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97)화 (97/246)

94화

17. 첫 방문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헉, 이게 뭐야!

―무슨 일 생겼습니까?

카메라의 진동이 예사롭지 않았는지 현장에 나간 팀원들의 반응이 즉각 들려왔다. 나는 흔들리는 카메라 너머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

심한 흔들림 탓인지 남자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좀처럼 움직임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카메라를 계속 보자니 멀미가 올 지경이다. 잠시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천장을 바라보며 상황을 전달했다.

“현재 장바구니를 든 남자를 비추는 카메라 또한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흔들림 이전에 남자 시민이 던전 안을 가리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뭐라고?

―설마, 다른 지원 헌터 왔나?

“…헌터일 수도 있겠군요.”

―헌터라고 해서 이렇게 큰 진동 낼 수 있는 겁니까? 주변 건물까지 다 흔들린 상황인데요?

―북쪽에서도 감지되었습니다.

“허.”

상황이 어처구니없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이영혁 부장 또한 느낀 듯했다. 헛바람을 내뱉는 소리에 옆을 보자 어이없단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는 그가 보였다. 나는 다시 흔들리는 화면 너머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힘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차 카메라의 반동이 줄어드는 게 체감된다. 나는 빠르게 눈을 움직이며 조금 전 보았던 남자를 찾았다.

“…….”

남자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음에 빠르게 주변 카메라로 남자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카메라를 벗어났습니다. 현재 위치 파악 불가능합니다!”

―뭐?

―주변에도 안 보여?

“네.”

이렇게 놓칠 줄 알았다면, 카메라가 흔들린다고 해도 더욱 열심히 남자를 눈에 담을 걸 그랬다. 혹시 몰라 바삐 주변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어?

―무슨 일이야.

―그쪽 아직 헌터 도착 안 했어?

별안간 들려온 박 주무관의 목소리에 팀원들이 즉각 반응한다. 나는 이어지는 대화를 경청했다.

―그게, 제가 뭘 좀 잘못 본 거 같아서요.

“무엇을 말입니까.”

―뭔데 그런 반응이야?

―그게…. 지금 여기가 C구역 근처 맞죠?

―C구역이 D구역 바로 위잖아. 그런데 왜?

―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럴 리가 없는데?

“…….”

도대체 어떤 걸 봤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구역 이야기는 왜 하는 거고 말이다. 혹여 C구역 방향으로 또 다른 몬스터가 보인 게 아닐까 싶어 화면을 전환해 그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그럴 리가 없….

―그러니까 뭐가 그럴 리가 없는데!

박 주무관이 같은 말을 반복하자 답답했는지 팀장이 목청을 높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트워크 너머에서 들려온 으깨지는 소리에 흠칫하며 화면을 응시했다.

―…아.

―박 주무관, 도대체 뭘 봤기에 그러는 거야?

―…다들 놀라지 마십쇼. 저 지금 엄청난 거 보고 말았으니까요.

―뜸 좀 그만 들여! 몬스터면 바로 말해야 대응을 하지!

―어디 몬스터를 비교 대상에 올리십니까! 몬스터가 불쌍하게!

“…설마.”

마치 스무고개를 하는 듯한 박 주무관의 말이다. 도대체 뭘 봤기에 그러는 건가 싶던 참에 들려온 부팀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이쪽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

시선이 맞닿은 그의 표정이 점차 요상하게 변한다. 걱정과 긴장, 그리고 다행스러움 등등의 온갖 감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내 의문은 재차 들려온 박 주무관의 목소리에 해소될 수 있었다.

―잉여요!

―뭐?

―헉, 잉여라고?

―…잉여가 장을 왜 봐? 잘못 본 거 아냐?

“헉!”

잉여라 함은 김세현을 의미했다. 하지만 김세현이 나타났다는 말보다 내 귀를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장을 봤다는 말이었다.

“…….”

설마, 오늘 저녁의 만남을 위해 장을 본 걸까.

설령 장을 봤다고 한들 어째서 C구역에 사는 김세현이 D구역에 나타난 건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C구역에는 나도 알 만한 큰 마트가 여럿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김세현의 집과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잉여가 장 본 것도 놀랍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잉여가 던전에 들어왔다니까요?

―그냥 지나가는 길에 던전 있어서 가로질러 가는 거 아냐?

―예전 같았다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상황이 좀 다르지 않습니까! 던전 클리어하려고 들어온 거 아닌가 싶습니다!

“…….”

김세현이 던전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건 저 어려운 던전이 조만간 클리어됨을 뜻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있단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김세현의 무위를 생각해 보건대 뭔갈 들고 있다고 해도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잉여가 누굽니까?”

“아.”

잠시 대화에 집중하느라 옆에 누가 있었는지 깜박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삽시간에 조용해진 팀원들을 인지하며 옆자리로 시선을 주었다.

“연 주무관님?”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이영혁 부장이 한 번 더 재촉한다. 나는 침을 삼키곤 입을 열었다.

“그게, 김세현 헌터입니다.”

“…예?”

이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나 또한 처음 김세현이 잉여라 불리고 있음을 알았을 때 이랬으니까.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휘둥그레 커진 눈이 날 응시한다. 시선 속에 담긴 경악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냥, 겪다 보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거예요.”

김세현이 잉여라 불린다는 게 아직도 믿기 좀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원들이 그리 부르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저는 잉여 뒤따르겠습니다!

―좋아!

박 주무관의 말에 팀장이 알았다 답한다. 그에 초조하게 주변을 살피며 계속해서 네트워크 너머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이 이상 접근은 불가능한 겁니까?”

“네, 안의 CCTV 중 작동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챈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소리에 집중하는 것밖에는 말이다.

상황을 인지한 듯 이영혁 부장이 작은 소리를 뱉더니 입을 다문다.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시선과 함께 고개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 역시 네트워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게 낫다 판단을 내린 듯 보였다.

그렇게 현장 소리에 귀 기울인 지 몇 분이 흘렀을까, 전투 소리만이 들려오던 중계기 너머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더욱 집중했다.

―…야?

―…는데.

―상황이 …하지!

“…….”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투 소리에 묻혀 대화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팀장이 있는 쪽 상황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제길.

“헉!”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투 소리에 말이 묻혔건만, 지금 저 말만큼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것도 익숙한 목소리가 말이다.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말투에 긴장한 채 계속 귀를 기울였다.

―대파에 먼지 묻었잖아.

―…….

“…….”

―구워 먹으려고 샀는데.

―뭘, 구워 먹어?

―지금 이거 무슨 소리랍니까?

여기서 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숨죽인 채 이리저리 눈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야.

―왜.

김세현의 껄렁껄렁한 부름에 박 주무관 또한 맞먹는 껄렁함으로 말을 받아친다. 그에 옆에서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거 클리어하면 제때 퇴근 가능해?

―갑자기 왜 우리 퇴근에 관심을…. 던전 클리어한다고 해서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아? 우리가 얼마나 바쁜데! 인원이 모자라요, 한참 모자라! 다 바빠!

―그럼 어쩔 수 없네. 알아서 클리어하든가.

―와! 그렇다고 바로 가려고 해? 빨리 클리어 되면 제때 퇴근도 가능할지도 모르기는 하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든가.

박 주무관과 김세현의 아슬아슬한 대화가 이어지던 참이었다. 김세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굉음이 네트워크 너머로 전해졌다. 나는 흠칫하며 주변을 살폈다.

혹여 나만 놀란 거면 어쩌나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부팀장도 놀란 듯했다. 휘둥그레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에 이번엔 이영혁 부장 쪽을 바라보았다.

“…….”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처음 이곳에 와 던전 생성과 클리어를 접했을 때를 보는 것 같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았다. 그리고, 던전 안에서 피어오른 먼지바람을 발견했다.

―야! 적당히 해야지!

그 먼지바람은 현장의 다른 곳에 있던 팀장의 눈에도 보인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멀어지는 굉음과 함께 조금 전보다 먼 곳에서 더욱 크게 피어오른 먼지에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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