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15)화 (115/246)

112화

18. 뜻밖의 상황

“그 당시 협회랑 정부 사이에 알게 모르게 기 싸움이 한창이었단 말이야.”

“…설마.”

그래, 지금 내가 생각한 그건 아닐 거다. 만약 그게 맞다면, 협회는 상종할 만한 이들이 되지 못했다. 방금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이 아닐 거라 여기며 팀장을 바라보았다.

“자기들 능력이 대단한 걸 알려 주겠다고 현장에 지원 헌터를 늦게 보낸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부팀장이 그렇게까지 다칠 일은 없었어.”

“…….”

돈에 따라 움직이고, 또 권력을 중요시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곳일 줄은 미처 몰랐다. 협회를 향한 실망감이 커지자 절로 감정이 얼굴로 드러나는 기분이다. 아니, 이 이야기를 들은 그 누구라 한들 협회를 향한 감정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뿐만이 아니야. 당시 상황이 참으로 그랬어. 정말 복잡했거든. 그나마 다행인 건 부팀장이 목숨 걸고 지킨 시민이 그 어디에서도 부팀장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외부에 부팀장의 존재를 알려 줬다는 거지. 덕분에 당시 상황을 정리했다며 으스대던 협회가 꼴좋게 찌그러졌지. 부팀장이 급부상하니 협회랑 각을 세우고 있던 나라에서 부팀장을 영웅화하며 밀어줬거든. 부팀장이 싫다고 버틴 바람에 원하는 바를 전부 얻지는 못했지만, 나라에서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 덕분에 재활이 끝날 때까지 부족함 없이 지원받았었지. 하지만 그러면 뭐해. 지금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도돌이표인 것을.”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 아침엔 어째서 기자들이 사무실 앞을 찾아왔을까요?”

부팀장을 바로 퇴근시킨 걸 보면 그와 관련이 있음을 뜻했다.

“잊을 만하면 오고 그래. 이번엔 좀 많이 오긴 했지만 말이야. 당시 던전에서 홀로 시민을 지킨 영웅이란 타이틀로 간혹가다 기사가 나올 때가 있는데, 아마 그 시즌이 된듯해. 최근 헌터부 관련해 뉴스를 탄 만큼 이보다 더 좋은 기삿거리는 없을 테니까.”

“…….”

여기나 저기나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을 찾아와 당시 상황을 물어보고, 그것을 기사화한다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우선은 여기까지 말하는데, 아직도 못한 이야기가 많아. 그건 내가 말하는 것보단 나중에 부팀장한테 직접 듣는 편이 나을 거야.”

“네, 그럴게요.”

이미 이 정도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그간 부팀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만 알면 그것으로 되었다.

“…….”

뚫어져라 날 바라보던 팀장이 한결 풀린 얼굴로 물을 마신다. 덩달아 단번에 잔을 비우니 피식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어째서 이런 비실비실한 녀석이 헌터부에 왔나 했는데, 겪으면 겪을수록 네가 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야.”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비실비실이란 표현에 시무룩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와 다행이라는 말에 줄어들었던 자신감이 빠르게 차오른다. 대번에 어깨를 펴곤 팀장과 눈을 마주했다.

“덕분에 부서 분위기도 더 좋아지고 아주 좋아. 앞으로도 이대로만 해. 잘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네.”

이런 칭찬을 받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볼을 긁적이며 좋아하고 있자니 팀장이 입을 열었다.

“자,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만 가 봐야….”

드르륵- 드르륵-

말을 하며 팀장이 일어나는 와중에 전화 진동음이 들려왔다. 팀장도, 나도 서로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해 보니 전화가 온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전화 받아. 나는 이만 가 볼 테니까.”

“네.”

화면에 뜬 김세현이란 이름 석 자가 보였다.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전화를 받으라 해 줬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팀장을 배웅하는 게 우선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팀장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가 그가 차에 오르는 것까지 확인하곤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세….”

―형!

전화를 늦게 받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려 했건만, 무척이나 큰 목소리로 날 부르는 통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귀청이 얼얼하단 생각에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 냈다가 반대편 귀로 옮겨 전화를 이어 나갔다.

“네, 듣고 있어요.”

―지금 어디예요?

“퇴근해서 집이에요.”

―집 좋죠! 집 완전 좋아요! 너무 좋네!

“…….”

잔뜩 날이 선 태도로 말을 건네는 게 낯설다. 당혹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멍하니 서서는 김세현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다.

“막내야, 나 간다.”

차를 돌리고 온 팀장이 앞에 차를 세우곤 인사를 건넨다. 곧바로 핸드폰 하단부를 손으로 가리며 꾸벅 인사했다.

“조심히 가세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버스 타고 가면 돼요.”

“어허, 부팀장 없을 때 한정이니까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돼. 이거 부팀장이 부탁한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아.”

부팀장이 이런 것까지 부탁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괜히 폐를 끼친 게 아닐까 걱정하던 참에 핸드폰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형, 나랑 통화해야죠!

“…잉여야?”

“그, 네.”

―하늘 형!

얼마나 컸으면 바로 팀장이 알아들을까. 수화기를 뚫고 나오는 성량에 당황하다가 결국 김세현에게 빠르게 말을 건넸다.

“제가 바로 전화할게요.”

―혀….

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으니 이보다 더 조용할 수가 없다.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팀장과 시선을 교환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릴 때였다.

드르륵- 드르륵-

손에 든 핸드폰이 다시금 존재감을 발산한다. 하지만 지금 전화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팀장을 배웅한 후에 전화를 받는 게 차라리 나았다. 마저 그를 배웅하려 고개를 들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쪽을 보고 있던 팀장이 집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팀장님?”

“흠, 일단 안 보이네.”

“네?”

뭐가 안 보인다는 걸까.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한참을 집 주변을 살피는가 싶던 팀장이 다시 몸을 바로 하곤 눈을 마주해 왔다. 나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막내야.”

“네, 팀장님.”

“항상 문단속 잘하고. 혹시 주변에 술주정뱅이라든가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는 집 대문 두들기거나 비밀번호 누르거나 하면 바로 신고해, 알았지?”

워낙 조용한 동네였고, 주변에 사는 어르신들 역시 술을 마시지 않는 터라 이곳에서 술주정뱅이를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팀장이 말하는 술주정뱅이가 단순히 술주정뱅이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문단속은 항상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 잘하고 있어. 그럼 나 간다. 내일 아침에 올게.”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넨 팀장이 웃으며 차를 출발시킨다. 이윽고 골목에서 완전히 사라진 차량에 다시 집으로 향할 때였다.

드드륵- 드르륵-

“아.”

잠시 멈추는가 싶었던 진동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네, 세현 씨.”

―전화 그렇게 끊으면 걱정되잖아요!

“미안해요. 팀장님 배웅하는 중이었거든요.”

―배웅은 왜 해요?

“부팀장님이 일이 있으셔서 한동안 카풀 못하게 되었거든요. 그동안 팀장님이 대신 카풀 해 주기로 하셨어요.”

―…나 들이고.

“네?”

너무 작은 소리라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한 번 더 말해 주길 바라며 반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화가 넘쳤다.

―형, 내가 예전에 말했죠! 나 말고 믿을 남자 없다고!

“네. 그러긴…. 했죠?”

―항상 조심하고요! 문단속 철저히 하고! 집에 아무나 들이지 말고요!

“…….”

어째 조금 전 팀장이 한 말과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다. 괜스레 주변을 살피는데, 확답을 듣고 싶었는지 김세현이 재차 대답하라 종용하기 시작했다.

―형, 진짜 조심해야 해요, 알았어요?

“그럴게요.”

―배달 음식 시켜 먹어도 대문 밖에서 수령하고요. 아니지, 배달 음식 시킬 거면 차라리 나한테 시켜요. 내가 배달해 줄 테니까.

“…그건 좀.”

이건 좀 너무 나간 게 아닐까 싶다. 과보호가 느껴지는 말에 어색하게 웃고 있자니 대답을 기다리던 김세현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맨날 나만 거절이지.

“거절은요. 미안해서 그러죠.”

만에 하나 김세현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다고 해도 방금 전과 같은 도움을 받는 건 정말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S급 헌터를 배달원으로 부린다는 건 상상조차 안 될 만큼 말이 되지 않았다.

―…….

무슨 말이 돌아올 법도 하련만, 침묵하는 김세현이다. 그에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신을 벗으며 말했다.

“세현 씨는 S급 헌터잖아요.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 부탁 하면 안 되죠.”

―…매번 그런 말이 통할 줄 알아요?

“빈말로 하는 거 아니에요. 세계 각국에서도 세현 씨 원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어떻게 그런 걸 부탁해요.”

만에 하나 그런 부탁을 김세현에게 했다는 게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반향이 일 것이었다. 나라에서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S급 헌터를 막 대한다고 손가락질받겠지. 아니, 손가락질만 받는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형이 부탁하면 뭐든 들어줄 수 있어요.

김세현에게 배달을 부탁해 벌어질 일을 상상하던 중, 한결 진정된 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입을 벙긋거리며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미안해하지도 말고, 자꾸 부탁해요. 부탁하면 형 얼굴 핑계로 자꾸 볼 수 있어서 난 좋단 말이에요.

“어, 그게….”

―형은 나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긴 하죠.”

―그럼 지금 갈까요?

“ㄴ…. 아뇨, 괜찮아요.”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김세현이 올 이유는 없었다.

순간 김세현의 페이스에 휘말려 오라고 답할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파로 가 앉아선 끊임없이 구시렁대는 그의 목소리를 듣다가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요?

“그냥, 이렇게 통화하는 게 기분 좋아서요.”

이게 무슨 통환가 싶었지만, 이렇게 김세현과 통화를 하고 있자니 부팀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바닥을 친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하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진짜 마지막으로 봐준다!

“하하, 그래요.”

툭하면 봐준다고 말하는 김세현인지라 다음에도 봐준다고 할 게 분명했다. 뭘 그렇게 봐준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봐준다니 다행이었다. 나는 그렇게 김세현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한참이나 주고받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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