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22)화 (122/246)

119화

19. 긴장

“와.”

“진짜 우리 팀장님, 음식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시네요.”

“…….”

팀원들이 이렇게 반응할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막 도착한 피자와 치킨의 양이 예상을 상회할 정도였으니까.

“적어도 회식인데 인당 치킨 한 마리에 피자 한 판은 먹어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좀 더 주문할 걸 그랬나 봅니다.”

“에이, 이미 충분합니다! 지금 양만 해도 상다리가 휘어질 기셉니다.”

팀장도 팀장이었지만, 이영혁 부장까지 팀장 못지않게 배포가 클 줄은 몰랐다. 이미 도착한 고급 목제 통에 담긴 초밥 도시락이 자리마다 두 개씩 놓여 있는데, 여기서 더 주문했더라면 부담감에 몇 젓가락 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식사를 마쳤을지도.

두 개라 다행이라 여기며 내 앞의 초밥 도시락을 보고 있는데, 불쑥 눈앞에 치킨과 피자가 나타났다.

“이거 옆으로 전달.”

“네.”

한 주무관에게 그것을 받아 옆으로 전달하려는데, 팀장이 이쪽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이 부장님은 이쪽에서 드시죠.”

“…어.”

언제 온 거지?

놀라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책상 건너편에 있던 이영혁 부장이 있었다. 그것도 내 옆 의자를 잡아당기다 만 자세로 말이다.

“마지막 날인데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누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좋습니다.”

팀장의 제안에 이영혁 부장이 웃으며 원형 테이블 쪽으로 향한다. 자리를 뜨기 전 아주 잠깐 멈칫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게 혼자 넘겨짚은 듯했다. 원형 테이블에 도착한 이영혁 부장이 팀장과 함께 자리에 앉는다. 다른 이들도 하나씩 자리를 잡자 나 역시 앉으려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날이 날이니만큼 식사 전에 두 분이 한 말씀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다른 날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만큼 고별사를 듣는 건 당연했다. 나는 긍정하며 팀장과 이영혁 부장을 바라보았다.

“그거 좋지! 그럼 이 부장님 먼저 말씀하시죠.”

“…민망하니 짤막하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망하다 하면서도 이영혁 부장의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헛기침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한 차례 사무실을 둘러본다. 팀원들, 그리고 감찰부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훑어보곤 팀장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우선, 갑작스러운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반겨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저희까지 신경 쓰느라 심적인 압박이 상당했을 거로 압니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도움 주셨기에 예정보다 빠르게 마무리하고 돌아가게 되었네요. 매일같이 이곳으로 출근하다가 다음 주부턴 원래대로 다른 곳으로 출근해야 한다니 기분이 참 묘하네요.”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저들이 당장 다음 주부터 이곳에 오지 않는다 생각하니 허전하기도 하고, 또 안도 중이었으니까.

말을 하던 이영혁 부장이 한 번 더 사무실 안의 모든 이들을 훑어보더니 날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돌아가서도 여기서 맺은 연과 정 잊지 않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여나 저희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힘이 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까요.”

시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까, 괜히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게 아님에도 말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염 팀장님도 한마디 하십시오.”

“그럴까요?”

바통이 넘어오자 팀장이 대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에 헛웃음이 절로 났다.

하긴, 우리 팀장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뺀 적 없긴 했지.

“역시 자신감 하면 우리 팀장님 아니겠습니까?”

“팀장님! 팀장님!”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 원형 테이블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목소리를 높인다. 한 주무관은 그 곁에서 말없이 주먹을 쥔 손을 박자에 맞춰 위로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 중이었고. 그 곁에서 덩달아 손을 들어 박자에 맞춰 응원하니 골머리가 아픈 듯 팀장이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그 행동도 잠시였다.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으며 나를 비롯한 팀원들을 둘러본 팀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말 좀 하자.”

“옙!”

“팀장님! 팀장님!”

“쓰읍!”

“옙, 말씀하셔야죠.”

팀장의 그만하란 사인에 좀 더 놀려보려던 이들이 얌전해진다. 그에 팀장이 멋쩍은 얼굴로 이영혁 부장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우리 팀원들이 장난기가 많아서 말입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화기애애한 걸 보니 덩달아 즐겁고 좋기만 합니다.”

팀장의 말에 이영혁 부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간 보았던 미소완 달리 무척 즐거워 보이는 것이 지금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든 듯했다. 괜찮다는 이영혁 부장의 말에 팀장이 다시 웃으며 사람들 쪽을 바라본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며 이어질 고별사를 기다렸다.

“계시던 곳관 달리 열악한 곳인지라 불편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던전에 대한 윗분들의 관심이 꺼지지 않았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현장에서 일하는 게 보람차다 느낀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었습니다.”

담백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말의 무게만큼은 상당했다. 혹여 방해될까 조심스럽게 자세를 좀 더 바로 하는데 별안간 팀장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어렸다.

“이미 열심히 하고 계시지만! 앞으로도 던전과 관련해 더 많이 신경 써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아, 헌터부 쪽도 관심 많이 주시면 더 좋고요. 저희도 여러분이 오셔서 정말 즐거웠고, 이 부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맺은 연이 오래 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오, 멋있다!”

“우리 팀장님, 말씀도 잘하시네!”

“하아.”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환호한다. 어이가 없었는지 크게 한숨을 뱉은 팀장이 헛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 식사하시죠. 양이 많아 다 먹을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먹어 봅시다.”

“좋습니다! 어서 식사합시다.”

이영혁 부장과 팀장이 젓가락을 들자,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젓가락을 집곤 모둠초밥 중에서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연어 초밥을 집었다.

“…….”

초밥을 먹는 게 오래간만이라 그런 걸까, 이 집이 유달리 맛이 좋은 걸까.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연어살과 더불어 고추냉이와 밥의 어우러짐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연어 초밥을 해치운 뒤 곧바로 장어 초밥으로 손을 옮겼다.

“여기 초밥 정말 괜찮네요! 이 부장님, 가게 꼭 알려 주고 가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꼭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간 먹었던 초밥 중에서 최고입니다!”

초밥을 먹은 이들이 하나같이 찬사를 늘어놓기 바쁘다. 그에 동조하며 이영혁 부장을 보니 무척 뿌듯한 얼굴로 사람들을 응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씩 더 주문한 보람이 있군요.”

“이런 초밥이라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습니다!”

“아무렴요!”

“하하.”

아부성 발언인가 싶을 정도로 과한 칭찬을 남발한다.

하지만 그건 입에 바른 소리만은 아니었다.

아부성 발언이 아닐까 싶을 만큼 과한 칭찬을 남발하기 바쁘다. 입에 발린 소리라고 여기기엔 초롱초롱한 눈빛과 더불어 감탄으로 가득 찬 얼굴만 봐도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연신 감탄사를 늘어놓으며 초밥을 먹는 팀원들을 보다가 슬쩍 팀장을 보니 그들을 보며 웃기 바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초밥이 그렇게 좋으면 말을 했어야지. 그러면 자주 먹었잖아.”

“저 초밥 좋아합니다, 팀장님.”

“저도 좋아합니다!”

“좋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초밥도 먹자고. 여태 초밥 이야긴 한 번도 하지 않기에 안 먹는 줄 알았지.”

하긴, 팀장의 말마따나 그간 초밥을 먹자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긴 했었다. 고개를 주억이는데 여기저기서 설렘으로 가득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말 나온 김에 월요일에도 초밥 한 번 먹죠?”

“오, 좋은데요? 부팀장님도 오시면 기념으로 초밥 먹고요!”

초밥 주문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장 월요일부터 먹자고 아우성치는 팀원들이다. 평소 연달아 같은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이렇게 바로 원한다는 건 그만큼 초밥이 먹고 싶어도 참았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도시락 하나를 뚝딱 해치우곤 팀장이 주문한 피자와 치킨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초밥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피자 한 조각과 치킨 조각을 먹은 뒤 곧바로 입을 열었다.

“팀장님.”

“음?”

초밥을 먹던 팀장이 입을 오물거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그에 치킨과 피자를 가리켰다.

“여기도 꼭 알려 주세요. 너무 맛있어서요.”

초밥으로 어느 정도 배가 찼는데도 이렇게 맛있다는 건 맛집에서 주문했단 뜻이었다. 앞으로 먹을 일이 있다면 꼭 여기서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데, 그의 눈빛이 돌연 은근해졌다.

“…가는 길에 하나 사 줄까?”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걸요. 남은 거 싸 가면 되고요.”

그래, 인당 치킨 한 마리에 피자 한 판이라 많이 남을 게 뻔했다. 더군다나 오늘 이렇게 크게 한턱낸 터라 팀장의 지갑도 위험했고 말이다.

“막내야.”

“네, 한 주무관님.”

팀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 모습을 보고 있는데, 곁의 한 주무관이 날 불렀다. 곧바로 옆을 보니 그가 자기 앞에 놓인 피자와 치킨을 가리켰다.

“그거 나랑 같이 먹고, 이거 집에 가져가.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챙겨가기가 곤란해서.”

아직 손도 대지 않은 한 주무관의 음식이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 주무관이 앞의 피자와 치킨을 봉하더니 한쪽에 쌓아둔다. 그에 한 주무관과 내 사이로 음식을 옮겼다.

“그나저나 말입니다.”

다시 식사를 재개하려는데, 감찰부 소속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무척 궁금한 얼굴로 팀원들과 날 둘러보고 있었다.

“바깥의 기자들은 무슨 일로 이 근처를 계속 맴도는지 알아보셨습니까?”

남자의 질문에 팀장이 사뭇 진지해진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러지 않아도 저희도 그게 궁금해하던 참입니다. 먼저 말을 걸어오면 한 번 떠볼 텐데, 그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걸게 된다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싶고. 여하튼 부팀장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계속 그러는 거 보면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부팀장님 쪽은 어떻다고 합니까?”

“집 앞까지 찾아온 이들이 몇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네요.”

부팀장을 취재하기 위해 온 거라면 여기처럼 그쪽도 사람이 있어야 하건만, 있다가 지금은 또 없다고 하니 상황이 좀 이상했다.

…혹시 이곳을 배회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팀장이 여태 부팀장의 출근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혼란해지는 머릿속에 한 번 더 상황을 되짚어 보려던 때였다.

“가는 길에 한 번 물어볼까요? 아까 짐을 나를 때 보니 저희 쪽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여서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감찰부의 제안이다. 팀장을 바라보니 짐작할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짓고서 말을 꺼낸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만, 괜히 일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저어됩니다.”

“혹 감찰부 관련해 말이 나올 것 같아 걱정하시는 거라면 넣어두셔도 됩니다. 이후 던전과 관련된 내용을 공표할 예정이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저희 측에서 한 번 접촉해 보겠습니다. 여태 이곳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저흴 보러 온 건 아닌 거 같으니, 가는 길에 물어보고 돌아오는 말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죠.”

팀장이 느끼는 부담스러움을 알아챈 듯 곧바로 이영혁 부장이 말을 이었다. 고심하던 팀장이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럼 한 번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이렇게 가까워졌는데 그 정돈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하, 예.”

팀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영혁 부장 또한 웃으며 끄덕였다.

굳이 저들이 나설 이윤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기자들에게서 유의미한 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말이다.

나는 들고 있던 피자를 마저 먹으며 근방을 서성이는 기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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