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19. 긴장
“뭔데 그렇게 가려? 궁금하게.”
“…실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세현 씨가 온다고 했거든요. 요즘 기자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어서 그 부분 전달 중이었어요.”
“그거 가지곤 지금 표정 설명하기 힘든데? 또 이상한 말한 거 아니야?”
눈을 가느다랗게 뜬 김 주무관의 얼굴에 점차 못마땅한 기운이 어렸다. 현 상황을 전달했을 뿐이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역시 김 주무관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하여간 그놈도 참 대단하지.”
“그래도 생각보다 신사적이라 망정이지….”
“그걸 신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아. 평소 행실머리가 그 모양인데, 막내 대하는 거 보면 신사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그게 참 답답해. 그놈을 신사라고 인정해야만 하다니.”
“…듣고 보니 이해되네요.”
“…….”
혹여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팀원들의 이야기 주제는 주고받은 메시지가 아니라 김세현에게로 향했다. 이전에도 들었던 김세현과 관련된 돈벌레, 잉여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던 와중에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잉여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온다고?”
“네, 팀장님.”
“슬슬 커피 채워 놓을 때가 되었는데, 잘됐네.”
“…….”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커피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던 중 이어지는 팀원들의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예전엔 청구할 게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나름 나쁘지 않네요.”
“아아.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좋긴 하지.”
“채우는 김에 율무차도 부탁드립니다. 보니까 거의 다 떨어졌더라고요.”
“좋아!”
탕비실에 채워 놓을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중 난데없이 박 주무관이 자리서 일어나더니 간이 탕비실로 향했다.
“어디 보자…. 녹차랑 유자차도 채워야겠네요. 라면도 부족하고요.”
“아!”
라면!
그러고 보니 라면은 잘 있냐며 김세현이 물어봤었다. 나는 박 주무관에게 물어보았다.
“라면 별로 없나요?”
“어? 응. 몇 개 안 남았어.”
“아….”
이전에 팀원들과 함께 먹은지라 별로 없을 거라 여기긴 했지만, 몇 개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확 실감이 났다.
“잉여가 또 라면 먹으러 오겠다고 했어?”
“얼마 전에 라면 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걸 기억하고 있대?”
다소 질린 기색으로 물어온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억할 만도 하죠. 누가 사다 준 건데요.”
“라면은 집에서 먹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서 먹어야 제맛이죠!”
“아무렴! 다 같이 있을 때 끓여서 먹는 라면이 최고지!”
“…….”
라면을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다 같이 먹는 음식은 뭐든 맛이 좋았다.
“살 게 좀 되니 퇴근길에 장부터 봐야겠네. 막내도 갈래?”
한 사람보단 둘이 가면 손도 덜고 좋을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 그럼….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해볼까?”
“오오! 이른 퇴근 좋죠!”
이른 퇴근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다름 아닌 박 주무관이었다. 지금 당장 귀가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 것이 주말 출근이 힘들긴 했던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한참 벽시계를 보던 팀장이 이윽고 팀원들을 둘러본다. 이제 곧 퇴근 시각이 정해진다는 생각에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네 시에 나가는 걸로 하자. 슬슬 일과 마무리하고. 김 주무관이랑 한 주무관은 눈치 보지 말고 바로 가도 돼. 쉴 때 확실하게 쉬어야지.”
“월급루팡하는 거 같아서 제법 힐링이 돼서요. 좀 더 쉬다 가겠습니다!”
“저는 약속 시간이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아서요. 다들 퇴근하시면 문단속하고 가겠습니다.”
“이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어?”
“예.”
어쩐지, 약속이 있다며 계속 사무실에 남나 싶었다. 고개를 주억이는데, 팀장이 턱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주무관이 문단속 좀 해 줘.”
“맡겨만 주세요.”
“막내는 장 보러 가는 김에 집에 필요한 거 있는지 생각해 보고. 차로 움직이는 김에 사서 이동하면 편할 테니까.”
“네, 팀장님.”
사무실 비품을 사는 것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나 싶다. 빠르게 핸드폰에 메모해 둔 장을 볼 물건들을 살피고, 또 추가할 것과 뺄 것들을 고르며 차근차근 일과를 마무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네 시에 가까워졌다.
“자, 다들 퇴근하자.”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점심에 남긴 것들 챙기는 거 잊지 말고.”
“헉, 깜박할 뻔했네.”
팀장의 말에 박 주무관이 황급히 원형 테이블로 가 자기 몫을 챙긴다. 나 또한 그쪽으로 가 미리 챙겨 둔 피자와 치킨을 집어 들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한 주무관도 조심히 들어가.”
“예. 먼저 들어가세요. 다들 월요일에 보자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월요일에 봬요!”
한 주무관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참, 일찍 나온 김에 기자들에게 가서 물어볼까요?”
“번거롭지 않겠어? 내가 물어봐도 되는데.”
“에이, 번거롭기는요. 마냥 눈치 싸움하는 게 더 번거롭죠. 게다가, 이 부장 연락만 계속 기다릴 순 없잖아요.”
“그럼 저는 다른 쪽으로 가 물어볼게요!”
김 주무관이 의견을 내자 곧바로 박 주무관이 그에 편승한다. 나도 지켜만 볼 순 없었다.
“저도 물어볼게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까지 나선 마당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다 같이 알아보자고!”
“뭔가 이야기 나오면 바로 연락 주고받는 걸로 하죠.”
핸드폰을 꺼낸 박 주무관이 그것을 흔들며 씩 웃는다. 확실히 이야기를 듣고 모여 한 번 더 대화를 나누는 것보단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편이 여러모로 나은 듯했다.
“좋아. 그럼 모이지 말고 바로 흩어져서 연락하자고.”
“네!”
띵-
이윽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나는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 건물을 빠져나와 주변을 살폈다.
“…….”
아침에 보았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제법 많은 기자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팀원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자, 남은 방향인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동안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이 없어 혹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주차장 한쪽에 자리를 잡은 카메라맨을 발견하곤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아, 예.”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서일까, 돌아오는 반응이 영 좋지 않다. 경계하는 눈빛을 감추지 않는 이에 한층 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게 아니라 며칠 전부터 계속 주변에 기자로 보이는 분들이 많으신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뭔가 답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좀처럼 말이 없다. 오히려 나를 살피는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단 사실에 점차 긴장감이 차오르던 참이었다. 내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카메라맨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헌터부 소속 같은데, 혹시 김세현 헌터 못 봤습니까?”
“김, 세현 헌터요?”
“예.”
어째서 그를 입에 담는지 모르겠다. 나는 카메라맨에게 반문했다.
“혹시 김세현 헌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
이번에도 역시나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니 한참만에야 기다리던 답이 돌아왔다.
“정말 근래에 헌터부에서 못 봤어요?”
“네.”
며칠 전 집에서 보긴 했지만, 헌터부에서 그를 본 지는 좀 되긴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맨을 보는데 연신 헛바람을 집어삼킨 그가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반응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네. …하! 헛물켠 건가?”
“네?”
난데없이 헛물켰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원하던 답이 아니라 당황하는데, 거칠게 머리를 헤집던 카메라맨이 말을 이었다.
“김세현 헌터가 뻔질나게 헌터부를 드나든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다들 김세현 헌터 촬영하려고 다들 대기 중인 상탭니다.”
“…드, 나들어요?”
도대체 어디서 이야기가 흘러나갔지?
김세현을 촬영하려고 대기 중이었단 말을 들으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혹감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잠시 이쪽을 보는가 싶던 카메라맨이 거치대에 고정해 두었던 카메라를 분리하곤 짐을 꾸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는!”
“…….”
혼자 저렇게 화를 내며 짐을 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혹스럽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다고 짐을 꾸리는 이를 붙들고 김세현이 자주 온다고 말한다면 문제가 더 커질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그저 지켜보는 것만이 상책이었다.
“어? 그냥 가시려고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이 다가와 카메라맨에게 말을 건다. 날 힐끗거리더니 다시 카메라맨에게 시선을 주는 걸 지켜보는데, 짐을 꾸리던 이가 일순에 인상을 구겼다.
“여기 헌터부 직원에게 물어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데요? 하!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해선 며칠간 공친 건지!”
이전보다 훨씬 목소리에 짜증이 짙게 배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십니까?”
말없이 카메라맨을 보던 기자가 날 보며 물어왔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그게…. 조금 전에야 이분께 들어 알게 돼서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좀 당혹스럽네요.”
바로 옆 건물이 협회 건물인 만큼 이들의 파인더와 관심이 헌터부로 쏠렸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래, 평소 협회에 거의 상주 중이라 알려진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지금 상황은 이상했다.
“정말 모르시는 거 맞습니까? 혹여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체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요?”
“그게….”
여기서 망설이다간 괜한 의심을 살지도 모를 일이다. 빠르게 답변하려는 찰나, 내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세현 헌터 측 사람이 헌터부에 드물게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김세현 헌터가 오진 않습니다.”
“팀장님!”
마치 구세주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몸을 틀어 팀장을 바라보니 잠시 눈을 마주하나 싶던 그가 내 등 뒤, 그러니까 기자가 있는 쪽을 응시했다. 그에 다시 기자와 카메라맨 쪽으로 몸을 돌렸다.
“…헌터부 팀장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우리 팀원에게 다그치듯 질문하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진 않군요.”
“그것이….”
“특종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건 좋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이 주변을 에워싼 덕분에 민원이 좀 들어와서요. 한 번 더 말씀드리자면 김세현 헌터는 헌터부에 오지 않으니 이쪽보단 협회 쪽을 살피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여기 오신 다른 기자분들에게도 꼭! 이 사실 전달 바랍니다. 연 주무관, 가지.”
위압적인 팀장의 모습 때문일까, 말을 꺼내기 무섭게 완전히 기세가 꺾인 두 사람이다. 어서 가자며 턱짓한 팀장이 자리를 뜬다. 나는 그 뒤를 따르며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인사도 했으니 이젠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다. 평소보다 배는 빠른 움직임으로 차에 올라 벨트를 맬 때였다. 순간 팀장이 핸들에 두 손을 올린 채 얼굴을 묻었다.
“팀장님?”
“크흡!”
“…….”
어째서 웃음이 터진 걸까.
말을 걸자마자 새어 나온 웃음과 더불어 격하게 어깨가 흔들리는 것이 뭔가 또 팀장을 자극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 전 상황을 복기하며 혹여 웃긴 일이 있었나 되짚어 봤지만,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잠자코 그가 진정되길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점차 어깨의 들썩임이 잦아들며 숙인 상체를 바로 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