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대답은 해야겠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나는 말을 흐리며 잠시 시간을 벌었다.
“으음….”
시청 쪽에 말을 해 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그가 날 구해 줬던 걸 생각해 보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밥을 사 줄 의향은 있었다. 그래, 있었지만….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지난번에 그 사고가 있었는데, 특별히 대화를 나눌 만한 시간도 없었던 거 같아서요. 게다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비슷한 또래라 그런지 하늘 씨와 친해지고 싶고요.
주변에서 들은 말 때문일지 몰라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 입을 뗐다.
“지금 당장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왜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유를 묻는다. 나는 솔직한 생각을 입에 담았다.
“최근 서강민 씨가 외부에 많이 노출된 상황이잖아요. 지금쯤 일거수일투족 기자들이 붙었을 텐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아서요.”
덤프트럭 일만 해도 이목이 쏠린 상황에, 난이도가 A급으로 상향 조정된 던전을 단숨에 클리어한 사실이 더해지며 서강민이란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강민을 만난다? 외부에 내 모습을 알리겠다는 것과도 다름없었다.
지금 당장은 그저 지인을 만나는 것으로 알려질 수 있겠지만, 혹시 몰랐다. 서강민이 구해 준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백이면 백 외부에 얼굴이 드러날 테고, 그 사진 역시 유출되겠지.
되도록 외부에 얼굴을 노출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상황이니, 만의 하나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좀처럼 말이 없다. 그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곤 뒷말을 이었다.
“헌터부끼리 만나는 건 나쁘지 않지만, 내키지 않아서요. 상황이 좀 진정되면 제가 꼭 대접할게요.”
―…정말이죠?
“네. 약속할게요.”
상황이 다 종료되고 정리된다면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팀원들이 손사래 치는 모습이 보였지만,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보답을 하는 건 당연했다.
―그럼 나중에 상황 좀 잠잠해지면 그때 봐요.
“그래요.”
―맞다, 헌터부 근처에 갈 일 있으면 찾아가도 될까요?
시청 소속 계약직인데 굳이 나에게 묻지 않아도 방문하려면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의아한 것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부에 일이 있으시다면요.”
―…으음. 하늘 씨 얼굴 잠깐 보러 갈까 했던 건데.
“어….”
보러 오는 거야 문제 되지 않았지만, 저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슬쩍 내 자리 옆에 놓인 빈 의자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몸을 바로 하며 난색을 표했다.
“…사적인 시간을 보내기엔 시간이 좀 모자라서요. 다른 분들도 계시고요.”
―그렇군요. 그럼 나중에 시간 맞으면 얼굴 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평소 퇴근도 많이 늦으실 테고.
“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대신 자주 문자 보낼게요.
“그래요.”
문자 정도는 문제 될 것 없었다. 이후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으며 통화를 종료했을 때였다.
“와, 병아리. 단호하네.”
“우리가 뭐라고 코치하려 한 거죠?”
“잉여에게 너무 관대해서 서강민한테도 그러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너무 앞선 생각이었나 봅니다.”
“…….”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린 듯 여기저기서 흥분이 어린 목소리가 쏟아진다. 나는 그들이 꺼낸 말에 답했다.
“세현 씨와 서강민은 다르잖아요.”
“…어디가 그렇게 다른데?”
“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오는 박 주무관이다.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많은 게 다른 거 같아요.”
그래, 뭐라 콕 집어 말하긴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김세현과 서강민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잉여는 커피 마시러 와도 되냐 물으니 냉큼 알았다고 했다면서. 서강민은 또 안 된다네.”
“상황이 다르잖아요. 잉, 세현 씨는 당시 세현 씨의 지인으로 그를 돕는 줄 알았으니까요.”
“뭐야, 처음부터 잉여한테 호감 있었던 거였어? 팬, 그런 건가?”
“팬까지는 아니지만요.”
팬이라고 한다면 팬이라고 볼 수 있긴 했지만, 팬이라고 또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의 김세현은 그저 고마운 대상이었을 뿐이니 말이다.
“뭐가 되었건 간에 조금 전 통화는 무척 잘 대처했어. 서강민도 네가 그런 반응 보일지 모르고 좀 당황한 모양이더라.”
“말랑말랑한 녀석이 알고 보면 단호박일 줄 누가 짐작하겠어요.”
“자, 서강민 관련 일은 한동안 잠잠할 듯하니 이제 슬슬 오후 작업 시작할 준비들 하자고.”
“네.”
팀장의 말을 듣고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상황이었다. 곧바로 자리서 일어나 뒷정리를 시작했다.
“커피들 드실 거죠?”
“저도 부탁합니다.”
“네, 그럼 모두 커피로 통일하겠습니다.”
뒷정리 중인 나를 대신해 박 주무관이 빠르게 정수기로 향한다. 그 모습을 보며 마저 뒷정리를 끝내고 박 주무관과 함께 커피를 나르고 자리로 돌아와 말없이 김세현이 앉는 자리를 눈에 담았다.
“…….”
어떻게 보면 서강민도 김세현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듯했지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그저 단순히 서강민에 대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김세현이 김세현인지 몰랐을 때에도 그에 대한 안 좋은 말을 제법 들었던 상황이었다.
도대체 뭐가 다르기에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 다른 건지 모르겠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번뜩이는 깨달음에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
“무슨 일 있어?”
“그냥 좀 뭔가 생각이 나서요.”
그래, 왜 그걸 깜박했는지 모르겠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김세현과 서강민의 차이는 크기만 한데 말이다. 김 주무관의 물음에 답하며 바로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켰다. 그리고 김세현과 서강민의 얼굴을 화면에 띄우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점은 이것 말고도 많았지만, 확실하게 다르다 느껴지는 건 역시 얼굴이었다. 김세현의 얼굴을 보다 서강민을 보고, 또 서강민을 보다가 김세현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극명한 차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도 엄청날 것이었다.
“…….”
한참을 그렇게 두 사람의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다가 검색 사이트를 닫은 뒤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정돈했다.
서강민과의 통화 내용으로 인해 이미 오후 일정이 제법 미뤄진 상태였다. 좀 더 시간을 투자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앞으로 퇴근할 때까진 일 처리에 집중해야 할 것이었다.
몇 번 더 작게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 아직 다 처리하지 못한 협조금 관련 문서 작업을 마저 해 나가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조회가 끝나고 다들 맡은 바 작업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Rrrr― Rrrr―
이렇게 이른 시각에 저 전화가 울린 적이 있나 싶다. 팀장 자리에 놓인 전화가 우렁차게 제 존재를 발산하는 소리에 슬쩍 의자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급한 일 아니면 분명 아침엔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혹시 모르니 얼른 전화 받아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지.”
잠시 부팀장과 대화를 나눈 팀장이 곧바로 수화기를 든다. 나는 이어질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시 헌터부 염…. 뭐 급한 일입니까? …예?”
상황을 묻던 팀장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더니 눈을 끔벅인다. 그에 저 통화가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곤 완전히 의자를 돌려 앉아 통화 내용을 경청했다.
“하, 그런 게 있었으면 이미 예전에 상황 정리했겠죠! 내가 아니지, 우리가 무슨 빽이 있다고 높은 곳에서 연락을 다 취하겠습니까! 에드워드 왕자 인맥이요? 하! 설령 인맥이 있다고 해도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빽?”
“뭔 소리지?”
나도 그게 알고 싶었다.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는 팀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팀장이 말을 쏟아 내는 걸 듣고 있을 때였다.
“…뭔가 이상한 말 들은 거 같은데, 아까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디요? 예? 청와대?”
갑자기 청와대가 왜 나오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곳이 거론되자 얼른 팀장을 비롯해 팀원 전체를 훑어보았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나뿐만이 아니라 팀원들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자 다시 팀장을 보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아니 왜 거기서 연락이 왔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거기에 빽 없다니까 그러네!”
계속되는 빽과 청와대를 거론하기 바쁜 팀장이다. 도통 이해되지 않는 조합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
“와, 설마.”
“아니겠죠.”
“아닐 겁니다.”
한 주무관이 입을 열자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짤막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나 또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는 건 무리였다.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정말 현실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설마 잉여?”
“헉!”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헌터부에서만큼은 시청과 김세현, 그리고 청와대. 이 세 단어만 들어도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어제 박 주무관과 김세현이 통화했던 내용도 있고 말이다. 당시 대화를 곱씹으며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일단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니 애먼 사람 그만 잡으시고! 일 처리할 거 많으니 전화 끊겠습니다!”
평소보다 빠르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팀장이 그 자세 그대로 뚫어져라 전화기를 바라본다. 긴장하며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든 팀장이 날 바라보자 손을 말아쥐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굳이 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으며 확인받고 싶진 않았다. 아니, 확인할 거 얼른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막내야.”
“네, 팀장님.”
“아무래도 잉여가 일을 친 모양이야.”
“와, 우리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죠?”
“그건 너무하지! 일 처리는 빠르겠지만….”
나도 이번만큼은 팀원들의 말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동의할 수 있었다.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을 바라보았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맞아.”
“아.”
긴말은 아니었지만, 맞다고 하니 이보다 더 아찔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래,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땐 되도록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다잡는 편이….
“그렇다고 시청에서 청와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겁니까? 대개 몇 다리 걸쳐서 말이 내려왔을 텐데요.”
듣고 보니 그랬다. 김 주무관의 물음에 그것만은 아닐 거라 여기며 팀장을 응시했다.
“안 걸쳤단다.”
“…….”
“직통으로 시장에게 전화가 갔다고 해.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에서 말이 내려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버겁건만,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그 말도 안 되는 촬영은 취소되었으니까.”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마치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가기라도 한 듯 어이없음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에 동조하며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