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77)화 (77/246)

74화

14. 이어지는

눈을 끔벅일 때마다 어제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뿐이랴, 사무실을 감도는 커피 향을 맡을 때마다 김세현과 있었던 일이 자꾸만 기억나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 막내 오늘따라 왜 이래?”

“저도 그게 궁금한데, 영 말을 안 해 주네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 질문에 답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상황 모든 것이 어젯밤 일을 기억나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의자에 앉았다고 돗자리에 앉아 있던 기억이 나는 상황이니 말은 다 한 듯했다.

“막내야.”

“…네.”

하지만 계속해서 주변의 수군거림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게 더 잘 어울릴 듯했다. 김 주무관의 부름에 천천히 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잠 설쳤어?”

“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뇨. 전혀요.”

그래, 그 일이 안 좋은 일이라 표현하는 건 무리였다. 안 좋기는커녕, 생각지도 못한 접촉에 이렇게 해롱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사람과의 포옹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었건만, 어제 일을 겪으니 정말 대수였다. 기석과도 자주 포옹을 했고, 또 팀원들과도 격한 쓰다듬을 받는다거나 할 때 포옹 비슷한 걸 할 때도 있었지만, 어젠 정말 달랐다.

…도대체 김세현은 왜 날 껴안은 걸까.

그것도 무척이나 조심스럽지만, 또 강하게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품에 안은 채 연거푸 깊은 한숨만 내리 뱉다가 이만 가 보겠다며 그대로 사라진 김세현의 뒷모습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짝!

“헉!”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중해야지!”

“네, 팀장님.”

팀장까지 와서 이러는데,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자세를 바로 하곤 작업하던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해.”

“오늘 금요일이니까 집에 가서 푹 쉬고. 상태 계속 이상하면 내일 말고 다음 주 토요일에 출근해도 되니까.”

다음 주라면 어쩌면 김세현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다급히 정신을 다잡았다.

“정신 차릴게요!”

“다음 주에 약속이라도 있어?”

“그, 있을 수도 있고요. 아직 날짜가 안 나와서요.”

빠르게 스케줄을 정리 후 초대한다 했으니 적어도 그 일정 마무리가 내일 되진 않을 것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답한 뒤 박 주무관이 타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그것을 책상 한쪽에 내려놓았다.

“…….”

코를 스치는 커피 향이 자꾸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지만, 이 이상 팀원들의 관심을 끄는 건 옳지 못했다. 그래, 시선이 이쪽으로 모이게 된다면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도 일 처리가 늦어질 터였다. 이 이상 방해해선 안 될 말이었다.

재차 종이컵을 손에 쥐고는 단번에 잔을 비우곤 뚫어져라 모니터를 보며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곤 남은 서류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열심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손을 놀리며 점차 집중해 나갈 때였다.

“헉!”

갑자기 사무실 안에 외마디 소리가 들려온다. 무척이나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에 집중이 깨져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뭔데 그런 반응이야?”

“그게, 말입니다.”

한 주무관인가 했는데, 박 주무관이다. 한 주무관 옆자리의 박 주무관에게 눈길을 주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그가 나와 부팀장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침을 꿀꺽 삼킨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게 말이야. 너무 놀라지 말아, 알았지?”

“네? 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건지 모르겠다. 절로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박 주무관의 시선이 부팀장 쪽으로 향한다.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부팀장에게 전달하는 모습에 의아함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결국 답답했는지 팀장이 한마디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제가, 사실 오늘 일감을 다 처리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잠깐 인터넷에 뭐 주워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진 않을까 둘러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제가 영상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카테고리 같은 거 있잖습니까. 간혹 선택받아서 떡상하는 그런 영상이요.”

“있다고 치고.”

“거기에 뭐가 떴는지 아십니까?”

도대체 뭐가 떠서 저렇게 흥분하는 건지 모르겠다. 쉴 새 없이 나와 부팀장 사이를 오가는 시선은 또 뭐고 말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결국 박 주무관이 말하는 영상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모든 행동을 멈췄다.

…이게, 지금 뭐지?

덤프트럭 관련 사건과 더불어 서강민을 향한 사람들의 우호적인 태도로 인해 툭하면 그와 관련된 영상들이 뜨긴 했지만, 지금 보이는 썸네일은 도무지 무시할 것이 되지 못했다.

“어디서 말이 새어 나간 모양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말에 앞뒤가 없잖아.”

“그게, 그 덤프트럭 사건 있잖습니까. 우리 막내가 큰 사고 당할 뻔한! 그런데 당시에 서강민이 구해 준 이가 헌터부 사람이라는 게 떴습니다!”

“뭐?”

“지금 그게 무슨….”

“댓글을 보니 이미 특정 끝난 듯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팀장님과 우리 막내가 같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고요.”

“…….”

박 주무관이 말하는 내용도 문제였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게 더 문제인 듯했다. 덤프트럭 사고를 배경으로 한 채 서강민의 얼굴을 왼편에 띄우고, 누가 봐도 나와 부팀장으로 보이는 사진을 띄워 모자이크 처리한, 이 썸네일은 제목과 어우러져 사람들의 구미를 확 당기는 듯했다.

불과 세 시간 전에 올라온 영상이건만, 10만이 돌파한 영상 조회수를 보며 아찔함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헌터부에도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음?

└ 그러니까. 이거 영상 제작자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님? 헌터부는 헌터들만 일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 ㄴㄴ 그건 님이 잘 모르고 하는 말임. 우리 친척도 서울시는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헌터부 일하고 있음. 친척도 헌터 아니야.

└ 헌터가 아닌데 헌터부에서 일이 가능하다고? 그거 미친 짓 아님?

└ 다들 이런 반응이라서 헌터부는 뺑뺑이 돌려서 보낸다고 함. 그리고 일반인들은 현장에 나가는 일 극히 드물고, 대개 사무실에서 사무 일 본다고 하더라

└ 와, 거기 쪽수도 딸릴 텐데, 사무 일 보면 집에는 갈 수 있음?

└ 집에 거의 못 들어간다고 보면 됨

└ 불쌍하네

└ 불쌍2233444

└ 사무직이 있으면 헌터가 구해 줘야겠네. 우리랑 똑같다는 거잖

서울시 헌터부 사무직 딱 둘 있음. 부 씨와 연 씨.

└ 나도 알아보고 옴. 둘 중 누구 같음?

└ 여리여리하기론 부팀장이 더 그래 보이던데

└ 부팀장 헌터임.

└ 헌터라고? 그런데 왜 사무직임?

└ 예전에 크게 다쳤다는 말 들었음.

└ 근데 님, 어디서 들음?

└ 다 소식통이 있음.

└ 그럼 연 씨네.

“…….”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베스트 댓글에 달린 대댓글들이었기에 정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기에 자연스럽게 서강민이 구한 헌터부 직원이 나로 유추되는 상황을 보니 이보다 더 소름 돋을 순 없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래야죠.”

그나마 다행인 건 이름까지 부르는 이가 없다는 사실일까.

물론, 성 씨가 흔한 편이 아닌지라 부담스러운 건 같았지만 말이다. 어깨를 다독이는 김 주무관의 손짓에 그저 축 늘어진 채 댓글들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개인 방송 찍는 사람들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저 말이 새어 나간 걸까요?”

“영상 보니 경찰서에서 말실수한 모양이더라고요.”

썸네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영상을 미처 확인치 못했건만, 박 주무관은 아닌 듯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경찰서에서?”

“예. 담당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개인 방송 쪽에서 연락을 넣었더니 같은 헌터부가 상대였다고 말이 나온 것처럼 영상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

말이 나와도 하필 경찰서라니.

같은 공무원인지라 아니, 경찰이 일 처리를 하며 얼마나 바쁜지 알기에 탓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린 듯했다. 물론, 속으론 약간 원망하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입이 싸서 문제야.”

하지만 한 주무관은 아닌 듯했다. 무척 질린 듯한 얼굴로 센 워딩을 구사하기 바쁘다. 마치 운전할 때처럼 말이다. 운전대를 잡은 한 주무관의 모습을 떠오르자, 슬며시 자세를 바로 했다.

“워, 워. 한 주무관님. 그렇게 전 직장 욕하시면 우리 좀 당혹스러운데요.”

“욕먹을 짓을 했을 땐 욕 먹어야지! 잘할 땐 칭찬받고!”

“그건…. 그렇지만요.”

“탓하는 건 나중에 하고. 우선은 외부에 우리 막내가 노출된 건 사실이니까. 계속 몸 사리고 있겠지만, 좀 더 사리도록 해.”

“네, 팀장님.”

팀장님이 말하지 않아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절로 몸을 사리는 게 마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부팀장을 돌아봤다가 때마침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나저나 우리 부팀장님, 졸지에 이런저런 말들 좀 돌겠네요.”

“사실을 이야기하는 정도라면 문제 될 것 없죠.”

김 주무관의 말에 가볍게 답하는 부팀장이다. 마치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처럼 답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말은 좀 더 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오래간만에 수금 짭짤하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한턱 크게 쏘죠.”

“크으, 역시 부팀장님!”

“우리 그럼 고기도 썰고 그러는 겁니까?”

“아서라, 요즘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고기 말고 점심 한턱 쏴.”

“네, 그러겠습니다.”

“저는 썰긴 해야겠으니 돈가스 가겠습니다!”

“오, 저도요!”

“수금 마치면 바로 사죠. 아, 하늘 씨도 선 좀 넘는 거 같다 싶으면 말해요. 아는 변호사 연결해 줄 테니까.”

“그, 네.”

여기서 괜찮다고 말하기엔 분위기가 그랬다. 물론, 짭짤하다는 말에 좀 솔깃하기도 했고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얼마나 짭짤할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아마 그 영상에 달린 댓글 내용 중 나와 관련된 내용은 거의 맞을 겁니다. 헌터 생활을 하다가 크게 다쳐서 현재 사무 일을 보고 있다는 거 말이에요.”

“…아.”

“아직 설명 안 하셨어요?”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말입니다.”

한 주무관의 핀잔 어린 목소리에 부팀장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자리한다. 말없이 그를 보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곱씹은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예. 다행이죠.”

뜬금없는 말이었는지 반 박자 늦게 반응하는 부팀장이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이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뒷말을 이었다.

“음, 그리고 나중에 댓글 보면서 좀 과하다 싶으면 꼭 말씀드릴게요.”

“풉!”

“아니 왜 거기서 그 말이 나왓!”

“하여간 우리 막내 타이밍은 최고죠!”

“…….”

이때가 아니고서야 언제 또 말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머쓱한 얼굴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예, 꼭 말해 주세요. 좋은 사람으로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부팀장 또한 다른 팀원들처럼 입가를 씰룩인다. 조금 전보다 훨씬 기분이 나아 보이는 모습에 덩달아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전까지 본 영상을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은 혼자 생각하던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 정체가 외부에 드러난다고 한들, 피해자였기에 잠시 헌터부와 관련되어 입소문이 나다 다시 사그라질 게 자명했다.

“…….”

이와 관련된 복잡한 상황이 찾아올 걸 생각하면 이보다 더 마음이 어지러울 순 없었다. 하지만 잠시만 지난다면 다시 평화롭게 헌터부의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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