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덤프트럭을 막아 낸 영웅, 서강민 헌터>
<계약직으로 전락한 헌터, 이대로도 좋은가>
<던전 생성의 법칙, 이대로 사장되는가!>
<서울시 소속 계약헌터, 목숨 걸고 인명구조>
<헌터 신드롬! 계약직 헌터, 빼어난 용모로 인기 상승 중!>
<계약직 헌터가 아이템을 소유하게 된 이유는?>
시간이 좀 지나면 잠잠해지려나 싶었지만, 어찌 된 게 서강민 헌터와 관련된 기사는 나날이 그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인터넷 뉴스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출퇴근길에 듣는 라디오에서도 서강민과 관련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고, 종편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기 바빴다.
“…….”
서강민 신드롬으로까지 볼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는 건 그만큼 서강민의 조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이템을 소지한 국가 소속 계약직, 그것도 A급 헌터라는 사실에 더하여 제법 봐줌직한 용모는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창작물 주인공에 걸맞은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검색 사이트에 접속했건만, 역시나 서강민과 관련된 기사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워라밸도 없는지 점심시간에도 새로 업로드된 기사를 보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뭘 보는데, 그렇게 한숨이야?”
“서강민 헌터 관련된 기사가 끊이질 않네요.”
“아이템까지 소지하고 있으니 더 그럴 거야. 대개 아이템을 소지하는 사람들은 이게 많거든.”
김 주무관이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만들어 보였다.
“아이템까지 있으면서 국가 계약직에 머물러 있으니 관심을 끌 수밖에. 게다가 서강민 외모도 제법 볼 만하고 말이야.”
“…….”
식사 중이던 김 주무관과 팀장이 한마디씩 말을 얹는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외모가 봐줌 직하지 않아?”
표정이 좀 그랬는지 젓가락을 놀리다 만 박 주무관이 묻자,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만요.”
“아니지만?”
“그냥, 세현 씨가 생각나서요.”
서강민이 못생긴 건 아니었지만, 김세현 앞에서는 오징어일 뿐이었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신세가 되겠지만 말이다.
“…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막내가 얼굴 엄청나게 따지는구나?”
얼굴을 따진다니, 그건 아니었다. 곧바로 부정했다.
“안 따져요. 그냥, 자주 보는 얼굴이 김세현이라 자연스럽게 비교가 돼서 그렇죠.”
“평소 하는 거 보면 얼빠 맞아.”
“매번 김세현 앞에서 멍때리는 거 보면 몰라?”
“…아닌데.”
얼굴을 보며 멍때린 적은 없, 사실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자주 그런 건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김세현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 같은 반응을 보일 게 뻔했다.
“후, 잘 먹었다!”
“벌써요? 아직 음식 많이 남았잖습니까.”
“요즘 배가 좀 나온 거 같아서. 식단 조절하려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팀장이 배를 툭툭 치며 웃는다. 절로 팀장의 배로 눈이 갔지만, 뱃살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거 다 근육 아닙니까?”
“아니야. 살 좀 붙었어.”
“…….”
살이 붙었다는 말에 좀처럼 동의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팀장의 몸은 근육으로 가득했으니까. 반팔 아래 드러난 팔만 봐도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근육이 쩍쩍 갈라진 팔을 보자니 괜히 내 몸으로 시선이 간다. 힐끔 내 팔을 보고, 또 주변 팀원들의 팔을 살폈다. 그리곤 누구보다 새하얗고 물렁물렁해 보이는 팔을 슬그머니 원탁 아래로, 슬쩍 허리를 숙이며 최대한 열심히 감췄다.
“저 팔 좀 보세요! 던전에서 무지막지하게 몬스터를 때려잡으니 근육만 잔뜩 커져서는! 팀장님, 체지방이 있기는 해요?”
“날 뭐 근육 덩어리로 보는 거야?”
“당연하죠! 우리 헌터부 최고 근육남 아닙니까!”
“푸핫! 칭찬이 좀 듣기 그렇다?”
벌떡 자리서 일어난 박 주무관이 피트니스 대회에 나오는 참가자들이 취하는 자세를 취하자, 팀장이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다른 날과는 달리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웃을 수 없었다.
“하늘 씨,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건너편의 부팀장이 묻는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설마, 얼빠 이야기에 토라졌어?”
슬그머니 입꼬리를 아래로 내린 팀장이 우쭈쭈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본다.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모습에 눈가를 축 늘어뜨렸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팀장님이 부러워서요.”
“내가?”
“팀장님이 왜 부러운데?”
“…몸 좋으시잖아요.”
그래, 내가 팀장 몸의 반의반만 되었어도 이렇게까지 부럽진 않았을 거다. 힐끔 팀장의 팔을 훔쳐보고 다시 내 손을 내려다볼 때였다.
“푸핫!”
“아니 그게 왜 부러운데!”
“하하!”
“…….”
난 심각한데, 왜들 저리 웃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팀장의 팔과 내 팔을 번갈아 보며 말이다. 민망함에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됐어. 너는 딱 지금이 좋아.”
“우락부락한 막내라니. 난 반대다!”
“아니지, 우리 막내 운동시킬까요? 근육 붙고 몸 좋아지면 잉여 반응이 어떨지 좀 궁금한데?”
운동?
김 주무관의 말이 무척이나 달콤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그를 보았다.
“막내야.”
“네, 팀장님.”
“따로 돈 안 내도 땀 쭉 빼고 전신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정말요?”
“당연하지. 다음에 던전 생성되면 현장 가자. 그거만큼 운동이 되는 거 없어!”
무슨 운동인가 싶었는데, 던전행이라니.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건 좀.”
“저 진짜 배 찢어질 거 같아요!”
“하하!”
내 말이 뭐가 웃기다고 저렇게 박장대소하는지 모르겠다. 부팀장까지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말을 꺼낸 팀장을 바라보았다.
“한강 둔치 달릴까? 하루에 두세 시간이면 바로 근육 잡힐 텐데.”
“그, 렇게까진 못 달릴 거 같아요.”
그래, 그렇게 달린다면 일주일 이상 여파가 올 터였다. 앓아누울 게 뻔한데, 일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달리고 싶진 않았다.
“아, 진짜 미치겠다. 더는 못 물어봐!”
“…….”
“우리 막내, 운동이 싫지!”
“오죽 싫으면 잉여가 편히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며 꼬셨는데도 거절했잖아!”
“하핫! 그때 참 볼.”
띠리릭- 띠리릭-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벨 소리에 자연스럽게 팀장 자리로 시선을 주었다.
“…점심시간에 전화한다고?”
“예의라곤 쥐뿔도 없네요!”
“워라밸 몰라, 워라밸?”
“하아.”
모두가 이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저 전화가 울릴 땐 좋은 소리를 들은 적 없었으니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은 팀장이 자리서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원탁 아래 감춰져 있던 하체에 자리 잡은 근육에 슬그머니 시선이 갈 때였다.
“막내야.”
“헙, 네!”
“앞으로 또 그렇게 보면 그날부터 당장 한강에서 세 시간씩 조깅하는 거야.”
어떻게 봤기에 팀장이 저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더는 팀장의 근육을 부러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걸 말이다. 나는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지만, 피할 건 피해야 했다.
잠시 이쪽을 보던 팀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리로 간다. 뒤돌아선 팀장의 몸을 마지막으로 힐끔 바라보았다.
“끄윽!”
“흡!”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놓고 웃던 이들이 소리를 죽인 채 끅끅대며 웃기 바쁘다. 김 주무관은 이미 원탁과 몸이 하나가 된 상태였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던 때였다.
“협조금 이야기는 질리지도 않습니까? 저희가 어떻게 그걸 조절한다고 그래요! 높은 난이도 던전이 터졌는데, 돈 조금 줄여 보려다가 더 큰 피해 입을 수 있단 말입니다!”
역시, 오늘도 협조금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어째서 팀장이 자꾸만 답답하면 나와서 직접 던전 클리어를 하라는 건지 조금 알 듯했다.
“아니, 왜 일하는 우리 막내를 시청으로 보내라는 거요!”
음?
갑자기 왜 내가 거론되는 거지? 나는 바로 팀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니까! 서강민이면 서강민이지, 왜 우리 막내가 가냐, 이 말이지! 뭐요? 우리 막내 방금 점심 먹었소!”
“…갑자기 막내 이야기가 왜 나와? 서강민은 또 뭐고?”
“뭐지?”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나는 뚫어져라 팀장을 보며 다음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하! 지금 그러니까 이번 일로 제대로 뽕 한 번 뽑아 보겠다, 이거 아닙니까! 영웅과 피해자 콘셉트로!”
“아.”
“최악인데.”
영웅과 피해자 콘셉트라니. 뽕은 또 뭐고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던 참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원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곧바로 화면을 뒤집어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했다.
“으음.”
하필 이 타이밍에 서강민 헌터가 전화할 줄은 몰랐다. 말없이 핸드폰 진동을 끄곤 다시 팀장 쪽으로 귀 기울였다.
“그런 콘셉트라면 이쪽에서 무조건 거절하죠! 시말서 쓰게 하려면 하든가! 감봉? 감봉하든가!”
“와, 우리 팀장님 단단히 열 받았는데요?”
“당연히 화나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콘셉트는 누가 봐도 별로잖아. 막내 얼굴 봐, 허옇게 질렸잖아.”
내 얼굴이 희게 질렸다니.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안색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얼굴을 만지는 손가락 끝이 차갑다는 것이었다. 서늘하게 질린 손끝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