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18)화 (118/246)

115화

19. 변화

하필 이 순간 김세현의 손을 붙잡게 될 줄은 몰랐다. 당혹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와중에도 내 손은 장바구니 손잡이를 잡은 김세현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

“…….”

“…….”

다른 때였다면 뭔가 반응이 돌아올 법도 하련만, 오늘따라 김세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니, 슬쩍 그를 훔쳐보니 아예 움직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멍하니 자기 손을 붙잡은 내 손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망함이 터질 듯 차오르는 걸 느꼈다.

여기서, 손을 떼도 될까?

하지만 이미 손을 떼기엔 시기가 많이 늦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접촉할 줄 몰라서인지 민망함이 차오르는 속도보다 심장 뛰는 속도가 더 빨라진 상태였다. 더하여 의도치 않았지만 마치 멜로 드라마에서 나옴 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였다.

“흠, 흠!”

“아!”

별안간 김세현이 요란하게 헛기침을 해왔다. 그에 지금 이렇게 서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곤 황급히 그를 붙잡은 손을 거둬들였다.

“…이거 좀 무거워서 내가 들어서 옮길게요.”

“제가 옮길게요.”

그래,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이 정도쯤은 가뿐히 들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걸 김세현이 옮기게 된다면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적 여유 없이 다시 또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들 수 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장바구니를 든 김세현이 씩 웃으며 몸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온다. 그에 나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서다가 발치에 걸린 무언가에 정신을 다잡곤 그대로 멈춰 섰다.

“아, 그것도 내가 들고 갈게요.”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엔 김세현이 미리 가져다 놓은 장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한다. 마치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듯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나머지는 제가 들고 가도 돼요.”

“뭐, 그래요. 그럼 난 이거만 챙겨야겠네.”

“…….”

분명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해 놓곤 장바구니를 앞세워 안으로 들어올 줄은 몰랐다. 지금은 신까지 벗어 가며 본격적으로 집 안으로 들어올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형, 나 얼른 두고 나가서 고기 구워야 하는데.”

“…….”

“이거 두고 손만 씻고 나올게요. 형이 부끄러워하니까 다른 곳은 안 보고 나올 거라니까요? 진짜 안 볼 거예요!”

방금 전에도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들어온 것처럼 저 말 또한 어길 게 뻔했다. 더군다나 다른 곳은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그건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S급 헌터인 김세현의 시야는 일반인인 나보다 훨씬 더 넓을 게 분명했으니까.

말없이 계속해서 버티고 서 있자니 김세현이 한숨을 푹 내쉰다. 무척이나 생각이 많아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이 이상 김세현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럼 짐은 양보할게요. 대신, 화장실만 다녀올게요.”

“…좋아요.”

분명 팀장님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도 안에 들이지 말라고 했지만, 김세현은 이미 현관 바닥을 벗어나 거실 바닥을 밟은 상태였다. 이대로 화장실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더욱 밀고 들어올 것 같단 생각에 한발 물러섰다.

“대신, 화장실만 쓰고 바로 나가셔야 해요.”

“알았어요.”

“…….”

알았다고 답하는 김세현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미소야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뭘 하든 귀엽게 보는 것과 비슷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데, 괜히 기분이 그랬다. 하지만 그게 불쾌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가만히 서 있자니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나 그럼 손 씻으러 가요?”

“네. 얼른 손 씻고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챙겨서 가지고 나올게요.”

“네, 형.”

“화장실은 이쪽이에요. 벽에 수건 걸려 있는데, 새로 걸어 둔 거라 그거 쓰시면 되고요.”

“알았어요.”

“손 세정제도 있으니까 그거 사용하시면 되고요.”

“네.”

“…….”

방금 전 일 때문일까, 다소곳하게 답하는 김세현을 보고 있자니 괜히…. 괜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손 씻으러 갈게요.”

“…그래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이한 어조로 말을 던진 김세현이 곧바로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느새 문이 닫히고,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멀거니 서 있다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곤 부리나케 몸을 움직였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장바구니를 부엌까지 들고 가기 어려울 것이었다. 김세현이 나오게 된다면 다시 또 안으로 들어올까 경계하느라 그의 주변을 서성일 수밖에 없겠지.

“하아.”

뭐가 되었건 간에 우선은 고기 구울 것부터 빨리 정리해서 내보내야겠다. 그래야 김세현이 불판 앞에 자리를 잡을 테니 마음 놓고 다른 것들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장바구니 세 개를 전부 다 옮겨 짐을 꺼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기도, 쌈 채소도 그때 보았던 양보다 훨씬 많았다. 냉면도 지난번보다 족히 다섯 봉지는 더 많아 보이는 상황을 보건대 아무래도 준비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다.

빠르게 불판과 버너, 고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함께 구워 먹을 버섯과 마늘을 챙겨 돗자리로 가지고 가다가 화장실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손만 씻고 나오겠다던 사람이 왜 이리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걸까. 현관을 벗어나려다 말고 그대로 멈춰 서서는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니 손을 씻으며 나던 물소리는 끊긴 상황이었다.

“…….”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너무 깊게 들으면 안 될 것 같다. 괜한 민망함에 빠르게 마당으로 나가 불판 옆에 챙겨온 것들을 둔 뒤, 다시 안으로 들어가 쌈 채소 준비를 시작했다.

“아.”

쌈 채소를 씻는 단순노동을 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부산에서 생성된 던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자 곧바로 앞치마에 손의 물기를 닦으며 거실 TV를 켤 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음?”

이게 무슨 소리지?

만약 현관에서 들린 거라면 김세현이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건 현관이 아닌 내 방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리모컨을 든 채 방으로 다가간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문을 확 열어젖혔다.

“…세현 씨?”

“아.”

“지금 뭐 하고 계세요?”

화장실에 있을 사람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창문을 열어 밖을 살피는 모습으로 말이다.

“잠시 바깥 좀 둘러봤어요.”

“그거 말고요.”

“손을 씻는데, 이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살피러 왔죠.”

창밖을 확인할 거라면 차라리 밖에서 확인하면 될 것을 굳이 방에 들어와 살피는 연유를 모르겠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받아치는 김세현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 입을 벙긋거리다가 뒤늦게 방 안 상태가 눈에 들어오자 황급히 그를 방 밖으로 떠밀었다.

“고기 구울 거 준비 끝났으니까 고기 굽고 계세요.”

“볼 거 다 봤는데, 인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안 본다면서요!”

안 본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다 봤다고 하는 건 반칙이었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가지, 그리고 이부자리 또한 헝클어져 있는 이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김세현에겐 더더욱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말이다.

그나마 양심은 있었는지 등을 떠미는 족족 발을 움직이며 방문 쪽으로 이동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그의 등을 떠밀어 방을 나서고 거실을 지나 현관에 도착하니 김세현은 그제야 신을 신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더는 못 들어와요.”

“고기 먹다 보면 화장실 가야 하는데.”

“아뇨. 못 들어와요.”

이제야 알겠다. 어째서 팀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 말이다.

고작 화장실을 허락한 것뿐인데 어느새 내 방까지 들어가 있을 줄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단호한 내 태도를 봐서일까, 멈칫하는가 싶던 김세현이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몇 번이고 저 미소에 당한 터라 이번엔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나는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들어오면 안 돼요.”

“그래도 화장실은….”

“안 돼요.”

여기서 또 흔들린다면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내 태도 때문일까, 뭐라고 말을 하려는가 싶던 김세현이 이윽고 고개를 주억였다.

“…알았어요.”

“네.”

“난 형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을….”

“그럼 밖에서 고기 굽고 있어요. 준비되는 거 챙겨서 나올게요.”

다른 때였다면 김세현의 말을 끝까지 들어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울적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아닐 땐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말이 끊긴 김세현이 눈을 끔벅이며 날 바라본다. 당혹감이 서린 푸른 눈동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며 그를 현관 밖으로 밀어낸 뒤, 문을 닫았다.

“…하아.”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좋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몇 번이고 심호흡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자니 밖에서 고기 굽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고기 굽는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지금 당장은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생각을 접은 모양이다. 하지만 화장실 일이 있었기에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다시 부엌으로 가 쌈 채소를 어느 정도 정리 후, 그것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다른 짓 안 하고 가만히 삼겹살 굽고 있어요.”

“네.”

“좀만 더 익히면 먹을 수 있으니까 일단 고기부터 좀 먹고 나중에 냉면 먹어요.”

“그래요.”

혹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그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인 듯했다. 집 쪽으론 아예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불판 위의 고기에 시선을 고정한 김세현의 모습과 함께 코를 자극하는 고기 향을 맡고 있자니 아주 조금씩이지만 경계심이 사그라드는 걸 인지했다.

“일하느라 많이 배고팠을 텐데, 얼른 먹어요.”

“세현 씨도 드세요.”

“당연하죠! 저 오늘 사 온 거 다 먹고 갈 거예요. 오늘따라 일이 너무 많아서 식사를 못 했거든요.”

“아.”

일이 얼마나 많았기에 여태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는 걸까. 하긴, S급 헌터라면 외부에 알려진 일정 말고도 소화해야 할 일정이 많을 것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형이랑 먹고 있으니 좋네요.”

“다행이에요.”

“어, 고기 다 익었다. 형도 얼른 먹어요.”

야무지게 쌈을 싼 김세현이 어서 먹으란 말과 함께 바로 그것을 입에 넣는다. 이어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허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빠르게 고기를 먹어 치우는 김세현을 보며 나 또한 쌈을 싸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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