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93)화 (93/246)

90화

16. 차오르는

“…….”

오늘따라 이렇게 기운이 나는 건 전부 어젯밤 김세현과의 통화 덕분인 듯했다. 어제 못다 한 스캔본 작업을 하며 점차 쌓여 가는 완성본을 보며 차오르는 뿌듯함 또한 그에 영향을 받은 기분이었고 말이다.

“부장님, 이거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 그래요.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로 직책이 없다고 하기에 아리송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이영혁과 같이 온 이가 그를 부장이라 부르는 걸 똑똑히 들은 마당에 호칭은 확실하게 불러야 했고 말이다.

어쩐지, 이영진 의원과 부시장이 직접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었는데 방문했다 싶긴 했다.

힐끔 옆자리의 이영혁 부장을 훔쳐보다가 다시 모니터를 볼 때였다.

“연 주무관님.”

“네, 이 부장님.”

“…음.”

아침에 나눈 인사를 제외하곤 첫 대화다. 곧바로 답하며 옆을 보자 묘한 시선이 날 보고 있었다. 곤란한 듯하면서도 조금은 재미있어 보이는 듯한 시선과 마주하다가 좀처럼 말을 잇지 않는 이에게 되물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갑자기 부른 이유가 있을 거다. 나는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작업하는 데 죄송합니다. 혹시 이 부분 확인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영혁 부장이 조금 전 다른 이가 건넨 서류를 앞으로 내민다. 그것을 받곤 그가 가리키는 부분을 보았다.

“센터피드 개체가 나타났던 던전 기록 중에 범위 부분이 조금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요. 혹 이 부분 조사가 덜된 것인지, 아니면 누락이 된 것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항상 던전이 소멸하면 피해 범위를 지도로 만들어 정보를 남겨 두기에 부족한 부분은 출력 도중 누락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먼저 자료를 찾기 전, 그와 관련된 작업을 맡은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컴퓨터를 턱짓하는 한 주무관이다. 그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부서 공용 파일을 열어 당시 작성한 지도를 화면에 띄우곤 한 번 더 서류를 살폈다.

“아, 이 부분이네요.”

출력 도중 파일 선택을 하다 이곳이 빼고 출력한 듯싶다. 서류 상단에 적힌 번호 중에 빠진 번호가 뭔지 확인한 후 곧바로 그것을 출력해 이영혁 부장에게 전달했다.

“…이 작업 모두 헌터부에서 담당합니까?”

“네. 현장에 나간 분들이 직접 이 작업까지 마무리하세요.”

“…계약직 헌터들도 함께 합니까?”

“아뇨. 순수하게 헌터부 팀원만 작업합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툭하면 생성되는 던전인데, 이 인원으로 이런 세세한 작업까지 진행하다니. 존경스럽습니다.”

“…….”

존경한다는 말이 이영혁 부장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왜 이리 기분이 술렁이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 술렁일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팀원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이들은 거의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막상 저 말을 들으니 괜히 뭐라도 하나 더 알려 주고 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나는 이영혁 부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는 게 있거나 헷갈리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저희도 듣고 있으니 뭐든 말씀하십시오.”

역시, 조금 전 말을 팀원들도 들은 듯했다. 평소와 같았지만, 묘하게 밝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슬며시 입가를 끌어 올렸다.

“예, 그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영혁 부장이 방금 뽑은 서류를 포함해 차근차근 내용들을 살핀다. 나는 다시 하던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옆자리에서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여 다른 부분도 누락된 게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야.”

처음엔 이 많은 걸 언제 다하나 싶었는데, 계속해서 작업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그뿐이랴, 요령이 생기니 처리하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퇴근하기 전까지 수월하게 작업이 끝날 듯….

“막내야.”

“헉, 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다. 화들짝 놀라며 옆을 보자 언제 왔는지 한 주무관이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자세 그대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심장께로 손을 올렸다.

“아니, 불러도 답이 없길래.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지.”

“…아.”

“이제 슬슬 점심 주문해야 할 시간이라서.”

“벌써요?”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점심시간인지 모르겠다. 아니지, 이전에도 점심시간이 아닌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것처럼 놀림 받은 적이 있었다. 한 주무관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슬쩍 시간을 확인해 봤다.

“…….”

이번엔 장난이 아니었는지, 한 주무관의 말처럼 벌써 점심시간이 코앞이었다.

“뭐야, 지금 내 말 의심했어?”

“에이. 예전에도 한 번 당했는데, 우리 막내가 또 당할 순 없죠!”

“일하고 싶으면 일단 점심부터 고르고 해.”

“…네.”

다른 의미로 속긴 했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 관리에 힘썼다.

“그럼 뭘로 주문할까요?”

오늘 전화 담당은 박 주무관으로 정해진 듯했다. 메모지를 들고 이쪽을 보며 묻는 이다. 나는 옆자리의 이영혁 부장을 응시했다.

“아, 저희는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편히 식사 하십시오.”

점심 약속이 있을 줄은 몰랐다. 뭐, 같은 부서가 아니었기에 굳이 약속이 있다며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말을 마친 이영혁 부장이 날 보며 씩 웃는다. 나는 어색하게 입가를 끌어 올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점심 주문하겠습니다.”

“예, 그러십시오.”

“막내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저는 음식 정해지면 그거 따라갈게요.”

다른 때 같았다면 바로 중식을 외쳤겠지만, 면을 먹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배가 너무 빨리 꺼져 탈이었다. 게다가 팀원들만 있는 게 아닌지라 일하는 중간중간 주전부리를 챙겨 먹기엔 좀 그랬고. 오늘은 다른 이들이 선택한 음식을 따르는 편이 나았다.

“그래? 그럼 혹시 오늘 뭐 따로 당기는 음식 있으신 분 계십니까?”

“해장국이나 순대국밥 어때?”

“오, 육개장도 되는 식당 있으면 그쪽으로 주문 넣죠!”

“저도 좋습니다.”

“저도요!”

모두가 단번에 메뉴를 정하곤 날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에 응했다.

“나는 해장국.”

“저는 순대국밥으로 먹겠습니다.”

“해장국이요! 막내는?”

“저는 육개장 먹을게요.”

“오, 나도 육개장.”

“메뉴 정해졌으니 이제 못 바꿉니다!”

메뉴를 확인한 박 주무관이 곧바로 전화를 든다. 익숙하게 주문하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

주문했으니 이제 음식이 도착할 때까진 시간이 붕 떴다. 그동안 최대한 쳐낼 거 쳐낸 후 이영혁이 대신 작업 중인 타이핑 자료를 건네받아 작업하면 될 듯했다. 다시 마우스를 붙잡고 마저 하던 작업을 이어 갔다. 아니, 이어 가려 했다.

“또 작업하십니까?”

별안간 이영혁 부장이 말을 걸어왔다. 옆을 바라보자 묘한 표정의 그가 보였다. 나는 반 박자 늦게 고개를 주억였다.

“네.”

“쉬엄쉬엄하는 것도 능률 높이는 데 좋습니다.”

“…….”

갑자기 능률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싶다. 이미 내 능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상승 중이었는데 말이다.

“음, 너무 일을 많이 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내 표정이 좀 이상했는지 이영혁 부장이 말을 덧붙였다.

“아.”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그런 뜻으로 한 말일 줄은 몰랐다.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이를 보며 슬쩍 입가를 끌어 올렸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 괜찮습니다.”

“…아.”

“이렇게 작업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져서 좋거든요.”

“…….”

“계속 작업하다 보면 능률도 오르고, 그게 몸에 배면 다음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그, 렇습니까.”

…음?

그가 꺼낸 말에 성심성의껏 답했을 뿐인데, 왜 이리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무척 희한한 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말이다.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 하.”

“하하.”

시선을 얼마나 마주했을까, 이영혁 부장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흘린다. 나 또한 그를 따라 어색함이 가득 느껴지는 웃음소리를 뱉으며 끊임없이 그를 살폈다.

“끄흡!”

“흐윽!”

“…….”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소리다. 사무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 참는 소리에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자, 이번에도 역시나 모두가 허리 숙여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니, 한 사람만큼은 괜찮은 듯 보이기도 했….

“흡!”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부팀장이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입가를 틀어막는다. 하지만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웃음소리는 이미 내 귀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

간혹 이렇게 이유 모를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이긴 했지만, 오늘은 그 웃음이 더더욱 이해되질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답을 한 터라 웃음 포인트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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