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12)화 (112/246)

109화

18. 뜻밖의 상황

생각지도 못한 협회 소속 남자의 방문 이후, 사무실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변했다. 능률도 제법 올랐고 말이다. 덕분에 한 번 더 오롯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관님?”

오늘따라 제법 괜찮은 집중력 덕분인지 지금까지 처리한 양이 상당했다. 정리한 것들을 살피니 평소보다 배 이상 처리된 상황이었다. 퇴근 시간까지 계속 집중해 처리하다 보면 내일 중에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수도 있을 듯했다. 모니터를 가득 채운 지도에 표시된 체크 표시를 살피고 있자니 이보다 더 흐뭇할 수가….

“연 주무관님?”

“헉! 네, 부르셨어요?”

깜짝이야.

다급히 답하며 옆을 보니 책상을 노크하려는 듯한 자세로 날 바라보는 이영혁 부장이 보였다.

“그, 점심시간이 돼서 말입니다. 오늘 중식을 먹기로 했는데, 괜찮으신가 해서요.”

…벌써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답했다.

“저는 자장면으로 먹을게요.”

“막내는 자장면. 참, 막내야. 나 볶음밥 추가해서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나눠 먹을래?”

“네.”

중식이야 뭐든 좋았다. 김 주무관의 이어진 말에 바로 답하자, 곧바로 전화를 드는 박 주무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날이었다면 내가 주문했을 텐데, 아무래도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부르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그래, 방금 전 이영혁 부장의 부름에도 바로 답하지 못한 것만 봐도 그랬다. 주문을 넣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묘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이영혁 부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이미 필요한 대화가 오간 상황서 계속해서 날 바라본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음을 의미했다. 질문을 던지니 잠시 망설이는가 싶던 이영혁 부장이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혹시 연 주무관님은 일을 좋아하시나 싶어서요.”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려고는 합니다.”

그래, 이럴 땐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다. 어떻게 보면 아직도 헌터부 일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해 배우는 게 많은 사실이 부끄러웠지만, 적어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일에 재미를 붙일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혹여 재미가 붙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때가 되면 익숙해져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테니까.

“…….”

내 대답을 들은 이영혁 부장의 표정이 좀 더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막내야.”

“네, 한 주무관님.”

“작업하던 건 어느 정도 진행됐어?”

“내일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거 같아요.”

“내일?”

내일이라 되묻는 한 주무관의 표정 또한 묘했다. 혹여 속도가 너무 느린 걸까.

“…좀 더 하면 오늘 안으로도 윤곽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래, 좀 더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오늘 안으로 윤곽이 드러날 수 있을 듯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는 거 같아서 한 말이야. 나랑 비슷하게 끝날 거 같거든.”

내 표정이 어떠했는지 한 주무관이 빠르게 뒷말을 덧붙이는데, 그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멋쩍을 수가 없었다.

“아.”

“그냥 내일까지 해도 되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고.”

“네, 그럴게요.”

“우리 막내, 이젠 제법 잘하네.”

대답을 함과 거의 동시에 주문을 마쳤는지 박 주무관이 대견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직 갈 길이 멀었음에도 이렇게 칭찬해주는 팀원이 있다는 건 그야말로 큰 축복이었다. 민망했지만, 차오르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절로 씰룩이는 입가와 더불어 부산스럽게 손을 움직이고 있자니 이번엔 다른 쪽에서 말이 들려왔다.

“제법이 아니라 이 정도면 빠른 거지. 박 주무관 병아리 시절 생각하면 아직도 눈에서 눈물이 난다니까?”

“와, 그건 좀! 그렇게 팩트를 말씀하시면 제가 우리 막내 앞에서 세울 체면이 없어지잖습니까!”

“푸핫! 진짜 그땐 고역이었지.”

“제가 박 주무관 일 가르치느라 얼마나 고생이었는지 모릅니다.”

“저도 좀 고생했던 거 같군요.”

“와. 다들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죠! 제가! 우리 막내만큼 노력한 건 아니었지만, 제법 똘똘하게 일 처리 했다고요!”

“제가 진짜 현장에서 박 주무관 뒤처리하느라 고생했죠.”

이 얼마 만에 보는 만담인지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자니 옆자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옆을 보니 언제 앉았는지 책상에 턱을 괸 채 팀원들을 요목조목 살피는 이영혁 부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만큼은 알겠다. 팀원들을 바라보는 이영혁 부장의 태도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몹시도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슬며시 휘어진 눈매도, 살짝 올라간 입술도 그렇고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게 무척 즐거워 보였다.

“자, 오늘은 다들 열심히 했으니 식사 전까지 좀 쉬자!”

“예, 팀장님!”

“흐아아, 이제 숨 좀 쉬나요.”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희도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괜히 손이 늘었다가 번거로우실까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고생은요. 매일 하던 일인데요. 더군다나 저희 일 도우려 파견 나온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감찰부는 감찰부가 할 일을 하시면 됩니다.”

“하하,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선을 긋는 것처럼 들렸지만, 또 다르게 들으면 일이 많은데,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팀장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이영혁 부장이 고개를 주억이는 걸 보니 다행스럽게도 후자 쪽으로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

만약 헌터부에 호감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방금 전 팀장이 한 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거다.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니 아주 조금은 경계심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 누그러짐은 오늘 오전에 찾아온 그 남자를 대하던 그의 태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일단은 이영혁 부장 역시 협회 측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단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괜히 공통점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마음을 풀 생각은 없었다.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던 말을 상기하며 이영혁 부장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내일까지 완성하면 될 거란 말을 들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만큼 집중력이 괜찮은 오늘 보다 열심히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이 일을 손에 익히자 다짐하며 한 번 더 집중력을 끌어 올려 다시 일에 몰두했다.

모두가 함께한 점심 식사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특히 협회가 수령해 가는 부당한 협조금과 관련해 모두가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의견이 같으니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무척 즐거울 지경이었다.

식사 후 노곤하게 풀린 몸을 끌고 자리에 와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 자리에서 들려온 소리에 흐트러진 몸을 바로 세우며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어?”

“무슨 일이야?”

“그게, 어제저녁에 헌터부 관련한 뉴스가 떴다고 했잖습니까. 별생각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큰데요?”

그 뉴스라면 나도 아는 것이었다. 어떤 반응이기에 한 주무관이 저리 놀란 걸까 싶다. 나는 곧바로 검색 사이트를 켜 그 내용을 살폈다.

“와, 이러다가 여론 덕분에 숨통 좀 트이는 거 아닐까요?”

“그랬으면 좋겠군요.”

“기왕이면 헌터들이 많이 채용되었으면 좋겠네요. 계약직 헌터들도 정규직으로 좀 돌리고요.”

“아아, 그렇게만 되면 협회 소속 헌터들도 공무원 하겠다고 오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

“예. 능력이 높다면 더 좋겠지만, 일단은 부족한 헌터 수만이라도 채워졌으면 좋겠군요.”

모두가 같은 걸 보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나는 팀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뉴스 기사들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았다.

“……”

그간 헌터와 헌터부, 협회와 관련된 기사는 많이 봐 왔지만, 이렇게 가려운 부분을 확실하게 긁어 주는 뉴스 기사가 쏟아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치 큰 사건이 생겼을 때처럼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헌터부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기사 댓글들을 보니 의견이 분분하군요. 그래도 헌터부 관련하여 좋은 댓글들이 많아 다행입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영혁 부장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다들 알아주셔서 다행이에요.”

“헌터부 관련 댓글들은 언제나 좋은 게 많았죠.”

“아무렴요. 이렇게 편을 들어 주는 시민들이 없었다면 이 일 못 해 먹죠.”

이번에도 역시나 이영혁 부장의 말에 호의적인 태도로 팀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에 동조하며 이번엔 그가 말한 것처럼 기사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

언제나처럼 헌터부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들이 가득한 댓글 창이었지만 이영혁 부장의 말마따나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었다.

- 헌터부 진짜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있었네. 사람이 이렇게까지 부족할 줄은 몰랐어.

└ 그러게나 말이야. 지금껏 별생각 없었는데, 같은 직장인으로서 응원하게 된다. 탈출 기원!

└ 우리가 내는 세금 받으면서 일하는 건데, 당연히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 아냐?

└ 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건 맞지만 너라면 그 돈 받고 목숨 걸고 던전 가고,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과중한 업무 처리하고 싶겠냐? 기사 똑바로 읽었어? 얘네 주 5일제도 아니라고 하잖아. 이 주에 한 번씩 쉰다 않냐!

└ 계약직 수가 정규직보다 월등히 많으니 그 사람들부터 정규직으로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사람들도 나라 소속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이 되면 새로 온 사람들보다야 손발이 맞을 테고.

└ 정규직으로 돌려야 하는 거 찬성

└ 내가 찾아보니까 계약직 헌터들은 능력치가 다 하급이던데. 그보단 질 좋은 이들을 데리고 와서 효율 뽑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어떤 반응일까 했는데, 기사마다 달린 댓글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달려 있었다.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간 중간 보이는 글들이 참 마음을 쓰라리게 만든다.

“후우.”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의견이 좀 갈라지는 것 같기는 해도 이렇게 헌터부를 위한 소리를 내주는 건 무척이나 반길 일이었다. 또 몰랐다. 이들의 목소리에 윗선들이 반응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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