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85)화 (85/246)

82화

15. 다사다난합니다

“하아.”

정말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톱스타의 비밀 연애가 발각되며 떳다 TV를 비롯한 개인 방송 채널들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자극적인 내용을 매일같이 갈아치우며 이목을 끄는 채널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화두에 오른 헌터 관련한 내용을 연속으로 다루지 않는 건 의외였다.

물론, 그 덕분에 관심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긴 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이 생기니 이보다 더 안도할 순 없었다.

“막내야, 맡긴 작업은 잘 되고 있어?”

“네. 완성된 부분 먼저 드릴까요?”

“좋지.”

한 주무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얼른 작업된 파일들을 그에게 전송했다. 파일을 잘 받았다는 말과 함께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한 주무관을 보며 말했다.

“혹여 정리하는 방법이라든가 지적할 부분 있으면 뭐든 말씀해 주세요.”

사사로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지금 정리하는 정보는 다른 팀원들이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 소중한 데이터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처음 작업을 할 때부터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이로웠다.

“…….”

뭔가 답이 돌아올 법도 하건만, 파일을 살펴보기 바쁜 한 주무관이다. 신중하게 파일을 살펴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된다. 마른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그를 보던 참이었다.

“꼼꼼하게 잘했는데?”

고개를 든 한 주무관이 씩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제야 안도하며 슬며시 입가에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좀 더 추가할 부분은 여기에 메모해 둘 테니까 그거 참고해서 작업해 줘.”

“그럴게요.”

정리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번 기회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알아 둘 수 있는 절호의 찬스와도 같았다. 물론, 이곳에 있는 팀원들은 물어보면 모든 걸 다 알려 주겠지만 말이다.

“막내야, 지금 할 일 없어?”

“네. 뭐 맡길 거 있으면 주세요.”

“이거 지난번에 했던 건데, 이번에 정리할 게 많아서 말이야.”

일이 없단 말에 박 주무관이 반색하며 다가온다. 뭘까 싶어 그가 가지고 온 파일철을 보곤 한 주무관이 주로 담당하던 현장 관련 지도임을 확인하곤 곧바로 시선을 주었다.

“지금 내가 이쪽을 작업 중이거든?”

지도의 오른쪽 절반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가 왼쪽 부분을 가리킨다. M-13 구역과 맞닿은 곳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작업이 빨리 끝나면 위쪽으로 작업 이어 갈게요.”

“좋지! 내가 작업하는 쪽도 오늘 내로는 작업 마무리 못 할 거야. 더 작업하게 되면 말하고.”

“네.”

일감을 받으니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박 주무관이 전달한 지도를 열곤 교통센터에 접속해 CCTV를 보며 차근차근 지도를 표기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작업을 했을까,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팀원들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었다. 나는 입을 벙긋거리다 말을 뱉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이제 점심 먹어야지.”

“벌써요?”

일을 시작한 게 10시 즈음이었으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흐른 상황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수 있나 싶은 건 전부 더딘 작업 속도 때문일 거다. 팀원들을 보다가 다시 작업 파일로 시선을 주길 몇 차례, 팀장이 다가와 머리를 헤집자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우리 밥은 먹고 하자.”

“그래, 주문할 막내가 일에 빠져 있으니 배가 고파서 살 수가 없네!”

“얼른 주문하겠습니다!”

“메뉴는 알고?”

“어, 지금부터 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아직 메뉴를 모르기에 지금부터 정하면 될 일이었다.

“오래간만에 우리 갈비탕 어때요?”

“오, 좋지!”

“저도 좋습니다.”

“저도요!”

“막내는 중식?”

“아뇨, 저도 오늘은 갈비탕이요!”

중식도 좋았지만, 지금은 몸보신하는 게 급선무였다. 요 며칠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지라 되도록 한식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는 게 급선무였다.

“좋아, 그럼 모두 갈비탕으로 가자! 바로 주문해.”

“네.”

모두가 한 메뉴로 통일하니 주문하는 건 쉬웠다. 자주 먹는 갈비탕 집으로 전화를 걸어 주문 후 다시 지도 작업에 착수했다.

“막내야.”

“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지도로 시선을 주기 무섭게 김 주무관이 부른다. 옆으로 시선을 주자 그가 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잉여는 아직도 아무런 연락 없어?”

“네.”

“미국에 프랑스까지 만나니 괜히 불안하긴 하죠.”

“이전에는 영국 왕자까지 만났으니까. 대중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에드워드 왕자 하니까 생각났는데, 조금 전에 인터넷을 둘러보니까 뉴스 하나가 떴더라고요.”

“뉴스?”

에드워드 왕자와 관련된 뉴스라니 궁금하다. 나는 박 주무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에드워드 왕자 재산이 정말 어마어마하던데요? 재산 중에는 유물도 많은데, 지난번 방문 때 우리나라와 문화재 관련하여 기술 협력을 했다는 뉴스가 떴습니다.”

“그때 자리 비웠을 때 협력 관련 이야기가 있었던 건가?”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그런데 말이죠, 문화재 하면 바로 그 사람을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하, 또 이영진 관련 뉴스가 뜬 거야?”

“예! 에드워드 왕자와 기술 협력하기로 한 자리서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게다가 당당히 그와 관련해서 인터뷰까지 했고요!”

“…….”

썩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이 정도 정보는 알아 두고 있으면 나쁘진 않을 듯했다. 나는 다시 작업 파일을 바라보았다.

“…이 미덥지 않은 반응들은 뭘까요.”

“이영진 관련 이야기는 그 정도면 됐어. 보나 마나 제 자랑 늘어놓기 바쁘겠지.”

“예, 엄청납니다!”

얼마나 엄청났으면 저렇게 목까지 긁으며 답하는 건지 모르겠다. 박 주무관의 과장된 행동에 애써 웃음을 참으며 이어지는 대화를 들었다.

“어딜 가나 자랑할 거 있으면 얼굴을 내비치는 양반이니. 일단 이영진이 그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두는 정도로 하지.”

팀장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알아 두는 정도로 하잔 말에 박 주무관이 목청을 높여 답한다.

“옙!”

“아, 진짜 왜 그렇게 오버해? 사람 웃기게.”

“언제는 제가 안 웃겼어요?”

“웃겼지.”

“풉!”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이건만, 한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저 말을 하니 이보다 웃음이 날 순 없었다. 만사가 귀찮아 보여도 뭐든 답해 주는 한 주무관과 그런 한 주무관의 성격을 알고 과장된 행동을 일삼기 바쁜 모습을 보며 웃을 때였다.

“음식 올 때까지 마저 작업하자!”

“…네!”

아직 갈비탕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은 상황이었다. 웃고 떠드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점심을 먹기 전까지 열심히 작업을 하고 난 뒤 밥을 먹으면 더 맛있을 것이었다. 팀장의 말에 우렁차게 답하며 마저 지도 확인 작업에 몰두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부팀장님도 조심히 가세요.”

예전 같았다면 언제는 마트 앞에서, 또 바로 집이 보이는 골목까지 바래다주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부팀장은 바로 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럼 내일 봐요.”

“네.”

어서 들어가 보라며 손짓하는 부팀장에게 한 번 더 인사를 건네고서야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아.”

하루 종일 즐겁게 일을 했건만, 막상 집에 돌아오니 이보다 지칠 순 없었다. 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욕실로 이동해 씻고 나온 뒤 뒷정리는 다음으로 미룬 채 그대로 방으로 가 뉘었다.

“흐으!”

크게 기지개를 켜고 모로 누워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곤 영상 사이트와 인터넷 기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

혹 특별히 추가된 내용이 있거나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 이상 진전이 된 건 없어 보였다. 안도하며 인터넷 창을 종료하곤 이번엔 메시지 함을 열었다.

“연락도 없지.”

일정이 좀 바빠 보이긴 했지만, 막상 연락이 없으니 이보다 허전할 순 없었다. 그간 김세현에게 받았던 메시지들을 보며 웃다 보니 어느새 주고받은 메시지의 마지막이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괜히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딱히 할 말이 없음에도 말이다. 주저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그에게 보낼 메시지를 적어 그대로 전송했다.

[세현 씨, 뭐 하세요?]

“…바쁜가?”

메시지를 보낸 지 몇 분이 흘렀음에도 좀처럼 답장이 없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갓 7시가 넘은 만큼 어쩌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대개 석찬으로 약속을 많이 잡곤 하니 어쩌면 다른 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 중일지도 몰랐다.

[( ´●ᗜ●`*)]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였다. 몇 분 만에 도착한 이모티콘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났다.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답장을 보냈다.

[혹시 일정 소화 중이신 거예요?]

[( •͈ᴗ-)ᓂ-ෆ 네]

[아, 그러면 다음에 메시지 해요.]

일정을 소화 중이란 말에 미국과 프랑스의 헌터와 만났음을 전하는 뉴스가 떠오르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핸드폰을 내려놓다 말고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세현 씨, 정말 외국 안 가는 거 맞죠?]

[٩(//̀Д/́/)۶하늘 형 가면 갈 건데요?]

[그거 말고요.]

[형이 여기 있는데 어딜 가요. 누가 헛소리하는 거면 명단 적어 둬요. 가서 혼쭐을 내 줄 테니까!‾͟͟͞(((ꎤ°᷄д°᷅)و ̑̑༉☆))Д´)]

“하하!”

그간 받았던 이모티콘 중에서도 정말 깡패 같은 이모티콘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김세현과 잘 어울리는 이모티콘은 없을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웃으며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자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이런 내 마음은 아는지 계속해서 이모티콘을 남발하기 바쁜 김세현이다. 빠르게 쌓이는 메시지와 함께 현재 그가 일정을 소화 중임을 한 번 더 깨닫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근데 세현 씨, 일정은 언제 끝나요?]

[보고 싶어요?]

하필 저걸 물어볼 때 이모티콘을 붙이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다가오는 말에 나는 한 자 한 자 꾹꾹 눌렀다.

[…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고요.]

항상 보던 사람이 자꾸 자리를 비우니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난번에는 그런 일도 있었고 말이다.

“읏.”

생각해 보니 무슨 용기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 건지 모르겠다. 이미 며칠이 흘렀건만, 그날의 포옹을 떠올리자 마치 그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허리를 감싸고 또 뒷목을 붙잡은 손길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단 사실에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 때였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어때요?(๑>؂<๑)??]

[던전 문제만 없으면 괜찮아요.]

다음 날부터 이틀 내리 쉬는 주말이었고 말이다. 괜찮다는 걸 전하자 곧바로 다음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럼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갈게요. .。゚+.(,,・ω・,,)ノ。+.゚]

[네.]

[예쁘게 하고 있어요! 물론, 형은 가만히 있어도 예쁘지만요!꒰๑͒•௰•๑͒꒱ℒℴѵℯ❤]

“읏.”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왜 이리 심장이 나대는 건지 모르겠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은 뒤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아.”

이보다 더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김세현과 메시지를 주고받아서일까, 기분만큼은 무척 좋았다.

오늘 같은 기분이 계속 유지되면 365일 매일이 참 좋을 것 같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침대에서 뒹굴며 주고받은 메시지의 여운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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