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19. 변화
아침부터 사무실 건물 앞을 서성이는 이들을 보이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을 발견한 그 순간, 어제 팀장이 전해준 이야기가 떠올랐으니까.
“한동안 저럴 거야. 혹여나 말을 걸면 반응하지 말고 바로 사무실로 가.”
“네, 팀장님.”
팀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계속해서 기자 무리를 주시하고 있자니 어느새 차가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여기도 있네.”
“그러게요.”
어제만 해도 주차장엔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은 주차장까지 영역을 넓혔는지 여기저기 기자들이 똬리를 튼 모습이 보였다. 차 속도를 줄인 채 주변을 살피던 팀장이 건물과 가장 먼 쪽에 차를 댄다. 시동이 꺼지고, 차에서 내려 간단히 옷맵시를 정돈 후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그나저나 막내야.”
“말씀하세요.”
“어젠…. 별일 없었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옆을 보니 진지한 얼굴을 한 팀장이 눈에 들어왔다. 미간에 잡힌 주름을 보건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잠시 어제 일을 되짚어보곤 고개를 주억였다.
“네, 특별한 건 없었어요.”
“다행이네.”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가 싶던 팀장이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에 따라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도 잠시뿐이었다. 시야에 잡힌 기자들의 모습에 빠르게 입가가 경직되는 걸 인지했다.
“…….”
지근거리에서 다시 보니 이보다 더 불편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그들을 본다면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질 것만 같단 생각에 기자들을 못 본 체하곤 잽싸게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앞에만 몰려 있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터라 혹여 건물 안에도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마음을 놓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힐 때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다가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언제까지 긴장하나 했네.”
“하하.”
“혹시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탈 줄 알았어?”
마치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한 질문이다. 나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부팀장의 과거를 놓고 캐묻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웃는 낯으로 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팀장이 좋아하겠네. 이렇게 든든하게 편 들어주는 막내도 있고 말이야.”
“저는 부팀장님 말고도 언제나 팀원들 편이에요.”
“…그, 래?”
“네.”
다른 사람들이라면 또 모를까,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봐주는 팀원들 편을 들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띵―
때마침 8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팀장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니 문 너머로 불이 켜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퇴근했지?”
“네. 불도 다 꺼서 나왔고요.”
함께 문단속까지 하고 나온 터라 지금 켜진 사무실 불은 누군가가 출근해 있음을 의미했다. 평소보다 30분은 일찍 출근했는데, 먼저 온 사람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출입증을 찍은 팀장이 인식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가니 김 주무관이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반쯤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좋은 아침.”
“헉! 좋은 아침입니다. …막내도 좋은 아침이야.”
팀장이 건네는 인사에 화들짝 놀란 김 주무관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준다. 김 주무관의 퀭한 눈이 이쪽을 향하자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건넸다.
“김 주무관님, 좋은 아침입니다.”
“무슨 일 있어? 너무 일찍 출근했는데?”
“그게…. 시계를 잘못 봤지 뭡니까.”
“아.”
간혹 시계를 잘못 볼 때가 있긴 했다. 시계를 보고 황급히 챙겨서 나온 듯, 머리 손질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습이 이보다 안쓰러울 순 없었다. 현타를 제대로 맞은 듯한 김 주무관을 보다가 자리에 짐을 두곤 곧바로 정수기로 향했다.
“쯧. 일찍 나와 봤자 일찍 가지도 못하는데. 앞으론 시간 잘 보고 다녀!”
“옙! 그래야죠.”
“우리는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최선이라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최선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쓰인다. 좀 더 빠르게 커피를 타 두 사람에게 건넸다.
“커피라도 드세요.”
“역시 우리 막내밖에 없어.”
“잘 마실게, 막내야.”
“네.”
잘 마셔 준다면야 나야 좋았다. 김 주무관 곁을 지키고 있던 팀장이 웃으며 자리로 가 짐을 정리한다. 그에 짐 정리를 마치곤 내 몫으로 타 온 커피에 입을 댔다.
“…….”
매일같이 마시는 커피라고는 하지만, 마실 때마다 느낌이 다른 건 전부 기분 따라 커피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다. 부드럽게 입 안을 적시는 커피를 맛보며 시간을 확인하니 조회까진 아직 시간이 넉넉했다. 곧바로 컴퓨터를 켜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접속해 혹시 모를 기사가 올라왔는지 뉴스를 살피기 시작했다.
“흠.”
부팀장과 관련된 기사도, 헌터부와 관련된 기사도 특별히 눈에 띄는 건 보이지 않았다. 크게 불거질 거리가 없어 다행이긴 했지만, 마음이 묘하게 불안했다.
어제완 달라진 기자들의 위치도 그렇고, 부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상황도 없고. 그저 관망만 할 따름이라 기분이 이상한 걸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딱 생각이 깊어질 즈음 박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드니 환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박 주무관이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박 주무관님.”
“막내도 좋은 아침. 참, 오늘도 저 사람들 말 안 걸던데요?”
“내버려 둬. 저러다 말겠지.”
“저러니까 괜히 더 신경 쓰이네요.”
마치 내 머릿속을 다녀가기라도 한 듯한 말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박 주무관의 말에 동조했다.
“…부팀장님 집으로 찾아간다거나 하진 않겠죠?”
“찾아간다고 해도 얻을 건 없을걸? 칩거할 수 있게끔 미리 준비해서 들어가라고 했으니까. 혹여 불편한 상황 발생하면 연락하라고 말해뒀는데, 아직 조용한 거 보면 집까지 찾아가지 않았다거나 혹은 여기 있는 기자들처럼 지켜보기만 하고 있겠지.”
“하여간 잘 지내는 사람 잊을 만하면 들쑤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 당시에도 상황이 안 좋았다면서요. 트라우마도 제법 남았을 텐데.”
“부팀장이라면 알아서 하겠지만,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지.”
“에휴, 헌터부와 관련해 좋은 기사가 나온 건 좋은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나지 않는 편이 나았던 걸지도요.”
“…….”
팀장에게 전해 듣긴 했지만, 대화가 오가는 걸 들으니 이런 일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잊을 만하면 생겼던 모양이었다.
“…차라리 이럴 땐 눈길을 끌 수 있는 뭔가 다른 일이 생겨야 저들이 그쪽으로 관심을 돌릴 텐데 말입니다.”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침묵하던 김 주무관이 대뜸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김 주무관이 해서일까, 이보다 의미심장할 수가 없다. 나는 곧바로 옆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좀 그럴싸한데?”
“꼭 이루어질 것 같지?”
팀장의 말에 이어 박 주무관이 날 보며 묻는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끄덕였다.
“네.”
“…제가 점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응들이 왜 이럽니까?”
“그간 전적이 있잖아.”
“맞습니다! 저는 김 주무관님이 저렇게 말을 툭 뱉을 때면 괜히 긴장되더라니까요? 솔직히 저는 김 주무관님만 허락해주신다면 김 주무관님 조상님들을 한번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박 주무관이라면 확실히 관심을 보일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큼지막한 일이 생길 즈음 김 주무관이 한 말 대부분이 맞아떨어졌으니까. 특히 호주에서 발생했던 S급 던전 땐 정말 돗자리를 까는 게 벌이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 정도였다.
“아서라. 그땐 우연히 맞아떨어진 거뿐이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없어!”
“혹시 모르잖습니까? 대 예언가가 계실 지도요!”
“허, 참.”
대 예언가 소리를 들은 김 주무관이 말문을 잃은 듯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어째 출근했을 때 마주한 김 주무관의 모습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계속해서 헛숨을 뱉는 이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부팀장님도 그렇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의견을 내시잖아요. 그만큼 감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감도 예언의 일부라고 볼 수 있지!”
“…….”
뭔가 대답이 돌아올 법도 하련만, 아무런 말 없이 날 빤히 바라볼 뿐인 김 주무관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왜 저리 사람을 뚫어져라 보나 의아함이 커지던 찰나, 날 보는 김 주무관의 표정이 점차 묘하게 변하는 걸 발견했다.
“나 아주 잠깐 잉여의 마음을 느낀 거 같아.”
“어, 음….”
이럴 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시선에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던 중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서라. 그놈 하는 거 보니까 진심인 듯하니 마음 생길 거 같으면 바로 접어.”
“뭐 새로운 거라도 발견하셨어요?”
“…뭐, 그렇지.”
“뭔데 그런 표정이십니까?”
표정?
생각지도 못한 말에 뒤돌아 팀장을 보니 미간을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곤란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처구니없어하는 듯한 팀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도대체 어떤 걸 발견했다는 건지 궁금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방비를 잘 해뒀더라고. 혼자 산다고 걱정이 많았는데, 한시름 덜었지.”
“설마, 근처에 똬리 틀었어요?”
“그건 아닌 거 같고. 일 생기면 바로 오겠더라.”
바로 오겠더라는 말과 함께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든 뒤, 하늘을 향한 검지를 살짝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하는 팀장이다. 저 행동은 어린이도 아는 것이었다. 바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제스처였으니까.
“와.”
“지독한 놈.”
“…….”
저 행동에서 뭔가를 알아냈는지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거의 동시에 반응한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혹 저 손동작과 관련된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번엔 두 사람 쪽을 살폈다.
“아니, 언제부터 그랬대요?”
“그야 모르지.”
“…한시름 덜기는 했는데, 이거 더 큰 시름이 찾아온 기분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막내야.”
“네, 팀장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팀장이 날 부른다. 즉각 답하며 그를 보니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뭐라고 했었지?”
“어, 음….”
갑자기 물으니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부분에 대한 말이었나 싶어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자니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돌아왔다.
“잉여 말이야. 잉여가 집으로 찾아오면 어쩌라고 했었지?”
그거라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던지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집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도요.”
“그렇지! 틈도 보이지 말고! 항상 경계하고!”
“네.”
이전에도 말했지만, 한 번 더 강조한다는 건 내가 모르는 김세현의 면모를 팀장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화장실이 급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멀리 날려 보냈다.
그래, 언제 김세현이 집으로 찾아올 줄 알고 이런 고민을 할까.
온다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헛물을 켜고 있는 사실이 웃길 따름이다. 나는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헛웃음을 삼키며 곧 시작할 일과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