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17. 첫 방문
하필 이 시간에 긴급 전화가 울릴 건 뭔지 모르겠다.
이제 곧 점심 주문을 넣을 시간이란 생각에 절로 현장에 나갈 이들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외근 나갈 팀원들은 제때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일이 끝날 때까진 현장에서 간편식으로 허기를 채워야 했으니 말이다.
“팀장님! D-13 구역 경찰대학교 삼거리 근방에서 난이도 A급, 규모 B급 던전이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다들 준비하고! 한 주무관은 나와 바로 가서 주변 통제해!”
“알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난이도가 A급이라는 건 그만큼 상황이 급박함을 의미했다. 황급히 창가로 이동하던 팀장이 조사관들을 보곤 잠시 걸음을 늦추나 싶더니 재차 빠르게 이동한다. 그 뒤로 한 주무관이 따르는데, 아무래도 그 또한 팀장과 함께 나갈 모양인 듯했다.
“여기로 가려고?”
“상황이 급박하잖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한 주무관의 말에 난색을 표하던 팀장이 힐끔 조사관 쪽을 보더니 다시 한 주무관을 바라본다. 잠시 뒤, 팀장의 얼굴에 이채가 어렸다. 아무래도 시선 교환하며 서로의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이거 참, 이 나이에 누굴 업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던전이 중요하잖습니까.”
“그치! 던전이 최고로 중요하지! 품위 찾다가 피해가 더 커지면 안 되니까 말이야. 자, 업혀!”
“헌터부 공무원에겐 시민을 구하는 게 우선이죠! 제 자존심 따위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와.”
“…….”
옆자리서 수기 협조문이 아닌 공조 사이트를 통해 협회로 협조문을 보내던 김 주무관이 작게 소리를 뱉는다. 나 또한 같은 소리를 뱉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몸 좋기로 소문이 난 팀장이 두 번째로 소문이 난 한 주무관을 업는 희귀한 광경을 보다가 절로 조사관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
헌터부에서 던전을 관리한다는 건 알고 있었겠지만, 이런 상황을 보는 건 처음인 듯했다. 물론, 나도 처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다들 멍하니 팀장과 한 주무관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을 확인하곤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럼 김 주무관은 박 주무관 준비 끝나면 현장에 합류하고! 박 주무관 돕도록 해!”
“알겠습니다!”
“막내야, 현장 어때?”
“바로 체크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시선을 빼앗겨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황급히 교통 센터에 접속해 현장을 살피곤 곧바로 상황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현재 삼거리 기준 500m가량 던전 규모가 커진 상태입니다. 계속해서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오케이!”
재난 문자를 준비하던 박 주무관이 다급히 컴퓨터로 상황을 입력 후 몸을 일으키곤 김 주무관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에 자리서 일어나 중계기 쪽으로 향하며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그럼 우리도 준비 끝났으니 바로 가지!”
“…저희도 동행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잠시 얼이 나가 있던 이영혁 부장이 다급히 자리서 일어난다. 덩달아 두 사람 또한 급히 옷가지를 챙기는 모습을 볼 때였다.
“됐습니다! 일반인이 가서 뭐 하려고! 차후에 난이도 낮은 던전 생성되면 그때 견학하도록 해요! 그럼 간다!”
창틀에 두 발을 걸치고 서 있던 팀장이 한 주무관과 함께 그대로 모습을 감춘다. 동시에 조사관들이 화들짝 놀라며 창가로 향하는 모습에 자리에 앉아 CCTV 지도를 면밀히 살폈다.
“뭐 보이는 거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너무 빠르게 꺼지고 있습니다.”
“흠. 팀장님, 듣고 계십니까?”
―그래! 좀 더 빨리 이동해 보지! 한 주무관, 속도 더 올린다!
―예!
“…….”
다른 때 같았다면 이들이 빨리 이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긴장했겠지만, 오늘따라 팀장과 한 주무관의 목소리를 들으니 왜 이리 집중이 깨지려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집중의 끈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 무언가 작은 정보라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평소처럼 던전 주변 CCTV를 살피던 중이었다. 카메라를 스쳐 지나간 무언가에 황급히 근처 카메라를 확인한 뒤 빠르게 부팀장을 호출했다.
“부팀장님! 이번 던전 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어디 보….”
이쪽으로 오며 말을 하던 부팀장이 끝말을 집어삼킨다. 그도 그럴 만했다. 화면을 채운 몬스터는 김세현이 길을 안내하며 들어가서 단번에 해치운 그 변종 키메라였으니까.
당시 상황은 김세현이 빠르게 해치운 터라 문제가 커지지 않고 종료되었다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쯤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바쁠 김세현이기에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침음을 삼키며 변종 키메라가 보이는 카메라 화면을 띄워 두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는 얼른 시청으로 연락 넣겠습니다.”
“네!”
“상황이 변하면 불러요.”
부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카메라들을 빠르게 살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몬스터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절로 손이 떨려왔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눈에 보이는 상황을 전달했다.
“팀장님, 레드 리자드 한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변종 키메라도 함께 있습니다!”
―뭐라고?
“레드 리자드말입니까?”
다시 자리로 돌아가 수화기를 든 부팀장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곤 다시 모니터를 눈에 담았다.
팀장과 부팀장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던전에는 여러 종의 몬스터가 있을 시, 급이 높은 몬스터와 낮은 급의 몬스터가 섞여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난이도가 A급이라 변종 키메라 개체 수로 등급이 책정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줄은 몰랐다. 레드 리자드도, 변종 키메라 개체 수도 모두 난이도가 A급으로 책정될 만한 사항이었다.
한 마디로 현재 상황은 좋지 않았다.
“…후우.”
손바닥이 단숨에 축축해진다. 더불어 등에는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것 같았고 말이다.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독이곤 다시 모니터 속 상황에 집중했다.
시내버스만 한 몸집과 그 몸집보다 더 큰 긴 꼬리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바쁜 레드 리자드다.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작게는 자동차가, 크게는 건물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할 때였다. 핸드폰 진동에 시선을 내려 내용을 확인하곤 퇴근 일곱 시간 전임을 알리는 알람에 침음을 삼켰다.
“…….”
던전이 생성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알람은 설렘으로 다가왔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김세현과의 약속도 약속이었지만, 지금은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 약속을 다음으로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곤 계속해서 CCTV를 살피며 대피하는 시민들을 체크하고, 또 던전 주변을 계속해서 살피던 와중이었다.
―던전 도착! 박 주무관은 밖에서 외부 지휘하고! 부팀장, 계약 헌터들은?
“현재 이동 중입니다. 그리고 협회 쪽에서도….”
잠시 말을 하다 만 부팀장이 컴퓨터를 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협조문 수락 후 헌터들을 현장으로 보낸 상태입니다. 도착 예정 시각은 20분 후입니다.”
―하, 예정 시각까지 떠?
“예.”
―하여간 좀 있어 보이려고 수기만 그렇게 내세우더니! 이보다 편한 게 어디 있다고! 레드 리자드는 어디 있다고 했지?
“현재 던전 중심에서 동북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우측 거리를 쭉 타고 가면 만날 수 있을 듯합니다!”
―좋아, 막내는 계속 상황 살피고! 부팀장은 협회 측 연락망으로 변종 키메라들 쪽 집중하라고 전달해! 그리고 가장 높은 등급 헌터 있으면 인원 체크해 보고 최대 셋까지 레드 리자드 쪽으로 보내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이미 전투를 시작한 듯 팀장이 말하는 중간중간 들려오는 타격음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덩달아 등 뒤에서 들려온 헛숨을 집어삼키는 소리에 몸을 틀어 뒤를 살폈다.
“…….”
언제 이동했는지 내 뒤로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얼이 나간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음을 확인하곤 다시 몸을 바로 했다.
말로 들을 때와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외부에서 헌터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듣기만 했을 이들이기에 이리 놀랄 만도 했다.
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저 놀람과 두렵다는 감정은 나 또한 이곳에 와서도 한참을 경험했던 거였으니까. 처음보다는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지금 역시도 느끼고 있었고 말이다. 저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아마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던전이 클리어되고도 한참 뒤에서야 진정되었던 걸 반추하며 다시 레드 리자드의 흔적을 쫓았다.
―저희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팀장이 홀로 고군분투하던 중,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도착 소식에 아주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네트워크에서 전달되는 소리에 집중했다.
“두 사람은 한 주무관과 공조하며 던전 주변 통제하는 데 집중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막내야, 현재 던전 어느 방향으로 커지고 있어?
김 주무관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현재 레드 리자드가 향하는 동북 방향으로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오케이! 한 주무관님은 지금 어느 방향에 계십니까?
―남쪽! 곧 북쪽으로 이동 예정이야!
―그럼 박 주무관은 바로 서쪽으로 가! 나는 동쪽 맡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
빠르게 방향을 정한 이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너머로 들려오는 타격음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몬스터가 내는 기괴한 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레드 리자드의 뒤를 쫓던 중이었다.
“아!”
“무슨 일입니까.”
짤막한 소리를 놓치지 않은 듯 부팀장이 묻는다.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방금 레드 리자드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던전 중앙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방향이 방향인지라 더는 CCTV로 쫓긴 어려울 듯합니다.”
“…이럴 때 위성을 사용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네.”
위성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좀 더 면밀하게 던전을 살필 수 있을 것이었다. 부팀장의 말에 동조하며 계속해서 레드 리자드를 볼 수 있을까 싶어 주변 카메라를 살펴봤지만 마땅한 성과는 없었다.
이럴 땐 레드 드래곤이 아닌 변종 키메라 쪽을 살피는 게 이득일 듯했다. 나는 곧바로 변종 키메라가 잡혔던 쪽으로 화면을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