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14. 이어지는
―미친!
―수가 너무 많습니다!
“…….”
무언가 도울 수 있었다면 돕고 싶을 정도였다. 네트워크 너머로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안절부절못할 때였다.
사무실 출입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부팀장을 발견하곤 반색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좀 괜찮으세요?”
“…시간이 흘러야 진정될 듯합니다.”
기왕이면 부팀장이 어서 진정이 되었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내 바람으로 끝날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화장실로 가기 전보다 부팀장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인다는 점일까.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던전 규모가 중심부로 약 800m가량 넓어진 상태입니다. 한 번 더 지도 체크하겠습니다.”
“그래요.”
부팀장이 다시 화장실로 가기 전까지는 CCTV를 살펴도 될 것이었다. 빠르게 자리로 돌아가 모니터를 확인하니 조금 전 확인했던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빠르게 CCTV 전체 현황을 살폈다.
“헉! 부팀장님, 던전 규모가 남서쪽으로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남서쪽이라 함은 조금 전 중계기에서 들었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빠르게 언라역 쪽의 CCTV를 모니터에 띄워 주변을 살피던 중이었다.
“…맙소사.”
지금, 이게 무슨 장면이지?
빅뱃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긴 했지만, 빅뱃 이외의 몬스터가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장대한 뿔 두 개를 지닌, 2층 건물 정도의 네 발로 뛰어다니는 검은 색의 몬스터를 황망히 보다가 뒤늦게 떠오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언라역 방향에 데빌카우 한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키는 건물 2층 정도입니다!”
―뭐라고?
―지금 우리 뒤로 들리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검정소 뛰어다니는 소리였어?
―맙소사! 협회서 S급 헌터 보낸대?
“우선 S급 헌터에게 말을 전한다고는 했습니다!”
“S급 헌터라면…. 하늘 씨, 혹시 협회에 연락 넣었습니까?”
배를 부여잡은 부팀장이 동그래진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하.”
부팀장 또한 협회의 반응이 어이없긴 마찬가지였던 듯 헛바람을 내뱉는다. 나는 잠자코 부팀장을 지켜보았다.
“우선 협회 쪽으로 한 번 더 연락을 넣어 S급 헌터가 협조에 응했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혹시 모르니 막내는 최후의 보루로 잉여한테 연락 넣는 거 생각하고 있어!
“네!”
그건 아무 문제 되지 않았다. 연락만 닿으면 김세현이 던전을 클리어하러 올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고개를 주억이며 답하곤 계속해서 데빌카우가 움직이는 현황을 살폈다.
“서울특별시 헌터부입니다. 방금 전 S급 헌터 협조 관련하여 연락을 드렸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바로 상황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시작함과 동시에 상황이 전달되었는지 바로 전화를 끊는 부팀장이다. 그가 꺼낼 말을 기다리며 초조함에 두 주먹을 쥐었다.
“S급 헌터 최은파가 현장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최은파? 걔가 왜 서울에 있어?
그건 나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최은파는 제주도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그곳을 벗어날 리 없는 이인지라 이번 서울 방문은 예의 주시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전달받은 사항이 없습니다.”
―좋아! 현장에서 슬쩍 물어보도록 하지! 일단 최은파가 현장에 던전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던전이 커지지 않도록 막자!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도 조심하십시오!
S급 헌터의 합류 소식에 기운이 난 듯 김 주무관, 그리고 한 주무관과 박 주무관의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계속되는 전투 소리를 들으며 쉴 새 없이 주변 CCTV를 살폈다.
“어?”
그때였다, 화면 왼쪽 하단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날아다니던 빅뱃들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무슨 상황인가 싶어 CCTV를 계속해서 살필 때였다.
“서강민도 도착했습니다!”
―서강민? 위치는?
“북동 방향입니다!”
다른 방향에 비해 날아다니는 빅뱃이 별로 없었지만, 빅뱃과 상극 관계의 아이템을 지닌 서강민의 등장은 한결 마음을 놓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좋아! 홀리볼도 등장했으니 이젠 빅뱃 처리는 수월해지겠어!
―서은파가 데빌카우만 처리하면 될 듯합니다!
그래, 이제 서강민도 도착했으니 팀장의 말마따나 S급 헌터인 서은파만 던전에 도착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초조하게 그가 현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하늘 씨.”
“아! 얼른 다녀오세요!”
그의 부름에 모니터를 살피다 말고 고개를 들자 조금 전보다 훨씬 상태가 나빠 보이는 부팀장의 얼굴이 보였다. 자리서 벌떡 일어나 그의 자리로 가니 배를 부여잡은 채 다시 사무실을 나가는 부팀장이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상황을 보건대 내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미안한 마음을 안은 채 부팀장 자리를 지키며 현장에서 전달되는 소리에 집중했다.
―최은파 도착!
―현재 데빌카우와 교전 중입니다!
―좋아! 서강민 쪽은 어떻지?
“현재 상황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김 주무관은 서강민이 있는 쪽으로 이동해!
“팀장님, 제가 서강민 헌터에게 전화를 걸까요?”
전투 상황에 전화를 건다는 게 좀 그랬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전화를 해 현장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앞서 확인할 게 있었다.
재차 자리로 돌아가 서강민이 있던 방향 CCTV를 살폈지만, 던전 깊숙한 곳으로 간 듯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사무실 전화로 서강민에게 전화 걸어! 그리고 중앙부로 오라고 하고! 현재 중앙부에 빅뱃 우두머리가 있는 듯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다시 부팀장 자리로 가선 핸드폰을 꺼내어 서강민 번호를 확인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
전화를 받을 법도 한데,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계속되는 수화음을 듣다가 전화를 종료 후 한 번 더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결은 되지 않았다.
혹시, 모르는 번호라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워낙 보이스피싱이 많은 만큼 02 번호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더군다나 현재 서강민은 던전에서 몬스터와 대치 중이었고 말이다. 나는 결국 내 핸드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늘 씨?
“아.”
연결음도 들리지 않았건만, 어떻게 전화를 받은 건지 모르겠다. 전화를 걸자마자 들려오는 서강민의 목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였다. 나는 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현재 던전 중앙부에 빅뱃 우두머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중앙부 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그거 때문에 연락하신, 아 혹시 조금 전 02 번호가?
“네, 제가 걸었어요.”
―하늘 씨가 전화를 건 줄 알았다면 바로 받을 걸 그랬네요.
퍼엉!
통화 중간중간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그가 지닌 홀리볼에 빅뱃이 터지는 소리가 아닐까 추정할 때였다.
―중앙부로 가란 말씀이죠?
“네.”
―알겠습니다. 하늘 씨 말이니 바로 이동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잘 부탁한다는 말에 반 박자 늦게 답이 돌아온다. 평소 같았다면 앞선 침묵의 이유가 궁금했겠지만, 현재 서강민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던전 안이었다. 통화를 마치곤 작게 한숨을 뱉은 뒤 서강민과 연락이 닿았음을 전달하곤 계속해서 네트워크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와, 진짜 S급은 달라도 다르네요.
―데빌카우도 말이야, 어떻게 S급 헌터랑 저렇게 대치할 수 있는 거지?
―A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 포지션이니 그럴 수밖에! 데빌카우가 소멸하면 그 주변에 충격파가 발생할 테니 그만 지켜보고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알겠습니다!
“…….”
데빌카우가 소멸 직전 마지막 힘을 짜내며 충격파를 만든다는 말은 봤었지만, 세 사람이 자리를 떠야 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쿵! 쿠웅!
“…긴장되네요.”
여기까지 저렇게 큰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현장에서는 정말 엄청난 소리가 울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래도 최은파라 다행입니다. 사실, 잉여가 왔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최태하가 협회에 있었다면 정말 큰일이었겠습니다.
―그땐 어쩔 수 없이 잉여한테 호출해 보는 수밖에 없었겠지.
“…네.”
현재 어떤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김세현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미 던전은 클리어되고도 남았다는 점이었다.
우우웅―
“음?”
이게 무슨 소리지?
조금 전부터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가 귀에 잡힌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싶어 귀를 기울이며 근원지를 찾을 때였다.
―연하늘, 네트워크 종료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릴까 싶다. 나는 팀장에게 되물었다.
“네?”
―빨리!
조금 전보다 긴박한 목소리로 네트워크를 종료하라 말한다. 그와 동시에 우웅거리는 소리가 좀 더 커졌음을 깨닫곤 다급히 네트워크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