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15. 다사다난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최근 신경 쓸 일이 많았던지라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건 오래간만인 듯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제법 높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니 먼저 출근해 있던 이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왔다.
“좋은 아침.”
“아침부터 왜 이리 하이텐션이야?”
“잠을 푹 자서요. 컨디션이 좋네요.”
“오, 그거 다행이네.”
“네.”
잠이야 항상 자긴 했지만, 이렇게 깊고 또 질 좋은 잠을 청한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자리로 가 짐을 풀고 컴퓨터 전원을 켠 뒤 크게 심호흡 후 어제 작업하던 현장 지도 작업에 착수했다.
“아침부터 왜 이리 열심이야?”
다가온 박 주무관이 커피를 책상에 놓으며 묻는다. 나는 짤막한 인사를 건네며 웃어 보였다.
“할 일이 생기니 기운이 나네요.”
“우리 막내 단순 작업 좋아하네.”
“네, 뭐든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간 던전이 생성되면 CCTV를 살피고, 또 협회 협조금 관련 문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일을 하던 터라 좀 눈치가 보이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성되면 뿌듯한 일감을 주니 이보다 기쁠 순 없었다. 물론, 지금 이 하이텐션은 어젯밤부터 유지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앞으로 나랑 같이 현장 지도 작업할래?”
“네! 좋아요.”
비교하고 또 지도를 완성시키는 게 얼마나 보람찬지 모르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하자 빤히 날 바라보는 박 주무관이다. 나는 그와 시선을 교환했다.
“와, 진짜 어떻게 이런 녀석이 헌터부에 온 걸까요?”
“막내 이쪽에 올 때 뺑뺑이 돌린 사람 찾아볼까?”
“오, 그것도 좋죠! 이건 헌터부 차원에서 선물을 줘야 합니다!”
“…….”
선물까지 거론하니 괜히 민망하다. 볼을 긁적이던 중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주무관이 들어오자 얼른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무관님.”
“좋은 아침. 막내 오늘 기분이 좋네?”
“잠을 푹 잤다고 하네요!”
“그래? 하긴, 잠만큼 중요한 건 없지.”
김 주무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간 한 주무관이 이쪽을 바라보며 씩 웃는다. 따라 웃다가 이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그렇게 어제 작업하다 만 지도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재차 사무실 문이 열리자 그쪽으로 시선을 줬다가 팀장의 품에 안긴 크라프트 종이봉투를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오, 오래간만에 빵 사 오셨네요?”
“시간이 맞아서 말이야. 갓 구운 빵이니 다들 와서 빵 챙겨 가.”
“네!”
이미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긴 했지만, 고소한 빵 내음을 맡으니 구미가 당겼다. 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원탁으로 가 봉투 속에서 쏟아지는 빵들을 보다가 슬그머니 커피번 하나를 챙겼다.
“다른 것도 가져가서 먹어.”
“일단 이거 하나 먹고요.”
“신경 쓸 일이 있을 땐 많이 먹어 두면 좋아.”
“네.”
최근 마음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일까, 좀 더 빵을 챙겨 가라 손짓한다. 나는 커피번과 크림빵 하나를 챙기며 입을 열었다.
“커피 타다 드릴게요.”
“좋지!”
“오, 나도 부탁해!”
“저는 율무차로 부탁합니다.”
“부탁할게.”
팀장이 오기 전 박 주무관이 챙겨 준 커피가 있기에 내 건 굳이 타지 않아도 될 듯했다. 빠르게 차를 준비해 모두에게 전달하고 자리로 돌아와 마저 하던 작업창으로 시선을 주었다.
“…….”
계속 집중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커피번을 앞에 두고는 무리였다. 게다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조회도 진행될 테니까, 조회가 끝난 뒤에 집중력을 발휘해도 될 것 같았다.
결국 작업을 하는 걸 뒤로 미룬 채 빵을 먹기 시작했다.
“오, 작업 많이 했네?”
언제 다가왔는지 한 주무관이 의자 등받이에 손을 걸치며 말을 걸어온다. 나는 뿌듯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막내한테 일 맡기길 잘했어.”
“…….”
칭찬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평생 적응하지 못할 듯했다. 입가를 씰룩거리며 웃을 때였다.
“이 정도면 우리 막내도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할 수 있겠어! 이따가 현장 나갈 건데, 같이 나갈래?”
“…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다.
물론, 헌터가 아닌 일반인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인들은 많았다. 아마, 나에게 그런 역할을 맡으라는 게 아닐까 싶다.
처음은 버벅이고 또 힘들겠지만, 하다보면 능숙해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에겐 맡은 작업물이 있었다.
“푸핫! 아니 매번 당하고도 또 당해!”
“우리 막내 당황하는 것 좀 보세요!”
“큭큭! 정말 데리고 갈 줄 알았어? 아서라.”
원탁 쪽에서 들려온 웃음소리와 함께 장난기로 가득 찬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머리를 거칠게 헤집고는 다시 자리로 가는 한 주무관을 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곤 팀장과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
“안 데려간다니까!”
“혹여 동행하겠다고 하면 막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장난을 친 거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시선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두 사람이 바라던 답을 해 온다. 두 사람의 확인을 받고 나니 이제야 마음을 놓였다.
“자, 다들 빵 든든하게 먹었지?”
“예!”
“얼마 전에 생성되었던 던전 때문에 다들 피곤할 텐데, 불평불만이 없어서 다행이야. 대신, 오늘 점심은 확실하게 내가 쏠 테니까 다들 그런 줄 알고!”
“빨간 카드입니까?”
“아니, 내 카드다!”
“헉, 팀장님 지갑 텅 비는 거 아닙니까?”
“아하, 내 지갑이 걱정되니 박 주무관은 컵라면 먹겠다고?”
“에이, 그럴 리가요! 최선을 다해 메뉴 고르겠습니다!”
“하하, 좋아! 그리고 시끄러운 일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우리 진짜 한 번 회식 해 보자!”
“네!”
지난번에도 회식한다 했지만, 연이어 터지는 일들로 인해 마땅히 시간을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좋아! 막내도 재동의했으니 상황 진정되면 바로 날 잡자고!”
“예!”
“찬성입니다!”
“하, 오래간만에 팀장님 돈으로 산 알코올로 위장 청소하겠네요.”
“넌 적당히 좀 마시고! 취하면 그놈의 음모론 이야기 조잘거리는 통에 어지러워!”
“에이, 말은 똑바로 하시죠. 팀장님이 가장 음모론 좋아하잖습니까.”
“쉿! 그런 건 이렇게 대놓고 말하면 안 되지!”
“…….”
팀장도 음모론을 좋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런 게 그간 박 주무관이 음모론을 꺼낼 때마다 일정 이상 선을 넘는가 싶으면 바로 다잡던 이가 바로 팀장이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던전 관련해서 처리할 일이 산더미야. 모두 힘내자고.”
“네!”
“옙!”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 목소리 중엔 내 목소리도 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남은 빵들은 그냥 원탁에 둘 테니까 허기지거나 입 심심하면 왔다 갔다 하면서 먹어.”
“오후에 먹어야지!”
“저도 오후에 먹겠습니다! 오늘 같은 날엔 다른 것으로 배 채우면 손해죠!”
“하여간 이 식충이들이. 하하!”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말이 끝나자 혀를 차던 팀장이 껄껄 웃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덩달아 웃으며 자세를 바로 한 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후우.”
조회도 끝났겠다, 이젠 정말 집중해야만 할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보다 많은 것을 처리하자 다짐하며 작업에 몰두했다.
…이따 벌어질 상황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
“팀장님, 잘 먹었습니다!”
“와, 진짜 이 얼마만에 포식인지 모르겠네요!”
“그래, 포식하는 거 같더라.”
배를 통통 치는 김 주무관을 보며 팀장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답한다. 덩달아 가득 찬 배를 만지며 즐거운 포만감을 느낄 때였다.
“혹시 지금 이 타이밍에 커피 마실 분 있을까요?”
“와, 커피 들어갈 배는 없지.”
“저도 괜찮습니다.”
“나도 이번엔 패스.”
“막내 너는?”
박 주무관이 이번엔 이쪽을 바라본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패스할게요. 박 주무관님 커피 타다 드릴까요?”
“아냐, 내가 알아서 먹으면 되는데. 그럼 제 거만 준비하겠습니다!”
“아아. 박 주무관 커피 타는 동안 우린 뒷정리나 하자고.”
“네!”
정말 이 얼마 만에 먹는 고기였는지 모르겠다. 텅 빈 플라스틱 배달 용기를 보며 조금 전 먹은 보쌈이 떠올라 침을 꿀꺽 삼켰다.
“왜, 배가 안 찼어?”
“아뇨. 여기 보쌈 맛있네요.”
“그치? 우리 팀장님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식도락 파거든. 맛집 궁금하면 팀장님께 물어봐.”
“아아, 이상한 곳 가서 먹을 바에야 검증된 맛집이 좋지! 내 전화번호 알지? 쉬는 날도 좋으니 언제든 연락해.”
“네.”
쉬는 날에도 전화해도 좋단 팀장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것도 일적인 부분이 아닌, 친구들과 나눔 직한 이야기로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뒷정리를 마치곤 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였다.
띠리릭― 띠리릭―
“…….”
순간 들려온 전화벨 소리에 평화롭던 사무실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의자를 돌려 팀장 자리에 있는 전화를 바라보았다.
띠리릭―
몇 번이고 소리를 내는 전화였지만, 팀장은 좀처럼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내가 팀장이었다고 한들 저 전화를 받는 건 무척 꺼림칙하다 느낄 것이었다.
“팀장님.”
“후우, 받아야지.”
부팀장의 부름에 크게 한숨을 뱉은 팀장이 자리로 걸어간다. 무척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동한 그가 이내 수화기를 든다. 아직 아무런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긴장되는 건 전부 그간의 학습 때문일 듯했다.
“예, 헌터붑니다.”
전화가 받기 싫었는지 무척이나 말이 무척 짧다. 나는 잠자코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예, 협조금은 뉴스에 나온 것처럼 S급 헌터와 A급 헌터에게만 지급하면 됩니다. …아니 협회에서 그들만 보냈는데, 뭐 어쩌라는 겁니까!”
“하아.”
던전이 클리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당연히 협조금 관련 이야기가 나올 줄은 알았지만, 막상 들으니 이보다 허탈할 수가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쌈을 먹어 좋았던 기분이 바닥을 치는 걸 느낄 때였다.
“뭐라고요?”
갑자기 새된 소리를 뱉는 팀장이다. 팀장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땐 이어지는 상황이 영 좋지 못했다. 풀어진 몸을 바로 하며 계속해서 대화를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