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11)화 (111/246)

108화

18. 뜻밖의 상황

“협조금 관련된 내용은 굳이 발걸음하지 않으셔도 사이트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협회와 공조한 사이트는 협조문을 포함해 던전 협조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거기서도 직접 프린트할 수 있었다. 그래, 굳이 이렇게 서로 불편하게 얼굴을 마주할 필요가 없는데도 직접 이곳을 찾았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듯했다.

되도록 차분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응했건만 좀처럼 반응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한참을 날 바라보는가 싶던 남자의 시선이 한 번 더 사무실 안을 훑더니 이윽고 한 곳에 고정되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남자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부팀장 쪽이었다.

혹 내가 아닌 부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

“오래간만에 보는군요.”

“…이곳에 있을 분이 아닌지라 잠시 헛것을 봤나 했습니다.”

“하하, 이미 정보가 다 들어가셨을 텐데 모른 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영혁 부장과 아는 사이였는지 무척이나 친밀한 대화가 오간다. 어느새 자리를 옮긴 남자가 그와 악수를 하며 친밀하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혼란이 가중되는 기분이다.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던 중, 옆구리를 찌르는 손길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김 주무관이 남자 쪽을 가리키곤 이내 엄지를 치켜든다. 뻐끔거리며 잘했다는 말까지 전달하는 게 조금 전 대응이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미소 짓곤 다시 이영혁 부장 쪽을 보자 단번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사이트 이용이 미숙해 서류 가지러 왔습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입가에 미소를 단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했던 마지막 말에 대한 답변이라는 걸 알아차리곤 바로 답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던전 서류면 되는 거죠?”

“예.”

미숙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나 싶었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곧바로 지난주 금요일 던전 협조금 관련 서류를 열어 프린트 버튼을 눌렀다.

지잉-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반응하는 프린터가 오늘따라 무척 마음에 든다. 자리서 일어나 프린터로 가 마지막 장까지 나온 프린트물을 확인 후 정리해 남자에게 전달했다.

“여기 있습니다.”

“서명날인은 받지 않습니까?”

정말 사이트와 거리가 먼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멈칫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대응했다. 아니, 대응하려 했다.

“거기 보시면….”

“거참, 거기 전부 다 들어 있으니까 확인했으면 어서 가 봐요. 지난주 던전 건으로 여기 지금 매우 바쁘니까!”

설명도 채 하기도 전에 치고 들어온 팀장이 목소리를 높인다. 평소보다 말투는 사근사근했지만, 그 속에 담긴 가시는 나조차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팀장의 이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지 남자는 그저 날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에 확실히 답해준다면 앞으로 이런 식으로 찾아오진 않겠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곤 남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방금 전 건넨 서류를 다시 받아 서류 곳곳에 들어간 기명날인을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날인이 되어 있어요. 이전과 효력은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뚫어지게 보던 남자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서류를 건네자 내가 가리킨 부분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남자를 지켜볼 때였다.

“연하늘 주무관은 친절하군요.”

“…네?”

난데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해 반문하며 보니 남자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자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덕분에 큰 도움 받았습니다. 돌아가서 할 말이 많겠어요.”

“어, 그.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었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전에 보았던 오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남자의 태도가 너무도 어색할 따름이다. 그뿐이랴, 그 모습이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해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다른 분들도 친절하긴 하지만, 연 주무관님이 워낙 마음이 좋으셔서 말입니다. 저희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남자 한 사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건만, 이번엔 이영혁 부장까지 말을 얹는다. 그것도 무척이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칭찬을 듣는 건 좋았다. 그래, 좋긴 했으나 칭찬하는 사람이 사람인지라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한쪽은 협회, 한쪽은 청와대 소속 사람들이 쏟아 내는 칭찬에 점차 얼굴이 벌게지는 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협조할 일이 많은데, 연하늘 주무관님 도움 많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김 주무관님을 비롯해 저희 팀원 모두 협조 관련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칭찬이 거듭되어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꼬아 들은 걸까.

한 번 더 말을 걸어오는 남자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좀 그랬다.

나를 콕 집으며 도움을 받겠다는 말에 팀원들 전체를 아우르며 답하자, 웃던 남자가 멈칫하더니 좀 더 환한 미소를 입가에 매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협조를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협회도 열심히 응하고 또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

한 번 꼬아 들어서 그런 걸까, 저 말 또한 썩 좋게 들리진 않았다.

그저 콧대를 세우며 보여주기 식으로 응하는 태도를 고수하던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 바로 청와대에서 나온 이영혁 부장 앞이라는 이유 말이다.

노력이라는 말로 그간의 행패를 포장하는 모습이 이보다 더 아니꼬울 수가 없었다. 김세현이 던전을 클리어 하자마자 곧바로 헌터부로 찾아와 협조금을 올려 달라 말하던 게 생각나자 절로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너무 친절하게 대응하지 말 걸 그랬나 싶다. 아니, 찾아온 손님이기에 당연히 친절히 대하는 게 맞았지만, 괜히 후회된다는 게 맞을 듯했다.

말없이 날 바라보던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는가 싶더니 다시 이영혁 부장을 바라본다. 이어진 말에 나는 잔뜩 세웠던 경계심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걸 인지했다.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협회도 항상 좋은 일만 있길 바랍니다.”

남자와 이영혁 부장이 웃으며 악수를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법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어찌 된 게 지금은 겉모습만 화기애애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어서 가쇼.”

“바쁩니다, 바빠.”

“안녕히 가세요.”

“…….”

이영혁 부장과 인사를 마친 남자가 팀원들에게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건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에 감찰부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남자는 이 인사가 마음에 든 모양인 듯했다.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린 남자가 한 번 더 내부를 둘러보더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남자가 나가는 그 순간, 정적이 사무실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와, 저 싸가지. 무슨 일로 사람 좋은 척 연기하는 걸까요?”

“청와대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말이 들어가서 잘 보이려 그런 걸 겁니다. 물론, 막내한테도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듯했고요.”

“저도 느꼈습니다. 연 주무관님에게 눈도장을 찍고 싶어 하는 듯하더군요.”

“…제 눈도장을요?”

난 전혀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다들 어떻게 인지한 건지 모르겠다.

목소리가 제법 컸는지 입을 엶과 거의 동시에 사무실 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 게 보였다.

“어, 그…. 모르셨습니까?”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던 듯 이영혁 부장이 물어왔다. 당혹감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을 보니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누가 봐도 뻣뻣한 움직임으로 삐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가 무슨 이유로 나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한 건지도 알 수 없거니와, 설사 그런다 한들 느닷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협회에서 구린내 나는 뒷공작을 해 보려 했던 걸까? 팀원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으니 제일 만만해 보이는 날 노리고?

“풉!”

“크흡!”

“큼, 큼! 그게 우리 막내는 아직 저놈을 몇 번 보지 못해서 말입니다. 어떤 놈인지 잘 몰라요.”

돈독에 오른 협회 측의 의견을 가지고 오던 남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팀장의 설명을 들은 이영혁 부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모습을 보니 이영혁 부장 또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모르는 남자의 또다른 모습이 있기에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 텐데, 여기서 그걸 물어본다면 또다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올 듯했지만, 역시 확인을 하는 편이….

“그건 그렇고 이 부장님이 저 사람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래도 확인하고자 했는데,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렸음을 인지하곤 오가는 대화를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다시피 저쪽에서 정계 쪽으로 이리저리 줄을 대고 있잖습니까. 그 때문에 뜻하지 않게 몇 번 봤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협회 쪽 사람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십시오. 저는 온전히 청와대 소속이니까요.”

“하하! 그렇게 격하게 설명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혹여 그 남자와 같은 선상으로 취급당하는 줄 알고 긴장했는데, 다행이군요.”

“저놈과 비교 선상에 올리면 안 되지요. 원하는 게 있으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얻는 놈인데요.”

도대체 얼마나 악랄하기에 저렇게까지 저평가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니, 조금은 알 듯도 했다. 항상 협회 소속 헌터를 생각한답시고 와서는 수령할 금액을 올리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건 그렇고, 우리 막내 대응 잘하던데요?”

“아아. 나도 봤지! 잘했어!”

“그, 감사합니다.”

“헌터부를 찾는 사람들은 민원인이 아니고 손님이라 생각하는 거 언제나 잊지 말고!”

“그래, 민원인이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을이 되는 거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헌터부만큼은 찾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아야 해. 그래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면 바로 쫓아내지!”

“손님이 왕인 시대는 이미 갔다, 이거지.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말이야!”

팀장에 이어 팀원들이 말을 덧붙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이긴 했지만, 한 번 더 여기서 짚고 지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손님을 왕으로 대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무척 잘 어울렸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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