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03)화 (103/246)

100화

17. 첫 방문

“형은 여리니까 내가 저기까지 데려다줄게요.”

“혼자 가도 돼요!”

다른 것도 아니고 공주님 안기라니, 이보다 더 민망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여리다는 말은 또 처음 듣는 말이었다. 비록 학창 시절 때 또래보다 좀 몸이 작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시간은 걸려도 입구까지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몸을 내리려 했지만, 도통 김세현의 몸은 내 힘으론 밀리지 않았다. 어설프게 김세현의 어깨를 오른손으로 짚은 채 뻣뻣하게 들려 있다가 팀장에게 업힌 부팀장을 발견하곤 멈칫했다.

“이동 차량이 없을 땐 자주 이용합니다. 그래도 하늘 씨는 탑승한 사람이 깨끗해서 낫군요.”

“기본료는 줄 거지?”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타 드리겠습니다.”

“오, 좋지! 언제나처럼 부탁하지!”

“예.”

“…….”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니 이런 상황이 자주 있었던 듯했다. 던전이 갓 생성되었을 땐 한 주무관이 팀장의 등에 업혔는데, 던전을 나갈 땐 부팀장이 팀장의 등에 업힌 상태였다. 지금껏 몸을 혹사한 팀장이 지치진 않을까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와중에 귓가에 닿은 뜨거운 숨에 뻣뻣하게 굳었다.

“형, 이제 갈까요?”

“다른 분들 출발하시면요.”

“뭐, 다른 사람들 먼저 출발한다고 해서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언제나 같긴 하죠.”

김세현의 다리가 무척 빠르다는 것쯤은 이미 겪어 본 바가 있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분명 얼굴이 익을 대로 익었을 게 분명했다. 더하여 몸까지 화끈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지금 상황으로 인해 온몸이 빨갛게 물든 듯했다.

“오, 그래? 그럼 우리 막내 바로 옮겨서 내려 주면 되겠다.”

“형. 던전이 클리어되긴 했지만, 던전에 들어온 건 처음이죠? 내가 여기 안 좀 구경시켜 줄까요?”

“아서라. 우리 막내 얼른 집 가서 쉬어야 내일 출근하지. 몸살 나.”

“던전 구경하고 이대로 내가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도 좋겠다. 그쵸?”

“아뇨, 절대 안 돼요.”

“풉.”

“큭!”

그간 사람들이 웃는 포인트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짚고 가야 할 듯했다. 단호한 대답을 들은 팀원들이 하나같이 웃음을 터뜨렸거나 또는 참는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왜들, 그렇게 웃으세요?”

“커흡! 저 더는 못 버틸 거 같아요. 먼저 자리 뜨겠습니다!”

“나도 먼저 간다!”

“저도 갑니다!”

왜 웃냐는 말에 돌아온 답은 먼저 자리를 뜬다는 말뿐이었다.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 그리고 한 주무관이 빠르게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향한 쪽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봐도 속 시원하게 웃기 위해 먼저 자리를 뜬 모습에 절로 표정이 불퉁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현장에 남아 있는 부팀장과 팀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큼, 큼! 그냥, 하늘 씨가 대견해서 웃는 겁니다.”

“그, 치! 우리 막내, 항상 단호하고, 또 대견하지!”

“…감, 사합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칭찬은 감사히 받는 게 맞았다. 저 말이 누가 들어도 그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크흡!”

“그, 서강민도 따라 와. 부팀장 바래다주고 안에서 대화 좀 나누자고.”

“…예.”

조용히 있던 서강민이 팀장의 말에 답한다. 나는 힐끔 그쪽을 보았다가 먼저 자리를 뜨는 팀장과 부팀장, 그리고 서강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형.”

“네.”

“진짜 이대로 집까지 바래다줄까요?”

“아뇨, 절대 안 돼요.”

“내가 바래다주면 정말 일찍 도착할 수 있는데.”

“…….”

“진짜 몇 분도 안 걸려 집에 도착할 수 있어요.”

“그래도 안 돼요.”

잠깐 일찍 도착할 수 있단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안 되는 건 안 됐다. 한 번 더 단호히 답하자 김세현의 눈가가 축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바래다주는 척하면서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

“그럼 나 계속 굶어요?”

“…어, 음.”

거기까지 생각은 못 했다. 난감함에 눈을 끔벅이다가 다시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형, 많이 피곤해요?”

“그건 아니지만요.”

피곤하긴 했지만, 많이 피곤한 건 아니었다. 물론, 여기까지 오며 건물 잔해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기에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한 터라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 왜 자꾸 안 된다고 해요?”

“으음.”

“…그냥 이대로 데리고 갈까?”

“헉, 그건 좀!”

다른 건 몰라도 이렇게 자리를 뜨게 된다면 분명 팀원들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될 것이었다. 빨리 집으로 가 씻고 그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역시 하던 것처럼 부팀장과 함께 이동하는 게….

“아까 보니 부팀장도 제법 지쳐 보이던데. 오늘은 그냥 집으로 바로 퇴근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그 사람, 피로가 누적되면 몸에서 이상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부팀장님이요?”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놀란 눈으로 김세현을 보자, 역시나 불퉁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은 그가 보였다.

“다른 사람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나랑 갈 거죠?”

“…….”

부팀장이 피로 누적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니 그와 퇴근하는 게 좀 그랬다. 더하여 그간 카풀하는 것조차 그가 알게 모르게 피곤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몸이 좀 힘들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만, 단호히 혼자는 안 된다고 말하던 팀원들이 있었다.

“형?”

“아, 네.”

“대답한 거 맞죠? 그럼 바로 가요!”

갑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말을 꺼내는 김세현이다. 그뿐이랴, 몸 또한 빠르게 움직였다. 생각지도 못한 빠른 움직임에 절로 김세현의 목을 감싸 안으며 그의 등 뒤로 보이는 풍경을 보다가 눈을 끔벅일 때마다 빠르게 변하는 풍경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뇨! 안 돼요!”

“왜 안 돼요.”

“저 좀 씻고 싶어서요.”

“…씻어?”

“네! 그러니까, 세현 씨 집 말고 우리 집이요.”

방금 김세현이 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한 상황이었다. 아니, 그보단 다시 던전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 집에서 씻어도 되는데?”

“안 돼요. 절대로!”

갈아입을 옷도 없는 상황에다가 처음 가는 집에서 씻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집은 다른 사람의 집도 아닌 김세현의 집이었고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말하자, 김세현이 빤히 바라본다. 나는 간절함을 담아 한 번 더 말했다.

“집에서 씻고 가면 안 될까요?”

“…뭐, 집 좋죠. 집으로 갈까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그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기가 자리한다. 평소완 달리 묘하게 만족스러워 보이는 웃음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네, 집이 좋아요.”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집이 좋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인 이가 다시금 빠르게 자리를 이동한다. 나는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그렇게 그의 목을 안았다. 그렇게 몇 번을 눈을 끔벅였을까, 다시금 변할 줄 알았던 풍경이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곁을 스쳐 지나가던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말이다. 어떤 건물의 테라스로 보이는 넓은 공간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풍경에 김세현을 안고 있던 손에서 힘을 조금씩 풀며 고개를 들었다.

“…….”

“세현 씨?”

고개를 듦과 동시에 날 바라보는 김세현이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몸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요? 그냥, 차로 이동하는 게 나을까요?”

이동하다 말았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를 보며 이리저리 살필 때였다.

“집 도착했어요.”

“네?”

누가 봐도 집이 아닌 공간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사는 건물의 테라스에서 집에 왔다는 말을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아니, 물어보려 했다.

“…….”

아니겠지.

씻고 오겠다고 했는데, 곧바로 오진 않았을 거다.

배가 매우 고파 보이던데, 어쩌면 정말 바로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이 생성된 구역은 김세현의 집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밥부터 먹어요. 아니지, 형은 먼저 좀 씻고요.”

정말 그의 집이 맞는 모양이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곤 답했다.

“…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입으로 직접 씻겠다고 말했고, 김세현 또한 같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어째서 저 단어가 이리 야릇하게 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빠른 이동으로 인해 식었나 싶던 몸에 열이 돌기 시작한다. 그뿐이랴, 날 빤히 바라보는 김세현의 시선도,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긴 지금의 자세도 전부 기분이 이상해지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

말없이 날 보던 김세현이 별안간 움직인다. 그에 무의식적으로 목을 끌어안았다가 황급히 정신을 다잡으며 말했다.

“저 좀 내려 주세요.”

“…….”

“멀리 이동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젠 직접 다닐게요.”

그래, 빠르게 이동하는 상황도 아닌데 굳이 이 자세를 고수할 필욘 없었다. 목을 안았던 손을 떼어 내며 말하자,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숨을 뱉은 그가 바닥에 날 내린다. 그대로 몸을 곧추세웠다. 그리곤 방금 전까지 날 안았던 두 손을 어정쩡하게 펼친 채 자기 손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그를 발견했다.

“세현 씨?”

“쳇.”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몇 번이고 양손을 보던 김세현이 짤막하게 한 번 더 숨을 뱉는다. 몹시도 못마땅해 보였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몸을 바로 하곤 옷을 단정히 한 뒤 그를 보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요.”

아침부터 굶었다고 했으니 지금쯤 뭐든 먹을 수 있을 만큼 허기졌을 것이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그 커다란 뱃고동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배가 고픈 수준을 넘어선 상태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김세현의 한쪽 팔을 붙잡은 채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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