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17. 첫 방문
한두 군데도 아닌, 여기저기서 이렇게 먼지바람이 일 수 있나 싶었지만, 현장엔 김세현이 있었다. 그라면 충분히 이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혹 다른 몬스터라도 나타난 겁니까?”
“그건 아니고 전투 중입니다.”
전투라 표현하긴 했지만, 따지고 본다면 전투는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던전을 클리어 중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으니까.
전투 중이라는 말에 이영혁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다. 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먼지, 바람이 일기를 몇 차례, 중계기에서 들려온 소리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던전 클리어!
―클리어!
“하아.”
김세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커졌을지도 몰랐다. 규모가 더 커지지 않고 종료되었다고 한들 전투가 길어져 다들 지치고, 또 크게 다치는 이들도 더러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팀원들을 비롯해 협회 헌터들, 그리고 계약 헌터들이 열심히 노력한 것도 있었지만, 역시 S급 헌터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었다.
“던전 클리어.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다들 고생했어.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중계기랑 네트워크 종료하고. 상황 보면서 필요한 일 생기면 부서로 연락할 테니까.
“네!”
매번 이렇게 도움을 받아 어쩌나 싶었지만, 김세현 덕분에 한시름 던 것만은 분명했다. 오늘 저녁에 만나면 꼭 고맙단 마음을 전하자 다짐하며 자리서 일어나 중계기를 종료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연 주무관님.”
“네, 말씀하세요.”
“…이렇게 던전이 클리어되는 게 맞습니까?”
“네. 오늘은 김세현 헌터가 운 좋게 나타나 던전을 클리어해 주었기에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김세현이 없었다면 추가로 협회에 협조를 구했을지도 몰랐다. 이들에게 열악한 헌터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피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곤 뒷말을 이었다.
“S급 헌터가 현장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게다가 김세현 헌터의 경우, 외국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빗발칠 만큼 능력 있는 헌터이기도 하고요.”
“예.”
“던전은 클리어되었지만, 이젠 뒷정리가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헌터부 인원이 부족해 다들 무리하는 게 사실입니다.”
“예, 그래 보입니다.”
혹여 모두가 다 무리하고 있단 말을 꺼내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영혁 부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무척이나 진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던전 주변을 화면에 띄웠다.
갓 클리어된 터라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도 대피 중인 이들도 보였고 말이다. 이번엔 대피소 쪽의 CCTV를 켜 이영혁 부장에게 보여주니 말없이 상황을 살피느라 바빠 보였다. 조용히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보고받던 것관 달리 손이 갈 곳이 무척 많아 보입니다.”
“네.”
“…이 또한 윗선에 이야기 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원하는 바를 말하는 이가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팀원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윗선에서는 그런 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청와대에서 나온 이들이 그 노고를 알아주니 너무도 기뻤다.
“하늘 씨, 던전 피해가 어떤 거 같습니까.”
부팀장이 수화기를 든 채 묻는다. 나는 현장 상황을 보며 답했다.
“아무래도 집계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레드 리자드로 인한 피해가 커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총무부로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죠.”
“네.”
상황을 전달받은 부팀장이 곧바로 전화를 돌린다. 총무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화면을 가득 채운 화면들을 정리 후 CCTV 현황 지도를 펼쳐 그것을 바라보았다.
“…….”
처음 던전을 확인했을 때보다 훨씬 커진 던전 크기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하아.”
“저희가 도울 만한 게 있겠습니까?”
“말씀은 감사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려울 듯합니다.”
설령 이들의 손을 빌린다고 한들 현장에 이들이 모습을 보일 경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져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이번 던전 관련하여 서류 정리할 게 있으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류 작성을 도와주는 거라면야 언제든 환영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던전 관련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나온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드르륵- 드르륵-
“음?”
누구 전화지?
대화를 나누던 중 들려온 진동에 시선을 옮기자, 책상 위에서 존재를 내뿜는 내 핸드폰이 보였다. 양해를 구하곤 핸드폰을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아.”
누군가 했는데, 김세현이다.
조금 전 던전을 클리어한 걸 자랑하려 전화한 모양이다. 아직 통화를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귓가엔 김세현의 으스대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여기서 전화를 받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 전화를 받는 게 좋을까.
“…….”
하지만 그 고민은 얼마 가지 못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끊긴 전화다. 아쉬움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때였다. 한 번 더 전화가 오자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형!
“네.”
―오늘 퇴근 제때 할 수 있어요?
갑자기 퇴근 이야기부터 꺼낼 줄은 몰랐다. 네트워크를 통해 박 주무관과 대화를 나누던 걸 떠올리니 괜히 민망했다. 어서 답하라는 재촉에 머쓱하니 답했다.
“상황 봐야 할 거 같아요.”
던전이 일찍 클리어된 터라 예상보다 일찍 귀가할 수 있을 듯했지만, 던전 규모도, 그리고 피해도 제법 되었기에 현장에 나간 이들이 언제 돌아올지 미지수였다.
―잘됐다. 나도 장 한 번 다시 봐야 해서요.
“…네.”
상황을 봐야 안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장을 봐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퇴근이 빠를 거라 생각하는 듯한 말에 좀 더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설명하려 했다.
―일 늦게 끝나도 연락해요. 기다릴 테니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 문제에 관해 김세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바로 답하고 싶었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마당에 섣불리 답하는 건 좀 그랬다.
“음.”
―새벽에라도 전화해요! 꼭이요!
“그래도 돼요?”
―형이 온다는데 그까짓 시간이 대수예요? 그냥 전화해요. 저 평소에도 잠 별로 안 자요.
잠을 별로 안 잔다니.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잠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그럼 이따 봐요. 꼭 전화하고요.
“네.”
혹여 통화가 길어지면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듯했다. 다행히 짤막하게 통화가 끝나자 핸드폰을 다시 책상에 두곤 현장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연 주무관님, 커피라도 한 잔 타다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볼 게 많아서요.”
커피 이야기에 좀 당기긴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하나라도 더 확인해두고 체크해 두면 차후가 편해질 테니 말이다. 전화를 기다리겠다던 김세현의 말을 떠올리며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한 채 계속해서 현장을 살폈다.
이번에 생성되었던 던전 현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발 빠르게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난이도 A급 던전이 다시 생성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던전에 모습을 보인 A급 몬스터들의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은 시끌시끌했다.
물론, 옆자리를 지키던 이영혁 부장과 다른 조사관들 역시 바쁜 듯했고 말이다.
던전이 클리어되고 두 시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울린 전화를 받은 이영혁 부장이 양해를 구하며 조사관들과 먼저 사무실을 떴다. 덕분에 숨을 돌릴 수 있어 좋았지만, 급하게 나가던 이들이 괜히 신경 쓰였다.
“…….”
무슨 일이 있기에 다들 그렇게 급히 자리를 뜬 걸까. 잠시 옆의 빈자리와 함께 조사관들이 항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부팀장의 뒤편을 보다가 다시 모니터를 주시했다.
잠시 휴식을 위해 인터넷을 켰다가 쏟아지는 기사 내용과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댓글과 대부분의 기사 내용은 난이도 A급 던전이 쏟아지는 현 상황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던전 관련 기사 댓글마다 우려의 소리가 컸다. 날이 갈수록 생성되는 던전 등급이 높아지는 실정이기에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했지만, 이들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이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렇게 난이도 높은 던전이 자꾸만 생성되는 걸까.
“하아.”
입을 열자 나오는 건 한숨밖에 없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계속해서 뉴스와 댓글들을 살피던 중이었다. 얼마 전 김세현과 타국 헌터들이 접촉했던 내용을 다룬 기사를 발견하곤 바로 그것을 확인했다.
“…….”
무슨 내용인가 싶었는데, 이 기사 또한 S급 헌터인 김세현을 다른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음을 다루고 있었다. S급 헌터의 유출 우려를 심각하게 논하는 기사를 보고 있자니 이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나야 김세현이 외국에 나가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리 걱정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심각해요.”
“부팀장님.”
“커피 마시면서 좀 쉬어요.”
부팀장이 오는지도 모른 채 너무 집중한 모양이다. 커피를 받고 한 모금 마시고 있자니 부팀장이 유심히 내가 보던 기사를 읽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내 기사를 다 읽은 부팀장이 웃으며 어깨를 토닥인다. 나는 그를 따라 입가를 끌어 올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네.”
걱정은 이미 이전에 했기에 더는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걱정은 나중 일이고 지금은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일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 번 더 늦게라도 연락하라던 김세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잠이 없다곤 했지만,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내 걱정을 덜어주려 한 거짓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하염없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김세현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점차 조급해지는 것만 같다. 포털 사이트를 끄고 바로 협조금 관련 문서를 켠 뒤 크게 심호흡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
뭐가 되었건 간에 지금은 일부터 하는 게 우선이었다. 한 번 더 뇌리를 스쳐 지나간 김세현의 모습을 애써 밀어내며 마저 남은 작업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