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16. 차오르는
“…후우.”
자꾸만 나오는 한숨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아니, 한숨이 아니더라도 이 긴장은 모든 행동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알람도 울리기 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것도, 다른 날과는 달리 배도 고프지 않은 것도 그렇고 말이다.
던전을 조사하려 파견되는 거라곤 하지만, 조사관들을 파견하는 곳이 청와대인 이상 압박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하여 마냥 이렇게 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연신 숨을 고르며 부팀장을 기다릴 때였다.
“음?”
저게 뭐지?
맞은편 집 담벼락 위에 자리한 둥그런 모양의 검은 무언가를 지켜보는 것도 잠시였다. 기석이 휴가를 나왔을 때, 그리고 간혹가다 집 근처에서 본 적 있던 검은 물체와 비슷하단 생각에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흐음.”
그간 몇 차례 검은 물체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다.
플라스틱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금속 같기도 한 검은 물체를 이리저리 살피던 중, 검은 물체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잉― 지이잉―
“…….”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장식품이라고만 보기엔 어폐가 있을 듯했다.
도대체 이 검은 게 뭐라고 최근 집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건지.
지잉―
…그냥 슬쩍 만져볼까?
내 것이 아닌지라 만진다는 선택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저렇게 소리를 내는 걸 듣고 있자니 직접 확인하고 싶단 생각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 분을 고심 끝에 마음을 다잡곤 담벼락 위로 손을 뻗었다.
그래, 보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저걸 들어서 확인할 것도 아니기에 만지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혹여 앞집 아저씨가 안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주변 어르신들과는 제법 사이가 좋았으니 말이다.
조심스럽게 검은 물체를 만져보고 또 두드려 보니 아무래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구체안에서 기계가 작동 중인 듯했다.
지잉―
“…….”
주변에서 이런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도통 이것의 정체를 가늠할 수가 없다. 기왕 만진 거, 아예 들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그때였다. 골목길로 접어드는 차 엔진 소리가 들려온 건.
좀 더 저 물체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저리 담벼락에 둔 걸 보면 퇴근 후 돌아와 허락받고 확인해도 될 듯했다. 운이 좋아 앞집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면 저게 뭐냐 물어봐도 될 일이고 말이다. 집 앞으로 자리를 옮기고 잠시 뒤, 도착한 부팀장의 차에 올랐다.
“부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무슨 일 있어요? 저쪽에서 오던데.”
“아, 저기 담벼락에 낯익은 게 보여서요.”
담벼락을 가리키자 부팀장이 앞집 담 쪽으로 시선을 준다.
“저 검은 물체 말입니까?”
역시 담벼락 위에 떡하니 자리한 저게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단번에 검은 물체를 가리키는 부팀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안에서 기계 소리도 나더라고요.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도통 알 수가 없네요.”
“…주인분께 한 번 여쭤보는 게 나을 듯하군요.”
혹시나 부팀장은 본 적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반응을 보니 그 또한 처음 보는 듯했다. 나는 부팀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네, 그럴까 하고 있어요.”
“이제 출발하죠. 할 일이 많으니.”
어제도 조사관 맞이에 분주했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조회 전까지는 한 번 더 정리해야 했고 말이다.
말을 마친 부팀장이 곧바로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날이 날인지라 일찍 출근했기에 부팀장과 내가 첫 출근을 했을 줄 알았다.
먼저 출근한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에게 인사를 건네며 짐을 정리한 뒤 곧바로 주변 정리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너무 열심히 정리하는 거 아냐?”
“괜히 책잡힐까 싶어서요.”
청와대에서 파견하는 것이기에 신경을 쓰는 건 당연했지만, 누가 조사관으로 오는지 모르는 마당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 재수 없게도 이영진 의원과 가까운 인물이 조사관으로 낙점받아 오기라도 한다면 시비를 걸 소지가 다분했으니 말이다.
“하기야, 조심하는 게 낫긴 하지.”
“읏차! 나도 손 좀 거들어 볼까?”
자세한 설명이 없었음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듯 두 사람이 자리서 일어난다. 각자 어제 맡았던 것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짐 정리를 마친 부팀장이 합류해 손을 걷어붙인다. 간이 탕비실 정리에 몰두한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숙인 허리를 펴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자, 이만하면 되었으니 마무리들 해! 조회 시작하자! 막내는 정리하는 데 집중 그만하고.”
“…네!”
정리하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팀장이 출근한 것조차 몰랐다. 마지막으로 청소를 위해 꺼내두었던 비품들을 제자리로 돌린 뒤 자리로 향했다.
“한 주무관, 멀었어?”
“손만 씻으면 갑니다!”
“아아, 그래. 그럼 거기서 들어.”
“예!”
한 주무관과 대화를 마친 팀장이 찬찬히 사무실 안을 둘러본다. 이어 헛기침을 몇 차례 한 팀장이 입을 열자 귀를 기울였다.
“어제 말했다시피 오늘은 청와대에서 던전 관련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관들이 올 예정이야. 그간 정리한 내용 전달하고. 그리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성심성의껏 알려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예!”
“팀장님, 조사관들 오는 시각은 전달되었습니까?”
박 주무관이 손을 들며 묻자, 팀장이 팔짱을 끼며 책상에 기대어 섰다. 비뚜름한 미소를 짓는 걸 보니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뭐라고 할지 대강 짐작이 되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시청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아마 그쪽에 들렀다가 오겠지. 미리 출발할 때 연락 달라고 했으니 그때가 되어야 알 수 있겠지.”
“하아, 매번 이렇게 급작스레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야….”
“던전 관련 상황을 면밀히 살피려고 오는 거니 긴장하지 말자고. 아, 그리고 혹시나 조사관이 불필요한 질문을 할 수도 있으니 불편하다 싶으면 주변 팀원에게 토스하도록 해.”
말끝에 이쪽을 바라보는 팀장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말이었지만, 상황을 보니 나에게 좀 더 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하, 좋아! 조사관도 조사관이지만 할 일은 해야지. 어서들 일해!”
“예!”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팀장이 껄껄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그에 의자를 돌려 앉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
이미 어제부터 조사관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도착이 임박해지니 이보다 긴장될 수가 없었다. 점차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바탕화면이 뜬 모니터를 응시했다.
지난번 김세현이 청와대로 입김을 넣었던 일과 이번 방문이 부디 관련 없길 바랐다. 혹여 관련된다고 한들 확실하게 맡은 바 일을 해내면 눈치를 볼 일도 없을 터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곤 작업 중인 파일을 정리하고 또 작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맡은 작업을 하고, 또 틈틈이 한 주무관이 맡긴 일감을 정리하던 와중이었다. 팀장 자리의 전화가 우렁차게 울리자 곧바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예, 서울시 헌터부 염기탭니다. 아, 이제 끝났습니까? 출발은 언제 한답니까.”
두근두근.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었지만, 막상 전화가 오니 조금 전의 떨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나는 경직된 몸을 삐걱거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30분?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사관들만 오는 겁니까? …뭐요?”
평이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난데없이 팀장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팀장이 저런 소리를 낼 땐 좋지 않은 징조였다.
이번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낸 걸까.
“아니 왜 이영진 의원이 또 끼어요, 끼길!”
“헐.”
“그 사람은 일이 없나?”
“…….”
여기서 또 이영진 의원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당연히 조사관과 관련된 말일 줄 알았는데,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팀원들 또한 짐작조차 못 한 듯 반응이 좋지 못했다. 절로 일그러지는 미간을 굳이 펴지 않은 채 양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이영진 의원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답니까? 왜 매번 헌터부 일에 사사건건 끼어들지 못해 안달이네!”
“와, 이영진 진짜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네요.”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이번 일은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군요.”
“혹시 조사관 중에 이영진 쪽 사람이 있는 거 아니야?”
“헉, 그런 거라면 괜히 트집 잡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대놓고 하진 못할 겁니다. 청와대에서 직접 사람을 파견하는 만큼 대통령 또한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을 테니까요.”
“아, 됐고! 일단 끊습니다!”
속닥이며 대화를 나누는 팀원의 목소리 위로 팀장의 거센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들어 팀장의 얼굴을 살폈다.
“방금 들어 알겠지만, 이영진 그놈이 또 온다는군!”
“…정말 낄 자리 안 낄 자리 구분하지 않고 출석하는 것도 대단하네요.”
“그리고.”
“그리고, 라뇨?”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팀장이 딱딱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말을 뱉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골치깨나 썩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혹감이 느껴지는 얼굴을 보며 비스듬하던 자세를 바로 고쳤다.
“부시장님도 동행 중이라고 하니 다들 긴장하고.”
“헉.”
“부시장님이요? …우리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겁니까?”
“더 정리해야지!”
부시장이 온다는 말을 들은 팀원들이 마치 신호를 주고받기라도 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에 반 박자 늦게 일어나 재차 정돈을 위해 간이 탕비실 쪽으로 발을 내딛던 찰나였다.
“이만하면 됐어! 까다로우신 분이니 우리가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 그냥 있는 대로 맞이하자고.”
“그렇긴 하겠네요.”
“그분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
부시장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터라 눈치껏 판단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여간 까다로운 분이 아니라는 걸 곱씹으며 자리에 앉던 참이었다.
“아, 막내. 막내는 아직 부시장님 안 만나 봐서 잘 모르겠구나.”
눈치로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설명이 곁들어진다면 더 좋았다. 박 주무관이 내민 손길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부시장님이 어떠시길래 다들 이러시는 거예요?”
“음, 좋게 말하면 깔끔한 걸 좋아하시고, 나쁘게 말하면 강박증이 좀 심하다고 해야 할까? 예의 지키는 것도 무척 중요시하니 기억하고 있어.”
“네.”
“막내야, 옷도 잘 챙겨 입도록 해. 한 번 눈 밖에 나면 사람 피곤해질 정도로 물고 늘어지는 양반이거든.”
박 주무관에 이어 여기저기서 부시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부시장을 맞이하는 것보단 정보를 습득한 채 마주하는 게 나았지만, 막상 팁을 들으면 들을수록 긴장되는 건 어쩔 방도가 없었다.
“…….”
그렇다고 해서 긴장에 집어삼켜질 이윤 없었다. 이렇게 곁에서 챙겨주는 팀원들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주변에서 팁을 알려주는 팀원들을 둘러보며 떨리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