“네.”

“눈치 하나만큼은 빠른 녀석이니까 바로 알아들었을 거야.”

“…그랬으면 다행이지만요.”

오늘은 기자들이 철수하지만, 이대로 오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 녀석이 알아서 할 거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S급 헌터인데 카메라 피하는 것쯤이야 손가락 튕기는 것만큼 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럴까요?”

“아무렴. A급인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데, 그놈은 더 쉽게 하겠지.”

팀장까지 카메라를 피할 수 있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을 많이 한 모양인지 온몸이 경직된 게 느껴졌다. 작게 한숨을 뱉으며 몸의 긴장을 풀어보려 노력하던 중 팀장의 차가 의외의 장소로 들어서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여기 가나요?”

장을 보러 가면 팀장이 자주 가는 곳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은 내 집 방향의 마트였다.

“여기가 제일 가까워서. 살 건 다 정했고?”

“네.”

“그럼 빠르게 장 보고 오자. 차 막히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어서 말이야. 차라리 내가 직접 뛰는 게 낫지. 쯧!”

하긴, 던전이 생성되면 곧바로 현장으로 뛰어가던 이였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주차된 차에서 내린 뒤, 팀장과 함께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장을 보기 위해 집중했다.

“천천히 둘러봐도 돼. 보다보면 필요한 게 보일 수도 있고.”

“아니에요. 당장 필요한 거만 사면 돼서요.”

빼먹은 게 있다면 집 근처 마트로 가 사면 될 일이었다. 단호한 내 대답에 팀장이 묘한 시선을 보내온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신경 써도 될 일이었다.

그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속도가 중요했다. 적어도 팀장의 장 보는 속도에 견줄 만큼 장을 보자 다짐하며 재차 물품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들어가세요, 팀장님.”

“그럼 내일 봐. 그거 맛있게 먹고.”

“네. 감사히 잘 먹을게요.”

이것만 먹어도 이번 주말 끼니는 충분히 때울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꾸벅 인사를 건네니 팀장이 픽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가만히 서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서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이내 골목 너머로 차가 사라졌다. 나는 손에 든 봉투를 고쳐 들곤 집으로 들어섰다.

“후우.”

일요일 근무는 오전만 하기에 내일 하려고 했는데, 일찍 귀가한 만큼 오늘 청소를 해 두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어지러운 집 안을 쓱 둘러보곤 곧바로 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은 뒤, 본격적으로 집 청소를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을까, 서서히 더러웠던 집안이 깔끔해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비록 몸은 더러워졌지만, 결과물이 보이니 이보다 더 개운할 수가 없었다. 괜스레 이마를 훔치며 거실을 훑어보던 나는 문득 떠오른 피자와 치킨에 입맛을 다셨다.

“…….”

청소 후 먹는 치킨과 피자는 정말 극락일 거다. 괜스레 입가를 손등으로 닦곤 다음번 정리할 것을 찾아 찬찬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그래, 저게 있었지.

단번에 욕실 앞에 놓인 바구니에 벗어 둔 옷가지들이 시야에 잡혔다. 그도 그럴 만했다. 옷 아래 쌓인 빨랫감이 상당했으니까.

빨랫감 말고도 또 정리할 게 있나 살폈지만, 더 정리할 건 없어 보였다.

기왕 빨래하는 김에 지금 입은 옷도 함께 세탁해야겠다. 방으로 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돌아와 바닥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은 뒤,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넣었다.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세탁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한다. 잠시 세탁기를 보다가 샤워기 아래로 가 섰다.

쏴아아-

“하아.”

청소하며 땀을 제법 흘렸기 때문일까, 이보다 더 개운할 수가 없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성에 찰 만큼 깨끗하게 씻은 뒤 거실로 나와 옷을 입던 중이었다.

띵동- 띵동-

“음?”

초인종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목에 걸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인터폰을 들곤 곧바로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형!

“…세현 씨?”

―생각보다 일찍 귀가했네요? 얼른 문 열어 줘요. 먹을 거 사 왔어요!

“…….”

생각해 보니 김세현이 오겠다고 했었지.

나는 대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현관문 쪽으로 가 문을 열었다.

내가 빨리 움직이면 김세현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대문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충 슬리퍼에 발을 끼우며 고개를 드는데, 현관문 앞엔 벌써 들어온 김세현이 서 있었다.

“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활짝 웃던 김세현이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대로 멈췄다. 숨소리 하나 새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습에 그를 불렀다.

“세현 씨?”

“…….”

“세현 씨!”

다른 때 같았다면 지금쯤 반응했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날 바라볼 뿐, 움직일 기미가 없어 보이는 모습에 이번엔 그의 몸에 손을 댔다.

“세현 씨?”

“헉!”

깜짝이야.

손이 팔에 닿는 순간 김세현이 파드득 몸을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덩달아 놀라 눈을 끔벅이다 이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지금은 김세현이 어디 서 있는지가 중요했다. 한 발만 움직이면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오는 모양새에 슬그머니 다가가며 그를 밀어내려는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형, 씻었어요?”

말을 뱉기 전 목울대가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입이 마른 건지 아니면 침이 고인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김세현의 발치에 둔 채 답했다.

“방금 막 청소 마치고 씻고 나왔어요.”

“…올걸.”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퇴근하고 청소한 거면 아직 저녁 안 먹었겠네요?”

“그, 렇죠?”

“오늘은 초밥 사 왔는데, 같이 먹어요.”

“…초밥.”

낮에 먹었던 초밥이 떠올라서일까, 자꾸만 군침이 도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주억였다.

“실은 오늘 낮에 사무실에서 팀장님이 가져가서 먹으라고 챙겨 주신 치킨이랑 피자가 있거든요. 그것도 같이 먹어요.”

“좋아요.”

혹여 식은 음식이라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반응을 보니 전혀 껄끄러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기는 모습에 안도하며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그럼 바로 돗자….”

“청소도 끝났으니 오늘은 안에서 먹어야지!”

“어, 어?”

안에서 먹겠다는 말과 함께 빠르게 김세현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신을 벗고 거실에 선 그를 보다가 뒤늦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곤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하니까 깔끔하네요. 이전에도 깔끔한 편이긴 했지만요.”

“그게, 세현 씨….”

“여기서 먹을까요? 아니면 식탁에서?”

초밥이 든 종이가방과 함께 어느새 치킨과 피자가 든 봉지를 집어 든 김세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밥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났는지 얼굴에 제법 열까지 올랐는데, 저 모습을 보며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가서 먹자고 하기엔 이미 늦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빨리 먹고 그를 돌려보내는 편이 나음 직했다. 나는 해탈한 얼굴로 식탁 쪽을 가리켰다.

“저기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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