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18. 뜻밖의 상황
앞부분은 조금 놓쳤지만, 뉴스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헌터증을 지닌 총 헌터 수와 나라 소속 헌터 수를 비교한 그래프 옆으로 나라 지도가 화면을 채운다. 화면 전환이 되길 기다린 기자가 입을 열자,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TV 화면에 집중했다.
―이 그래프는 현재 우리나라 헌터부 공무원 숫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래프는 우리나라 국민의 총수를 보여줍니다. 수치상 헌터부 공무원 한 명당 맡게 되는 국민의 수는 약 육십만 명입니다. 이는 타 공무원직 수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의 인원이 헌터부에 몸을 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과중한 업무를 도맡은 지역은 단연 서울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시 헌터부의 상황을 보시겠습니다. 부서 소속 공무원의 수는 총 여섯으로 이 중 현장 업무를 볼 수 있는 헌 터는 네 명밖에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계약직 헌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 또한 던전이 생성되는 빈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로 인해 항상 협회에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상당한 세금이 협조금 명목으로 협회로 흘러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서울시 예산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렇게 그래프에 나와 있듯 서울시 예산의 상당 부분을 협조금으로 사용 중인 상황 속에서 헌터부 소속 공무원들의 처우는 그야말로 열악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전국의 헌터부 소속 공무원 및 계약직 헌터들을 위해서라도 정부에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간 뉴스에서 헌터부와 헌터, 그리고 협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다루긴 했지만 이보다 더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곳이 과연 있었나 싶다. 나라 소속 헌터의 부족, 그리고 새어 나가는 혈세까지 다룬 뉴스를 보게 되다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가슴 근처가 묘하게 간질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노고를 알아주는 이가 있음을 알게 돼서 그런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감정을 다스릴 때였다.
―형?
아차.
별안간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그와 통화 중이었음을 깨닫곤 황급히 답했다.
“네, 세현 씨.”
―식사 끝났어요?
“…다 먹었어요.”
뉴스에 집중하다 보니 면이 좀 남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배가 찬 상황이라 여기서 젓가락을 놔도 괜찮았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뒷정리를 한 뒤, 다시 소파로 돌아와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세현 씨.”
―…….
뭐라 말할 법도 한데, 좀처럼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혹여 전화가 끊긴 걸까 싶어 화면을 살폈지만, 전화는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세현 씨?”
―네, 형.
조금 늦은 답이었지만, 부름에 답이 돌아오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소파에 몸을 묻으며 방금 전 본 뉴스를 입에 담았다.
“세현 씨 덕분에 뉴스 잘 챙겨 봤어요.”
―…뭐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큰 도움 받았어요. 저런 뉴스를 보니까 기운이 나네요.”
―나랑 통화하는 건 기운 안 나요?
뉴스 내용은 내용이었고, 통화는 통화였다. 약간은 불퉁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들으니 아무래도 맞춰주는 게 나을 듯했다. 나는 바로 답했다.
“당연히 기운 나죠.”
―뉴스보다 더요?
“네.”
따지고 보면 이렇게 김세현과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기분은 좋았다. 방금 전 뉴스를 들었을 땐 그저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지만, 기운이 좀 더 나는 건 전자였다.
당연히 으스댈 줄 알았건만, 이번에도 김세현은 침묵으로 일관할 따름이었다.
조용히 그가 무슨 말을 꺼낼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도 형이랑 이렇게 통화하는 거 좋아요.
“…….”
―형 보는 건 더 좋고.
“아.”
조금 전관 달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오는데, 그 말에 담긴 파장은 실로 지대했다.
날 보는 게 더 좋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그 좋다는 뜻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좋다가 아닐 것임에도 심장이 왜 이리 뛰는지 모르겠다. 삽시간에 먹먹해진 귓가와 함께 온몸을 집어삼킨 심장 박동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쉰 소리라도 답해야 했지만, 좀처럼 목소리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더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
“막내야,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많이 피곤해 보여.”
티를 내지 않으려 했건만, 역시 팀원들의 눈을 속이는 건 무리였다. 자료를 살피던 중 뻑뻑해진 눈을 잠시 휴식하던 와중 박 주무관이 건넨 말에 볼을 긁적였다.
“잠을 좀 설쳐서요.”
“많이 피곤하면 점심시간에 눈 좀 붙여. 피곤할 땐 잠깐이라도 쉬는 게 능률이 살아.”
박 주무관에 이어 김 주무관 역시 말을 보탠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답했다.
“네, 그럴게요.”
“그건 그렇고 어제 뉴스 보셨어요? 헌터부 인원 부족하다는 뉴스 말이에요. 오늘 보니까 인터넷을 뒤집어 놓았더라고요.”
“그 뉴스라면 저도 봤어요. 정말 괜찮더라고요.”
“그치?”
내가 동조하자 뉴스 이야기를 꺼냈던 박 주무관의 얼굴에 혈색이 돈다. 되묻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헌터부 관련한 기사는 많이 나왔지만, 이렇게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뉴스는 없더라고요.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더라니까요?”
어제 김세현과의 통화가 아니었다면 놓쳤을 뉴스였다. 이어진 박 주무관의 말에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자니 다른 팀원들도 관심이 생겼는지 하나같이 모니터를 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매체에서 이런 내용을 다룰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요?”
어제 뉴스와 관련된 기사를 봤는지 팀장과 부팀장, 그리고 한주무관이 차례대로 의견을 내놓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간의 뉴스가 얼마나 매가리가 없었는지 알려 주는 듯했다.
“이런 뉴스를 윗선에서 봐야 하는데 말이야.”
“윗선 하니까 생각났는데, 오늘은 좀 늦네요?”
그러고 보니 아직 감찰부 사람들이 오지 않았지. 평소라면 적어도 10시에는 왔는데,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음에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의아할 따름이었다.
“때가 되면 오겠지. 여기서 조사한 내용 보고하는 시간도 있을 테고.”
“그건 그러겠네요.”
“자, 우리는 감찰부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 이번 던전 피해가 상당해서 정리할 게 많아.”
“예!”
“알겠습니다!”
“네!”
협조금 관련된 내용은 이미 작성이 끝났지만, 다른 이들이 맡아 정리 중인 내용들은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열심히 팀원들의 일을 분배받아 돕고 있었고 말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으니 이젠 일에 집중할 때였다.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지도를 보며 손가락을 풀곤 차근차근 대조 작업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깜짝이야.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조용하던 사무실에 별안간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집중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흐름이 끊길 줄은 몰랐다.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이영혁 부장과 두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닙니다, 하실 일 하셔야죠.”
“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팀원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던 이영혁 부장이 이윽고 내 앞에 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연 주무관님.”
“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이는군요.”
“잠을 좀 설쳐서요.”
갓 인사를 나눈 이영혁 부장까지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얼굴에 피로가 짙게 자리한 모양이었다. 한 번 더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데, 대뜸 그가 정수기 쪽을 가리켰다.
“말 나온 김에 커피라도 한 잔씩 하고 일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어, 그거 좋죠.”
“이거 저희가 대접해야 하는데, 이렇게 부탁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뭘요. 지난주 생성되었던 던전 때문에 바쁘신데, 이렇게라도 도와드려야죠.”
“…….”
사람이 어쩜 저렇게 듣는 사람의 기분이 말랑해지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혹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싶어 주변을 살피니 팀원들의 표정 또한 무척 밝아 보였다. 마치 나와 같은 걸 느낀 듯 보이는 모습에 다시금 이영혁 부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 여기 마시면서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커피가 좀 당겼는데, 덕분에 마십니다.”
“뭘요. 연 주무관님도 어서 드시고요.”
팀원들에게 커피를 전달한 이영혁 부장이 다가와 커피를 내민다. 그것을 받으며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 부장님.”
“예.”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친 이영혁 부장이 활짝 웃어 보인다. 지난주에도 사람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그 친절함이 배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친절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에 얼떨떨했지만, 지금은 그것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곤 마저 하던 작업을 이어 나갔다.
“…….”
일하는 중간중간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더욱 일깨우니 이보다 더 집중이 잘 될 수가 없었다. 손도 제법 빨라지는 것 같았고 말이다. 만족스럽게 계속해서 일감을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실례합니다.”
“아….”
이런 건 기시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흐름이 끊겼다는 사실에 절로 소리를 뱉으며 고개를 드니 사무실 문고리를 붙잡고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사람. 분명 어디서 봤는데….
“협회서 무슨 일로 손수 찾아오셨습니까?”
아, 협회!
협회 하니 생각났다. 조회는커녕, 팀원들이 출근도 하기 전 사무실을 찾았던 예의 그 협회 소속 사람이 말이다. 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남자를 바라보니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이와 시선이 겹쳤다.
“…….”
“지금 바쁘니까 하실 말씀 있으면 얼른 하고 가십쇼.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요, 더는 올릴 협조금도 없어!”
얼마나 시달렸으면 대번에 올릴 협조금이 없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그 말을 뱉은 걸지도 몰랐다. 자연스럽게 이영혁 부장이 있는 자리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협조문 관련 서류 가지러 왔습니다만.”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담은 채 말이다.
“…뭐?”
“제 귀가 이상합니까? 지금 이상한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일을 너무 많이 했나 봅니다. 저도 환청이 들려요.”
협회 소속 사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환청이 들린다는 말이 들려온다. 나 또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다들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같은 걸 들은 듯했다.
협회에서 헌터부로 협조금 관련 서류를 가지러 왔다니.
이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없을 듯했다.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지금은 계속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협조금 관련된 부분은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고 있음을 상기하곤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