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87)화 (87/246)

84화

15. 다사다난합니다

“하!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뭘 어쨌다고요!”

“…….”

“아니 항상 말씀드렸다시피 협조금 관련해서 그렇게 불만을 토로할 거면 직접 나와서 던전 클리어하라니까요? 왜 매번 일하는 건 우리고, 욕먹는 것도 우립니까! 이렇게 닦달할 거면 국가 소속 보유 헌터 수를 늘리든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지겨울 법하건만, 상대는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지겹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어휴.”

“위에서 까라면 까야겠지만, 매번 저렇게 입씨름하는 것도 대단하지.”

“오죽했으면 우리 팀장님이 저쪽 통화 상대방을 인정했겠어요. 위에서도 까이고, 헌터부에서도 까이고 안쓰러워 죽겠다고 하던데.”

“…안쓰러운 건 잠시 뿐입니다.”

팀장이 상대를 안쓰러워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처럼 팀장은 마음을 다해 상대와 언쟁하며 헌터부를 변론했기 때문이었다.

“아, 됐고, 우리는 할 만큼 했습니다! 그래도 매번 수저 얹는 이들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앞으론 협회도 좀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하니 그런 줄 아십쇼! 전화 끊습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팀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격해진 감정을 다스린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솟구쳤던 마음을 진정시키던 참이었다.

띠리릭― 띠리릭―

“와.”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아직 할 말이 남기라도 한 듯,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시금 전화가 울린다. 그와 함께 전화를 바라보는 팀장의 눈빛이 점차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살짝 기울어졌던 몸을 바로 하며 팀장과 전화기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후우.”

“팀장님, 제가 받을까요?”

“아니. 내가 받아야지.”

깊은 한숨을 들은 부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하지만 팀장은 전혀 전화를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호하게 말을 잘라낸 그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곤 수화기를 들더니 이내 귓가로 가져간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 헌터붑니다.”

“…….”

조금 전보다 진정되었지만, 영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보다 더 긴장될 순 없었다. 한 번 더 충돌이 일어날 게 뻔한 상황에 한껏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어디시라고요?”

음?

잔뜩 이맛살을 구긴 채 상대의 말을 듣던 팀장이 삐딱하게 서 있던 몸을 바로 한다. 그뿐이랴, 불편함이 가득했던 얼굴엔 어느새 놀라움이 가득했다.

“예, 예? 그건 시청을 통해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일단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꼭 시청으로도 연락 넣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굴까요?”

“그러게.”

저 전화가 울릴 땐 백이면 백 시청에서 온 전화였던지라 지금 통화 내용으론 상대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알 수 있는 거라곤 시청을 통하지 않고 헌터부로 바로 연락이 왔다는 점일까.

“…….”

도대체 어디기에 저렇게 팀장이 쩔쩔매는 건지 모르겠다. 한 번씩 허리를 굽혔다가 바로 하며 답하는 모습에 점차 궁금증이 쌓여 갈 무렵이었다.

“후우.”

“팀장님, 도대체 어디서 연락이 온 겁니까?”

“시청은 아닌 듯하던데요.”

“…….”

전화를 끊자마자 팀원들이 바로 상황을 묻는다. 나는 빤히 그를 바라보며 대답하길 기다렸다.

“그게 말이야.”

“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어.”

“…예?”

뜬금없이 청와대가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청와대란 단어를 듣는 순간 김세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얼른 고개를 저으며 날려 보냈다.

다른 이유가 있어 전화가 왔을지도 모르는데, 자연스럽게 청와대 하면 김세현이 떠오르는 건 그간의 기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표정이 묘했다.

“청와대에서 헌터부로요? 무슨 일로요?”

“설마, 막 그런 거 아니겠죠? 우리가 생각하는 그놈이 또 일 벌였다거나 그런 거 말입니다.”

“그건 아니니 다들 그렇게 놀라지 말고.”

“…김세현과 관련된 게 아니라니… 어째서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는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만.”

그래, 지금은 부가설명이 필요했다. 부팀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계속해서 팀장을 응시했다.

“다른 게 아니고 이번 던전이 큰 피해를 입혔잖아. 아무래도 그와 관련된 듯해.”

“아.”

“그래도 바로 헌터부로 연락이 온다는 건 좀 그런데요?”

“그저 상황을 물어보는 것 정도면 나도 그런가 하고 답하고 말았겠지. 근데 그쪽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해서 말이야.”

“어떤 말인데요?”

“이번에 헌터부로 던전 관련 조사관을 파견할 모양이야.”

“…예?”

조사관을, 파견한다?

최근 생성되는 던전을 생각해 보면 조사관을 파견하는 시기가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긴 했다. 하지만 시기는 시기였고, 연락은 연락이었다.

시청을 통하지 않고 바로 헌터부로 연락을 취했다는 청와대의 저의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시청을 통해서 조사관을 보내는 게 맞는 순번 아닌가요?”

“그렇지. 그래서 시청에 말 좀 넣어 달라고 했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넣었다는 말이 시장 귀에 들어가면 안 될 텐데 말이죠.”

“그러지 않아도 매번 헌터부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서 질투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아, 이번 시장이 이영진과 막역한 사이라고 했죠?”

“그게 문제야. 이영진 말이지.”

정말 잊을 만하면 이영진 의원과 관련된 말이 튀어나온다. 나는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조사관을 파견한다는 걸 보면 한두 명은 아닐 테고, 아마 여럿이 오게 될 듯해. 어쩌면 헌터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될 수도 있고.”

만약 그들이 이곳에 오게 된다면 김세현이 일정을 마친다고 한들 앞으로 한동안은 사무실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간 내 편의를 생각하며 출입을 자제할 땐 자제했던 그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다른 이들로 인해 그가 오지 못할 거라니. 탄식이 나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그라면 충분히 그냥 밀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자제하는 건 전부 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김세현의 자리가 오래 비워진다 생각하니 한 번쯤은 그냥 와서 얼굴 정도는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이미 약속한 바가 있어 조만간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말이다.

“…….”

“…야.”

김세현이 신경을 써 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자꾸만 욕심이 샘솟는다. 그냥 함께 있었으면, 하는 그런 욕심 말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막내야?”

“아, 네.”

아차.

조사관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왜 김세현 쪽으로 생각이 튄 건지 모르겠다. 김 주무관의 부름에 뒤늦게 정신을 다잡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조사관들이 오면 어쩌나 싶어서요.”

다른 곳도 아니고 청와대에서 직접 말이 내려온 만큼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자, 김 주무관이 씩 웃어 보인다. 이어진 말에 귀를 기울였다.

“큰 건 없어. 그냥 김세현이 한동안 발길을 끊는 정도겠지. 물론, 시청에서도 말이 나올 테지만 그건 무시하면 될 일이고.”

“시청보다 더 높은 곳에서 오더가 내려오는데, 시장이라고 한들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대화 내용을 들었는지 박 주무관 또한 말을 얹는다. 그뿐이랴, 그 옆의 한 주무관까지 이쪽을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뚫어져라 날 바라보는 한 주무관과 눈을 마주하며 그가 꺼낼 말을 기다렸다.

“그렇지. 하지만 청와대라고 해서 우리 편은 아니니까 항상 경계 늦추지 말고.”

“예!”

이젠 굳이 저 말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원들이 조심하라고 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일들이 터졌으니 이번 역시 그 말을 따르는 것이 결론적으론 나에게 유리한 일일 테니까.

“막내는 지난번에 김세현이 청와대로 말을 넣은 터라 관심이 많이 쏠릴 거야. 그러니 항상 조심하고. 특히 김세현과 연락을 한다거나 하는 건 회사에서는 되도록 하지 말고.”

“네, 그러겠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면 불편해지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유심히 나를 보는가 싶던 팀장이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상황이 상황이니 조사관 오면 던전 관련 정보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알겠습니다!”

“좋아, 시청에서도 한 번 더 전화가 올 듯하니 마저 하던 작업들 해.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시청에서 다시 전화가 올 것 같단 말을 하는 팀장의 표정이 재차 일그러진다. 무척이나 전화를 받기 싫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전화도 아닌지라 그저 위로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란 말에 하나둘씩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 나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자리서 일어났다. 곧바로 커피를 타 팀장에게 전했다. 잠시 눈을 끔벅이는가 싶던 그가 씩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하여간 우리 막내가 최고라니까. 잘 마실게.”

“네.”

뭐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이보다 다행일 수가 없다. 다른 날과는 달리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힘이 별로 실려 있지 않아, 다행히 큰 굴욕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작게 숨을 내뱉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생각지도 못한 조사관 파견이라는 말이 당혹스러웠지만, 한 번쯤은 파견이 나오긴 해야 했던 상황이긴 했다. 그래, 책상에 앉아 이러니저러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이젠 한계일 테니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한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부탁한 작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어 발생한 상황에 결국 오늘 작업은 더는 이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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