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17)화 (117/246)

114화

19. 변화

지난주에 생성되었던 던전 덕분일까, 오늘도 역시 서울시엔 던전이 생성되지 않았다.

헌터부 소속이 아니더라도 이 상황은 반길 일이었지만, 퇴근 전 도착한 남부 지방 소식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

다른 때 같았다면 지금쯤 라디오에서는 던전 생성과 관련된 뉴스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이었다. 지역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던전이 생성되었다는데 이렇게까지 그 뉴스를 다루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할 따름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난이도가 B급으로 알려졌음에도 말이다.

“흠, 던전이 클리어되었나?”

이리저리 라디오를 돌리며 부산 지역에서 생성된 던전 관련된 뉴스를 찾던 팀장이 중얼거리듯 한 마디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요.”

팀장의 말마따나 빠르게 소멸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복구하는 데도 시간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드디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에 침음을 집어삼켰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후 다섯 시 무렵 부산광역시 B-16 구역에 난이도 B급, 규모 B급의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피 중이던 시민 다섯 명이 사망하였으며, 국가 소속 헌터 및 협회 소속 헌터 대다수가 큰 부상을 입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은 지원 요청을 받은 타 지역 헌터들을 중심으로 던전 클리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자세한 뉴스는 소식이 전달되는 대로 바로 속보로 전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네.”

“빨리 마무리가 되어야 할 텐데요.”

“남쪽엔 협회 소속 헌터도 그렇게 등급 높은 사람이 없어서 좀 곤란하겠네.”

그 부분은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난이도 B등급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를 상기하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피해가 더 커지진 말아야 할 텐데요.”

“아아.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

당연히 서울만큼 타 지역 또한 헌터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스럽다. 생각지도 못한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부산에서 생성된 던전이 걱정스럽다.

짤막하게 이어진 뉴스만으로는 현재 부산 상황이 어떠한지 알기 힘들었다. 사무실이었다면 허락을 구하고 교통정보센터에 접속해 확인했겠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며 상황이 어떠한지 좀 더 살피는 것밖엔 없었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다른 소식이 전해진 게 있나 확인할 때였다.

“뭐 보이면 알려 주고.”

“네, 팀장님.”

운전 중임에도 내가 뭘 하는지 캐치한 듯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주억이며 빠르게 검색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뉴스들을 살펴보았지만, 방금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 말고는 달리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그나마 서울은 협회 본부라도 있어서 헌터부 소속 헌터들을 지방 쪽으로 많이 보냈거든. 그런데도 이러니 기분이 참 그러네.”

“그렇군요.”

“막내 너도 알다시피 던전 생성이 서울에 몰린 터라 지금까진 괜찮았지만…. 지방에서도 난이도 B급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건 좋지 않긴 하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나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지방에서는 난이도 높은 던전이 잘 생성되지 않나요?”

“대개는 C급 던전이 생성되거든. 정말 드물게 B급 혹은 그 이상의 난이도로 생성될 수도 있다곤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는가 싶던 팀장이 핸들을 꺾었다가 다시 원위치시키곤 뒷말을 이었다.

“요즘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반갑지 않은 거지.”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요즘 툭하면 생성되는 던전이 심상치 않기는 했다. 고개를 주억이다가 뒤늦게 내가 얼마나 시야가 좁았는지 깨닫곤 민망함이 차올랐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알 수 있는 일을 왜 자꾸 질문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제아무리 막내라고 귀여워해 주는 팀원들이라고 한들 자꾸만 기대고 또 스스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면 질릴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생각할수록 이보다 더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가 있나 싶다. 분명 빨갛게 달아올랐을 볼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볼을 누르고 있자니 운전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무원이라고 담당 지역도 아닌 일까지 전부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민망해하지 마. 우린 그저 서울시에서 생성되는 던전에 집중하면 돼.”

“네.”

“자, 도착했으니 들어가서 푹 쉬고.”

집에 곧 도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올 줄은 몰랐다. 집 앞에 세운 차에서 내리며 한 번 더 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어서 들어가.”

손을 흔든 팀장이 이윽고 차를 출발시킨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어냈다.

“하아.”

던전 일도 그렇고, 자꾸만 헌터부 팀원들에게 기대는 것도 그렇고 고쳐야 할 게 산더미 같다. 이런 안일한 자세를 바꾸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헌터부에 도움이 되는 노력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

지금 내가 노력할 일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았다. 부산에서 생성된 던전을 상기하곤 이내 노력할 방향을 잡았다.

그래, 서울 일이 최우선이지만 적어도 헌터부에서 일하는 만큼 타 지역 헌터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또 비상시를 생각해 차출할 수 있는 헌터가 몇이 있는지 정도는 대략적으로나마 알아 두는 것부터 해야겠다.

특히 이번처럼 부팀장이 자리를 비울 시 사무실에 남아 있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지.

“…요?”

집에 들어가면 각 지역 시청 및 도청 사이트에 나온 조직도부터 봐야겠다. 적어도 헌터부 소속 인원만이라도 체크해두면 내일 헌터 공무원을 알아내는 데 편리할 테….

“형?”

“헉!”

깜짝이야.

소리가 무척이나 가까웠다. 귀를 막으며 황급히 몸을 트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세, 현 씨?”

“왜 그렇게 놀라요?”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걸어….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갑작스럽게 누가 말을 걸어 놀랐지만, 생각해 보니 김세현이 이곳에 와 있는 게 더 놀랄 일이었다. 말을 하다 말고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니 씩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현 씨?”

“형, 이제 저녁 먹을 거죠?”

“그야…. 그렇죠?”

“잘됐네! 그럼 나랑 같이 먹어요. 먹을 거 챙겨 왔어요.”

먹을 걸 챙겨왔다고?

시선을 내리니 지난번 김세현의 집에 갔을 때 보았던 것과 똑같은 장바구니 세 개가 보였다. 그것도 음식 재료로 꽉 찬 장바구니가 말이다. 어마어마한 양도 양이었지만, 한 손에 그걸 다 들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말문이 막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돼지고기랑 소고기 놓고 고민하다가 그냥 다 사 왔어요. 쌈 채소도 많이 사 왔고. 냉면도 사 왔고요.”

“어, 그게….”

“얼른 준비하고 먹어요. 나 오늘 밥 못 먹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에요.”

“또요?”

지난번에도 종일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오늘도 그럴 줄은 몰랐다. 혹시 이 시간을 기다리며 굶은 걸까 하던 찰나, 김세현이 대문 쪽으로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텨봤지만, S급 헌터의 힘을 이기는 건 무리였다. 나부끼는 종이 인형이라도 된 듯 마당으로 들어서자, 뒤따라 들어온 김세현이 대문 단속 후 현관으로 향했다.

“…….”

갑자기 찾아온 것도 놀랄 노 자였지만, 저렇게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더 놀라웠다. 지난번에도 한 번 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익숙할 수가 있나 싶다. 마치 저의 집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이를 멍하니 보고 있을 때였다.

“형, 비밀번호 뭐예요?”

“19….”

띠-띠-

‘틈도 보이지 말고! 항상 경계하고!’

“헉!”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간 팀장의 목소리 덕분일까, 정신이 번뜩 든다. 다급히 말을 멈추자, 그에 따라 김세현도 번호키를 누르다가 손을 멈춘다. 어서 다음 번호를 말하라는 이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기서 구워 먹어요.”

“준비할 것도 많은데, 그냥 들어가서 먹어요.”

어떻게 거절하지. 그에 다급히 머리를 굴리다가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입에 담았다.

“…고기 냄새 배면 잘 안 빠져서요.”

“창문 다 열고 구워 먹으면 되죠.”

“그게, 환기가 잘 안 되네요.”

환기는 언제나 잘 되었지만, 지금은 김세현의 발걸음을 붙잡을 만한 핑곗거리가 이것밖에 없었다.

“흐음.”

저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을 긴장시키는지 모르겠다. 괜한 불안함에 손을 모아 꼼지락거릴 때였다.

“뭐,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면야.”

이보다 반가운 말이 또 있나 싶다. 나는 반색하며 끄덕였다.

“네!”

“그럼 고기는 밖에서 구워 먹어요. 돗자리는 어디 있어요?”

“얼른 꺼낼게요.”

“자리 펴고 바로 들어가서 같이 쌈 채소 준비하고 나와요. 혼자 준비하려면 오래 걸리니까.”

“어….”

그를 집 안에 들이지 않도록 머리를 굴렸지만, 이런 식으로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당혹감에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세현 씨가 여기서 고기 굽고 있으면 제가 얼른 준비해서 나올게요. 그게 더 빨리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집에서 같이 하는 게 빠르다고 말했잖아요!”

“그게 실은…. 실은 집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서요. 보이기 부끄럽네요.”

주말에 대청소를 하려 했던 터라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순간 빨랫감들과 함께 이것저것 질서 없이 널브러진 물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더더욱 김세현을 집 안으로 들일 수 없단 결론이 나왔다. 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단 돗자리랑 버너부터 챙겨서 나올게요. 그리고 집게랑 가위, 그릇도요. 젓가락도 챙기고, 물이랑 컵도 챙겨서 올게요.”

그저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일 뿐인데, 왜 이리 챙길 게 많은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것을 쭉 나열해 봤지만, 아직도 챙길 건 많았다. 그에 잠시 숨을 고른 뒤 한 번 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들려온 웃음소리에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들어가서 챙기고 나와요. 지금은 안 들어갈 테니까.”

“…네.”

‘지금은’이라는 말이 걸렸지만, 우선은 김세현이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사를 철회한 것이 중요했다. 혹여 손바닥 뒤집듯이 말이 바뀌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곧바로 창고로 가 돗자리를 챙겨 나와 바닥에 깔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기다리고 계세요. 얼른 준비하고 나올게요.”

“형, 거기 장바구니에 보면 앞치마 챙겨 왔으니까 꼭 그거 입고 준비해요.”

“그럴게요.”

앞치마까지 챙겨 왔다니. 생각보다 더 본격적이었다. 굳이 입어야 할까 싶었지만, 혹여 입지 않으면 그걸 핑계로 안으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요구를 들어주잔 생각에 김세현이 가리키는 장바구니를 뒤적이니 과연 그의 집에서 입었던 빨간 앞치마가 보였다. 곧바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곤 나머지 하나는 대충 목에 걸친 뒤 현관 앞에 놓여있던 장바구니를 집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

한 번에 두 개를 옮겼으니 이젠 하나만 옮기면 된다. 곧바로 밖으로 나가 남은 장바구니를 집어 들 때였다. 무언가 빠르게 장바구니 손잡이를 감싸고, 그것을 뒤늦게 알아챘을 땐 김세현의 커다란 손 위로 내 손이 올라간 상태였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접촉에 파르르 눈가가 떨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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