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99)화 (99/246)

96화

17. 첫 방문

던전이 생성되는 날이면 언제나 그렇듯 던전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퇴근할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지만, 현장에서 뒷정리 중인 이들을 두고 먼저 사무실을 뜨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팀장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자리로 돌아와 TV를 켜곤 최근 챙겨 보기 시작한 뉴스 채널로 화면을 돌렸다.

―오늘 점심 무렵 D-13 구역 경찰대학교 삼거리 근방에 생성된 난이도 A급, 규모 B급 던전 소식입니다. 이번 던전은 특이하게도 높은 등급의 몬스터들이 대거 발생했는데요. 특히 A급 몬스터인 레드 리자드가 두 개체나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장에 나간 송아미 기자와 연결합니다.

―예, D-13 구역에 나와 있는 송아미 기자입니다. 현재 제 뒤로 보이시는 곳이 바로 오늘 던전이 생성되었던 D-13 구역 경찰대학교 삼거리로 향하는 길목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가림막이 쳐진 상태라 내부 상황을 알 수 없는데요. 다만 근처 건물 옥상에서는 내부를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건물 위에서 촬영된 영상 보시겠습니다.

“…….”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 이미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림막을 쳐 내부를 가리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레드 리자드가 건물을 부수는 모습을 떠올리며 가림막 너머의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 TV를 응시했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약 한 시간 반 전의 가림막 안쪽의 모습입니다. 멀쩡한 건물도 많이 보이지만, 클로즈업된 곳처럼 건물 잔해만이 남은 곳 또한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번 던전은 레드 리자드 두 개체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고 합니다. 던전 중심부인 경찰대학교 건물 또한 피해가 심하다고 전해졌습니다.

또한 대피 중이던 시민의 피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던전이 클리어된 이후 투입된 호송팀을 비롯하여 소방대원들이 계속해서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9시가 지난 지금도 이따금 들것에 실린 부상자들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로 인해 피해를 집계하고 재건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D-13 구역에서 송아미 기자입니다.

“하아.”

현장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매체를 통해 피해 규모를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현장에 나간 팀원들 역시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음을 뜻했으니까.

“아직 김세현 관련된 뉴스는 나오지 않았나 봅니다.”

“네.”

만약 김세현이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면 지금처럼 던전 피해 현황을 다루는 내용을 골자로 삼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뉴스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었다.

던전 클리어도 클리어지만, S급 헌터가 장바구니를 든 채 던전에 나타났다는 건 정말 희소한 일이었으니까.

“협회 뷔페만 이용할 줄 알았는데, 김세현이 장도 볼 줄 알아서 좀 놀랐습니다.”

때마침 김세현이 장을 본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부팀장의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저도요.”

냉면과 고기를 먹잔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직접 장을 볼 거로 생각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계속해서 던전 관련된 뉴스를 시청했다.

―이전에도 뉴스에서 알려 드린 적이 있지요,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던전이 생성되는 빈도가 부쩍 는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국에 생성된 던전의 수는 평균적으로 32.7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어떨까요?

이 그래프를 보시면 붉은 막대그래프는 평균 던전 생성 횟수, 그리고 그 옆의 파란 막대그래프는 올해 던전 생성 횟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미 평균 던전 생성 횟수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던전 생성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 생성된 만큼 이와 관련된 대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여, 저희는 현재 나라에서 부쩍 늘어난 던전 생성 빈도와 관련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취재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전국에서 생성된 던전 현황에 관해 좀 더 면밀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취재를, 했다고?

혹 놓치고 있던 취재 요청이 있나 싶다. 아니, 하나 있긴 했지만, 그곳과 이 채널은 일절 관련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부팀장을 보니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가 보였다.

“부팀장님, 혹시 제가 모르는 취재 요청이 있었나요?”

“일절 없었습니다.”

“…던전과 관련된 거라면 최우선적으로 헌터부부터 살필 텐데, 이상하네요.”

전국의 던전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는 내용이라 했으니 서울시 헌터부 또한 그 대상에 들어가는 건 자명했다. 특히 나라에서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했으니 더더욱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고 말이다.

설마, 헌터부를 찾은 게 아니라 시청을 찾은 걸까?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선 마저 뉴스부터 챙겨 봐야 할 듯했다.

간략하게 전국의 던전 현황에 관한 내용을 전달한 아나운서의 모습이 사라지고, 화면이 전환된다. 전국의 던전 생성 평균과 올해 생성된 던전 생성 횟수를 놓고 비교하던 내용이 자연스럽게 전 세계적으로 던전이 얼마나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심각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

전 세계적으로 던전이 자주 생성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치를 제대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인 듯했다. 그간 헌터부 일을 하며 이런 것 하나 체크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런 후회를 지금 해 봤자 과거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전 세계적인 던전 생성 현황과 우리나라 던전 생성 현황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서울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

던전이 자주 생성된 다른 나라 지역과 비교해 최소 다섯 배는 넘어 보이는 수치를 기록한 그래프를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시간엔 서울시의 던전 생성과 관련된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음 뉴스로 넘어간 아나운서를 볼 때였다.

“상황을 보니 저희 쪽보단 시청, 그리고 협회 쪽으로 접촉했을 확률이 높은 듯하군요.”

침묵하던 부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 좀 전의 뉴스만 미리 준비하고 조만간 연락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혹 매체에서 연락이 온다면 바로 팀장님이나 저에게 돌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수습이 많이 늦어지는 듯하군요.”

시계를 확인한 부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원탁을 검지로 두드린다.

그간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와는 달리 무척 곤란해 보이는 모습이 낯설었다. 다시금 시선이 시계로 향하는 모습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슬쩍 물었다.

“혹시 오늘 약속 있으셨어요?”

“아니라곤 못 하겠군요.”

“…그러셨군요.”

역시 약속이 있던 게 맞았다. 나 역시 약속이 있는 터라 그의 초조함이 이해되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가족이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군요.”

“…….”

오래간만에 가족을 만날 예정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부팀장이 어떤 상황인지 아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아, 뭐 안 좋은 쪽은 아닙니다. 그저 서로 일이 바빠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나중에 또 보면 되는 거니 문제 될 건 없습니다.”

픽 웃으며 말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민망함에 볼을 긁적였다.

“하늘 씨도 약속이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아셨어요?”

“낮에 통화 내용이 그런 것처럼 들려서 말입니다.”

“…….”

낮의 통화 내용을 반추해 봤지만, 딱히 약속이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대화는 아니었다. 역시 부팀장이라는 생각에 그저 경외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본다고 뭐 나오는 거 없습니다만.”

눈이 마주친 부팀장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나는 따라 웃으며 농담인 척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래도 계속 보다 보면 조금이라도 일찍 일머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요.”

첫 직장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의욕을 따라잡지 못하는 일머리가 있었다. 다른 팀원들과 비교하자면 아직 신입 티를 벗어나긴 멀었지만, 어서 팀원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변치 않는 바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닌 척 마음을 담아 부팀장을 바라볼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얼른 전화 받아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만 부팀장이 전화를 받으라 눈짓한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통화를 시작했다.

―형, 아직도 끝나려면 멀었어요?

전화를 받기 무섭게 일정을 묻는다. 나는 핸드폰을 다른 귀로 옮기며 답했다.

“상황이 썩 좋지 않네요.”

―사무실에만 있을 거면 그냥 먼저 퇴근하는 것도 나을 텐데.

“다들 현장에 나가 있는데, 먼저 자리 뜨는 건 안 되죠.”

다른 이유로 자리를 비운 거라면 퇴근했겠지만, 던전을 뒷수습 중인 팀원을 두고 먼저 퇴근하는 건 옳지 않았다.

―…배는 안 고파요? 난 배 너무 고픈데.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고 한들 시간이 시간인지라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때웠을 줄 알았다. 놀란 마음에 바로 반문했다.

“아직 안 드셨어요?”

―형이랑 먹기로 했잖아요. 같이 먹으려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단 말이에요.

“아.”

여태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한숨 소리에 입을 열었다.

“너무 허기지면 속 버려요. 요기라도 좀 하지 그랬어요.”

―형이랑 같이 먹기로 했는데.

“또 먹으면 되죠.”

먹는 거야 잘만 조절하면 계속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김세현이라면 더더욱 그 조절이 잘 될 테고 말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내 김세현이 알았다 답한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끝나는 대로 연락할게요.”

―새벽이라도 연락해요. 나 계속 기다릴 거니까.

“네.”

기다린다는 말을 끝으로 이내 통화가 종료된다. 나는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

약속했을 때도, 그리고 낮에 통화할 때도 목소리 가득 설렘이 가득 느껴지긴 했지만, 밥까지 굶을 정도로 고대하고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저 저녁 약속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던전을 클리어할 당시의 김세현의 행색 또한 저녁 식사를 위한 것이었다. 장이라곤 절대 보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장바구니를 들고 던전에 나타나다니.

“하아.”

약속 상대방이 약속을 고대하고 있다는 건 좋았다. 그래,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다는 김세현의 말에 설렘이 차올랐지만, 한편으론 끼니도 거르며 기다릴 일인가 속이 좀 상하기도 하고. 여하튼 복잡했다.

“그런데 하늘 씨.”

“네.”

조용하던 부팀장의 부름에 고개를 드니 다소 복잡한 시선을 보내오는 이가 보였다. 통화 전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이던 그의 표정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나는 끄덕이며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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