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78)화 (78/246)

75화

14. 이어지는

주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오래간만에 주문한 피자를 먹으며 노트북을 뒤적이던 중이었다.

“…….”

이미 서강민에 관한 많은 기사를 보긴 했지만, 매번 이렇게 조금씩 다른 내용이 실리는 것도 참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뉴스만큼 임팩트 있는 뉴스는 없을 듯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서강민에게 열광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이 서강민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계약직 헌터가 생각지도 못한 기연으로 말미암아 던전에서 아이템을 습득하게 되었고, 그 아이템으로 인해 모두가 쩔쩔매던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사실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극적인 스토리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생활 깊숙한 내용까지 기사에 실리는 건 좀 그랬다. 나는 [서강민의 과거와 현재]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기사를 읽으며 침묵했다.

“하.”

서강민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해 협회와 국가를 오가던 이유와 더불어 아이템을 얻기까지의 이야기가 제법 상세하게 적힌 기사다. 그뿐이랴, 기사 속에는 서강민 헌터와 함께 익숙한 인물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저 사진을 보니 어째서 팀원들이 이영진 의원을 좋지 않게 보는 건지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용할 수 있을 때마다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으니까.

사진 아래 작게 적힌 글귀엔 지난번 내가 칭찬상을 수령했던 예의 그 공간이 적혀 있었다. 아마 김세현이 압력을 넣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런저런 사적인 부분을 외부에 알렸어야 했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으읏.”

막상 김세현 덕분이라 생각하니 지난밤 일이 떠오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직도 허리를 감싸고 있는 듯한 감각에 부산스럽게 손을 움직이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다른 이들과 포옹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설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간의 포옹에서는 느껴본 적 없던 떨림이 자꾸만 사람을 집어삼켜 문제였다.

괜스레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속을 진정시켜 봤지만, 이미 뛰기 시작한 심장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진정하자, 연하늘.”

그래, 한 번 포옹했다고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하면 나중에 김세현을 만났을 때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 몇 번이고 진정하잔 말을 되뇌며 다시 저녁 식사를 하다가도 갑작스레 떠오르는 기억에 허공에 발차기해 댈 수밖에 없었다.

***

서강민의 그 기사는 내 촉대로 주말 내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인터넷 뉴스의 왕좌는 다른 사람이 될 듯했다.

그래, 이 순간 저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생각을 할 터였다. 나는 소식을 전달하는 아나운서 아래쪽에 적힌 문구를 바라보았다.

<김세현, 외국 스카우트 제안 받아들이나?>

“…….”

지난번 에드워드 왕자가 왔을 때만 해도 절대 외국에 가지 않겠다던 뜻을 밝힌 김세현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나오는 뉴스는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었다. 도대체 왜, 저런 내용이 지상파 방송에 뜨나 싶어 리모컨으로 볼륨을 올렸다.

―김세현 헌터가 최근 타국과 은밀한 접촉을 이어 가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이 사실인가요?

―김세현 헌터가 최근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특히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가 방한한 이후 더욱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는데요. 일각에서는 그가 영국 내지는 타국과 접촉 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면에 보시면 김세현 헌터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데요, 알고 보니 저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헌터로, 타국의 헌터를 스카우트하러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에드워드 왕자의 방한 때에도 김세현 헌터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방한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는데요, 이번에도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할까요?

―모두가 아는 던전 생성의 법칙이 틀어진 만큼 세계 각국에서는 현재 S급 헌터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이 내놓는 의견이기도 합니다.

“…….”

확실히 날이 가면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고, 또 던전 생성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등급이 높은 헌터의 존재가 무척 중요해진 상황이었다. 더불어 아이템의 존재 또한 중요해졌고 말이다.

막상 뉴스를 보니 이보다 더 마음이 복잡할 수가 없다. 물론, 뉴스라고 해서 모든 내용이 전부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간혹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여 시정하는 일도 있기에 이번 역시 저 뉴스를 낸 방송국들은 차후에 시정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막상 스카우트를 하는 타국의 헌터를 만났다고 하니 이보다 더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가 없다. 가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김세현이 거절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을 타국에서 내민다면 그가 손을 잡을지도 말이다.

“하아.”

생각지도 못한 뉴스 공격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오래간만에 아침 식사를 하나 싶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 듯했다. 자리서 일어나 식탁을 정리한 뒤 곧바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

어젯밤만 해도 김세현과 관련된 뉴스가 없었던 걸 생각해 보건대 오늘 아침 뉴스는 정보를 얻자마자 내용을 정리해 내보낸 듯 보였다.

“…….”

김세현의 일거수일투족이 알려질 때마다 매번 실시간 검색어를 독식하다시피 하긴 했지만, 오늘따라 이 순위가 피부에 와 닿는 건 전부 그 썸네일 때문일 것이었다.

검색어 순위에 이따금 보이던 헌터부란 단어가 어느새 사라졌음에 가슴을 쓸어내린 뒤 주변을 슬쩍 둘러보곤 헌터부를 검색해 보았다.

“…….”

어제 일이 있기 때문일까, 서강민과 헌터부가 거론된 기사가 몇 보였지만, 생각보다 기사의 수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언젠간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갈 거라 여기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옮겨갈 줄은 몰랐다. 나는 다시 김세현과 관련된 기사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훑었을까, 더는 특별한 뉴스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뉴스까지 확인했지만, 모두가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국 인터넷 기사를 종료하곤 다시 작업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후우.”

기사 내용도 그렇고, 댓글들도 그렇고 모두가 김세현이 외국에 가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간혹 과격한 언행을 일삼는 이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들의 막말은 당신 때문에 외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어쩌냐는 말로 묻히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김세현이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만큼 정말 외국에 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니 괜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막내야, 한숨 소리가 커.”

“죄송합니다.”

최대한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잠시 긴장을 풀었던 모양이다. 건너편 자리의 한 주무관의 지적에 바로 사과하며 자세를 바로 하곤 다시 작업물로 시선을 주었다.

“말이 나와서 말입니다. 막내야,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네, 물어보세요.”

작업에 열중하나 싶던 박 주무관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혹시 잉여가 뭐라고 한 거 없나 싶어서.”

“이번 일과 관련된 말 말씀하시는 거죠?”

“응.”

“그냥, 일정이 좀 바쁘다고 했었어요. 그거 말고는 특별히 들은 건 없고요.”

“그것밖에 없었어?”

“네.”

“잉여가 어디로 간다, 뭐 그런 말은 없었지?”

“네.”

특별히 그런 말은 없었다. 물론, 다른 말은 하긴 했지만 말이다. 일정이 마무리되면 집으로 날 초대한다던 김세현이었다. 헤어지기 전날 내려다보던 푸른 눈동자가 순간 떠오르자, 황급히 손을 들어 볼을 긁는 척하며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

“아서라, 김세현이 우리 막내 두고 어딜 간다고 그래.”

“에드워드 왕자 때 못 봤어? 절대 어디 못 가.”

“그래도 미국에서 왔다던 그 헌터 스카우터 진짜 유명한 인물이라니까요?”

“유명하면 뭐 해, 우리 막내보다 영향력이 없는데.”

“뭐, 그건 그렇지만요.”

팀원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김세현의 푸른 눈동자를 잊으려 노력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이고 또 다독이길 반복했다.

“막내야, 무슨 생각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 혹시나 잉여가 외국 갈까 봐 걱정돼서 그래?”

“음.”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김세현이 과거에 했던 말이 있기 때문인지 엄청 걱정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 오히려 이번 기사를 접했을 땐 이전에 에드워드 왕자가 왔을 때보단 그다지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우리 막내가 좀 대범해진 건가?”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걸지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본능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듯했다. 그래, 만약 그날 김세현이 오지 않았고, 포옹과 더불어 집으로 오라던 소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쯤 에드워드 왕자가 방한했을 때만큼이나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김세현의 일정이 과연 언제면 끝날까 싶다.

첫 방문이니만큼 그에게 줄 선물을 챙겨 가야 할 것이었다. 제각기 의견을 내는 팀원들의 말을 들으며 설레는 마음을 안은 채 핸드폰으로 그에게 줄 선물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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