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88)화 (88/246)

85화

15. 다사다난합니다

띠리릭― 띠리릭―

청와대 측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은 지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시금 울린 팀장 자리의 전화에 반쯤 의자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예,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전화 대상을 이미 예상했기 때문일까, 앞선 두 번의 전화를 받을 때완 달리 팀장은 한결 진정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조금 더 의자를 돌려 앉아 팀장을 보려 했다.

“막내야, 작업해야지.”

“…네.”

하지만 그 행동은 김 주무관에게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의자 손잡이를 붙잡으며 말을 건네는 김 주무관의 행동에 결국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예? 아, 그러니까 조사관을 파견한다고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건만, 저리 천연덕스럽게 되묻는 걸 보면 그간 시청 측에서 절차를 앞세워 얼마나 헌터부에 압력을 넣었던 건지 알 듯했다. 팀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다른 때완 달리 작업하라고 붙잡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작업을 하는 척하며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조사관은 언제 파견된다고 합니까? …내일이요?”

“헉.”

던전 현황을 살피기 위해서라면 하루라도 일찍 그들이 나와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보는 거야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일 당장 파견을 나온다니.

슬쩍 옆자리를 보니 김 주무관 또한 놀란 듯 타이핑을 하다 말고 손을 그대로 멈춘 채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뿐이랴, 다른 팀원들조차 내일 방문은 예상하지 못한 듯 다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우선 알겠습니다. 내일 사람이 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이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에 곧바로 팀장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내일이요?”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온답니까?”

“아무래도 전 세계적으로 터지는 높은 등급의 던전들 때문에 경각심이 생긴 듯해. 그게 아니라면….”

힐끔 나를 보는가 싶던 팀장이 말을 줄인다. 그에 자연스럽게 김세현을 떠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사관들은 얼마나 머무른다고 합니까?”

“올해 던전 현황 살피고 나면 돌아가지 않을까 싶은데.”

“헉, 그럼 빨리 정리할 거 정리해서 그들 손에 쥐여 줘야겠는데요?”

“그렇지.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말고.”

“무리는요! 상황 돌아가는 거 보니 우리가 무리한다 싶으면 그쪽에서 결사코 말릴 거 같은데요.”

“…….”

팀장의 말에 김 주무관이 말을 이으며 나를 바라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한 번 더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우선 손님이 온다고 하니 대충 일들 정리하고. 청소부터 하자.”

“예!”

“와, 에드워드 왕자가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대청소를 하다뇨….”

“대청소는 1년에 한 번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대청소를 1년에 한 번 한다고?

정말 이보다 더 놀랄 말이 있나 싶다. 아무리 못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말없이 1년을 입에 담은 박 주무관을 바라볼 때였다.

“그렇게 떠들 시간에 걸레질 한 번이라도 더 해야지! 얼른 일들 종료해!”

“예!”

“왕자가 다녀갔으니 크게 청소할 건 없을 거야. 그래도 꼼꼼히 정리 정돈 잘하고!”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하던 작업을 종료하곤 컴퓨터를 끈다. 마저 작업하던 부분 확인을 마치고 뒤따라 컴퓨터를 끄자, 사무실 바닥 청소하란 지시가 내려왔다. 바로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우리도 청소기 한 대 놓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서라. 협조금 많이 나오고 있어서 떨어진 비품 사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그래도 밥 먹는 건 뭐라고 지적하지 않아 다행이네요.”

비품을 사는 게 눈치 보일 정도라면 박 주무관의 말마따나 식사를 터치하지 않는 게 용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대화 내용을 귀담아들으며 계속해서 바닥을 쓸었다.

“밥 가지고 뭐라고 했으면 진즉에 공무원 때려치우고 협회로 갔지!”

“설마, 팀장님이 한 번 뒤집으신 건 아니죠?”

“아니긴요. 이미 몇 년 전에 뒤집고 나서는 식사 관련해서 만큼은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식비 한 번만 더 터치하면 협회로 튄다고 했거든.”

“와, 그건 참아야죠.”

“맞습니다! 현장에 팀장님이 없으면 마비됩니다!”

“…….”

그런 비하인드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팀장의 부가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다.

Rrrr― Rrrr―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생각지도 못한 벨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가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김 주무관!”

“헉, 예!”

몇 번을 반복해 벨이 울리자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간이 탕비실 쪽을 청소하던 김 주무관이 부리나케 뛰어와 긴급 전화 수화기를 붙잡는 걸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예,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

난이도 A급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 전화가 울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전화가 온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보다 훨씬 전화가 울리는 주기가 짧아진 듯했다.

도대체 이번엔 어느 구역에 던전이 열린 건지 모르겠다. 굽혔던 허리를 곧추세우며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장난합니까!”

그때였다, 김 주무관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생각지도 못한 말과 함께 거친 숨을 내뱉기 바쁘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상황을 살피자, 평소엔 본 적 없던 김 주무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헌터부 긴급 전화가 얼마나 중요한 전화인지 모릅니까? 징역까지 살 수 있어요!”

“설마, 지금 장난 전화 온 거야?”

“하!”

상황을 파악했는지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긴급 전화 쪽으로 이동한다. 그들과 함께 그쪽으로 이동하곤 상황을 살폈다.

“왜 전화번호가 없다는 겁니까, 시청 들어가면 떡하니 헌터부 직통 전화번호가 올라와 있을 텐데!”

목에 핏대까지 선 김 주무관이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간 단 한 번도 이렇게 흥분한 모습을 본 적 없기 때문일까, 긴장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통화 내용을 들으며 손에 쥔 빗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그쪽이 아까 어디라고 했죠? 아, 떳다 TV? 지금 이 전화는 연결 즉시 녹음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을 테고. 조만간 경찰 측에서 연락 갈 겁니다! 아, 그러니까 이쪽으로 연락하면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했냐, 이겁니다!”

“아.”

그저 장난 전화인 줄 알았는데, 그곳이 거론될 줄이야….

며칠 조용하나 싶어 혹 다른 쪽으로 관심이 돌아갔나 했는데, 그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인 듯했다. 슬쩍 부팀장을 보니 그 또한 나를 보고 있었는지 바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슬쩍 김 주무관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가 바로 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전화 받는 게 좋을까요?

“…….”

하지만 부팀장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에 조용히 통화가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올리려면 올리쇼! 이쪽도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까! 어디 한 번 진흙탕 속으로 가 보자고요! 뭐, 민원? 하! 넣으려면 넣든가! 우리가 민원 하나에 눈 하나 끔뻑이라고 할까 봐요?”

금방 끝날 것 같았던 통화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김 주무관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되는데, 이러다 이번엔 김 주무관과 관련된 안 좋은 영상이 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차오를 때였다.

“그만하고 끊어.”

계속되는 통화가 신경 쓰인 듯 잠자코 지켜보던 팀장이 입을 연다. 팀장의 목소리가 썩 좋지 않단 사실에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팀장님!”

벌겋게 달아오른 김 주무관이 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사람 좋은 김 주무관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김 주무관.”

하지만 한 번 더 그를 부르는 팀장의 목소리는 조금 전까지 신경 쓰이던 김 주무관의 행동을 완전히 잊을 만큼 무거웠다.

“…알겠습니다. 끊습니다.”

팀장의 부름에 잠시 망설이나 싶던 김 주무관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은 게 분했는지 연신 어깨가 들썩이는 게 아무래도 지금 말을 거는 건 무리일 듯했다. 침묵하며 김 주무관을 살피고 있자니 팀장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듣자 하니 뭐? 떳다 TV? 그런 채널도 있어?”

“개인이 운영하는 채널입니다. 영상 사이트에 업로드되고요.”

“아, 그런 거 말하는 거야? 근데 왜 거기서 긴급 전화를 걸어?”

“그게, 지난번에 말씀드린 거 있잖습니까. 서강민 관련해 접근해 온 이들이 있었다고요.”

“…거기였어?”

“예. 그리고, 자극적인 썸네일을 쓴 영상을 올린 곳도 그곳입니다.”

“그럼 홈페이지에 있는 번호로 연락해야지! 어딜 감히 긴급 전화에 그따위 전화를 걸어!”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뭔가 싶던 팀장의 표정이 야차처럼 변한다.

“이번엔 우리도 대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긴급 사태 때에만 연락해야 하는 곳으로 호기심 좀 풀어 보려고 전화를 걸었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어린아이들도 하지 않는 짓을 했으면 한 번쯤은 호되게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겁니다!”

“좋아! 그럼 내일 내가 아는 기자 한 사람 부를 테니…. 아 참, 내일 조사관들이 오기로 했지. 그럼 내일 점심에 잠깐 외출하고 올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예!”

“마저 청소들 하자!”

“휴, 생각지도 못한 전화이긴 했지만 던전이 생성된 게 아니라 정말 다행입니다.”

“아아, 그렇게 생각해야지. 물론, 장난 전화를 건 것에 대한 혼쭐은 내야겠지만 말이야.”

“…….”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행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막내야, 뭐해?”

“바로 청소하겠습니다!”

생각이 너무 길었는지 곁을 지나치던 박 주무관이 의아한 시선을 보내온다. 나는 황급히 손에 쥐고 있던 빗자루를 움직이며 사무실 안을 쓸기 시작했다.

떳다 TV.

썩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었지만, 조금 전 전화로 인해 그들에게 끌려갈 상황은 사라진 것과도 다름없었다.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아니, 따지고 보면 병을 계속 주는데, 그 와중에 약이 될 만한 게 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나는 마저 청소하며 복잡한 생각을 멀리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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