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08)화 (108/246)

105화

18. 뜻밖의 상황

“막내는 이거 맡아서 하면 돼.”

“네!”

금요일에 생성된 던전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듯, 일과가 시작됨과 동시에 일감이 주어졌다.

한 주무관이 건넨 일감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언제 옆자리로 왔는지 이영혁 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챙겨 온 일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지난주 던전 상황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곧바로 CCTV 현황 지도와 함께 파일을 열어 던전 끝부분을 확인하며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왜 작업하는 겁니까?”

말없이 작업하는 걸 지켜보던 이영혁 부장이 대뜸 물어왔다. 나는 일감과 CCTV 지도를 번갈아 보며 설명했다.

“1차적으로 총무부에게 피해 규모를 어림짐작해 전달하긴 했지만, 좀 더 자세한 데이터가 필요해서요. 또한 차후 데이터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작업 중입니다.”

“…이 모든 걸 헌터부에서 작업한다는 말입니까?”

놀랄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많은 양을 소수 인원으로 해결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으니까.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영혁 부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특히 외근 나가시는 분들은 일이 상당한 편이에요. 아무래도 나라 소속 헌터 수가 적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소화해야만 하는 일이 많습니다.”

나야 사무직인지라 딱히 하는 게 없었지만, 외근을 나가는 이들이 고생이었다. 언젠간 직접 나가 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가서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안 가는 편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사무직만 볼 생각은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일손이 부족할 때 뒤처리하는 것만이라도 도우려 현장으로 가 보고 싶긴 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나라 헌터 수를 거론하자 이영혁 부장의 입이 그대로 닫혔다. 그리고는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에 띄운 지도를 바라보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했을까, 지도를 보던 이영혁 부장이 입을 열었다.

“저 또한 나라 소속 헌터가 늘었으면 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잡음들이 있기에 협회로 빠져나가는 헌터들을 붙잡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있는 사람이라도 지켜야지, 계속 빠져나가게 두면 나라 살림만 더 어려워질 겁니다.”

잠자코 할 일을 하던 한 주무관이 말을 얹는다. 나는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윗선에서도 거듭 노력 중이고요.”

“노력도 좋지만, 성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솔직히, 헌터부 사람들이라고 마냥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것도 언젠가는 한계가 올 겁니다. 헌터부 인원 모두가 협회로 자리를 옮기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

이렇게 초강수를 두며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이영혁 부장의 위치가 위치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대화를 경청했다.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 없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청와대에서도 계속해서 국회로 푸시를 넣고 있단 점입니다.”

“그 푸시가 어서 통했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공무원이란 이름 아래 노력 중이지만, 피로가 누적되니 별의별 생각이 들곤 하니까요. 아, 말이 그런 겁니다. 말이.”

말만 그렇다고 치기엔 말에 박힌 가시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헌터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어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슬쩍 한 주무관의 표정을 살피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잠시나마 정말 협회로 이동하려는 마음이 있나 하는 걱정을 했던 게 무색할 만큼 한 주무관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안도하며 마저 하던 작업을 이어 나갔다. 아니, 이어 나가려 했다.

“그나저나 아이템 건은 어떻게 정리되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바로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일찍 자리를 비운 이들이 어째서 아이템 이야기를 아는 걸까.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영혁 부장을 바라보았다.

“건너 들었습니다. 아이템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와 관련하여 아무도 거론하지 않아 여쭤봤습니다.”

“거, 현장에 나갔던 헌터가 소유한 아이템으로 인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서강민과 관련된 일을 한낱 해프닝으로 정리할 줄은 몰랐다. 어째서 그러는 거냐 묻고 싶었지만, 팀장이 저리 말을 줄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혹시 서강민이 계약직이라고는 하나 같은 시청 소속이기에 감싸는 걸까.

“그렇습니까?”

“예.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니 너무 그렇게 기대하진 마십시오.”

“하하, 티가 많이 난 모양이군요.”

“엄청 많이 났습니다.”

“…….”

그건 그렇고 청와대 소속이기 때문일까, 아이템과 관련된 소식을 벌써 파악하고 있는 걸 보니 발이 넓긴 한 모양이었다. 서강민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한 걸 보면 수뇌부까지 연결된 건 아닌 듯했지만, 적어도 아이템 관련된 이야기를 파악하고 있다는 건 시청에도 듣는 귀가 있음을 의미했다.

머쓱한 웃음을 터뜨리던 이영혁 부장이 침묵하자, 자연스럽게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주려는데, 이영혁 부장이 내가 작업 중이던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집중한 모습에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단 사실이 뿌듯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뿌듯함에 사로잡혀 작업하던 걸 실수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느슨해진 정신을 바로 잡으며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띠리릭― 띠리릭―

“흠.”

별안간 울린 팀장의 전화다. 다른 날 같았다면 하던 일을 마저 했겠지만, 작게 소리를 뱉으며 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영혁 부장을 보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나 또한 슬그머니 의자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았다.

“…….”

전화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팀장이 좀처럼 수화기를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 만했다. 평소 같았다면 마음 편히 전화를 받았겠지만, 지금은 지켜보는 눈이 많았으니까.

“험, 험! 예, 서울시 헌터붑니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은 듯 팀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평소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아닌,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데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예, 지난주 던전 말입니까? 특별할 건 없었습니다. 아이템 건은 조사해 보니 해프닝일 뿐이었고요. 이런 날도 있는 거지요. 뭐, 그래도 얼마 가진 않을 테니 그렇게 좋아하진 마십쇼.”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팀장의 대답을 들으니 대충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짐작이 됐다. 아마 팀장의 사근사근한 태도를 거론 중이겠지.

“그건 아직 대화를 나눠 보지 못한 터라 이야기되면 전달하도록 하지요. …아니, 글쎄. 이야기를 나눠 봐야 협조금을 내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고 아까 말했는데, 왜 자꾸 물어요. 묻기는!”

“아.”

“이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긋나긋함을 유지하던 팀장의 목소리가 별안간 사나워졌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침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나 또한 편승하고 싶었지만, 옆자리엔 이영혁 부장이 있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 관리에 힘쓰며 계속해서 팀장을 보았다.

“그건 그쪽에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이 나긋나긋하게 말하니 만만하기라도 한 모양인 듯한데, 할 일 자꾸 떠넘기지 말고 알아서 처리하쇼! 한 번 더 일 미루거나 하는 낌새 보이면 파업할 테니 그런 줄 알고! 내가 숱하게 말했을 텐데? 답답하면 직접 던전 클리어하든가!”

직접 클리어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팀장이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를 보며 숨죽이던 중이었다. 수화기를 보던 팀장이 난데없이 이쪽으로 다가오자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자세를 바로 했다.

“방금 전화 들으셨습니까?”

“예. 들었습니다만….”

팀장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는지 이영혁 부장이 어색하게 답을 꺼냈다. 아무래도 지금 팀장과 이영혁 부장을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의자를 돌려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시청 놈들 말입니다! 매번 농땡이나 피우면서 자꾸 헌터부로 일을 떠넘기기 바쁩니다!”

“…그렇군요.”

“조금 전 통화 들으셨죠? 던전에 출동하랴, 헌터부가 처리할 일을 처리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타 부서 놈들은 던전 관련된 일을 계속해서 헌터부에 미루고 있다, 이 말입니다!”

“말씀을 들으니 자주 있는 일인가 보군요.”

“예! 던전에 나가는 게 쉬운 일이라 여기는지 매번 일감을 떠넘기는데, 사람이 쉴 수가 있어야죠. 정말 파업이라도 해야 하는지, 원!”

처음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어필하나 싶었는데, 말이 이어질수록 팀장의 강한 불만이 느껴졌다. 그간 말은 안 했지만, 팀장 역시 쌓인 게 많아 보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강하게 불만을 토로할 순 없었을 테니까.

“염 팀장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미약하지만 저도 한 번 이와 관련하여 윗선에 건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헌터부 모두가 앓는 골칫병입니다, 골칫병!”

“하하, 예.”

“이 부장님만 믿겠습니다.”

한 번 더 믿겠다는 말을 남긴 팀장이 자리로 돌아가기 전 내 어깨를 몇 차례 두드리더니 자리로 향했다. 그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

팀장이 저렇게 힘든 기색을 내비쳤는데, 아랫사람이 되어 하나라도 더 일감을 처리해 그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는 게 마땅했다. 나는 한 번 더 정신을 바로잡으며 맡겨진 일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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