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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09)화 (109/246)

106화

18. 뜻밖의 상황

일하는 내내 옆자리 사람을 신경 쓴다는 건 고역이었다. 제아무리 친근함을 내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뜨거운 물로 샤워 후 거실로 나오니 이제야 좀 퇴근한 기분이 난다. 노곤하게 풀린 몸을 이끌고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아.”

주말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몽롱한 느낌이 현실을 자각하려면 먼 듯했다.

“…….”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김세현의 집에서 보낸 시간은 이게 현실이 맞나 싶을 만큼 즐거웠으니까.

첫날엔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영화를 봤다. 다음 날 역시 고기도 먹고, 영화도 봤지만 그날 가장 즐거웠던 건 김세현이 말해 준 던전 속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 역시 이야기에 흠뻑 빠졌었고 말이다.

제아무리 즐겁게 지냈다고 한들 이렇게 자꾸만 생각나는 건 불편한 것 하나 없이 마음 편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아쉽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순 없기에 아쉬움이 더욱 커지는 기분이다. 연거푸 한숨을 뱉으며 지난 주말을 곱씹고 있을 때였다. 잊고 있었던 금요일 밤의 상황이 번뜩 떠오르자, 그대로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구였을까.”

사적인 부분이기에 이 이상 관심을 보이는 건 옳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온 날 선 김세현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온 낯선 남자의 목소리는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뿐이었다.

도련님이라 꼬박꼬박 부르긴 했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김세현을 무시하는 느낌은 너무도 강렬했다. 도대체 어르신이 누구기에 타국에서조차 서로 모셔 가려 안달인 김세현을 그런 취급할 수 있는 걸까.

“…….”

그때 상황을 생각하고 있자니 괜히 울화가 치솟기 시작한다. 그 어르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김세현이 있기에 그 어르신도 몸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을 그런 취급하다니.

“후우.”

차라리 그때 나서서 상대방에게 뭐라고 한마디 해 줬으면 지금 이 불만이 조금은 사라졌을까?

드르륵-

하필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핸드폰 진동음이 들릴 줄은 몰랐다. 소파에 걸쳐 둔 윗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생각지도 못한 이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바로 메시지 함을 열었다.

[형 뭐 해요? ٩( ᐕ)و?]

[쉬는 중이에요.]

[ꉂ(ˊᗜˋ*)。밥은 먹었어요? 뭐 안 먹었으면 내가 먹을 거 가지고 갈 수 있는데 ヾ(*´∇`)ノ ]

[마음만 받을게요.]

주말 내내 얻어먹은 게 있는데, 여기서 또 얻어먹는 건 염치가 없는 것이었다. 저녁 이야기에 배가 좀 고픈 듯했다. 바로 자리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oO(형 보고 싶어요) ]

[어제도 봤잖아요.]

[그래도 계속 보고 싶은데.(⋟﹏⋞)]

“하하.”

이렇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참 김세현답다. 컵라면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핸드폰은 계속해서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손을 바삐 움직이면서도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번 주 주말에 또 집에 올래요?(๑╹ڡ╹)╭ ~ ♡]

[형 좋아하는 음식 있으면 말해요.(๑>ڡ<)☆]

[아, 보고 싶은 영화 있으면 알려 줘요. 다 준비할 수 있어요.乀(ˉεˉ乀) ]

“…….”

누가 봐도 이건 놀러 오라고 꼬시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를 보니 지난 주말이 나만 즐거운 게 아니었던 듯해 괜히 기분이 좋다. 홀린 듯 응하는 답장을 쓸 때였다. 시야에 들어온 집 상황을 보곤 뒤늦게 정신을 다잡았다.

[이번 주말은 출근해야 해서 시간이 나지 않을 거 같아요. 집안일도 해야 하고요.]

노는 것도 좋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청소만큼은 미루지 말고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루를 미루다 보면 어느샌가 일주일이 되고, 또 한 달이 될 게 뻔했다. 한 번의 미룸으로 인해 그간 열심히 관리해 온 집이 난장판이 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내일 사무실로 갈게요.]

[아직 청와대에서 나온….]

청와대에서 나온 이들이 아직 사무실로 나오고 있다는 걸 알리려던 중이었다. 글을 입력하다 말고 멈춘 채 가만히 메시지를 보다가 적었던 내용을 지웠다.

“…….”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기에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아무래도 지난 주말에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괜히 청와대 이야기를 꺼내서 김세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올 때였다. 갑자기 울린 전화벨에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왜 답장하다 말아요?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을 뿐인데, 이렇게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당혹감을 갈무리하며 답했다.

“…입력 중이었어요.”

―난 또. 피곤해서 답장하다가 잠든 줄 알았잖아요.

“피곤은요. 주말 내내 푹 쉬어서 컨디션 괜찮아요.”

월요일이 이렇게 몸이 가뿐했던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컨디션이 좋다는 말을 들은 김세현이 침묵하자 덩달아 입을 다무니 한참 만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메시지 말고 이렇게 계속 통화해요. 형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저 이제 저녁 먹으려던 참이라서요.”

식사하며 통화하는 것도 좋았지만 라면을 먹을 예정인지라 먹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릴 것이었다. 난색을 보이며 거절하려는데, 김세현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 왔다.

―영상 통화할래요?

“그건 좀.”

―난 형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른데!

“그래도 좀…. 좀 그래요.”

먹방 크리에이터도 아니고, 먹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영상으로 보여 준다는 게 좀 그랬다. 더군다나 통화 상대가 김세현이라면 더더욱 걸렸다.

―형이 곤란해하는데 어쩔 수 없죠. 그냥 계속 통화해요.

“좋아요.”

영상통화를 할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전화 통화를 이어 나가는 편이 백 배는 낫다.

삐익-

때마침 전기 포트에 안친 물이 다 끓은 모양이다. 쥐고 있던 핸드폰을 식탁에 내려놓은 뒤 스피커 모드로 전환해 마저 컵라면 용기에 물을 부었다.

―저녁은 뭐 먹어요?

“컵라면이요.”

―…그걸로 배가 차요?

점심을 늦게 먹은 터라 컵라면 하나면 충분히 배가 차는 상황이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김세현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간단히 요기만 하려고요.”

―그냥 내가 먹을 거 사 들고 갈까요? 사람이 어떻게 컵라면 하나만 먹을 수 있어요?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이거면 충분해요. 모자라면 즉석밥이랑 같이 먹어도 되고요.”

집에 먹을 게 있는데 굳이 김세현을 오라 가라 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먹을 걸 사 오겠단 말을 들으니 괜히 지난 주말 먹었던 고급 음식이 떠올랐다. 김세현이라면 정말 고급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챙겨 올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하니 이번에도 역시나 김세현은 침묵할 따름이었다.

다른 때라면 침묵하는 이에게 관심이 쏠렸겠지만, 지금은 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컵라면 뚜껑을 야무지게 막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잠자코 있던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형. 사무실에 내 라면, 잘 있죠?

“네. 잘 있어요.”

―다른 사람 먹는다고 해도 절대 주면 안 돼요, 알았죠?

“…….”

설마하니 김세현이 라면 봉지가 몇 개 남아 있는지 기억하고 있진 않을 거다. 지난번에 팀원들끼리 함께 먹었던 라면을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럴게요.”

―뭔가 의심스럽지만, 형이니까 넘어가 줄게요.

“…….”

촉도 이만 한 촉이 있을까 싶다. 멈칫하다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듯해 곧바로 젓가락을 들었다.

―얼른 먹어요. 먹는 동안 말 안 시키고 조용히 있을 테니까.

라면을 먹을 예정인지라 지금 이 말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상대방은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고개를 주억이며 뚜껑을 열어 면을 휘저었다.

“그럼 빨리 먹을게요.”

―너무 빨리 먹진 말고요. 입천장 다 데면 어쩌려고요.

“하하.”

―뭐, 입천장 데면 내가 기가 막히게 빨리 낫는 약 발라줄게요. …아주 격정적으로요.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내가 발라주면 다음부턴 툭하면 약 발라달라고 할걸요?

“하하.”

약을 바르는 데 격정적이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어진 말 또한 썩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라면을 먹다가 데일까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라면을 먹는 데 이렇게 과한 걱정을 사도 되나 하는 머쓱한 마음과 더불어 알 수 없는 간질거림이 몸 안을 채우는데, 그 속도가 어지간히 빠른 게 아니었다. 나는 삽시간에 온몸을 잠식한 느낌을 모르는 체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김세현과 대화를 나눴기 때문일까, 후루룩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김치를 씹는 소리만 들려오는 상황이 조금은 어색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음식 먹는 소리가 어색한 것보다 그 와중에 조용하기만 한 김세현에게 자꾸 신경이 쏠린다는 게 맞을 듯했다.

먹는 소리만이 가득한 정적 아닌 정적이 점차 의식되던 때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라면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아, 형. 잠깐 TV 켰어요.

마치 내가 어색해하고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기가 막힌 타이밍에 TV를 켰다고 말을 건네왔다. 순간 지난 주말 일이 떠올랐던 터라 이보다 다행일 순 없었다. 한결 누그러진 마음으로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TV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로 인해 현재 각 지역의 헌터부 소속 이들의 과로가 지속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관련된 영상 한번 보시겠습니다.

…헌터부?

갑자기 웬 헌터부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재차 젓가락질을 멈춘 채 들려오는 뉴스 소리에 집중했다.

―지난 방송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던전 생성은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타국에서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이어 가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바로 헌터 보유 수를 늘리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로 S급 헌터인 김세현 헌터에게 접촉하는 외국 헌터들이 있어 큰 우려를 샀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타국 헌터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특별한 대책조차 보이지 않고 있어 큰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보도에서 다룰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뉴스를 경청하니 목소리가 익숙한 것이 아무래도 부팀장과 함께 사무실에서 보았던 그 채널인 듯했다. 계속해서 수화기 너머로 뉴스가 전해졌지만, 이전처럼 그래프 및 영상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터라 내용이 머리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귀로 듣는 것보단 TV를 켜 시청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테이블 쪽으로 이동했다. 곧바로 리모컨을 집어 들곤 전원 버튼을 눌렀다.

“…….”

이어 채널을 몇 번 돌리니 익숙한 뉴스 채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대로 부엌으로 돌아가 라면과 핸드폰을 챙겨 거실로 돌아오니 한창 헌터부와 관련된 내용이 전달되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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