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18. 뜻밖의 상황
사무실에 도착하면 부팀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바로 들을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그건 그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예,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하하. 너무 오래 머무르면 민폐인지라 이번 주 내리 달리고 다음 주엔 복귀해 볼까 해서 말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와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출근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10시 넘어서 모습을 보이던 감찰부 소속 세 사람까지 와 있단 사실에 놀라 짤막하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이동했다.
“…….”
저들이 다음 주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힌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듣고 싶었던 부팀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 사실은 좀 아쉬웠다. 솔직히 무척 아쉬웠다.
“그나저나 밖에 사람들은 무슨 일로 저리 모인 겁니까?”
“글쎄요. 출근길에 붙잡지 않는 걸 보면 저희 때문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좀 아리송하긴 합니다.”
“저희도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요. 어쩌면 헌터부가 아니라 같은 건물을 쓰는 사람들을 취재하러 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런 거라면 반길 일이죠. 항상 이런 식으로 사람이 몰릴 땐 저희 쪽에 포커스가 맞춰지곤 했던 터라 좀 멋쩍긴 하지만요.”
이영혁 부장의 질문을 팀장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흘린다.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짐 정리를 마치니 어느새 팀장도 자리로 가 컴퓨터 전원을 켜고 있었다. 평소 팀장의 루틴을 생각해볼 때, 이제 곧 조회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곧바로 다이어리를 챙겨 의자를 돌려 앉았다.
“자, 오늘 조회 시작하지!”
역시, 조회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다. 그에 펜을 들어 팀장이 지시할 내용을 기다렸다.
“오늘부터 부팀장이 휴가 간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 부팀장이 맡은 일이 많았던 만큼 할 일이 늘어나겠지만, 다들 내 일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
“당연하죠!”
“던전이 생성되었을 땐 누가 사무실에 남습니까?”
그래, 나도 그 부분이 궁금했다. 뚫어져라 팀장을 바라보니 잠시 팀원들을 둘러보던 그가 날 바라봤다.
“남긴 누가 남아. 우리 막내가 있는데!”
“오, 우리 막내 드디어 컨트롤 타워 데뷔하는 겁니까? 이거 부팀장님 집에서 자리 뺏기는 거 아닌가 긴장 좀 하셔야겠는데요?”
“뺏기는요! 저는 아직 부팀장님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 실력이 막 부팀장과 어깨를 견줄 만큼 대단한 줄 알겠다. 김 주무관의 말에 부리나케 손사래 치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우리 막낸 건드리는 맛이 있네요.”
“…그래서 날파리가 그렇게 꼬이나?”
“에이, 날파리들은 가까이도 오지 못할 텐데요. 우리 막내 찍은 놈이 얼마나 무서운데!”
“하긴. 잘못 접근했다간 뼈도 못 추릴 게 뻔하죠.”
“…….”
지금 팀원들이 말하는 사람은 김세현일 것이었다. 그래, 찍었다는 표현은 좀 그랬지만 김세현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자, 인제 그만 떠들고 일과 시작하자. 저희가 너무 떠들었습니다. 마저 하던 거 계속하시죠.”
“전혀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대화 들었더니 저희도 기운이 나는군요.”
“하하,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팀장이 자연스럽게 이영혁 부장에게 말을 돌리자, 웃음기로 점철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가볍게 대화를 나눈 뒤 조용해지는 사무실 분위기다. 이젠 정말 집중할 시간이란 생각에 크게 심호흡하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
생각지도 못하게 김세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 그런 걸까,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기분이다. 아니, 그보단 날 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라 뛰는 게 맞은 표현일 듯했다. 다시금 떠오른 김세현의 웃는 모습에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가 이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정신을 다잡았다.
어제 못다 한 일을 정리하고, 이어 부팀장이 하던 일을 거들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훨씬 더 집중해야만 했다. 바탕화면을 바라보며 몇 차례 손가락을 꺾으며 마사지한 후 본격적으로 오늘 일과를 진행했다.
부팀장이 뜻하지 않게 자리를 비우게 된 터라 오늘부터 한동안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부득불 자기 차를 타고 가라던 팀장의 배려 덕분에 이렇게 편히 집에 올 수 있었다. 벨트를 풀며 팀장에게 고맙단 인사를 전달했다.
“팀장님, 바래다주셔서 감사해요.”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나저나 여기서 혼자 살아?”
“네.”
“주택 관리하는 게 참 손이 많이 가는데, 깨끗하게 잘 관리했네.”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흔적인 만큼 열심히 관리한 보람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괜히 우쭐해졌다가 팀장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막내야.”
“네, 팀장님.”
차 문을 열고 내리기 전, 날 부르는 팀장이다. 그에 내리다 만 자세 그대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까 아침에 하다 말았던 말이야. 그거 간략하게 말해 줄까 해서.”
“아!”
아침에 하려다 못한 말이라면 부팀장과 관련된 말이었다. 여기서 듣는 것도 좋았지만, 집을 두고 차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이상했다. 그래, 집에서 간단히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나을 듯했다.
“그럼 잠깐 집에 들렀다 가실래요?”
“흠, 그럴까?”
혹 부담스러워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좀 사 들고 오는 건데 말이지.”
“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하여간 말 참 예쁘게 하지.”
솔직한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집 옆으로 차를 댄 팀장이 벨트를 푸는 걸 보곤 곧바로 차에서 내려 대문으로 향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며 안으로 들어오는 팀장이다. 그에 괜스레 콧가를 만지작거리며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너 혼자 사는 거 맞아?”
집 안으로 들어온 팀장이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다가 뜬금없는 질문을 해왔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니, 남자 혼자 사는 집인데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다고?”
“아.”
무슨 말인가 했는데, 청결 부분을 지적한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지난주에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하기는요. 지난주에는 청소 못 해서 더러운데요.”
“지난주라면 주말에 쉬지 않았어?”
“아, 그게….”
청소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이쪽으로 이야기가 튈 줄은 몰랐다. 상대는 아무런 생각 없이 꺼낸 말이겠지만, 듣는 처지에선 이보다 더 허가 찔릴 순 없었다. 난감함에 어색하게 웃자, 그 모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말없이 소파에 자리를 잡은 팀장이 씩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 쉴 땐 푹 쉬어야지. 일단 앉아.”
“잠시만요. 얼른 마실 거 챙겨 올게요.”
아무것도 없이 대화를 나누는 건 좀 그랬다. 내용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중간중간 입을 축일 것도 필요했고 말이다.
“그럼 물 한 잔 부탁할게.”
“네.”
팀장의 말에 곧바로 부엌으로 가 물 두 잔을 챙겨 와 곧바로 소파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후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
잔을 받은 그가 한 모금 마신 뒤 침묵한다.
표정이 복잡해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부팀장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조용히 운을 떼길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느 정도 생각을 갈무리한 듯 팀장이 입을 열었다.
“부팀장이 헌터라는 말은 들어 알고 있지?”
“네.”
“부팀장도 나만큼이나 현장에 많이 나갔었거든. 당시 헌터부 상황은 더 열악했던 터라 헌터부 소속 헌터가 홀로 던전을 나갈 때도 있었는데, 하필 그날 부팀장밖에 현장에 나갈 사람이 없었던 거지. 다행히 던전 난이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던 지라 먼저 부팀장이 현장에 나가고, 이후에 지원 헌터들이 도착할 예정이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던전 난이도가 갑자기 상승한 거야. 지원 헌터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
“그런데, 일이 꼬여도 너무 꼬였지. 미처 대피 못한 시민도 많았고, 몬스터는 쏟아지고, 현장에 있는 헌터라곤 부팀장밖에 없고.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몬스터가 시민 쪽으로 질주한 거지. 부팀장 성격상 그걸 가만히 보겠어? 결국 자기보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 앞을 막아섰고 큰 부상을 입었어.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덕분에 시민은 무사할 수 있었다는 거지.”
“…….”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차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침묵했다.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 듣고 갔더니 진짜 필사적으로 싸웠더라. 헌터도 힘이 소진될 수 있다는 걸 얼핏 듣긴 했지만, 만약 부팀장을 보지 않았다면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헌터가 힘을 소진한다고 해봤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거든. 시민 한 사람 살려 보겠다고 자기 힘 다 쥐어짜다 못해 큰 부상까지 입어서 일 년 가까이 병원에서 생활했고. 자극적인 음식 먹지 못하는 것도 전부 그 후유증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 렇군요.”
“그뿐인 줄 알아? 나 같았다면 가족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했을 텐데, 이놈은 그런 것도 없고 말이야! 병원 생활을 그렇게 했으면 몸도 좀 사려야 하는데 계속 헌터 일을 하겠다고 해서 가족들이랑 떨어져 지내게 되고! 멍청해서 탈이라니까?”
얼마나 속상했던 건지 부팀장을 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욕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가까운 사이인 만큼 마음이 아팠을 테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어째서 협회를 이렇게까지 싫어한다고 생각해?”
“그야 협회가 갑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해서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면 바로 답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렇지! 근데 그게 문제였던 거야!”
별안간 팀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휘둥그레 눈을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