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14. 이어지는
막상 선물을 하자 생각하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참 많았다.
차라리 친구였다면 돈을 좀 쓰고서라도 김세현과 잘 어울리는 걸 골랐을 거다. 아니, 그 법만 아니었다면 그간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최선을 다해 선물을 구했을지도 몰랐다.
“…….”
10만 원 안으로 선물을 고르려 하니 볼품없는 게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그 가격대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을 골랐다곤 하지만 평소 김세현을 떠올린다면 정말 어울리지 않을 듯했다.
“하아.”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한숨을 뱉어요?”
“아, 그게….”
김세현 생각을 할 때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자꾸만 잊게 된다. 운전 중인 부팀장의 물음에 말을 흐리다 슬쩍 말을 바꿔 뒷말을 이었다.
“친구 집에 집들이를 가게 되었는데,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몰라서요.”
“머리가 복잡하면 두루마리 휴지가 최고죠.”
“그건 최후의 보루로 생각해 두고 있어요.”
그래, 두루마리 휴지는 정말 고르고 또 고르다 선택하지 못했을 경우 들고 갈 물품이었다.
“흠, 그래요?”
최후의 보루란 말에 부팀장이 생각에 잠긴다. 그 모습에 계속해서 핸드폰을 뒤적이며 미리 골랐던 물품들을 입에 담았다.
“넥타이라든가, 넥타이핀, 아니면 커프스단추는 어떨까요? 아니면 셔츠라든가.”
“…집들이 선물이라고 안 했어요?”
“네.”
“많이 친해요?”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런 거 같다는 대답이 참 그랬지만, 이것 말고는 김세현과 내 관계를 표현할 말이 없었다. 힐끔 이쪽을 보다 다시 정면을 보며 운전하는 부팀장이다. 잠시 뒤, 그가 입을 열자 그 어느 때보다 귀를 기울였다.
“그건 그냥 친구에게 선물하는 거 같네요.”
“그, 런가요?”
하긴, 부팀장의 말마따나 친구들에게 선물을 했던 적은 있지만, 집들이 선물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나는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차라리 화분은 어때요?”
“아.”
화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화분이라면 김세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고, 제법 부피가 커서 전하는 보람이 있을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부팀장님. 덕분에 선물 결정했어요.”
워낙 얼굴이 잘난 터라 뭔가 그의 얼굴을 더욱 빛나게 할 만한 패션 아이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쉬운 걸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김세현과 잘 어울림 직한 물건들을 비우곤 아는 꽃집을 알려 주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 번호 있으니 확인하고 메신저로 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부팀장이 아니었다면 한참 고민하다 집들이와는 전혀 다른 선물을 할 뻔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집들이를 가는 게 아니기에 다른 선물을 해도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평소 김세현이 입고 다니는 옷과 아이템을 보건대 조금 전까지 보던 것보단 화분이 더 좋을 듯했다.
“…….”
내가 사 들고 간 화분을 신경 써서 보살피는 김세현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민망하다. 하지만 그 민망함이 나쁜 쪽의 민망함은 결코 아니었다.
“부팀장님, 잠깐 창문 열어도 될까요?”
“그래요.”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열감이 아무래도 얼굴까지 달아오르게 하는 듯했다. 부팀장의 허락을 받고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얼굴과 몸의 열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바람을 맞았다.
“와, 진짜 우리 막내 집들이 때 넥타이 사 들고 가려 했던 거예요?”
“넥타이가 뭐 어때서. 받는 사람이 필요한 물건이면 그보다 더 좋을 게 뭐 있다고.”
“그래도 집들이엔 좀 안 어울리잖아요.”
내가 집들이에 넥타이나 넥타이핀을 가지고 가려 했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화두에 오를 줄은 몰랐다. 열변을 토하는 박 주무관과 내 편을 들며 변호하는 한 주무관이다. 그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중 팀장의 부름에 곧바로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난번 협조금 관련 문서 가지고 와.”
“네.”
슬슬 팀장이 가지고 오라 할 것 같아 미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빠르게 프린트 후 그에게 가 건네받은 서류를 검토 후 고개를 끄덕이는 이에 따라 고개를 주억였다.
“집들이 선물로 화분 가지고 간다면서?”
“네. 좀 전에 부팀장님이 연락처 주셨어요.”
“그래? 아직 전화번호 못 받았으면 주려 했더니만. 거기 괜찮은 곳이니까 나중에 또 이용할 일 있으면 자주 이용해도 좋아.”
“그럴게요.”
팀장까지 꽃집이 괜찮다는 걸 보면 정말 괜찮다는 걸 의미했다. 김세현에게 연락이 와 날짜가 잡히면 꼭 그곳으로 가 화분을 장만해야겠다 다짐하며 자리로 돌아온 뒤 팀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단순 작업할 거 있으면 저 주세요.”
“시간 남아?”
“네.”
“그럼 파일 보낼 테니까 다운받으면 말해. 간략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
단순 작업이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이었다. 한 주무관이 파일을 보냈다는 말에 곧바로 그것을 내려받고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일 열어 봐.”
자리서 일어나 내 자리로 온 그가 말한다. 파일을 열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지도에 눈을 끔벅이며 한 주무관을 올려다보았다.
“나 보지 말고 지돌 봐야지.”
“네.”
“이거 올해 서울에 생성된 던전 지도 합본이야. 단순히 내 호기심으로 하는 작업이긴 한데, 너도 봐 두면 좋을 거 같아서.”
한 주무관이 이렇게 말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지는 설명을 귀담아들었다.
“난이도는 크게 필요치 않아서 페이지 명에 간략하게 표시해 뒀고, 범위 체크를 하려고.”
“제가 뭘 보면 될까요?”
“던전을 체크하다 보면 비슷한 시기에 규모가 커질 때가 있어. 그 시간대 체크하고 또 혹시나 겹치는 곳이 있다면 그거 역시 체크하면 돼. 뭣하면 레이어 추가해서 네가 원하는 내용도 추가해도 되고.”
아무래도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인지라 좀 더 섬세한 정보가 필요한 듯했다. 물론, 방금 한 주무관의 설명을 들으니 어째서 이 정보를 수집하는지 조금은 알 듯했고 말이다.
“미리 정보를 수집해 두면 훗날 지금 모으는 정보가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잖아?”
뭐든 모아 두면 나중이 편했다. 한 주무관의 말에 그 어느 때보다 동의하며 답했다.
“네, 열심히 확인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부탁해.”
“한 주무관님.”
“음?”
자리로 돌아가는 한 주무관을 부르는 김 주무관이다. 그에 지도를 세심히 살피려다 말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뭔가 좀 짚이는 게 있어서 알아보는 거 맞죠?”
“이번엔 틀렸어. 그냥 던전이 자주 생성되는 터라 혹시나 싶어서 미리 작업해 두려고.”
“뭐 다른 짚이는 점은 없으시고요?”
“그런 촉은 김 주무관 네가 헌터부에서 최고 아니야?”
“에이, 최고는요.”
한 주무관의 말에 손사래 치며 김 주무관이 웃는다. 하지만 한 주무관의 말이 옳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주무관이 설마, 하는 말을 붙일 때면 거의 다 그 말이 이루어지곤 했으니 말이다.
“한 주무관.”
“네, 팀장님.”
“지금 정리하는 거 정리 끝나면 나도 보여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막내는 그거 체크하면서 던전이 어느 방향으로 먼저 확장되는지도 함께 체크해 보고.”
“네.”
지도에 그 내용은 없었지만, 그 정돈 바로 체크할 수 있었다. 교통센터에 접속해 그간의 상황을 확인해 보면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곧바로 교통센터에 접속한 뒤 이어 올해 던전이 생성되었던 날과 지역 정보를 체크해 화면에 띄웠다. 이어 팀장이 말한 내용을 정리해 간단히 표로 만들고는 이어 한 주무관이 부탁한 작업을 이어 갈 즈음이었다.
Rrrr- Rrrr-
“아니 왜?”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긴급 전화가 울리는 걸까.
몇 차례 울린 전화벨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급하게 김 주무관이 전화기 쪽으로 이동한다. 이어 전화를 받는 그를 보며 미리 켜 둔 교통센터 화면을 상단에 띄운 채 정보가 전달되길 기다렸다.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예?”
짤막하게 인사말을 건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톤 높은 목소리가 김 주무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에 절로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이어질 대화에 귀 기울였다.
“M-12 구역에 던전이 생성되었는데, 지금 그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겁니까?”
그게 뭐지?
기왕이면 빨리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빠르게 M-12 구역을 확대했다. 군데군데 CCTV 화면을 띄워 상황을 살피던 중 13 구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카메라에서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헉!”
“뭔데 그…. 지금 이게 뭐지?”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어째서 저 몬스터가 이곳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까마귀 떼가 아닐까 싶을 만큼 아니, 까마귀보다 덩치가 더 큰 편이었으니 이건 까마귀에 비교하는 것 자체부터가 무리였다.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팀장님!”
김 주무관이 통화를 마치는 동시에 김 주무관이 새된 목소리로 팀장을 부른다. 그에 이쪽을 바라보는 팀장을 보며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팀장님, M-12 구역에 빅뱃 떼가 보입니다!”
“…뭐?”
“잘못 본 거 아냐?”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간 단 한 번도 같은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 연달아 생성된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 질문에 답하려던 중, 김 주무관이 입을 열자 얼른 그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