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23)화 (123/246)

120화

19. 긴장

식사를 끝내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가기로 했던 감찰부는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예정보다 이르게 자리를 떴다.

“막상 치우니 허전하네요.”

“처음엔 좁은 사무실이 사람으로 꽉 찬 느낌이라 여간 부담스러웠는데 말이죠.”

“…….”

감찰부가 떠나고 원상 복구시킨 사무실이건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이 기분이 참 묘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사무실 안을 둘러보던 중 내 책상에 기대어 있는 접이식 의자가 눈에 들어오자 마음을 다잡았다.

감찰부가 떠나 허전했지만 다음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린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었다. 그래, 다른 사람 말이다.

“…….”

막상 김세현이 올 거란 생각을 하니 이보다 더 긴장되고 또 떨릴 수가 없다. 장바구니를 들 때 본의 아니게 그의 손을 감싸듯 잡았던 게 떠오르자 대번에 몸에 열이 오르는데, 티가 나기 전에 진정시켜야 할 듯했다. 나는 곧바로 자리서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막내 커피 마시게?”

“네.”

“내 것도 부탁해.”

“나도.”

“나도 부탁할게.”

정수기로 가는 길에 말을 걸어온 팀원들이 너도나도 커피를 부탁한다. 모두가 커피를 마시겠단 의사를 표하는데, 이보다 반가울 수가 없었다. 커피를 타며 마음을 좀 더 진정시켜보자 다짐하며 빠르게 종이컵을 꺼내었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집에 안 가?”

생각해 보니 김 주무관도 그렇고 한 주무관도 그렇고 감찰부 사람들이 갔음에도 계속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게 의아하긴 했다.

“기왕 나온 김에 좀 더 있다가 가려고요.”

“전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오기 애매한 시간이라서요. 여기서 바로 갈까 합니다.”

“아하.”

두 사람의 답을 들으니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율 알겠다. 나는 마저 커피를 타고는 팀원들에게 전달했다.

“잘 마실게.”

“고마워, 막내야.”

“하아, 커피까지 마시니 정말 오래간만에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네요.”

“나도 동감.”

커피를 받자마자 한 모금 마신 팀원들이 하나같이 노곤하게 풀린 얼굴로 몸을 늘어뜨린다. 쉴 때마다 보던 광경이었지만, 오래간만에 봐서인지 제법 생소했다. 하지만 그게 이상하거나 싫은 건 아니었다.

자리로 돌아가 커피를 홀짝이니 몸의 긴장이 풀리는데 이제야 감찰부가 돌아갔다는 게 좀 실감이 났다. 조용히 계속해서 커피를 비우는데 몸을 젖힌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팀원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동안 진짜 고생하긴 했죠. 눈치 보느라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전할 말도 제대로 못 전하고.”

“나중 돼서는 경계심이 좀 풀렸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아예 긴장의 끈을 놓진 못하겠더라고요.”

“우리 막내만큼 힘들었겠어? 툭하면 이 부장이 옆에서 기웃거리는데 얼마나 신경 쓰였겠어.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대고 말이야.”

“…좀 힘들긴 했어요.”

다른 때 같았다면 괜찮았다고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 팀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우리 막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정말 힘들었나 보네요. 매번 괜찮다, 좋다고만 하는데 말이죠.”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시선들이 이쪽을 향한다. 나는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옆에 와서는 계속 지켜보는 게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일 잘하시는 분들 두고 막내인 저에게만 자꾸 물어보는 통에 긴장도 됐고요.”

매번 친근하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혹여 잘못 알려주면 어쩌나 싶어 매 순간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긴 했었다. 덕분에 정신도 바짝 차렸고.

“그래도 우리 막내 덕분에 헌터부 이미지만큼은 확실하게 인식시켰잖아요?”

“아무렴! 우리 막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이전에 화장실에서 이 부장과 마주친 적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뭘 물어봤는지 아십니까? …아니 글쎄 우리 막내보고 워커홀릭이냐고 묻더라니까요?”

“푸핫! 진짜요?”

“그렇다니까?”

워커홀릭이라니….

하필 그 시기에 일이 많아 집중했을 뿐이지, 워커홀릭이란 말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민망함에 볼을 긁적이고 있으려니 어느새 대화는 자연스럽게 사무실을 찾아온 협회 소속 남자의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감찰부 사람들도 사람이지만, 기억나시죠? 중간에 협회 놈이 와서는 우리 막내한테 알랑방귀 뀌어 보려고 했던 거 말이에요.”

“하, 말도 마라. 진짜 한마디 해 주고 싶었는데, 감찰부 있어서 참았잖아.”

“이영혁 부장도 어이없어하던데 말이죠.”

“그럴 만도 하지. 누가 봐도 속 보이는 행동이었잖아.”

속이 보였다, 라.

나는 조용히 그 속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까 대화에 더욱 집중했다.

“아! 이 부장 말하니까 생각났는데, 좀 전에 왔던 전화가 좀 급해 보였죠?”

“그게 아니고서야 기자들에게 물어보고 바로 연락해 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잠잠할 순 없지.”

그러고 보니 연락이 없다. 통화 중이던 이영혁 부장의 표정을 떠올리곤 한마디 거들었다.

“확실히 급한 전화였던 거 같아요.”

“그치?”

“네.”

굳이 표정을 보지 않더라도 중요한 통화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하곤 화들짝 놀라던 것도 그렇고, 황급히 바깥으로 나가며 공손히 전화를 받던 행동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안 오는 편이 나아. 괜히 그걸로 빚진 것처럼 되어버리기라도 하면 나중에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까.”

“…역시 팀장님, 몇 수 앞을 내다보십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 번 더 깨달은 거죠.”

“하여간 말이라도 못하면!”

능글능글한 김 주무관의 대답에 팀장이 파안대소한다. 덩달아 웃던 중에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왜?”

“아뇨, 잊고 있던 게 생각나서요.”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중요한 걸 여태껏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김세현과 관계된 일임에도 말이다.

헌터부에 출입하는 S급 헌터를 기자들이 본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S급 헌터, 그것도 김세현과 관련된 기사라면 일단 조회 수부터 먹고 들어갈 테니까.

“…….”

퇴근 후 상황을 전달하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빨리 연락하는 게 나았다. 바로 옆 건물이 협회인지라 행여 오가다 사진이라도 찍혀 기사가 나기라도 한다면 괜히 불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너무 많은 상황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끝맛이 정말 나쁜, 화가 나기까지 했던 일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자,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김세현의 집에 갔을 때 문밖에서 들려왔던 대화를 한 번 더 그가 겪게 할 순 없었다. 그런 상황이 생길 확률은 애초에 잘라내는 것이 옳았다.

[세현 씨, 바빠요?]

[((“Q(´▽`。)]

“…….”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달랑 이모티콘만 담긴 문자가 말이다. 멍하니 그걸 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다잡곤 답장을 보냈다.

[세현 씨, 잠깐 시간 될까요?]

[저 완전 한가해요! ('ω')三( ε: )三(.ω.)三( :3 )三('ω') 지금 너무 심심해서 방바닥 굴러다니고 있는 중이라니까요? (ε: )三(.ω.)三( :3 )]

훨씬 많은 내용이 담긴 메시지였음에도 어찌 된 게 첫 답장보다도 더 빨리 도착했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이모티콘을 보고 있으려니 괜히 입가가 간질거렸다. 애써 감정을 다스리곤 마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른 건 아니고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 •,,)♥]

[요즘 헌터부 주변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거든요. 협회 오갈 때 괜히 불편한 상황 연출될까 싶어 연락드렸어요.]

[걔네가 왜요?]

[아직 파악하진 못했어요. …이렇다 할 만한 접촉이 없었거든요.]

메시지를 보내면 즉각 도착하던 답장이 늦어지니 기분이 이상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전달해야 할까 싶어 재차 메시지를 적으려던 참에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사진 찍힐까 봐 연락했어요?]

당연한 말을 왜 묻는지 모르겠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네.]

[…형이 이렇게까지 독점욕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ପ(ू ᴗ͈ ˬ ᴗ͈ू )ଓ ˚˳]

독, 점욕?

난데없이 독점욕이란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당혹감에 멀거니 메시지 창을 보고 있으려니 김세현이 입력한 메시지들이 빠르게 화면을 채웠다.

[。*゚+.*.。(っ ᐛ )っ]

[⊂( ᐛ ⊂ )))。*゚+.*.。]

[하, 형이 그렇다면야. ⁑͛⋆*͛ ͙͛.。*゚+.*.。 ଘ( ᐛ ) ଓ +.。*゚+⋆*͛ ͙͛]

[*(੭ ᐕ)੭੭*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네요. ଘ(੭*ˊᵕˋ)੭* ੈ♡‧₊˚]

[(◦˘ З(◦’ںˉ◦)cнϋ♡]

“…….”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한 이모티콘을 보니 아무래도 김세현이 오해한 거 같았다. 또 독점욕이라는 단어도 문제고, 그걸 받아들이겠다는 건 더 큰 문제라, 뭐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핸드폰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연이어 김세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 어쩔 수 없네요. (ღˇᴗˇ)。o♡]

[(੭ु。╹▿╹。)੭ु⁾⁾오늘 저녁에 퇴근 시간에 맞춰서 형 보러 집에 가야겠다. ⋆。+୧(๑•̀⌄•́๑)૭ ]

[…오늘요?]

[마음 같아선 당장 보러 가고 싶지만, 사진 찍히는 게 싫다는데 참아야죠. v(°∇^*)⌒☆。]

불쑥 찾아온 게 불과 엊그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오겠다니.

김세현을 보는 건 좋았지만, 잠시 마음을 놓은 사이에 내 방까지 들어왔던 걸 생각하면 선뜻 오라고 하기 좀 그랬다.

…이번엔 아예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채 얼굴만 잠깐 볼까?

그래, 마당을 내어주었더니 현관문 안으로 들어오고, 심지어 내 방까지 둘러본 만큼 아예 대문에서 선을 긋는다면 더는 안으로 밀고 들어오진 못할….

“무슨 문잔데 그렇게 심각해?”

갑작스레 들려온 말소리에 놀라 옆을 보니 김 주무관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잉여야?”

대번에 김세현을 말할 줄은 몰랐다. 고갤 끄덕이자 김 주무관이 의자를 끌어 바짝 다가왔다.

“잉여가 뭐라고 했길래 그런 표정이야?”

“으음.”

집으로 오겠다는 메시지가 온 터라 보여 주기가 그랬다. 자칫 잘못하다간 김세현의 집에 다녀온 것도 들킬 수 있단 판단에 슬그머니 핸드폰 화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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