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02)화 (102/246)

99화

17. 첫 방문

눈이 마주친 서강민이 말을 꺼내려다 말고 뚫어져라 날 바라보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김세현을 바라본다. 무언갈 가늠하는 듯 보이면서도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듯 보이는 것도 잠시였다. 다시 날 바라보는 서강민의 시선에 이채가 순간 어렸다 사라지는 걸 깨닫곤 이어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레드 리자드의 숨을 끊은 건 접니다. 즉, 아이템의 소유주는 저이기에 아쉽지만 그 대화는 그 정도만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와.”

굳이 누가 탄성을 뱉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에서 숱하게 들어왔던 목소리였으니 말이다. 김 주무관의 탄성 아닌 탄성을 들으며 성큼 다가온 서강민을 바라보았다.

“덩치, 나 지금 일정 중에 나온 거라서. 얼른 아이템부터 건네지?”

“아이템을 꺼내기 전만 해도 레드 리자드의 숨은 붙어 있었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김세현 씨.”

“하늘 형이 챙기지 않는다니 별수 없네요. 형 마음 바뀔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수밖에.”

“김세현 씨!”

“얼른 안 주고 뭐 해. 바로 안 가면 안 된다니까? 지금 준비하다가 온 거라서 얼른 돌아가야 한다고.”

“네가 준비할 줄도 알아?”

“그래. 그러니 빨리 줘.”

“염 팀장님! 그리고 김세현 헌터님!”

익숙한 무시였지만, 무시당하는 당사자는 절대 익숙하지 않을 것이었다. 잔뜩 성이 난 이가 목청을 높이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건 당연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제가 레드 리자드의 목숨을 끊었다는데, 어째서 염 팀장님은 협회 소속 헌터 편을 드는 겁니까! 저는 계약직이라 팀원도 아니라는 겁니까?”

“여기서 왜 그런 말이 나와? 그리고, 우길 걸 우겨야지! 서강민 헌터가 살아 있었다고 한 레드 리자드 숨이 끊어진 걸 내가 직접 확인했다는데, 왜 자꾸 살아 있었다고 우겨, 우기길!”

그래, 생각해 보면 이곳에 도착했을 때 팀장이 그런 말을 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팀장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 거짓이라곤 하나 섞이지 않은 사실임을 뜻했다. 그렇다는 건 서강민이 지금 혼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과도 같았다.

“…….”

자연스럽게 뇌리를 스친 돈을 밝히는 이미지가 서강민 위로 한 번 더 덧씌워지는 기분이다. 그뿐이랴, 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거라 여겼던 실망감도 조금은 샘솟았고, 말이다.

“제가 직접 아이템을 꺼냈습니다! 그건 팀장님도 보지 않으셨습니까!”

“보긴 봤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던전을 클리어한 건 이놈이고, 또한 레드 리자드 명줄을 끊은 것 또한 이놈이란 사실은 변치 않고.”

“난 내 아이템 찾으러 이곳에 왔는데.”

“하! 이번에 나온 아이템은 제 것이 맞습니다! 제가 어떻게 구….”

계속해서 아이템이 자기 것이라 주장하던 서강민이 말하다 말고 침묵하더니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구 다음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건진 모르겠지만, 제법 불안해 보이는 모습인 걸 보니 뭔가 하면 안 될 말을 뱉을 뻔한 모양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그건 제 것이 맞습니다.”

“그럼 네 것이라는 걸 증명해야지.”

계속되는 서강민의 도돌이표 발언이 답답했는지 조금은 날 선 목소리가 김세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니, 그런 어중이떠중이 말 말고. 다른 거. 아까 하려던 말과 관련 있는 거 같은데, 말할 거라면 얼른 말해. 마음 바뀌기 전에. 참고로, 이거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

김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을 꺼내자, 같은 말을 반복하던 서강민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에 대화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빠르게 조금 전 김세현이 꺼냈던 말을 복기할 때였다.

“할 말 없어? 그럼 덩치, 그거 내놔.”

“그러….”

팀장이 보관하고 있었던 듯 품에서 천에 감싸인 무언가를 꺼낸 그가 다가와 김세현에게 그걸 내밀 때였다.

“제 거 맞습니다! 그거, 제 거 맞아요.”

다급히 다가온 서강민이 팀장의 팔을 붙잡으며 다급히 말한다.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조급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의구심이 점차 피어오를 때였다.

“증거는?”

“…증거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입씨름 그만하고 줄 거 아냐. 저 빨간 도마뱀 몸에 아이템이 없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자꾸 저기서 나왔다고 우겨?”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가 김세현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가 이렇게 짜증을 내는 걸 처음 봤기에 그 부분에서도 놀랄 만했지만, 내 귀를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헉!”

“…저기서 나온 게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잉여가 나올 리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고 듣긴 했는데요.”

그래, 이곳으로 오는 길에 김세현과 통화를 하며 들은 말투는 이곳에서 아이템이 나올 리 없단 확신이 느껴졌었다. 서강민의 말마따나 서강민이 레드 리자드의 숨통을 끊었다고 한들 결코 레드 리자드에게선 아이템이 나올 리 없다는 듯 말이다.

“뭐야, 그럼. 이곳에서 나올 수 없는 아이템이 나왔다는 게.”

“혹 자작극이라거나?”

“…….”

상황이 상황인지라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중얼거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들렸다. 나는 말없이 서강민을 바라보았다.

잠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던 서강민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그러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허탈한, 그리고 또 수치심을 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하아, 맞습니다. 제가 가지고 온 아이템입니다. 돌려주십시오.”

“네가 가지고 왔다는 증거는?”

“아이템 하단부를 보면 8자 모양으로 문양이 새겨져 있을 겁니다. 8자의 아래 원을 누르면 바로 알게 될 겁니다.”

“버튼?”

서강민의 설명을 들은 팀장이 아이템을 가리고 있던 천을 걷어낸다. 김세현의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일까, 아이템이라는 걸 처음 봤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초라한 모양새에 눈을 끔벅였다.

“조악하네.”

마치 내 속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김세현이 나와 같은 생각을 입에 담는다.

지난번 서강민이 소유한 아이템의 외관은 마트에서 파는 일반적인 자두 정도의 사이즈로 은은한 은빛이 감돌던 원형의 물건이었건만, 지금 보는 아이템은 무척 모양이 이상했다. 연한 색과 짙은 색이 뒤섞인 보라색의 허물어진 물체를 보며 이리저리 눈을 움직여 그것을 살폈다.

마치 무언가가 녹은 것처럼 윗부분은 움푹 패 있고, 또 패인 가장자리 쪽에는 물방울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과 같은 모양들이 가득했다.

이 모양,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 이거 초가 녹은 모양이네요?”

“그러네?”

그래, 갑자기 본 터라 어디서 봤나 했는데, 초를 켠 게 너무 오래된 바람에 바로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런 아이템도 있어?”

“…하급 아이템이니까요.”

모든 걸 들켰다고 여겼는지 서강민이 더는 감추지 않고 술술 사실을 분다.

…아이템이 던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들 최근 서강민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좋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얼른 눌러 보시죠, 팀장님.”

“그래야지.”

“못생기긴 했지만, 아이템을 볼 땐 정말 신기하단 말이죠.”

“언제 본 적 있어?”

“인터넷에 널린 게 아이템 관련 사진인데요.”

“아하.”

어느새 아이템을 중심으로 팀원들이 둥그렇게 에워싼 상황이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들을 보며 나 또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였다.

“누른다.”

“예.”

“그만 뜸 들이고 얼른 열어 보십쇼! 숨 막힙니다.”

누른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원성을 쏟아 낸다. 팀원들의 보챔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팀장이 이윽고 서강민이 말한 8자 모양의 하단부를 누르자, 갑자기 물방울이 흘러내린 듯 보이던 가장자리 부분이 중력을 거스르는 듯 점차 위로 봉긋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이런 모습을 보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눈에 담았다.

처음엔 느리게 채워지던 가장자리 부분이 계속해서 움푹 팬 곳을 메꾸더니 이윽고 둥그런 보라색의 원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분을 숨죽인 채 아이템이 변하는 모습을 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보라색 공 위로 서서히 흰색의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렇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세공작업에 시간도 시간이고, 돈도 깨나 들었겠는데?”

다른 것도 아닌 아이템이 이런 변화를 보일 줄은 몰랐다. 작지만 또렷하게 적힌 서강민이란 글자를 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없이 아이템을 그렇게 계속 바라보던 참이었다.

“확인하셨으면 이제 주십시오.”

“어? 어, 그래.”

팀장 또한 생각지 못한 듯 얼떨떨한 얼굴로 보라색 공을 서강민에게 전달했다. 그에 절로 서강민에게 시선을 주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미세하게 표정이 뒤틀려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여기서 묻도록 하지. 외부에 알려져 봤자 우리도 좋지 않은 소리 나올 게 뻔하니까.”

조금 전 서강민의 이름이 떠오른 아이템을 봐서일까,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서강민에게 말을 건네는 팀장이다. 내가 만약 팀장이었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듯했다.

“시청에서 전화가 왔다는 건 어떻게 합니까?”

“잘못 본 거라고 해야지. 뭐 어쩌겠어! 아직 외부에 아이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진 않았겠지?”

“예, 방금 확인해 보았습니다. 아직까진 잘 통제되고 있는 듯하군요.”

“좋아. 그럼 오늘 일은 여기서 묻도록 하지! 이제 상황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니 정리하도록 하지! 나머지 일은 내일 하자고.”

“네!”

손을 붙인 거 빨리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기분으론 일에 집중하기란 무리였다. 내일이 쉬는 날이긴 했지만, 쉬는 일정이야 다음 주로 미루면 될 일이고 말이다.

“형.”

“네, 세현 씨.”

“내일 일해요?”

“네. 그렇게 되었네요.”

“…….”

불만으로 가득 찬 김세현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에 왜 저리 불만을 드러내나 싶었지만, 뇌리를 스쳐 지나간 약속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주엔 쉬는 거 맞아요?”

“우리 막내 쉬는 날이 왜 그리 궁금해?”

“형이랑 영상 통화 온종일 하고 싶었는데.”

“어…. 쉬는 날이라고 해도 종일 통화하는 건 무리예요.”

온종일 통화하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무리는 무리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니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김세현이 눈에 들어왔다.

“…하여간 여지를 안 주지.”

“푸핫! 자, 다들 퇴근하자고. 서강민, 너는 나랑 좀 이야기하고 가고.”

“…알겠습니다.”

퇴근을 말한 팀장이 손뼉을 치며 어서 가자 손짓한다. 몬스터 시체가 저리 길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게 걸렸지만, 현장 상황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내가 말을 꺼내게 된다면 피곤할 팀원들이 더욱 피곤해질 수 있었다.

“…….”

내일 숨을 돌리며 물어봐도 된다 생각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던전을 빠져나가려 했다.

“읏차.”

“어?”

몇 걸음 발을 떼기도 전에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허리와 오금에 단단한 무언가가 몸을 받친다. 그에 휘청하며 중심을 잃었다가 다급히 몸을 가누었다. 그러다 현재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뒤늦게 깨닫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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