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17. 첫 방문
“…….”
레드 리자드를 발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 재빠르게 방금 전까지 보던 카메라 화면을 띄워보니 이 화면 역시 새까맣게 물든 상태였다.
곧바로 CCTV 지도를 띄우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삽시간에 레드 리자드 주변의 카메라가 회색으로 물들어 있음에 입을 열었다.
“북동쪽으로 커지던 던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세를 불려 나가고 있습니다! 레드 리자드 주변은 방금 카메라가 꺼졌습니다. CCTV가 꺼지는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오케이!
―계속해서 던전 확장 확인하고! 눈에 띄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
“네!”
한 주무관의 말에 답하며 계속해서 현장 상황을 주시하던 중이었다. 아주 작은 접촉이었지만 연속해 어깨를 터치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그쪽을 확인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부팀장인가 싶었는데, 어깨를 두드린 건 다름 아닌 이영혁 부장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확인할 게 있으신가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좀 더 풀어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실제 상황을 접하니 체감되는 게 달라서요.”
“물론이죠. 던전 등급은 이미 들어 아시겠지만, 던전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어 규모는 차후에 재조정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레드 리자드와 변종 키메라를 한 번 더 볼 수 있습니까?”
카메라가 꺼진 상황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곤란했지만, 던전을 조사하러 나온 만큼 뭐라도 눈으로 확인하는 게 좋을 듯했다. 나도 주변을 둘러봐야 하기에 문제 될 것 없었고 말이다.
혹여 지금 당장 몬스터를 볼 수 없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차후에 녹화된 영상을 보여 주면 될 일이니까.
그렇게 한참을 던전 주변 CCTV를 둘러봤지만, 던전 안의 카메라 전부 작동을 멈춘 상황인지라 보이는 건 대피하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카메라 화면을 전환하며 입을 뗐다.
“지금은 몬스터를 보기 힘들 듯합니다.”
“그렇군요. 어서 하시던 일 하십시오. 지켜보겠습니다.”
“네.”
몬스터를 꼭 봐야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고개를 주억이며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맙소사, 여기 왜 이 모양이에요?
서쪽으로 이동한 박 주무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말을 뱉었다. 그가 이렇게 당황한 적이 있었나 싶어 바로 그쪽 카메라들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완 판이해진 형국에 입이 벌어졌다.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멍하니 황폐해진 광경을 보는 것도 잠시였다. 뒤늦게 정신을 다잡곤 부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부팀장님, 현재 서쪽 피해 상황이 심각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가온 부팀장이 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려 허리를 굽힌다. 곧바로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 곳 몇 군데를 화면에 띄우자, 귓가에 한숨이 내려앉았다.
“박 주무관.”
―예, 부팀장님.
“그쪽 방향으로 협회 헌터 및 서강민 헌터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도착하기 전까지 시민들 대피 최대한 일찍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요. 그리고, 몸 사릴 땐 사려야 합니다.”
지금껏 부팀장이 이런 목소리를 낼 때가 있었나 싶다. 무척이나 심각한 목소리로 몸을 사려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데, 덩달아 안전이 걱정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저 또한 시민 아니겠습니까?
상황이 심각한데, 왜 이리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심각하게 말을 얹었다.
“박 주무관님, 조심하셔야 해요.”
―당연하지! 아 참, 막내야.
“네.”
―다른 쪽도 둘러보겠지만, 되도록 다른 헌터들 올 때까지 서쪽 위주로 둘러봐 주라. 솔직히, 지금 서쪽에 헌터가 나밖에 없어서 눈이 현저히 모자라.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지 않아도 서쪽 위주로 보려던 참이었다. 각기 맡은 곳이 있기에 쉬이 다른 이들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서 박 주무관 혼자 사태가 심각한 서쪽을 담당하는 건 있을 수 없었으니까. 박 주무관의 현재 위치를 확인 후,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쑥대밭이 되어 버린 던전 안 상황을 던전 밖 CCTV를 통해 살필 때였다.
“박 주무관님! 서쪽에 레드 리자드 개체 하나가 확인되었습니다!”
―…뭐?
―레드 리자드라고? 부팀장님, 현재 협회 헌터와 계약 헌터들은 오고 있습니까?
“좀 더 재촉해 보겠습니다.”
황급히 자리로 돌아간 부팀장이 전화기를 들어 계약 헌터 쪽으로 연락을 넣는다. 동시에 컴퓨터를 만지는 모습을 확인하곤 다시 화면을 보았다.
“저게 레드 리자드군요.”
“저도 오늘 처음 봅니다, 부장님.”
“…이렇게까지 몬스터가 날뛸 줄은 몰랐습니다.”
이영혁 부장을 비롯해 함께 온 조사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를 본 사람들의 소요가 커질까 나라에서 몬스터의 노출을 최대한 자제시켰으니 말이다.
나라 소속 공무원이라고 한들 헌터부, 그리고 헌터부의 일손을 돕는 경찰과 소방관이 아니라면 이들 또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
어느새 현장 상황에 몰입했는지 이영혁 부장과 조사관들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심각함이 서린 얼굴을 확인하곤 다시 모니터를 보며 서쪽 상황, 특히 레드 리자드가 발견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몬스터도 보이지 않습니다.”
―흡, 좋아! 다들 자리 지키고! 박 주무관 상황은 어때?
―여긴 아직 괜찮습니다! 막내야, 나 있는 곳과 레드 리자드 있는 위치 멀어?
“약 70m가량 떨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레드 리자드가 계속 한 자리에 머물고 있고요. 움직임이 보이는 즉시 바로 말씀드릴게요.”
―좋아, 그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말해 줘! 나는 계속해서 대피 도울 테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몇 번이고 레드 리자드를 확인하는 게 아무래도 박 주무관 또한 긴장한 듯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선 긴장하는 게 마땅했다. 그렇게 네트워크 너머로 전달되는 생생한 현장 상황과 더불어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피 상황을 지켜볼 때였다.
“협회 헌터 현장 도착했습니다.”
천겁과도 같던 기다림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협회 헌터가 도착했다는 부팀장의 말에 긴장이 턱 풀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팀장님 쪽으로 A급 헌터 둘과 B급 헌터 하나, 그리고 박 주무관 쪽으로 A급 헌터 넷 보냈습니다. 나머지 B급 헌터들은 던전 중심부 쪽으로 향하라 말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계약 헌터들 또한 도착할 때가 된 터라 그들 역시 중심부와 서쪽으로 나누어 보내겠습니다.”
―좋아!
―빨리 좀 보내 주세요, 부팀장님! 저 지금 간이 콩알만 해져서 어제 마신 술 해독이 잘 안 되는 거 같습니다!
“풉!”
아차.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건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황급히 입을 가리며 표정 관리 후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금 막내 웃었지!
“안 웃었는데요?”
웃지 않았다고 말하긴 했지만, 누가 들어도 웃었다는 걸 알 수 있을 듯했다. 다른 헌터들이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안도할 수 있는 스스로가 웃겼다. 하지만 그 안도감에 웃음이 나던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안 되겠네, 우리 막내! 다음에 던전 생성되면 나랑 같이 다음 돌자!
“…정말 안 웃었어요.”
던전에 가자는 말을 들으니 잠시나마 입가에 돌던 웃음기가 쏙 들어갔다.
…농담이겠지?
―지금 막내 정색했죠?
“예.”
그걸 바로 말해 버릴 줄은 몰랐다. 억울한 시선을 담아 부팀장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책상 위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입가를 씰룩거리며 말이다.
―푸핫! 하여튼 우리 막내가 있어서 긴장 좀 풀린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들 긴장 좀 풀렸다고 해서 너무 마음 놓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상황 정리해 보자고!
―예!
“네!”
던전이 더 커지지 않도록 지금껏 헌터부 모두가 버텼지만, 지원이 도착한 만큼 지금부터는 빠른 클리어만이 남았다.
“…….”
정비를 끝낸 듯 이윽고 치열한 전투 상황이 생생하게 네트워크를 통해 사무실에 전달된다.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혹 다쳐도 생채기 선에서 끝나길 바라며 계속해서 던전 주변 CCTV를 살필 때였다.
“어?”
저건 누구지?
모두가 대피하기 바쁜 상황인데, 누군가가 던전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한쪽 손엔 무언가를 든 채 말이다. 곧바로 화면을 확대해 그 장면을 살폈다가 남자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보곤 눈을 끔벅였다.
“저 사람 대피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구?
이영혁 부장의 목소리를 들은 듯 곧바로 한 주무관이 반응했다. 나는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현재 서쪽 방향에서 던전 쪽으로 누군가가 접근 중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그게…. 장바구니를 든 남성입니다!”
―얼굴 확인 안 돼?
“네, 지금으로선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친놈 아냐?
박 주무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을 뱉는다.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개를 주억이며 화면 속 남자의 위치를 전달하며 계속해서 그 사람의 위치와 그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
이전에도 이런 일을 경험한 적 있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사람은 김세현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키와 덩치는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했지만, 개인 스케줄을 소화 중인 그가 저 차림새로 던전에 나타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계속해서 던전 쪽으로 이동하던 그가 갑자기 던전을 목전에 두고 걸음을 멈춘다. 어째서 저러나 싶었지만, 더는 남자의 상황을 지켜볼 순 없었다. 레드 리자드를 찍던 CCTV 쪽의 상황이 급변하자, 황급히 상황을 전달했다.
“박 주무관님! 현재 레드 리자드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은?
“방향은….”
되도록 정체 모를 장바구니 남자가 있는 방향으론 가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빌면 꼭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던 레드 리자드가 방향을 잡고 이동하는 모습에 마저 말을 이어갔다.
“장바구니를 든 남자 방향으로 레드 리자드가 향합니다!”
―제길!
―협회 헌터 놈들 뭐해! 빨리 이동하지 않고!
시민이 다치거나 혹은 안 좋은 일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이보다 문제가 클 순 없었다. 한쪽 화면에는 빠르게 이동 중인 레드 리자드의 모습이, 또 다른 화면에는 마실이라도 나온 것마냥 느린 걸음으로 계속해서 던전으로 향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상반된 모습 때문일까, 이보다 더 긴장될 수가 없다. 두 손을 모으며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바라던 때였다.
던전 안으로 향하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장바구니가 아닌 다른 손을 던전 쪽으로 든다. 마치 던전을 가리키는 듯한 모양새에 뭘까 싶었던 것도 잠시였다. 남자의 모습을 담은 카메라가 크게 흔들리자, 절로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