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73)화 (73/246)

70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시장님이 내린 지시라고요? 하! 탁상공론만 펼치시는 분이 이번에 제대로 한 건 물었다고 합니까? 아, 됐고! 우리 막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 시킬 거라면 안 보냅니다! 이 이야기로 다시 전화할 거면 전화선 뽑을 줄 아쇼! …뭐라고요? 하! 그런 놈 이쪽에서 거절하겠습니다!”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팀장의 어깨가 그간 보아온 움직임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생각될 만큼 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살폈다.

“…….”

평소 같았다면 무슨 내용이냐 물었을 팀원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문 채 팀장을 보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만히 있던 부팀장이 총대를 멘 듯 움직이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시장님은 또 뭐고, 영웅과 피해자 콘셉트라니요.”

마음 같아선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지금 분위기에선 그저 숨죽이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부팀장과 팀장을 오가며 상황을 살필 때였다.

“시장 놈이 이번에 제대로 한 건 물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시장, 놈….

이를 아드득 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말이 무척이나 살벌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갔기에 맹렬하게 타오른 기세가 진정되지 않는 건지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 할 듯했다.

“한 건이라 하면….”

“우리 막내랑 서강민이랑 같이 서울시 홍보를 하자더라.”

“와, 인성 별로인 건 알고 있었는데 최악이네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그런 콘셉트를 내밀 수 있는 거죠?”

혀를 차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그에 동조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 들은 그 영웅과 피해자란 말이 너무도 크게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수많은 콘셉트가 있건만, 어떻게 영웅과 피해자 콘셉트란 말이 나온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 어떤 콘셉트라 할지언정 나서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팀원들과 일하는 데 치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막내는 가지 않아도 돼.”

“시장님이 지시를 내렸다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까라면 까야지!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혹시 막내가 가고 싶다면 말은 달라지겠지만.”

팀장이 의견을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고 싶은 마음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시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사람의 지시를 무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막내야, 핸드폰 좀 줘 봐.”

“여기요.”

갑자기 핸드폰을 달라는 김 주무관이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건네자 김 주무관이 뭔갈 확인하는가 싶더니 이내 박 주무관과 눈빛을 교환한다. 이어 박 주무관이 핸드폰을 넘겨받는데, 무엇을 하려고 하기에 저렇게 은밀하게 행동하는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무언가를 검색하는 듯싶던 박 주무관이 이내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간다. 마치 전화를 거는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 형!

“아.”

얼마나 큰 목소리로 불렀는지 박 주무관과의 거리가 제법 있음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눈을 끔벅였다.

“형은 맞지만, 그쪽이 원하는 형은 아니고. 김세현 씨, 잠시 통화합시다. 우리 막내한테 심각한 상황이 발생해서 말입니다.”

- …데 그래?

말을 이으며 핸드폰을 원탁 위에 내려놓은 박 주무관이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다. 그와 동시에 잠시 들리지 않던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 기울이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다른 게 아니라, 뉴스 좀 챙겨 봤습니까? 막내 지난번에 큰 사고 날 뻔했던 내용으로 전국이 들썩이는 중인데.”

- 그래서.

“일단 알아요, 몰라요. 앞의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지, 마는지부터 파악해야 뒷말을 꺼내지!”

- 다 설명해.

“…….”

나와 통화할 때와는 다르게 무척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간다. 그것도 무척이나 말이 짧은 채 말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역시 낯설었다.

“우리 막내가.”

- 우리 빼고.

“…막내가 이번에 교통사고가 날 뻔한 걸 서강민 헌터가 구해 줬잖습니까. 그런데 그 서강민 소속이 서울시 소속이란 말이죠. 현재 계약직이고. 그런데 요즘 서강민이 큰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막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거죠.”

- 그래서?

“그쪽도 알다시피 우리 윗선이 꼰대에다가 앞뒤 딱 막히고 바라는 거 많은 이들이잖습니까. 서강민이 던전 클리어할 때 때마침 던전과 상성이 좋은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었단 말이죠.”

- 그게 하늘 형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설마, 형이 내가 주는 아이템 갖고 싶대? 뭐, 형이 갖고 싶다면야 얼마든지 구해 줄 순 있지만.

거기서 갑자기 왜 아이템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이템을 구해 주겠다며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척이나 퉁명스럽던 목소리에서 활력이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주변을 살피자 모두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음에 나는 다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

아이템 하나 가격이 얼마인데, 구해 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값을 지불할 능력도 없거니와 그걸 지니고 있다고 한들 사용하는 방법도 몰랐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구해 주겠다고 하는 김세현의 마음이 너무도 예뻤다.

“아 좀! 눈치 챙깁시다!”

대화를 나누던 박 주무관이 답답한 표정을 감추지 않더니 이윽고 가슴을 퍽퍽 주먹으로 내리친다. 무척이나 아파 보였지만, 본인은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몇 번을 쳤을까, 잠시 다물었던 입을 열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짧게 축약하면 우리 윗선이 홍보하는 걸 그렇게 좋아한다, 이 말입니다!”

- …하?

조금 전과는 달리 반 박자 늦게 반응하는 김세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 그러니까, 하늘 형 얼굴을 그깟 일에 팔려 한다, 이거지.

“그 말이죠!”

- 일단 끊어.

“예, 잘 부…”

뚜- 뚜-

끊으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세현이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 말을 하다 만 박 주무관이 입을 다물며 핸드폰을 들어 내게 건넸다.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받아 품에 넣었다.

“흠, 흠! 이런 방법이 있다, 이거죠!”

헛기침을 하는 박 주무관의 표정이 어째 자신감이 넘쳐 보이면서도 흐려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치 않았다.

“제법 머리 썼는데?”

“…김세현에게 맡기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서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이 한마디 하면 서울시장? 꿈쩍도 못 하지!”

“아무렴요. 현직 대통령도 S급 헌터 눈치 살살 살피는 상황인데, 시장이 뭘 어쩌겠습니까!”

“일단 전화선부터 뽑도록 하죠.”

그래, 부팀장의 의견처럼 지금은 전화선부터 뽑는 게 맞았다. 혹여 다시 전화를 걸어 오늘 당장 오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곤란할 순 없으니까. 김 주무관이 팀장 자리로 가 전화선을 뽑는 모습을 볼 때였다. 문득 통화하던 팀장이 한 말을 떠오르자 손을 들었다.

“팀장님.”

“음?”

“그, 통화 마지막에 그런 놈은 이쪽에서 거절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놈이 누구인지 궁금해서요.”

“아, 서강민?”

“서강민이요?”

“에이, 설마요. 이렇게 빨리 헌터부에 넣는다고요?”

“지금으로선 뜨내기 같은 소문인 듯한데. 말이 나오는 걸 봐선 그 소문이 지금 시청을 집어삼킨 모양이야. 윗선의 움직임도 좀 있어 보이고.”

“현장 인원이 충원되는 건 좋지만, 서강민은 좀 껄끄럽군요. 언제 또 협회로 갈지 모르는 인사 아닙니까.”

“이번에 이름값 최대한 끌어올리고 다시 협회로 갈지도요? 듣자 하니 협회는 이름값에 따라 계약금이 달라진다 들었습니다.”

“아아, 그렇지. 명망 좀 있으면 이게 제법 쏠쏠하기는 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서강민이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싹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

지이잉- 지이잉-

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재차 존재감을 발산했다. 나는 품에서 전화를 꺼내어 상대방을 확인했다.

“잉여면 바로 받아. 스피커폰으로 받으면 더 좋고.”

“…그게, 서강민 헌터 전화입니다.”

“뭐?”

“시청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한 번 전화가 왔었어요.”

“바로 받아 봐. 스피커폰으로.”

“네.”

김세현과의 통화였다면 민망해서 바로 답하지 못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핸드폰을 원탁에 놓은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하늘 씨. 저 서강민입니다.

“안녕하세요.”

- 시간 잠시 괜찮을까요?

“말씀하세요.”

-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생겨서요. 혹 하늘 씨에게도 소식이 전달되었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번엔 또 무슨 소식일까. 나는 애써 궁금하지 않은 척 마음을 다스리며 입을 열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 그게, 이번에 제가 뜻하지 않게 외부에 노출돼서요. 그로 인해 윗선에서 좀 많이 흥분하신 듯하더라고요. 다들 이번 기회에 서울시 홍보를 해야겠다면서 제게 서울시 홍보대사가 되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들어왔습니다. 근데, 하늘 씨도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아.”

조금 전 팀장의 통화 내용과 맞물리는 내용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윗선이 움직이는 듯하단 말과 이미 움직였단 차이 정도였다.

- 불편하시면 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혼자 해도 되니까요.

“…그걸 제게 이렇게 말씀 주시는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윗선에서 말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임은 서강민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택지를 준다는 게 이상했다. 마치 본인에게 힘이 있다는 듯 말이다.

- 그게, 이번 일로 윗선에서 절 좋게 봐주셔서요. 말을 잘해 보면 하늘 씨까지 나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솔직히 영웅과 피해자를 대대적으로 앞세우는 전략은 좀 아니기도 하고요.

조금 전까지 여기서 나왔던 말을 입에 담는다. 나는 팀원들의 얼굴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알았다고 해.

얼른 알았다고 해.

“…….”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팀원들이 입을 벙긋이며 같은 말을 한다. 나는 그 의견들을 종합해 내 생각을 전달했다.

“실은, 많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서강민 씨가 말을 해 주신다면 저야 고마울 따름이고요.”

- 하하, 네. 그럼 하늘 씨 뜻을 들었으니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이 더 진행되면 안 되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 그리고 하늘 씨.

슬슬 통화가 마무리되나 싶던 참이었다. 서강민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 그…. 흠, 흠! 하늘 씨. 나중에 시간 되실 때 함께 식사하실래요?

혹여 촬영 관련하여 다른 말이 나올까 싶어 귀 기울였건만, 난데없이 식사 제안을 받을 줄은 몰랐다.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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